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략 불가 「마운틴」 (2) >
아마, 그것을 처음 본 사람은 지나치게 거대한 저것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괴이한 껍질은 울퉁불퉁한 산의 한 부분에 가까웠다. 움직이는 것만으로 지진에 가까운 현상을 동반할 수 있는 괴물은 가히 인류가 상대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작은 행동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닥이었다. 버텨낼 수 있는 허용치를 아득히 넘어선 충격량에 땅이 무너졌다. 싱크홀이 주변을 삼켰다. 다행히 토벌대는 붕괴에 휘말리지 않았다. 0.02초 안에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법사가 주문을 외웠다. 레베카는 토벌대 모두에게 허공을 걸을 수 있는 모종의 힘을 부여했다.
성연은 글러트니와 마운틴이 맞붙기 직전, 주저 없이 보유한 포인트 일부를 과감히 투자했다. 그 투자는 테크 트리 확장이었다. 다른 괴수들을 상대할 땐 비효율적이리라 생각했던 상세 능력 강화. 그러나, 지금 이 전투에선 더없이 빛을 발휘할······.
「언데드 크기 강화.」
「순간 근력 증가, 육체 능력 강화.」
.
.
그리하여 꿈틀대기 시작한 글러트니의 몸집은 마침내 마운틴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거대해졌다. 근접전에서 체급이 갖는 의미는 크다. 무게의 증가는 곧 육체적 능력 향상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백미터에 가깝게 커다래진 글러트니는 당연히 마운틴과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어야 마땅했다.
"뭔······."
지상 최강의 괴수가 가진 힘이 단순히 그 거대한 질량에 의한 것이 아니요, 본 게임을 주최한 측이 설정한 '오버 스펙'이 한껏 적용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초월적인 힘은 공기를 찢으며 굉음을 발생시켰다. 충돌한 즉시 글러트니의 주먹이 으깨졌다. 뒤이어 팔꿈치며 어깨까지 핏물이 되어 폭발했다. 그 순간 마운틴의 움직임을 눈으로 포착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빛살에 가까운 무언가가 번쩍였고 저 네크로맨서가 떨군 거대 언데드의 몸체 절반이 날아갔다. 계획은 시작부터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침착함을 잃는 이들은 없었다. 토벌대는 호흡을 갈무리하며 괴랄한 괴수를 노려보았다. 껍질이 우수수 떨어지던 모습은 환상이나 속임수가 아니었다.
온몸을 빼곡히 덮고 있던 마운틴의 껍질은 일부분 사라졌다. 그러니까, 그 주둥이와 얼굴 부분을 보호하던 껍질이. 하지만 그만한 부상을 입혔다고 승리를 확신하는 이는 여기 아무도 없었다. 브리핑을 할 때 너무 과대평가 아니냐며 너스레를 떤 인물은 지금 입을 다문 채 신화적인 것에 가까운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운틴은 지나치게 강력했다.
"······."
음파에 의한 공격을 당한 후, 마운틴은 자신의 무기를 스스로 봉인했다. 녀석은 주둥이를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포효를 하지 않아도 놈은 충분히 강했다. 글러트니는 박살난 제 몸을 회복하며 다시 덤벼들었다. 그때 평생토록 꿈쩍 않을듯 했던 마운틴이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 싸우는 대신, 행동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사실이 불러온 결과는 끔찍했다. 육중한 몸뚱이가 허공을 밟았다. 눈을 깜빡인 순간 글러트니의 몸뚱이 전체가 핏물이 되어 사방에 흩어졌다. 그리고 녀석은 이 거슬리는 커다란 놈 하나로 전투를 끝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껍질을 잃은 순간부터 마운틴의 눈은 살의를 품기 시작했다. 감히 자신을 건드린 인간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
그때 레베카가 뭐라 소리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마법 주문.
일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다. 마운틴의 몸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살아 움직이는 건 뭐든 얼어붙게 만드는 힘. 게임으로 따지자면 디버프에 해당할 공격. 하지만 마운틴은 멈춰서지 않았다. 혼자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뒤편에서 재생을 마친 글러트니가 일어섰다. 저 정신 나간 체급을 가진 괴수의 발을 묶어줄 탱커 역할을 수행해야 할 언데드. 글러트니는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마운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닿지도 않았는데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글러트니의 몸이 가로로 찢겼다.
