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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84화 (84/111)

<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2) >

로버트는 우선 출력량을 한계치까지 끌어내 초고열 광선을 쏘았다. 그러나 쏟아지는 파편들은 조금 그을렸을 뿐, 다른 물질들처럼 녹아내리지 않았다. 성연이 아는 것 중 가장 완전한 물질은 과연 슈퍼맨이 가진 강력한 무기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순간 위기를 감지한 슈퍼맨의 사고가 세차게 돌았다. 괴이하게 몸을 비트는 동시에 물리법칙을 무시해 비행했다. 그러나 아무리 우월하다 한들 로버트의 몸은 인간의 것이요, 기계처럼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초음속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코 앞에서 터진 폭발은 그 슈퍼맨의 몸에 분명히 맞닿았다.

폭음에 이어 굉음이 터졌다.

지나치게 빠른 속력으로 인해 발생한 파공성이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벌어진 현상은 제삼자가 보기엔 레베카가 사용한 텔레포트 주문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과 유사했다. 로버트는 극히 찰나의 시간에 수십 미터 떨어진 자리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이동은 순간이동이 아니었으며 직접 몸을 움직인 결과였다.

"이, 빌어, 먹을······."

뿌연 연기 속에서 로버트가 제 어깨를 붙잡은 모습이 보였다. 땅에 투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덩이도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몇몇이 기겁했다. 초인 역사에 슈퍼맨이 등장한 이래 그 미국인은 몸에 한 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 격렬한 전쟁에서도, 괴수들의 습격에서도. 그러니까 지금 눈 앞의 저 광경은 역사적인 모습에 가깝다.

로버트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F -UC-K!"

짐승에 가까운 포효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쏟아진 순간 음파가 진동하며 증폭되기 시작했다. 충격파로 변환되기 전의 징조. 로버트는 그 찰나의 현상을 포착했다. 얼마 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을 각성한 후 처음으로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순간. 그 강렬한 힘에 밀려났던 기억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

생생히 기억나는 경험이란 곧 학습되기 마련이다. 로버트는 그 기억을 곱씹으며 파훼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왔다. 그 파훼법이란 어렵지 않았다. 정확히는 로버트 데이비스에겐 어렵지 않았다.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다면 소리를 매개체로 변환한 충격파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형의 폭탄을 움직여서 피할 수 있다.

"저거 순간이동 아냐······?"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 싸움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현실에 CG가 덧씌워진 광경을 보는 듯했다. 초인들에게 익숙해진 이들에게도, 그 싸움을 보는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감상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 로버트의 눈이 구경꾼들을 향했다.

그 슈퍼맨이 사람을 살해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시선에 맞닿는 것뿐이다. 그 살육의 전조를 알아챈 레베카가 제 능력을 온전히 쏟아부었다. 열의 반응을 막고, 그 광선이 쏘아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방해를 알아챈 슈퍼맨은 곧 능력을 다른 식으로 사용했다. 화력에 집중해 일대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얇고 길게 쏘아내도록.

육안으로는 살피기 힘든 수준의 레이저가 주변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통째로 소멸하는 대신 머리나 가슴 따위의 주요 부위만 잃은 채 죽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서 있던 이들이 갑자기 배가 뚫려 내장이 쏟아지고, 머리가 폭발해 뇌수와 피가 흩날리는 모습은 완전한 섬멸보다도 커다란 공포를 불러왔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극한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는 군인들도 있었다.

물론 도망칠 순 없었다. 슈퍼맨은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범위를 공격할 수 있었고, 그 초인의 시력은 망원경만큼이나 먼 거리까지 살필 수 있다.

달아나던 이들의 다리가 녹아 부러졌고, 핏자국을 질질 끌며 도망치다 주변에 즐비한 괴수에게 잡아먹혔다.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곳곳에 울렸다.

균열 빈도는 하루에 마흔 번 출현하도록 바뀌었다. 시간을 계산해보았을 때, 균열이 또 다시 출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레베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슈퍼맨에 이어서 어떤 힘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 괴수 무리까지 상대하라고?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텔레포트 주문을 얻게 된 이상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지금 이 도시를 버리고 도망간다면 살아남은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동안 받아온 권리와 칭송엔 의무라는 대가가 따른다. 힘과 권력엔 마땅한 책임을 져야한다.

평화의 여신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짊어졌다면 더더욱.

레베카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곤 쥐어짜듯 소리쳤다. 그 과정에서 공기 마법을 실어서 볼륨을 일부러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로버트! 로버트 데이비스!"

로버트의 예민한 감각은 요란한 전투의 소음 속에서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잡아냈다. 곧장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반응을 알아챈 레베카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만. 그만해. 진짜 런던을 불태우기라도 할 생각이야?"

