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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90화 (90/111)

< 공략불가 「마운틴」 (3) >

그 신화적인 전투를 보며 본 게임을 개최한 주최측은 놀라움 절반, 우려 절반이 섞인 감정을 느꼈다.

저 레이드를 그냥 두어도 괜찮은가? 그런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 게임을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바, 주최측이 간섭하는 순간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리라. 이 게임을 관람하는 군중 중에는 주최측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들도 있는 바, 그건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만약 저 네크로맨서가 마운틴 공략을 성공하는 경우엔 밸런스가 심각하게 망가질 것이다. GM 역할을 하도록 배치한 존재는 오버 스펙을 가졌다. 그리고 죽음의 군주로 진화하게 된 능력은 그 오버 스펙의 사체를 일으킬 만큼의 총량을 보유했다.

괜찮을까? 그런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쨌건 보는 이들이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균형을 수호하는 역할로 배치된 저 괴수가 가진 힘은 저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각성자들의 힘을 가늠해 만든 놈이므로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하더라도 어떤가?

본 게임에는 많은 함정이 숨어있다. 어떤 거창한 소원을 빈다 한들, 결국 세상은 다시 되감겨 즐거운 유흥을 다시 반복케 될 것이다. 지구는 좋은 상품이었다. 본 게임을 개최한 주최측은 이 인기 많은 유흥을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리메이크를 하건, 새로운 시즌으로 재편성하건, 어차피 또 시작될 것이니 1회차 게임이 밸런스가 망가졌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시간을 되감는 것이나 이미 죽은 이들을 모조리 살리는 건 그들에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꽤나 느긋해진 주최측은 편히 앉은 채 머나먼 지상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들도 관람자가 되어서.

***

마운틴은 이 기껍지 않은 상황을 보며 주둥이를 달싹였다. 그가 저 거슬리는 토벌대원과 전장을 내려다보는 감정이란 괴수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 영역에 쳐들어온 놈들에 대한 분노,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한 식욕, 그런 야수성에 가까운 본능과는 달랐다.

마운틴이 느끼는 감정은 사람의 것에 비슷했다. 그러니까, 수행해야 할 임무를 방해받은 요원이 느낄만한 것. 그리고 야수성과는 거리가 먼 분노는 대상을 흥분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침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침착함이란 난전에서 언제나 강력한 무기가 되기 마련이다. 마운틴은 넓은 시야에서 가장 거슬리는 적들을 파악했다.

1순위는 저 네크로맨서였으며, 2순위는 마법사, 3순위는 요상한 무기를 쏴 갈기는 중년인이었다. 가장 죽이기 쉬운 적은 누구인가? 저 중년인이다.

나머지 둘과 달리 저 중년인에겐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전혀 없다.

마운틴의 판단은 빨랐다.

태어난 이후부터 '균형을 수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GM격의 괴수는 제 목적을 수행하는데 굉장한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게임 보스 몬스터 마냥 HP가 깎여 2페이즈가 시작되며 새로운 힘들이 여럿 개방된 지금, 마운틴의 머릿속엔 그 힘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솟고 있었다. 본능이라기보단 정말 게임에 가까운. 시스템이라 불러야 할 어떠한 것에 의하여. 마운틴은 지상에서 끊임없이 달려드는 언데드 군단을 지켜보았다.

지나치게 거슬리는 것들이다. 일단은 청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몸을 한 번 휘둘러 놈들을 떨어뜨렸다. 직후, 허공을 밟으며 높은 상공으로 도약했다.

구름 위로 뛰어오른 마운틴은 두 팔을 들어올리며 천천히 낙하했다.

이백미터에 달하는 몸집과 그에 담긴 질량, 물리법칙을 넘어선 초월적인 근력. 그것들에 더해 중력이며 낙하하는 가속도가 생겨났다. 가히, 운석 충돌에 가까운 위력을 만들어 낼것이 분명했다······.

멍청하게 서 있던 몇몇 토벌대원의 얼굴이 보였다. 희망찬 표정을 짓고 있던 그들이 기겁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외쳤다.

"씹! 피해······."

피해? 어디로?

그런 질문은 뒤따르지 못했다. 낙하하는 무게를 온전히 실은 두 주먹이 땅을 두드렸다. 단순한 행동에 여러가지 현상이 동반되었다. 천둥이며, 지진.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

초반만 해도 이 토벌이 실패할 거란 생각에 휩싸였던 레베카는 웃고 있었다. 저 네크로맨서의 활약이 대단한 것은 물론이요, 저번 협회 공략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과를 이루고 있었던 까닭이다. 어쩌면 이 터무니없는 레이드가 정말로 성공할 지 몰랐다. 한 번 두근거린 심장은 계속해서 요란히 박동쳤다. 흥분됐다.