몇몇 이들이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압도적인 전투 상황에서 성연은 할 수 있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수 많은 상황들이 시뮬레이션 되었고, 성공과 실패 따위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때 강윤식이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퉁, 소리와 함께 천둥에 가까운 굉음이 내리꽂혔다. 마운틴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졌다. 머리 부분의 껍질이 더 떨어졌다. 저 중년인의 사격은 과연 이 상황에도 빛을 발했다.
그렇다면 유의미한 상처를 입혀야 할 순간이다. 성연이 움직였다.
다리를 공략한다? 육중한 체구를 가진 녀석들에게 좋은 공격 수단이지만 마운틴에겐 통하지 않는다. 놈은 허공을 걷는다. 그럼 어떻게?
좁은 사고에서 생각할 필요없다. 지금껏 성연은 많은 무기들을 수집해왔다.
인류의 최고점을 받은 최강자들 셋이 이쪽에 있었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융합과 분해······아직 한 번도 그쪽 방식으로 써본적은 없지만 가능할까······.'
김유현의 능력은 활용성이 많다. 다수를 상대하는데 최적화된 능력이다. 시간만 있다면 S급 각성자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다케다 유이치의 능력도 그렇다. 생존력을 확보한 채 멀리서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근접전에서도 뒤지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닿지 않아도 벨 수 있는 검이란 강력하다.
그 능력들을 모조리 합칠 수 있을까? 그것도 인간의 몸이 아닌, 저 마운틴과 비슷한 체급의 괴수에 응집시킬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성연은 날벌레 몇 마리를 음속비행이 가능한 살육기계로 만든 경험도 있다. 지금 뇌의 일부분이 잿더미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해내야 한다.
평소엔 불가능하다 판단했던 일. 그러나 성연의 진가는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었다.
「죽음의 군주」로 진화된 각성 능력. 더하여, 원래부터 성연이 갖고 있던 재능이 결합되었다. 「초월자」라 명명된 상세 능력 강화 부문도 제 역할을 발휘했다.
지금 이 순간 성연의 눈에 모든 것이 해부 인형처럼 보였다. 핏줄은 물론이요, 그 속에 흐르는 세포마저 응시할 수 있었다. 현미경으로 살피는 것보다 더 자세했다.
지금 성연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다에 뛰어든 인간이 물살을 느끼고 체감하는 것처럼. 김유현과 다케다 유이치 좀비의 몸뚱이가 무너졌다.
분해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엔 융합이 시작될 차례였다.
성연은 그들이 가진 각성 능력. 그러니까, 시체들 안쪽에서 번쩍이는 그 정체불명의 힘들을 뒤섞었다. 일종의 창조였다. 그 어떤 네크로맨서도 해내지 못했을 위업.
아니, 네크로맨서라는 단어로 규정할 수 있는 벽을 완전히 넘어선 일이었다. 모든 것이 변이되었다. 변이라기보단 제거한 뒤 새로 만드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차라리 알맞으리라.
순간 성연은 머릿속에서 섬광이며 벼락이 내리꽂히는 감각을 맞이했다.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묘사. 무림 고수가 깨달음을 얻어 경지를 돌파했다는 둥의 비유와 비슷했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렀다.
언데드의 모든 조직이 새로이 구성되었다. 성연의 눈에 핏발이 섰다. 급격한 피로감으로 과부하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그 순간 전진해오던 마운틴의 발이 멈추었다. 레베카의 냉기 마법이 잘 먹혀들어서?
아니었다. 마운틴은 '오버 스펙'으로 설정된만큼 놀라우리만치 예민한 감각을 보유했고, 그 예민한 감각은 뒤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광경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글러트니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풍기는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마운틴은 저 레벨업하는 언데드의 몸뚱이에 김유현의 음파 능력이 담겼으며, 다케다 유이치가 가졌던 모든 능력들이 담겼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다. 다만, 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해졌다고 느낄 뿐이다.
예술가로 따지자면 걸작이요, 길이 남을 대작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성연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마침내 융합을 끝낸 개체에 대고 성연은 '분해'를 다시금 사용했다.
그 힘을 어느정도 보존한 채 분리되도록. 최대한 많은 숫자로.
네크로맨서의 진정한 무서움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때려박는 물량.
