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91화 (91/111)

< 공략불가 「마운틴」(4) >

'네크로맨서? 그 새끼들은 역겨운 것들이야. 보이는 족족 모조리 대갈통을 부수고 사지를 찢어도 모자라. 어떤 것들이냐고? 직접 보지 않았나. 내 가족들을 죽이고도 모자라 좀비가 되어 걷게 만들었던 개-새끼들!'

'유성연? 그 사형수 네크로맨서가 등장했다고? 놀랄 일이군. 분명 이 땅에 죽음을 내릴거야. 그럴만한 인물로 보이진 않았지만······어쨌건 놈도 네크로맨서 아닌가. 네크로맨서들은 모두 그래. 죽여야 한다고.'

'우리가 죽인 네크로맨서의 자식이 시위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어찌했나? 그걸 물으려 왔다고?······그냥 두게. 자식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이것저것 챙겨줘서 보내. 낯빛이 좋지 않다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네. 약을 더 처방받야야겠군. 요즘따라 우울해지는 일이 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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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야. 이런 생각이 드는군. 네크로맨서들을 죽이는 게 맞는가. 괜한 정신병에 사로잡혀서 변한 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어. 죽은 가족들 때문에 그러느냐고? 죽은 이들의 복수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살아있는 내가 견딜 수 없어서 그렇네. 매일 밤마다 아내,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 추악한 것들을 죽이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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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네. 너무 힘들어. 죽이는 것도 지겨워. 하지만 어쩌겠나. 우린 모두 큰형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충실한 종이요, 노예인걸. 뒤늦게 속죄하려 들고 후회해봤자 너무 멀리왔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날 살인광이며 테러리스트로 기억하겠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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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뀐다면 모르지. 누구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 내 가족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는 보통의 세상.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 보통 세상.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 청년이라면 가능할거야. 괜한 증오에 사로잡혀 살인에 빠지는 이가 나타나지도 않고, 그 증오가 발생할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테지······.'

'유성연이라면. 그 청년이라면. 분명히 해낼거야.'

'그런 세상이 찾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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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있는 애들 몇만 붙여주게. 잠깐 어디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예? 어디 가시는데요?'

질문. 그 질문에 강윤식은 여러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 지옥에 떨어질것이 분명한 죄.

지나치게 여린 아내. 저녁을 준비하다 손가락을 베었다는 이유로 엉엉 울던 아내는 지옥이 아닌 천당에 갔을 것이다. 평생 공부밖에 모르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결국 죽음 이후에도 자신은 가족과 만날 수 없겠지. 지옥이 있다면.

어쩌면 그런 종교적인 사후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끝이겠지. 강윤식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가족들이라도 안식을 바라길. 그 착한 것들은 평화와 행복을 누리길 바랬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은 평생을 업화의 불꽃에 타올라도 상관없었다. 얼마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참이었다. 스스로의 천당행이 아니라 이미 먼저 가버린 이들의 안식을 위하여.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져도 훗날 행복한 결과를 불러올 지 모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유성연. 본 게임의 선두에 서 있으며 소원권을 따낼 유력한 후보.

비난이 난무하던 여론과는 거리가 먼 성정을 가진 그 청년이라면 분명 세상을 올바르게 바꿀 것이다. 그 결과를 위해서라면 강윤식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정말 무엇이든지······.

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대답에 담긴 의미를,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파악하지 못했다. 조금도 파악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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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시야. 타오르는 고통 속에서 강윤식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족을 떠올렸다. 행복하던 가정. 그 행복이 파괴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머리를 집어삼킨 분노는 그 중년인을 미치광이 살인마로 만들었다. 어쩌면, 크게 아울렀을 때 증오하던 큰형님과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남자의 노예가 된 채 인생의 절반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강윤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체념할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언가 해야만 한다. 끝끝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인간은 움직여야 한다.

강윤식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어떤 방어든 꿰뚫는 각성 능력. 저격이나 암살에나 능한 능력이었고, 테러리스트가 되기 전엔 써먹을 일 없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나 어떤 네크로맨서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이 힘은 지나치게 강력한 폭력이 될 것이다. 원래부터 강윤식은 이럴 셈이었다. 스스로를 태워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되리라고.

"······."

성연이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몸을 감싼 방어막 때문인지, 아니면 윙윙 울리는 이명 때문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예전엔 언데드가 되면 노예가 되는 것보다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죽어서도 안식을 취할 수 없고 꼭두각시가 되어 살아가는 것.

사실일까? 모르겠다.

언데드는 자의가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에 힘들다고 호소하는 언데드 따위는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혹시 이 선택을 훗날 후회하는 건 아닐까? 그것 또한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짊어져야 할 짐이요, 속죄하고 감내해야 할 징벌이다.

강윤식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것으로 생명이 꺼졌다.

뒤편에 선 네크로맨서의 눈에 빛이 맴돌았다. 꺼졌던 생명에 연기가 피었다. 새로운 생명이 타오르고,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힘이 소용돌이쳤다.

키 180cm도 되지 않을 청년은 이 순간 죽은 자가 된 강윤식에게는 신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아득히 거대하며 위대한 무언가. 어떤 손길이 강윤식의 몸을 바꾸었다. 시체는 이제 땅에 떨어져 곤두박질쳤고 흘러내린 내장이 튀었다. 싸늘하게 남은 주검에서 흐릿한 것이 빠져나왔다. 영혼 따위에 속하는 것이리라.

그 순간 강윤식은 자신의 몸이 재구성되는 것을 느꼈다.

더 강하고, 더 커다란 것.

그 목적을 추구하며 살점들이 모였다. 이 순간 전장에 새로운 언데드가 나타났다.

