< 공략불가 「마운틴」 (5) >
서포터들의 회복 능력은 육체적인 부상을 완벽에 가깝게 치유한다. 그러나 그 능력은 정신적 피해까지 회복하진 못한다. 뇌의 손상이나 피로감 따위는 시간이 약이거나, 포인트로 구매하는 회복약이 유일한 답이다. 그러니까 지금 성연은 겉만 멀쩡했다. 속은 터지고 으깨져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성연은 티 내지 않았다.
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수 없이······."
성연은 아래를 보았다. 몸을 꿈틀대고 있는 마운틴이 있었다. 그 준비 동작은 수류탄처럼 껍질을 또 다시 쏟아내려는 건지, 아니면 이쪽으로 도약하려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떤 쪽이든 충분히 위협적이리라.
유의미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놈은 가까이 있는 언데드 군단이 아니라 훨씬 멀리 있는. '본대'에 해당되는 토벌대를 보고 있었다. 마운틴은 지능적이다. 가까이 있는 적에게 어그로가 끌리는 게임 속 보스 몬스터와 달리, 저 괴수는 어떤 인원이 가장 위협적인지 직감적으로 눈치챈다. 그리하여 마운틴은 성연과 레베카만을 뚜렷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성연이 눈살을 팍 찌푸렸다.
'재생 능력? 예전 던전에서 봤던 그 초재생과 비슷한······.'
드러난 맨살에 새겨진 상처가 느릿하게 아물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느린 것이 아니라 그 몸집이 지나치게 커다랬기에 느린 것처럼 보였다. 크기를 감안하고 본다면 놀라운 수준의 회복이리라. 마운틴은 피부에 새겨진 상처를 회복하는 것뿐 아니라, 완전히 회복된 부분의 껍질마저 수복하고 있었다. 보통의 수단으로는 뚫을 수 없는 단단한 갑옷.
성연은 저 재생 능력이 얼마나 까다로운 지 알았다. 저와 비슷한 능력을 가졌던 놈들을 알았다. 지하 미궁에 머물던, 한 단계 진화했다던 놈들. 녀석들을 처리했던 방식은 단순했다. 회복 능력을 웃도는 위력으로 찍어누르는 것.
그때는 어떻게든 해냈으나 지금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특히나 화력 담당을 하는 각성자가 네크로맨서라면 더욱. 깎아먹고 말려죽이는 전투에 있어서 저런 회복 능력은 극상성에 해당한다. 확실한 한 방이 중요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할 일에 있어서 실수는 없어야 한다. 절대로.
성연은 토벌대가 출발하기 전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녀석의 가장 큰 무기는 포효입니다. 각성자들 잡으라고 만든 무기나 다름없어요. 아마 스스로도 그리 생각하고 있을걸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소리 지를 각 볼 겁니다. 한 번이면 전황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니까. 우리는 그것만 조심하면 되는 거에요.'
'소리만 조심하라?'
'예. 김유현 능력으로 틀어막다가 변수 생길 거 같으면 강윤식 씨가 성대나 아가리 쪽만 노리는거죠. 그것도 힘들면 레베카가 어떻게든 마법 쓰고요.'
'바람 마법? 주변 음소거 시키는 정도는 어렵지 않지. 근데 워낙 크기가 크다보니까 완벽하진 않을수도 있어.'
'그럼 일단은 제가 최대한 김유현 능력 이용해서 막아볼게요. 소리만 없으면 승산은 충분······.'
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방법. 소리만 없으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운틴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껍질을 쏟아내거나 이쪽으로 뛰어오르는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있다면 마땅히 그럴 것이다. 포효 한 번 내지르고 나면 우수수 떨어진 무능력자들 죽이는 건 마운틴에게 기어다니는 개미 짓밟아 터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순간 마운틴은 방심할 것이고, 방심은 곧 최고의 기회로 작용한다.
성연은 저 산만한 괴수가 자신보다 지략에 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곧 과감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모든 상황에서 과감함은 변수를 창출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성연은 과감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도박.
이와 같은 도박에서 성연은 지금껏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다.
그때였다. 발소리가 들렸다.
마운틴의 것? 아니다. 그보다 훨씬 미약한 종류의 것.
하지만 숫자는 무시할 수 없이 많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 괴수가 여기까지 왔다!"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커다란 괴수가 제 군단을 끌고 여기로 접근하고 있었다.