경악스러운 힘을 가진 개체가 불어나고 불어나며 군단이 되었다. 성연은 그 속에서 두 번째 이벤트의 우승과 함께 취했던 상품, 이클립스를 꺼내쥐었다.
주변 시체를 자동적으로 언데드로 일으키는 건 물론이요, 낮은 지능을 부여하는 도구.
저기 있는 새로운 '죽음의 군단'은 모두 다케다 유이치의 능력에서 파생된 초감각을 얻은 것들이다. 그리고 초감각을 가진 언데드가 낮은 지능을 얻는다면 수동적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넘어, 악몽에 가까운 무리로 재탄생된다.
변이와 함께 김유현 좀비의 능력을 써먹기 위해 발성 기관을 얻은 언데드들. 글러트니에서 분해된 군단이 일제히 소리쳤다.
"군주를 위해!"
놀라운 사태였다. 토벌대는 잠깐 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레베카가 움직였다. 냉기도, 강력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무기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모든 속성을 아우를 수 있는 대마법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의 전력이다. 순간이동 주문까지 얻었다면 더더욱.
"우리 네크로맨서 최고다! 최고야!"
대기의 흐름을 통해 모든 전장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마법사는 텔레포트 주문을 활용해 그 언데드 군단을 올바른 곳에 배치했다. 이를테면, 멍청하게 달리던 언데드를 마운틴의 껍질이 사라진 부위로 순간이동시켜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뱀이 먹잇감을 휘감듯 언데드떼가 마운틴을 덮쳤다. 녀석의 눈동자가 드물게 흔들렸다. 녀석이 허공을 박찼다. 일단 거리를 벌리려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레베카의 마법이 그것을 막았다. 명백히 머리만을 노리며 쏴갈기는 강윤식의 사격도 거슬렸다.
마운틴은 입가를 계속해서 달싹였다. 포효 한 번이면 전부 쓸어버릴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지금 그 강력한 무기는 모종의 능력 탓에 봉쇄되었다. 귀찮았다. 지나치게 귀찮았다.
자신이 주최측으로부터 받은 임무는 이런 잔챙이들과 치루는 전투가 아니었다. 게임을 소위 '노잼화'하는 핵무기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전투는 물론이고, 이런 식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건 기껍지 않았다. 아주 기껍지 않았다.
"- - !"
마운틴이 팔을 마구 휘둘렀다. 그 행동만으로 주변 언데드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죽음의 군주 능력은 휘하 언데드를 무한히 재생하게 만든다. 파괴와 회복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원근감을 무시하고 베어내는 다케다 유이치의 능력은 언데드에게 적용되자, 닿지 않아도 타격할 수 있게 발전했다. 더하여 초감각 능력은 언데드 모두에게 퍼져서 치명적인 공격을 더욱 잘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김유현의 능력은 더했다. 발성 기관을 얻게 된 언데드들은 제 포효를 증폭시켜 폭탄처럼 사용했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전투의 소음들, 쿵쾅거리는 발소리, 요란한 포효. 모든 것이 무기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처음에 비하여 마운틴의 몸을 덮은 껍질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레베카의 마법이 결합된 강윤식의 사격이 쏘아졌다.
그에 더하여 성연이 괴이한 살덩이를 마운틴 주변에 출현시켰다. 껍질이 떨어진. 고스란히 드러난 맨살을 향해서. 사격과 마법, 시체 폭발이 동시에 위력을 발했다.
성대한 폭발이 있었다. 무언가 떨어졌다. 껍질이 떨어지는 소리와 달랐다. 폭포에 가까운 무언가다. 검은 핏물. 출현한 이래 처음으로 놈이 상처를 입었다. 눈으로 보이는 상처.
"와 - 아 - 아!"
누군가 환호성을 질렀다.
승리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였다. 마운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달싹이던 녀석의 입가가 천천히 벌어졌다.
그 광경을 본 몇몇이 이상함을 직감했다.
게임에서 으레 경험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HP의 일정량을 깎고나면 레이드 보스는 원래 보이지 않던 행동을 보인다. 그러곤 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그러니까, 처음보다 훨씬 강해져서 토벌대를 위협한다. 일종의 정석처럼 굳어진 것이었다.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알 수 있었다. 2페이즈가 시작되었다.
< 공략 불가 「마운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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