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3) >
"네 번째 이벤트 시작과 함께 발생한 피해는 예상보다 경미합니다. 아무래도 맞서는 숫자가 많을수록 괴수가 약화된다는 설정이 저희 측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은데······특정 상황엔 이십 미터 고질라들보다 놈들이 더 잡기 쉬웠댑니다."
새로이 선출된 브라더후드 부길드장이 소식을 전했다.
강윤식은 잠깐 테이블을 두드리다 그 보고에 답했다.
"그런가? 한층 더 강해졌다고 들었는데 고질라들보다 오히려 쉽다고?"
"예. 아마 인원빨로 밀어붙여서 버프 사라지게 만들고 군주에 화력집중하니까 우왕좌왕하던데요. 물론 쏟아지는 괴수들 숫자가 워낙 많아져서 힘에 부치긴 합니다. 우리가 유리하다고 해도 희생이 없을 순 없는데, 그러다 일정 숫자 아래로 떨어지면 전세 확 뒤집힐 게 눈에 보여서······."
"그렇군. 중요한 건 숫자란 말이지. 다른 쪽은 초기에 못 막아서 난리났다고 했나?"
"맞습니다. 어떤 조건이든 맞춰주겠다고 저희 측에 지원 요청하는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일단은 조건 좋아질 때까지 끌어올리려 간 보는 중이긴 한데······국가들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밀당하기 전에 다 짓밟혀 사라지는 건 아닌가 우려되긴 합니다. 균열 빈도 열 배로 늘어난 게 생각보다 커요."
"밀당 하지마. 좋은 조건 받아낼 생각도 하지말고, 일단은 가장 취약한 곳들에 넉넉히 지원해줘. 우리한테 남는 건 사람 숫자밖에 없지 않나? 인도 소식 알지? 거기 유성연이 먹었는데 그쪽에 연락 넣어서 협력해서 괴수들 몰아내자고 해. 이 상황에 이득이고, 조건이고, 명분이고 뭐가 중요한가? 더불어서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 우린 달라져야 해. 큰형님, 그 미치광이와는 달라져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사람들 다 죽고 창고에 식량이며 금덩이들 쌓아두면 뭐하나? 지금은 서로 잴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힘을 합쳐야 할 때야. 미국의 슈퍼맨, 그 미친놈이 제 의무를 잊고 날뛸 때 우리라도 움직이자고. 아마 인도랑 우리, 둘이 힘 합치면 여러 길드들도 눈치보고 있을 시간 아니란 거 깨닫고 지원 팍팍 보낼거거든? 스타트를 우리가 끊자고. 원래 시작이 어렵지, 한 번 흐름타면 하나 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아. 사람이란 게 그래······."
그 말을 듣던 브라더후드 부길드장은 문득 고개를 슬쩍 들어 강윤식의 얼굴을 보았다.
이따금씩 광기에 사로잡혀 발작적으로 분노하던 저 중년인의 눈빛은 전과는 꽤 달라졌다. 분노가 누그러든 것은 물론이요, 날카로이 서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부길드장은 PTSD에 시달리던 고집 센 중년인을 변화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빈집털이 한 테러조직이니, 나라 먹고도 옛버릇 남주지 못한 범죄조직이란 말을 듣던 시대보다 지금이 낫다는 건 확실했다. 사람은 모두 한켠에 영웅심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과거 굶은 동생을 먹이기 위해 마트에서 음식을 훔쳤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던 전과자. 그 교도소에서 연을 얻어 브라더후드로 들어오게 된 부길드장은 자기도 모르게 옅은 웃음을 지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미묘한 충족감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희망적인 결과를 만든다면, 어쩌면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 후에 저승에서 만나게 될 동생에게 자랑할 거리 하나 정도는 챙겨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 강윤식이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실력 있는 애들 몇만 붙여주게. 잠깐 어디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예? 어디 가시는데요?"
"대한민국.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겨서."
***
돌아온 로버트는 레베카의 말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다. 그 의무란 정의를 수호하고 국민들을 지키는 것. 그러니까, 괴수들을 사냥하고 악인들을 처벌하는 일이었다.
예전엔 로버트 데이비스를 합성해 밈으로 사용하거나 늙어서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니는 꼴이 우습다는 이유로 비난하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음에도 그런 비난을 입 밖으로 뱉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로버트는 더 이상 히어로 코스튬을 입지 않는다. 그 대신, 멋들어진 명품 정장을 입고 시가를 물었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과 더불어 그 미국인은 정의의 히어로 행세를 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들은 악으로 규정하며 단숨에 제거했다. 그러니까, 여전히 로버트 데이비스가 옛날과 같은 줄 알고 여러 비난을 쏟아냈던 미국 대통령 같은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채 흔들리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머리는 이제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그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조차 슈퍼맨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었으므로, 미국인들은 상공에 로버트가 등장할 때면 열렬하게 환호를 보냈다. 목이 터지도록.
