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87화 (87/111)

< 외전. 슈퍼맨(Superman) >

로버트 데이비스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을법한 소시민이었다.

주말마다 교회를 찾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모난 것 없는 평범한 인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 미국인은 남들과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 관계를 유지했으며, 소박한 가정을 꾸려 행복히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로버트는 히어로들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코믹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읽었으며, 할리우드 영화화가 될 거라는 소식에 환호성을 내질렀던 열성적인 팬.

다른 이들이 스포츠 따위에 열광할 때 그는 가상의 인물들을 사랑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그가 기다려 온 영화 개봉일, 세상에 격변이 벌어졌다.

허공에 구멍이 뻥 뚫렸고 괴수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난리가 벌어졌다. 다행히 그는 미국인이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초강대국의 국민.

미군의 힘은 강력했다. 그 동안의 과학 기술로 인해 빚어진 무기와 군인들은 외계 침략자들의 습격을 철저히 방어했다. 대피소에 숨어있을 때, 로버트는 기다려 온 영화 개봉일이 늦춰졌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면서도 가방에 챙겨온 코믹스들을 읽었다.

이런 상황이 바로 히어로가 나타날 때였다.

해커들의 기술 유출이나, 정치적 올바름 따위를 연연하며 연예인을 매장하는 시대가 아니라 전란이 찾아온 시대에 말이다. 그리고 로버트의 생각대로 되었다.

괴수와 더불어 세상에 초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켜요!"

손에서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초인들. 그 힘은 로버트가 코믹스에서 보았던 히어로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로버트는 히어로들의 시대가 현실에 만연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설정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화염을 퍼뜨리고 비행하는 인간들. 맨손으로 철을 때려부수는 인간들은 현대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기술력은 지나치게 발전했다. 자기네 행성을 수 차례 파괴할 수 있을만큼의 화력을 가진 종족이란 우주에서도 드물 것이다. 방아쇠 한 번 당기는 게 각성자가 전력을 퍼붓는 것보다 뛰어난 효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정부는 이 초인들을 징집했다.

전차나 폭격기보다 괴수를 잘 잡아서? 아니었다.

전차나 폭격기보다 화력은 떨어지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값이 쌌던 덕분이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능력들은 공항 검색대에서 잡아낼 수도 없었다. 각성자들을 이용한 테러나 범죄가 만연했다. 더해서 전략적, 전술적 목적으로 적국에 각성자를 침투시키기도 했다. 로버트는 그러한 상황들을 만족스레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그가 꿈꾸던 히어로 세상이 아니다. 초인이 전쟁 노예처럼 부려지는 건 옳지 않다. 마땅히 대접받진 못해도 평등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인으로서 그가 배워온 상식은 그랬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던 가운데 로버트는 각성의 기회를 맞이했다.

"로버트 데이비스? 모든 초인은 군의 부름을 받아야 한다. 의무적으로······."

그러나 로버트가 친절한 이웃이 되거나, 대단한 영웅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찾아온 미군들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형제가 그만두라며 소리쳤다. 거친 다툼이 있었고, 옛날부터 운동을 잘했던 그의 남동생은 군인이 휘두른 팔에 맞아 넘어지며 테이블 모서리에 좋지 않은 곳을 부딪혔다. 미군으로 끌려간 로버트는 남동생이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관한 보상은 단순했다. 형식상 주어지는 위로금, 주변에 말하지 말라는 경고.

세계적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는 미군의 대우는 징용된 초인들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그들에겐 인권이 없다. 그들을 폭행하거나 죽일 경우 받는 처벌은 살인죄나 폭행죄가 아니요, 그들을 기른 부모의 재산을 훼손한 죄로 손괴죄로 처벌받았다.

군 안에서 로버트는 우울감에 휩싸였다. 그가 각성한 능력은 단순히 힘이 세지고 높게 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몸 좀 좋아지는 능력을 얻은 것으로 치룬 대가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로버트? 새 임무다. 이번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경우 오랜만에 휴가를 주겠다······."