과연 영역을 침범당한 마운틴은 어찌 반응할까? 지금껏 보인 반응으로 추측해보건데 마운틴의 사고 방식은 괴수에 가깝지 않다. 선택지가 있다면 본능보단 이성적인 것을 택할 것이다. 감히 제 영역에 들어온 괴수를 응징하기보단 오히려 저들을 이용해 이쪽을 처리하는 방법을. 반길 수 없는 불청객들이다. 마운틴에 더해서 저놈들까지 추가된다면 정말 게임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압도적인 보스 몬스터. 필드에 출현하기 시작한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의 졸개 몬스터들······.
토벌대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때 레베카가 뭐라 중얼거렸다.
힘내자는 화이팅? 아니다. 마법 주문이다. 다양한 현상을 동반하는 이계의 언어.
그 순간 화염이 적들을 휩쓸었다. 괴수가 일으킨 언데드들에겐 무한히 죽음을 거부하는 힘 따윈 담겨있지 않았으므로, 한 번의 공격으로 여럿이 쓸려나갔다.
시간을 벌었다. 성연이 레베카에게 말했다.
"신호 줄테니까. 그때."
"알았어."
레베카는 곧장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재차 시작된 전투는 아까보다 더 난잡했다. 다행히도 토벌대는 성연의 언데드를 탄 채로 비행하고 있었기에, 지상에서 군단의 발에 압사당하는 일은 없었다. 총 세 가지 능력이 결합된 성연의 언데드들은 적들의 숫자를 착실히 줄였다. 그 과정에서 마운틴을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군주가 몰고 온 괴수들은 즉시 머리를 꿰뚫리거나, 다리를 잃고 넘어져 진형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마운틴이 완전히 몸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상처를 쑤시고 드러난 맨살을 계속해서 찌르는 행동을 반복했다. 물론 그런 일들로 이백 미터 몸에 치명상을 입힐 순 없었다.
'자연스럽게. 들키지 않도록. 마운틴이 실수라고 생각하도록······.'
성연은 마치 이 난전에서 '마운틴'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잊은 것처럼 행동했다. 가장 먼저 마운틴의 입가를 찌르는 걸 그만두었다. 그러곤 몸집 큰 놈을 상대하는 것의 정석. 다리와 그 무릎 관절들을 철저히 찔렀다. 저 초거대 괴수가 허공을 딛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마운틴의 눈가가 좁혀졌다.
더해서 성연은 김유현의 능력을 사용하는 빈도를 철저히 줄였다. 지금 상황에서 위험한 것은 이백 미터 몸체요, 몰려드는 숫자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마운틴이 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굳게 다물고 있던 마운틴의 입가가 눈에 띄게 들썩였다. 그 와중에 성연은 전장 한구석에 언데드 하나를 숨겨놓았다. 전투에 참여하는 대신, 웅크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언데드.
마운틴은 배치된 여러 요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전에 비해서 허술해진 네크로맨서의 모습에 무언가 작전을 꾸민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저 네크로맨서의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에 저놈도 역시나 인간이었구나, 치열하고 긴 전투에서 마침내 지쳐버렸구나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괜찮은 거 맞아요? 저기요······."
같은 토벌대원들조차 후자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선 같은 편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먼 곳, 제대로 상태를 살피기 힘든 마운틴의 입장에선?
"크르······."
걸려들 것이다. 당연히.
놈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와 함께 심연의 구렁텅이라 불러야 할 법한 구멍이 드러났다. 긁는 소리. 원래는 저 소리가 울릴 때 김유현의 능력을 사용해야 포효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성연은 그러지 않았다. 놈을 완전히 보내버릴만한 공격이 필요했다. 회복하는 것은 꿈도 없을만큼 강력한. 이백 미터 괴수쯤은 박살낼 수 있는 힘.
'증폭. 소리의 증폭······.'
성연은 구석에 웅크린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했다. 더해서 흔들거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집중했다. 본래는 뛰지 않아야 할 심장, 이미 죽은 싸늘한 심장이 박동치기 시작했다. 전신에 피를 순환시키기 위한 원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서. 그 박동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우렁차게 커졌다.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그 음파가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 슈퍼맨의 몸뚱이에 상처를 새긴 적 있던 음파. 이론적으로 달을 부술 수 있을 거라던 아득한 충격량. 그 충격량에 강윤식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주변을 박살내는 무형의 폭탄. 모든 방어력을 무시하는 힘······.