무시무시하게 강력한 적에 맞서서 힘을 합치고 마침내 승리하는 것······.

그녀가 사랑하는 소설들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다. 토벌대의 중심에 저 네크로맨서가 있는 그림도 썩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과거 사형수로 대역죄인 취급을 받았고, 멸망한 나라의 국민이었던 인물은 역경을 딛고 기어이 찬란한 주인공이 되었다. 레베카는 이 순간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영웅? 그 늙은 미국인보다 유성연에게 훨씬 더 어울려.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올바른 길을 찾아내는······.'

그때였다. 유성연의 언데드 군단이 우수수 떨어졌다. 레베카는 또 마운틴이 뭔가 했으리라 짐작하며 텔레포트 주문을 외려했다. 다시 언데드들을 마운틴의 몸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그 순간 레베카는 마운틴의 움직임을 놓쳤다. 몸을 기우뚱 움직인 초거대 괴수가 사라졌다. 잠깐 당황한 사이, 누군가 소리쳤다.

"위! 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자 그제서야 마운틴이 보였다. 놈은 상공에서 낙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 생명체가 높게 뛰어오른 뒤 단순히 착지하는 동작이라 보기 힘들었다. 지나치게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영화들에서 CG 처리되곤 하는 장면.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는 장면과 비슷했다. 주변에 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순간 토벌대 몇몇은 그 그림자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이 어두운 반경만큼에 죽음이 내릴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죽음······.

다행히 절망감은 금세 사라졌다. 레베카가 힘껏 소리쳤다.

"정신차려! 일단 피해! 피하라고!"

0.02초 간 사고를 가속하는 레베카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순간 어떤 마법을 부려야 하는지, 무슨 현상으로 저 충격량을 상쇄할 수 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절망감에 삼켜진 건 저들뿐만이 아니다. 레베카의 낯빛도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정말 승리할 순 없나? 결국 옛날과 비슷한 결과인가?

그리 생각하던 레베카는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유성연.

저 네크로맨서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답을 찾아낸다. 성연이 말했다.

"텔레포트 주문,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숫자 제한 있나?"

"있지. 최대 마흔 명······."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옮겨."

"옮겨? 어디로?"

"위쪽. 충격파에 휩싸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 높은 곳으로. 그리고 하늘에 띄운 즉시 배리어 만들어. 작전이 있어. 놈 몸뚱이 박살내버릴 작전."

레베카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즉시 주변 좌표를 계산했다.

그 과정까지 0.01초.

움직이는 이들을 모조리 마법의 힘으로 감쌌다. 입술이 달싹이며 짧은 주문을 외웠다. 순간이동 마법 주문. 계산된 좌표에 위치한 이들은 모조리 마법의 영향을 받았다. 최대한 높은 곳. 저 충격량이 미치지 못할 정도의 곳까지······.

지상에 서 있던 이들은 다음 순간 구름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 직후 레베카는 방어막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바로 외웠음에도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아득할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예전 던전에서 성연이 레베카를 상대할 때 소리를 이용했듯, 대기를 진동시키는 음파는 마법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하며 모든 좌표를 계산하는 일에 있어서, 공기의 떨림을 활용하는 레베카에겐 더더욱. 순간적으로 레베카의 사고가 멈추었다.

"으······아······."

난전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변수였다. 애초에 모든 상황이 편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 직감했던 성연은 짜두었던 계획의 퍼즐을 다시 맞추었다. 레베카의 보조가 사라졌다. 그럼 혼자 이루어야 한다. 가능한가? 가능하다.

어차피 성연은 언제나 혼자였다. 과거에 겪은 비극 이후, 그는 모든 것을 홀로 이겨냈다. 세상이 내리는 비난이든,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고독이든, 평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김유현과 그 팀을 살해하는 일이든. 누구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성연의 머릿속에서 빛이 번뜩였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토벌대원들, 그들의 아래에 언데드가 출현했다. 주변에 죽은 이만 없다면 시체가 없어도 언데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타난 언데드들은 제각기 날개를 달고 있었다. 비행 능력이 탑재된 놈들. 레베카가 잠깐 무력화된 사이 이동을 담당해 줄 개체들이다.

"무······슨······."

삽시간에 벌어지는 상황에 레베카는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일반인을 초월한 감각은 소리의 폭력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휘청거리는 세상 속에서 그 영국인은 성연을 보았다.