휴가라는 단어는 로버트에겐 사막 속의 오아시스요, 달콤한 단어였다. 보상으로 휴가가 걸린 임무는 무척 가혹했다. 파견 임무였는데 제대로 된 무장도 주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을 섬멸하라는 임무였다. 물론 로버트는 그 임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 가혹한 임무 속에서 로버트는 슈퍼맨을 상상했다. 악인을 전부 때려부수고 정의를 실현시키는 슈퍼맨. 그 과정에서 로버트 데이비스는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각성했다.

고작 힘 좀 세지고 잽싸게 움직이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편린이었을 뿐이다. 그 임무를 완수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이분 삼십초였다. 능력의 진가를 깨달은 로버트는 자신이 상상한 슈퍼맨,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얼떨떨하게 임무 완수 보고를 받은 미군 측은 기꺼이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집엔 비극이 벌어져 있었다.

"꺼져! 꺼지라고!"

운동 선수가 되고 싶다는 미래를 꿈꾸던 동생은 하반신 마비가 된 즉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던 와중, 휠체어를 끌고 투신자살을 했다. 부모님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마약에 손을 댔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린 채 도망쳤다.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로버트는 울면서 몸이 망가진 어머니를 돌보았다. 방치되어 있던 어머니는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 그 사이 군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있었음에도 로버트는 돌아가지 않았다.

장례를 치룬 뒤, 로버트 데이비스는 생각했다.

'내가 초인이라는 이유로 쳐들어 와서 난리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있었더라도 국가에서 제대로 보상을 했더라면. 누군가 친절한 이웃이 되어 도와주었다면······그러니까, 히어로가 존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엄중한 법 따위가 아니라 우월한 초인이 모두를 보살폈다면, 이런 일은······.'

로버트 데이비스는 제발로 걸어 복귀했다. 그 과정에서 얼굴에 멍이 잔뜩 든 채 잡혀온 열다섯 즈음으로 보이는 소년, 열 살도 되지 않았을 소녀들을 보았다. 초인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한. 사유 재산이나 가축 따위로 취급되는 이들.

그럼에도 저들이 희생하기에 모두 안전할 수 있다고 안심하는 분위기 때문에, 몇몇 끔찍한 범죄자들 때문에,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개고기를 먹으면 비인간적인 일이라며 난리를 피우고, 제품 광고가 여성 성상품화라며 날뛰거나, 허구한날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며 누군가를 물어뜯길 즐기면서······진짜 차별을 잠재울 생각은 없다. 자기네들 세상과는 먼 일이라 이거지. 괴수들과 대신 싸워줄 전쟁 노예 같은 것들이니, 신경쓰지 않겠다. 이거야······.'

로버트 데이비스는 결국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히어로. 이 세상엔 히어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깨우친 능력은 히어로라는 이름을 갖기에 아주 걸맞다.

우선, 로버트 데이비스는 백악관으로 향했다.

"멈춰! 멈추라고!"

뭐라 소리치는 말들이 들렸다. 로버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상대쪽에서 발포했다.

그 발포는 그 미국인의 전진을 막지 못했다. 탄환들은 피부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가장 취약한 신체 부위인 안구에 집중사격을 했음에도 그러했다. 부상은 커녕 그을음이 새겨지지도 않았다. 결국 맞서던 이들이 기겁해 도망쳤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멈추지 않았다.

현대 기술이 만든 어떤 무기도 감히 그를 상처입힐 순 없었다. 신이 내린 징벌처럼 그 미국인은 유유히 걸었다. 백악관으로, 대통령이 머무른 방으로.

"오, 신이시여······."

대통령 앞에 선 그 초인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차별 문제에 들고 일어선 로버트 데이비스가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한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더해서, 그 미국인이 초음속 전투기를 넘어선 속도로 비행할 수 있으며 절대무적의 존재에 가깝다는 것도 함께.

묵인하던 사회 인권 단체들은 순식간에 대변인처럼 각성자 인권문제를 들고 일어섰다.

역겨운 태세 전환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의도가 어쨌건 세상이 변했다. 로버트가 행동하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뀌었다······.

'이 서투른 세상엔 히어로가 필요하다. 남들을 이끌어 줄 위대할 초인.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정의의 상징······.'