뭐든 꿰뚫고, 뭐든 부술 수 있는 창을 가진 불멸의 병사.

중년인의 살점 위로 갑옷이 입혀지듯 껍질이 돋았다. 여전히 온기 없이 싸늘함이 맴도는 살덩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무기를 들었다.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위해. 마침내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서.

강윤식. 아니, 언데드 병사가 소리쳤다.

인간이 아니라 괴수 특유의 긁는 소리가 담긴 음성으로.

"군 - 주를 위하여 -!"

***

이 순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은 없었다. 지상 최강의 괴수를 사냥하며 죽는 이가 없으리라 막연히 바라지 않았다. 단순히 이십 미터 고질라들의 습격에서도 변수는 많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운 나쁘게 죽는 이들은 속출한다. 지금껏 살아남은 이들은 그런 죽음들을 지나치게 많이 거쳐왔다. 그러니까, 저 죽음은 드물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젠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침묵은 흘렀다. 그들 나름의 추모였다.

여전히 마운틴은 건재하다. 방금 그 공격은 저 초거대 괴수가 제 몸을 깎아내며 강행한 공격이다. 한 명만 죽은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저 새끼, 또······."

마운틴은 거슬리는 총격을 일삼던 중년인이 죽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동료의 죽음에 성연은 흥분하지 않았다. 흥분할만한 기운도 남지 않았다. 명백히 한계치를 넘어선 바, 성연은 정신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레베카 블런트뿐이었다.

그녀는 성연이 이 신화적인 전투에서 저와 같은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성연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 네크로맨서는 살아오며 모든 순간에 죽음을 상정하며 싸워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협회 대한민국 지부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순간, 끝끝내 김유현을 죽였던 순간, 교도소 안에서 이십 미터 고질라들을 뚫고 나왔을 때, 미쳐버린 교도관들을 상대했을 때.

모두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벼랑 끝에 선 채 살았다.

성연의 눈가에서 핏물이 흘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네크로맨서에게 시력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은 주변 모든 것을 느끼게 해주는 바, 눈 두쪽이 모두 날아가도 성연은 싸울 수 있다.

"방어막으로 다 못 막아! 저 껍질 뭔가 이상해. 싹 다 깨부순다고!"

레베카가 소리쳤다. 저 아래 있는 마운틴이 다시 한 번 파편을 쏟아내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까다로운 놈 하나를 그 공격으로 제거했으니, 다시 한 번 쏟아내려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연은 제대로 일격을 먹여줄 준비를 했다.

언데드 군단이 움직였다. 이제 언데드들은 육탄전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옛날 유행했던 게임의 유닛. 질럿이란 이름을 가졌던 유닛처럼 양팔 부분에 낫처럼 휘어진 신체 부위를 가졌다. 그런 뒤, 허공에 대고 그 신체 부위를 무작정 휘둘렀다.

갑자기 미쳐버린 것이 아니었다. 다케다 유이치의 능력이 발동된 결과 그 휘두름들은 마운틴의 몸에 제대로 맞닿았다. 전에는 하지 않았던 공격이다.

그 단순한 공격으로 껍질을 뚫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능력을 넘겨준 강윤식. 그 중년인의 각성 능력이 발동되었다.

이백 미터 몸뚱이를 감싼 껍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더하여, 바늘에 찔린듯 핏물들이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유의미한 데미지가 들어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비행형 언데드를 탄 토벌대원들이 뭐라 외치며 화력을 쏟아냈다.

이백 미터 괴수를 상대로 탱킹이 가능한 각성자는 없었으므로, 대부분이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로 구성된 토벌대였다. 포인트를 마음껏 투자한 실력자들의 힘은 강했다.

껍질이 사라진 맨살에 피해를 입힐 수 있을만큼.

천둥과 화염이 난무했다. 가장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레베카였다.

이 순간 토벌대원들은 왜 저 영국인이 여신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더해서, 초월적인 마법사가 전투에서 얼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함께.

뉴스에서 보았던 자연재해들이 눈 앞에서 현현되고 있었다. 굉음과 충격파들.

마운틴도 감히 무시할 수 없을 화력의 집중이다.

그 과정에서 성연이 무겁게 입을 뗐다. 힘겨운 목소리로.

"텔, 레포트······어디든 쓸 수 있나? 저놈 몸뚱이 안에도?"

"그건 안돼! 눈에 보이는 위치여야 해. 그게 됐으면 내가 슈퍼맨한테 왜 쫄아. 칼이든 총알이든 심장에 바로 꽂아줄텐데······."

"눈에 보이는······."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머릿속에 구성되던 작전을 마침내 완성했다.

"김유현 능력 멈출거야. 더 강력한 한 방을 위해서. 그럼 그때 마운틴 입 속에 저기 있는 가장 큰 언데드 쳐넣어. 나는 두 가지는 동시에 못해. 이번엔 네 도움이 필요해."

레베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성연은 곧바로 자기가 말한대로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벌대원 중 하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 지르는 거 쓰면 우리 다 병신되는거 아뇨? 네크로맨서 능력도 먹통될텐데 그럼 다 같이 아래로 떨어지는······."

"걱정말고, 저 사람 말 들어요."

"괜찮나? 위험할 것 같은데 이거······."

"성공할겁니다. 저 사람이라면."

뒤에서 들려오는 말은 레베카에게도 닿았다. 당연히 성연에게도.

그리하여 그 레베카는 혹시나 저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작전에 확신을 가지지 못할까 걱정해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연이 중얼거렸다.

다른 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어조로.

"실패, 안 한다. 절대로."

< 공략불가 「마운틴」(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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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g7993_outergap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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