"로버트! 로버트 데이비스!"
그 외침에 반응한걸까.
로버트 데이비스는 어느날을 기점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대신, 그 힘을 온전히 적들에게 쏟아냈다. 초고열 광선이 번쩍일 때마다 괴수들 무리가 처참하게 박살났다. 한층 강화된 괴수들이나 군주가 내리는 버프 따위는 슈퍼맨에게 별 문제가 없었다.
근접해야만 잡을 수 있는 적? 로버트 데이비스는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어엿한 최강의 초인이다. 맨손으로 휘두르는 공격들은 가히 미사일에 가까운 위력을 낸다.
미국 국민들은 그 활약에 잠시동안 과거의 학살을 잊었다. 누군가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영웅이 돌아왔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뭐가 어쨌건, 저런 강력한 힘이 미국을 수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든든했다. 위기에 처한 인간의 사고는 무척 쉽게 바뀌길 마련이다.
네 번째 이벤트 발생과 함께 로버트 데이비스의 목에 현상금과 같은 대량의 포인트가 걸렸다. 물론 그건 슈퍼맨에게 아무런 견제가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군림한 로버트가 얼마나 위대하며 완벽한 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암살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 시도들은 로버트 데이비스의 대단함을 널리 알려줄 뿐이었다.
"나를 죽이고 우승 기회를 거머쥐길 원하나? 그럼 그렇게 하라! 대신 미국인들의 암살 시도가 도를 넘는 순간, 나는 미국의 영웅이 되길 포기하겠다. 이 땅을 버리는 건 물론이고 여러 도시를 불태울 것이야!"
로버트 데이비스의 선언은 강력한 파급력을 가졌다. 곧 슈퍼맨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은 협회까지 갈 것도 없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처리되었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암살 계획을 짜던 멍청한 이들은 그 계획이 발각된 즉시 국민들 사이에서 생매장당했다. 그 생매장은 사회적으로 죽었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단어가 순전히 품고 있는 의미와 같았다. 그들은 산 채로 땅 아래에 파묻혔다. 사지가 살린 채로.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슈퍼맨 암살을 꿈꾸는 이들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다행히 로버트말고도 죽였을 때 대량의 포인트를 주는 인물은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인 네크로맨서. 유성연. 최강의 초인보다 훨씬 죽이기 쉬울 인물이었다······.
"네크로맨서를 사냥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유성연을 죽이기 위한 계획은 조직적으로 확대되었다. 괴수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오는 가운데, 소규모 국가들마저 나서는 일까지 생겼다. 그 네크로맨서를 죽여 포인트를 얻어 소원권을 획득할 경우, 바라는 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 위기를 극복해 역사에 길이남을 영웅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평소 바라던 추악한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가장 먼저 한 길드가 파견한 칠십 명의 각성자가 유성연 암살을 위해 나섰다.
그리고 곧 그 계획은 분석가들이 말했던 것보다 훨씬 실현되기 어려운 계획이란 게 증명되었다. 총 칠십의 각성자들은 자기네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접근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작은 위기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초감각을 상시 발동하고 있는 소아성애자 언데드의 칼질 몇 번에 의한 결과였다. 이런 형태의 습격에서 다케다 유이치 좀비는 어떤 각성자보다도 빛을 발휘했다.
결국 괴수들의 습격을 앞두고 많은 희생을 감수할 수 없던 이들은 암살자들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짜던 이들은 문득 도시의 앞에 눈에 띄게 거대한 균열이 출현한 것을 보게 되었다. 네 번째 이벤트와 함께 크기가 커졌다는 것을 상정하더라도, 그 크기가 지나치게 컸다······.
그 균열에선 괴수 여러 마리가 물밀듯 쏟아지진 않았다. 여러 괴수들을 모조리 한데 뭉쳐놓은 듯 꿈틀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살덩이가 기어나왔다. 곧 투명한 알림창이 모두의 눈 앞에 일제히 떠올랐다.
「대군주, 얀이 출현했습니다.」
「대군주는 아주 위험한 괴수입니다. 등장한 즉시 처치하지 않을 시, 각성자 여러분은 악몽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끔찍한 악몽을요.」
대군주라 명명된 놈은 아주 컸다. 정말이지 놀라우리만치 컸다.
추정 높이 백 오십 미터. 대한민국에 머무르는 최강의 괴수와 비교해야 할 수준이었다.