로버트는 가장 먼저 단체를 만들었다. 세계헌터협회.

군의 강제적 징집을 불허했으며, 각성자들의 관리를 저들이 맡겠다고 했다.

미국은 기꺼이 수락했다. 추정하기로, 십 초 정도의 시간안에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초인의 부탁이란 강제력을 동반했다. 그리하여 로버트 데이비스는 각성자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땅한 대접을 받게 하도록 했다.

각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의 집단이 최정상에 올라서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활약으로 하여금 각성자들은 사회 상류층이 되었다.

로버트는 언제나 말했다.

"우리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은 평화로워질겁니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죠. 평등하게. 행복하게······."

그 말엔 한치의 가식도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세계헌터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의 스캔들.」

「헌터? 법을 무시하는 폭력 집단.」

「로버트 데이비스, 과잉 진압 논란. "자기가 정말 할리우드 슈퍼맨인 줄 안다."」

「기술 독점이 옳은가? 협회의 힘은 지나치게 강력하다.」

언론. 선동과 날조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군중들의 태도.

그 모습들에 로버트 데이비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로버트 데이비스? 가끔 보면 역겨워. 왜 히어로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거야? 어차피 경찰이 할 일을 하면서 왜 이리 유세 떠는거냐고.」

「그에게 구조되었다는 이들 중 몇은 성추행 당했다던데? 몸매가 아주 좋다거나, 진득하게 바라보며 시선 강간을 했다거나······.」

「협회 소속된 이들 중 흑인 비율이 아주 적다던데. 게이들도 얼마 없고. 이건 지나친 차별이라고 봐.」

코믹스에서 히어로들이 이 따위 말을 듣게 되는 건 본 적 없었다. 그때부터 로버트는 움직이며 지나치게 신중해졌다. 움직임 하나 하나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말꼬투리가 잡혀 기사로 박제되지 않도록 한 마디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했다.

그러던 때였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힌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했다. 당돌하게도 현실을 알리겠다며 나선 기자들이 인질로 잡힌 것이었는데, 시간마다 그들을 처형하겠노라 발표했었다.

그 현장에 출동한 로버트 데이비스는 침착하게 움직였다.

"안심하세요. 모두 안심해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로버트가 말했다. 그 웃는 와중에 탄환들이 쏟아졌으나, 그 철탄들은 로버트의 몸에 상처를 새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인질들의 눈에서 불안함을 지울 순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저 테러리스트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효율이 좋은 능력, 초고열 광선으로.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을 분쇄하는 레이저가 쏘아졌다. 그런데 그 찰나, 테러리스트 하나가 뭐라 소리치며 인질 하나를 앞에 세웠다. 로버트는 눈을 크게 뜨며 초고열 광선을 거두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 광선은 빛의 속도로 발사된다. 그러니까,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챈 순간엔 인질과 테러리스트 모두가 죽어있었다.

"아아아아악!"

"슈퍼맨, 슈퍼맨이 미쳤다!"

인질들이 소리쳤다. 그 외침들에 로버트 데이비스는 머리가 순간 하얗게 되었음을 느꼈다.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또렷한 발음으로.

"여러분? 피치 못할 사고였습니다. 저, 저 테러리스트가 갑자기 인질을 앞세워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요. 사고······사람이라면 누구나 벌일 수 있는 실수······."

로버트는 횡설수설하게 변명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을 듯했다. 그는 기자들이 얼마나 지독한 지 경험해보았다. 저 인질들이 전원 기자이며, 이 광경을 직접 본 이상 일어날 일은 간단했다. 협회의 수장인 슈퍼맨은 아주 폭력적인 인물이며 인질극에 대처하는 방식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을 동시에 불태워 죽이는 살인광이라고.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각성자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협회에게서 빼앗을 지 모른다. 또 다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서.

그럼 옛날의 비극이 또 벌어지는 것 아닌가? 로버트는 처참하게 죽은 자신의 어머니와 남동생, 도망친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로버트는 속에서부터 끓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왜 저 나약하기 그지 없는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끊어버릴 수 있으며, 하고자 하면 만 명이든 십만 명이든 몇 초만에 짓이겨버릴 수 있는 벌레나 다름없는 것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대체 내가 왜.