두 가지 조합은 가히 모든 걸 꿰뚫는 창에 가깝다.
과연 저 이백 미터 괴수는 달을 부수는 충격량을 견뎌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브라더후드 쪽에서 쏘았던 핵무기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마운틴은 그 핵무기를 먹잇감 먹듯 집어삼켰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성연은 저 괴수가 핵무기를 먹던 순간과 포효를 하던 순간의 차이점을 알고 있었다.
목구멍 속에 다른 차원과 이어지는 공간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핵무기의 위력을 온전히 흡수했던 것은 모종의 능력일 것이다. 포효를 내지를 때 보였던 목구멍과 집어삼킬 때 보였던 목구멍은 분명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쓸 순 없을 것이다.
주변 모든 것을 흡수하며 일대에 태풍을 부르는 포효를 내지른다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성연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저거, 뭔······."
성연과 감각을 공유한 언데드의 몸뚱이에서 울리는 소리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음량을 뿜어내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박동은 이제 전장의 소음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커졌다. 김유현의 능력. 그 능력을 끝까지 이끌어낸 결과이다.
마운틴은 그 이상할 정도의 소음을 특정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최후의 발악. 그러니까, 저 네크로맨서가 또 다시 시체 폭발을 쓰거나 거슬리는 마법사가 폭격이라도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걸 막기 위해서 움직인다면 낭비가 될 것이다. 더욱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날파리나 다름없는 저것들을 단숨에 멍청이로 만들 수 있는 무기. 아까까진 쓸 수 없었지만 저 네크로맨서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덕에 사용할 수 있게 된······.
마운틴이 그 동안 경험하기로 요란한 능력들을 쓰는 인간들은 포효에 의해 무력화 되는 즉시 능력을 잃었다. 더하여, 시간을 들여 준비하던 공격들도 모조리 중단되었다. 준비하던 공격이 중단되면 그 시전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이요, 심각하면 곧장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마운틴은 이제 거리낄 것 없이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리고 아주 조금 먼저 성연이 외쳤다.
"지금!"
레베카는 성연이 입을 달싹이는 그 순간부터 신호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지금 전장에서 마운틴의 입속에 쳐넣어야 할만한 언데드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는 놈. 텔레포트 주문은 이미 외워두었다. 그리하여 0.02초를 넘어서는 속도로 마법이 펼쳐졌다. 찰나의 순간 마운틴의 아가리 사이에 괴상한 살덩이가 끼었다. 심장 박동 소리. 웅장한 음파가 곧 충격파로 변환되었다.
전문가들이 추정하기를 달. 그러니까, 평균 반지름 1731.1Km의 위성도 박살낼 수 있는 폭탄이 지금 폭발했다. 그에 맞춰 마운틴의 입에서 성대한 포효가 쏟아졌다.
그 포효조차 충격파가 되었다. 모든 소음들이 형언할 수 없는 굉음에 파묻혀 사라졌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충격파로 하여금 빛이 한 번 번쩍였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세찬 바람이 불었다. 그 연기 속에서 인간 한 명이 추락했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네크로맨서. 그 뇌에 심대한 타격을 입은 영웅. 유성연.
그리고 성연이 땅에 부딪히기 전, 먼저 무너져 내린 쪽이 있었다. 강렬한 충격파는 곧 고열을 동반했고 마운틴은 엉망진창이 된 채 파도 앞 모래성처럼 흐물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붕괴의 풍경 앞에서 누군가 급히 날아왔다. 레베카 블런트.
그 영국인은 떨어지는 유성연을 아슬아슬하게 품에 안아들었다. 신화적인 전투를 만든 네크로맨서는 그 대단함에 비하여 너무나 가벼웠다. 지나칠 정도로.
레베카는 지상 최강의 괴수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뭐라 말해야 할 지 몰랐다. 그래서 당장 생각나는 말을 일단 내뱉었다.
"······이겼어, 네가."
< 공략불가 「마운틴」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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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몸이 힘들어서 한편만 올리겠습니당 ㅠ.ㅠ
재충전하고 내일 연참하겠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