핏발이 선 눈. 약간씩 떨리는 몸.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약물을 투약한 사람처럼 성연의 몸상태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애초에 융합과 분해를 한계까지 이끌어 낸 상황에서 허용치를 넘었다. 그러나 성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결국 끝은 자신이 내야한다. 광기에 가까운 모습이다. 레베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차마 그만두라고, 멈추라고, 몸을 챙기라는 말을 뱉지 못했다. 성연의 코에서 진한 핏물이 흘렀다.

죽음의 군주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크ㄹ······."

언데드들이 단번에 무력화된 상황에서 마운틴은 다시 포효하려 움직였다. 그러나 긁는 듯한 소리는 재구성된 언데드들이 발동한 능력으로 하여금 충격파가 되었다. 아직도 저 네크로맨서가 멀쩡하단 뜻이었다. 마운틴이 몸을 웅크렸다. 한번 더 도약할 셈이었다. 이쪽을 향해서. 그리고 허공을 짓밟고 달릴 수 있는 초거대 괴수는 공중에서 행동의 제약 따위는 없다. 이백 미터 괴수는 이쪽으로 접근하는 즉시 토벌대를 핏물로 화하게 할 것이다.

레베카는 흐려지는 정신을 잡았다. 그러곤 아까 들었던 말을 수행했다. 방어막. 지금 만들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완벽하고 단단한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서.

그때였다. 마운틴의 몸이 눈에 띄게 커졌다.

2페이즈에 힘입어서 몸집이 더 커지는 건가? 저기서?

아니었다. 그건 새로운 패턴이었다. 단순히 팔을 휘두르고 뛰어오르는 것을 넘어, 전에 없던 공격 방식. 꿈틀대던 마운틴이 기지개를 펴듯 몸을 쭉 폈다. 그와 함께 수류탄이 폭발한 듯 녀석을 감싸고 있던 껍질들이 파편처럼 쏟아졌다.

성연은 그 공격이 저 마운틴이 시체 폭발을 보고 학습한 것이요, 그로 인해 떠올린 공격 패턴이란 건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

진짜배기 마운틴의 껍질은 지나치게 단단했고 날카로웠다. 강화된 언데드들은 고기방패가 되어 그것을 막아서려 했으나, 막기는 커녕 그대로 관통되었다. 흉내낸 껍질을 단번에 꿰뚫었고 파편이 날아가는 속도를 조금 늦춘 것에 불과했다.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들이 저것을 막아낼 수 있나?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맞아준 뒤 포인트로 회복약을 구입해야 하나······.

가능할 지 모른다. 여기 토벌대에 합류한 이들 중엔 힐러도 있다. 죽지만 않으면 수 초안에 원래 몸상태로 고쳐낼 수 있는 실력자들. 성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유성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누군가 앞을 가림과 함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강윤식이다.

그 중년인은 방아쇠를 수차례 당겼다. 포인트 강화로 동체 시각이 강화된 덕분에 탄환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파편들을 역으로 격추시켰다. 그럼에도 이백 미터 몸뚱이에서 쏟아진 껍질은 지나치게 많았다. 그리하여 성연의 앞을 가린 강윤식의 몸뚱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피가 울컥 쏟아졌다. 인간의 살점은 연약했기에 쏟아진 껍질들은 박히는 게 아닌 통째로 구멍을 뚫으며 나아갔다. 뒤늦게 레베카의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금이 가고, 부분이 부서지긴 했지만 성연은 무사했다.

그랬다. 성연만 무사했다.

핏덩이가 튀어서 투명한 방어막 위에 철퍽 묻었다. 내장이 흘러내렸다. 찢겨서 만신창이가 된 내용물들이. 드물게 눈동자가 흔들린 성연이 앞을 바라보았다.

강윤식의 몸이 천천히 축 늘어졌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급히 후방의 힐러들이 능력을 퍼부으려 했다.

"힐, 쓰지마-!"

강윤식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성연이 멍하니 선 가운데 강윤식은 중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네가 유일한 희망이다. 이 세상을 좋게 바꾸어달라. 내 목숨을 걸었으니 너만 믿겠다. 꼭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라. 너라면 가능할 거다······.

사과하고 싶었다. 속죄하고 싶었다······.

그 말들을 모두 유언으로 남기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강윤식은 그 뜻들을 전부 목구멍 안에 담은 채 한 마디만 뱉었다.

"언데드. 날 언데드로 써서······저 새끼 죽여라. 껍질 박살내고, 안에 있는 심장이고 머리고 죄다 깨부숴······."

< 공략불가 「마운틴」 (3) > 끝

(90)

작가의 말

한 화 더 올라옵니당.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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