신에게 선택받은 내가. 신인류나 다름없는 슈퍼맨이, 왜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한 뒤처진 것들에게······.

'어차피 모두 사라지면 밖에 알릴 인물도 없지 않나? 테러리스트들은 물론이요, 기자들이 싹 죽어 사라진다면 아무도 모를 사건······.'

판단은 짧았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주변을 훑었다. 도망치던 테러리스트들의 허리가 반으로 갈라져 내장이 쏟아졌다. 비명 지르던 기자들의 머리가 폭발해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거기 있던 이들을 전원 죽이는 데 걸린 시간은 이 초도 되지 않았다.

그리 모두 죽인 뒤, 로버트는 이 사실을 발표했다.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구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더 큰 권한이 있었다면. 정부가 여전히 각성자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특수부대나 대테러 부대 따위를 보내는 게 아니라, 이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세계헌터협회가 나섰더라면! 정의의 상징은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도착했을 땐 인질들이 모두 처참히 죽어있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군부는 곧바로 그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신속히 도움을 요청했으며, 특수부대나 대테러 부대는 출동한 적도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동은 먼저 때린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법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건 몇 마디 말로 충분한 반면, 그 이미지 훼손을 해명하는데엔 수 배에 달하는 말들과 자료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국가의 편을 들어주기보다 미국에 출현한 이 위대한 슈퍼맨의 손을 들어주었다.

협회의 힘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헌터는 경찰처럼 활동할수도, 군인처럼 활동할수도 있게 되었다. 언론에 끊임없이 괴롭힘당한 로버트 데이비스는 직접 당해본 당사자로서, 언론을 어찌 움직이는지 아주 잘 알았다.

'슈퍼히어로들도 이런 현실에서 살았다면 마땅히 이랬을 것이다. 이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최대 다수의 구원을 위해선 어느 정도 거짓과 희생은 불가피하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 최선이지······.'

그 사상은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심각하게 비틀려갔다. 나중에 이르러선 과거 인종차별이 그랬듯 화장실을 나누어 쓸 정도였다. 협회 건물 안에서 만연하게 벌어지는 차별 현상에 로버트의 친구. 두 번째 S급 헌터로 발탁된 중국인, 왕웨이가 불만을 가졌다.

그 친구는 출동한 각성자들을 제 능력으로 모조리 무력화 시킨 채, 당당히 소리쳤다.

"이 차별을 당장 그만두게. 그러지 않으면 피를 보게 될거야. 알고 있겠지? 자네 능력으로도 날 막긴 힘들다는 거. 그 동안 쌓아올린 모든 걸 잃고 싶다면, 계속 그리 해!"

로버트 데이비스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물론 그건 일시적이었다.

곧이어, 로버트는 다시 차별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그도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실수들을 몇 번 저질렀다. 그 실수가 언론에 공개되는 일은 없었다. 목격자며, 피해자, 가해자까지 로버트는 죽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슬쩍 바라보면 죽일 수 있었다. 도로를 걷는 개미를 짓밟아 죽이듯이.

로버트는 이 각성자들의 왕국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음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 시간.

로버트는 거울을 보는 순간이 부쩍 많아졌다. 날이 갈수록 주름이 지고 있었다. 곳곳에 검버섯도 피었다. 그 모습을 신경 쓴 비서가 가끔 말해오곤 했다.

"피부과 예약을 할까요? 보톡스를 맞으면 좀 나아질······."

"보톡스? 지금 날 놀리나? 늙어서 쭈글해진 슈퍼맨이 어디있나? 보톡스를 맞는 슈퍼맨이 어디 있느냐고!"

신경질적인 외침에 비서는 이내 사과했다.

로버트는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영원히 군림할 수 없다면, 각성자들의 낙원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자신이 없다면 옛날로 돌아갈 것이다. 군인들의 노예가 되고, 각성자들은 가축 취급을 받는 그 시대로. 여전히 밤이 되면 휠체어를 타고 머리가 찌그러진 남동생이 꿈에 나오곤 한다. 주사기를 꽂은 어머니도 함께. 그 현장엔 언제나 자신이 없다.