아무 예고 없이 등장한 그 거대 괴수는 바닥을 깔아뭉개고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인류는 악몽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선, 화력을 쏟아부어 죽였던 괴수와 군주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현상을 목격한 이들은 저 대군주의 능력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그리고 이런 싸움에서 그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함께. 하지만 그땐 늦었다. 검은 파도가 도시를 덮쳤다.
그리고 그 대군주와 같은 능력을 가진 개체가 모든 국가의 주변에 출현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2페이즈가 된 것이다. 사체를 군단으로 만드는 네크로맨서 괴수가 나타났다.
***
"두 시간 뒤입니다. 철저히 준비하세요. 다들 장비는 구비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하셨길 바랍니다. 자칫 잘못하면 마주치는 즉시 당할수도 있으니······."
성연은 모여있는 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마운틴 공략을 위해 모인 이들이다.
예전, 협회가 각성자들을 잔뜩 모아서 달렸다가 실패했던 전적이 있듯이 그 최강의 괴수는 레이드처럼 잡을 수 있는 괴수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확실한 실력이 있는 이들만 뽑아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슬리지 않도록.
레베카가 말했다.
"이거 최선 맞아? 아무리 봐도 로버트, 그 늙은이보다 마운틴이 더 강하단 말야. 순서가 틀린 거 아니야? 못 잡을 것 같은데······."
"더 강하겠지. 근데 슈퍼맨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죽일 수 있는 방법, 있나?"
레베카는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마운틴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게임에 등장하는 보스몬스터처럼 땅을 깔고앉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로버트는?
현존하는 어떤 이동수단보다도 빠르게 비행할 수 있으며, 어떤 맹수보다도 날카로운 전투감각은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게다가 놈도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이므로 어중간한 부상은 회복약으로 단숨에 낫게 할 수 있다.
성연이 생각하기엔 단순한 강함으로 따지면 마운틴이 우월할 지 몰라도, 상대할 때의 난이도는 로버트가 가장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그 슈퍼맨을 잡기 위해선 마운틴이라는 개체가 손에 들어와야만 한다.
'마운틴의 포효는 어떤 각성자든 그 능력을 사용치 못하게 무력화시킨다. 그 포효를 막을 방법은 김유현의 능력밖에 없어. 슈퍼맨이 대한민국에 오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도 아마 그 이유겠지. 놈은 마운틴을 토벌하기 위해 왔을 때 일시적으로 능력을 잃었던 경험이 있었을 거다. 순간적으로 비행 능력과 철인과 같은 신체 능력이 사라진 경험······.'
게다가 네크로맨서는 이런 싸움에 특화되어 있다. 적어도 성연에게는 그 잽싸고 눈치 빠른 슈퍼맨보단 몸집 크고 물러서지 않는 마운틴이 상대하기 쉬웠다. 일종의 상성이었다.
"어쨌건 두 시간. 컨디션 관리 잘하시고 준비 잘하셔야 됩니다. 강윤식 씨? 나머지 분들에게 알려주실 거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여기서 거의 유일하게 마운틴 토벌 경험 있으신데."
"나도 있었는데?"
"넌 최후방이었고, 강윤식 씨는 전방이었는데 다르지."
그 말에 레베카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성연의 말대로, 강윤식은 자기가 겪었던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계해야할만한 것, 전투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
그것들 대다수는 믿기 힘들 정도로 터무니 없었다. 일종의 공략대라고 부를 수 있을 이 팀의 일원들 중 몇은 헛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연은 캠프의 천막 안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붙였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성연은 왠지 모르게 수면 아래로 잠기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꿈을 꾸는 것과는 조금 다른 괴상한 감각.
꿈인지 뭔지 모를 곳에서 성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거기엔 로버트 데이비스가 앉아있었다.
성연이 기억하는 늙은 모습이 아니라, 사진으로만 보았던 젊은 로버트 데이비스가.
와인잔을 한 손에 쥔 그는 테이블에 앉은 채 다가오라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지? 어차피 여기선 서로 피해입힐 수 없으니 경계하지말고."
"······그게 무슨······."
"내 비서의 능력으로 만든 꿈 속 공간이야. 애초에 내가 영어로 지껄이는데 통역사 없이도 알아듣고 있지 않나? 현실일리가 없지. 그러니 일단 앉아. 이 공간 유지할 수 있는 시간 넉넉치 않으니까 어서."
그 말에 성연은 떨떠름하게 움직였다.
테이블에 마주앉고 나서야 로버트는 입을 열었다.
"제안할 게 있네."
<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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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asdasd8954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한편만 올라옵니다. 재충전하고 내일 연참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