로버트는 그들을 버려둔 채 전쟁터에 있다. 멍청하게도······.

그런 비극을 없애려면 자신이 있어야만 한다. 완벽하고 강력한 초인이 영원히 군림해야만 감히 구인류가 이 낙원을 부술 계획을 꾸미지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

역사를 통틀어 세월을 빗겨간 인물은 없다. 불로초는 실제로 그런 효능이 없음이 밝혀진 지 오래였다.

로버트의 생각은 복잡하게 이어졌다.

'내가 사라진 후 내가 벌였던 이들이 밝혀진다면? 실수를 덮기 위한 내 일들을 아는 인물이 얼마나 있지? 뒷처리를 맡은 인물 서너명과 비서······아니, 혹시 모른다. 그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며 회사 동료들에게 말했을지도······만약 내가 그들보다 먼저 죽으면 역사에 나는 어찌 기록되는거지? 슈퍼맨의 탈을 쓴 살인마?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니, 정말 싸이코패스나 끔찍한 괴물 따위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안된다. 그럼 어떻게? 죽기 전에 협회의 일원들을 모조리 죽여야 하나? 그건 누구의 소행으로 뒤집어 씌우지? 대체 어떻게 해야······.'

다행히도 신은 이 복잡한 고민에 답해주셨다.

게임 인터페이스에 등장할 투명한 창이 현실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십 미터 고질라들이 출현했다. '소원을 들어주겠다'라는 문장이 보였다. 그 문장을 읽으며 로버트 데이비스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신이 또 기회를 주셨다.

낙원에 영원히 군림할 기회. 그리고 진정한 낙원을 만들 기회.

로버트 데이비스는 창 밖에서 비명 지르며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성경에서 읽었던 한 내용을 떠올렸다. 홍수를 내려 불경한 이들을 없애시고 마땅히 자격있는 이들만 선별하시어 방주에 태우신 하느님. 이번엔 자신이 노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뒤떨어지고 나약한 구인류와 신인류를 선별하고 낙원을 구성할 자격을 주셨다고 말이다. 로버트는 격변의 과정에서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괴수들 틈에 끼어 의도적으로 방어선을 박살내고 그 피해를 극대화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능력 없고 무력한 이들이 사라지고, 초인들만 남도록.

그리하여 인류는 절반쯤 죽게 되었다. 극히 발전된 기술이 있었고, 뛰어난 군대가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심각한 피해였다. 그러나 미국의 로버트 데이비스가 그 일에 가담했으리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막연하게, 각국의 군대들이 안일했으며 이번에도 나라가 잘못한 것이라 여론이 형성되었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제자리에 몸을 기댄 채 웃었다.

멍청한 것들.

'숫자를 더 한층 줄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우월한 백인, 강한 각성자들로만 구성된다면 그들끼리 낳는 아이들도 당연히 우월하겠지. 낙원에 사는 이들은 모두 신인류이며, 최고의 유전자를 가져야 한다. 마지막에 한번 더 선별을 하는 것도 좋겠군. 일단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다가······.'

로버트 데이비스는 그리 여유롭게 굴었다.

획득한 포인트 총량으로 하여금 매겨진 순위가 처음으로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1위. 유성연』

『소속국가- 대한민국』

유성연. 익숙한 이름이었다.

대한민국의 킴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살인마였다······.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듯 로버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반짝했다 사라질 놈이다. 지금은 더 큰 그림을 생각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 더 큰 그림을.

동양인에 네크로맨서 출신에 불과한 천박한 놈이 자신을 위협하는 일은 어차피 없을테니까. 결코.

< 외전. 슈퍼맨(Superman) > 끝

(87)

작가의 말

쓸데없이 긴 외전 구매해주셔서 사랑합니다.

외전이란 의미에 맞게 보지 않으셔도 본편을 읽으시는데 지장 없게.

로버트 데이비스란 인물 표현하는데 집중했습니당.

내일부턴 다시 본편 연참 쭉쭉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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