"불태우겠다 하지 않았나? 날 정말 우습게 알았나보군. 단순한 경고의 말이 아니라,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그리 하겠다는 통보였다!"

"알겠어······이제 그만하자. 여기서 더 사람들을 죽이면 뭐가 남는데? 괴수들까지 몰려오는데 미국의 영웅이란 놈이 애새끼 화풀이 마냥 레이저 빵빵 쏴대면서 아군 죽이면 뭐가 남냐고!"

"애새끼 화풀이? 이게 그런 것으로 보이나? 이건 나를 무시한 행동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며 마땅히 런던이 받아야 할 업보······."

"정당한 응징? 초고열 광선으로 죄 없는 사람들 죽이는 게 응징? 머릿속이 옛날 나치, 북한이랑 다를 게 없네. 히어로가 아니라 독재자야. 미친 독재자······."

"당, 장 그 말 취소해라. 당장. 나치? 노스 코리아? 어디 그딴 것들과 나를 동일선상에 둬······."

"그딴 말 듣기 싫으면 그만하라고! 사람들 눈 안 보여? 이게 널 동경하는 걸로 보여? 아니, 오히려 옛날 독재자보다 훨씬 두렵게 보고 있을 걸. 심기 뒤틀리면 죄다 불태우고 사람 목을 깃발 위에 걸어놓는 미친 새끼가 독재자가 아니면 뭔데! 제안 좀 거부했다고 도시를 멸망시키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고!"

그 말에 순간 로버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레베카가 외친대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얼마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평생을 여론과 이미지에 얽매여 살아온 미국인은 그 눈빛을 태세전환 빠른 개돼지요, 구인류들이라 치부하며 웃어넘길 수 없었다. 예전엔 동경과 존경으로 가득 찼던 눈들이 이제 전대미문의 독재자요, 괴물을 바라보듯 두려움에 가득 찼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그 눈빛들이 어떠한 고문보다도 괴로웠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미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선 충분히 감내해야 할 일들이다. 그때가 되면, 결국 신인류의 지배자가 되면.

그땐 예전처럼 모두가 존경과 동경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다. 분명히.

이 모든 건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그들은 잘못된 사상을 갖고 학살을 벌인 것이고 난 선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하느님께서 노아의 방주를 내리셨듯, 나도 이단과 구인류를 걸러내고 낙원으로 갈 이들을 솎아낼 뿐이야. 뒤떨어진 이들이 어찌 보든 상관없다. 조금도 상관없어······."

"미친 새끼."

그 말에 레베카가 씹어뱉듯 답했다.

이 문답으로 하여금 확신할 수 있었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단단히 미쳐버린 정신병자다. 물론 그 정신병자는 세계 최강의 초인이고, 초강대국의 정권을 잡은 권력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초인 집단의 수장이다. 그러니까, 저 미국인은 과거 히틀러나 세습 독재를 선택한 북한의 통치차들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그때 어디선가 괴수들이 몰려왔다. 영국군이 기겁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로버트는 곧 그 괴수 무리를 향해 날았다.

직후 벌어진 광경은 참으로 비현실적임과 동시에 영웅적이었다. 오 미터 괴수들의 머리며 몸이 조각난 채 하늘을 날았다. 붉은 빛이 번쩍임과 함께 스스로가 군주라 외쳤던 것들이 폭사했다. 레베카와 성연이 힘겹게 막아냈던 괴수 무리는 저 슈퍼맨에게 있어서 여전히 지나치게 쉽다. 경외받아 마땅할 정도로.

"아······."

그 광경을 본 영국인들 일부가 두려움 섞인 눈을 안도감 섞인 눈빛으로 바꾸었다. 로버트의 예민한 감각은 그것조차 눈치챘다. 학살을 벌인 후 자잘한 영웅적인 일 좀 해주었다고 금세 태도가 바뀌었다. 일시적인 현상일테지만, 로버트는 미약한 동경심을 받은 순간 약을 했을 때보다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그 쾌감이 솟았던 분노 일부를 억눌렀다.

꽤 기분이 안정된 로버트는 기꺼이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그만하자고 했나, 레베카 블런트? 그럼 런던을 불태우는 건 취소해주지. 당연히 내게 협력한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그 역겨운 네크로맨서놈과는 연을 끊고."

"······생각할 시간.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을까?"

"무슨 뜻이지?"

"솔직히 말할게. 난 네가 싫어. 옛날엔 존경했지만 지금은 조금도 그렇지 않아. 히어로 껍데기 쓴 미친 새끼를 보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네 사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과 여전히 로버트, 네가 인류의 영웅이라는 걸 증명해. 그럼 기꺼이 그렇게 할테니까."

"어떻게?"

"미국. 당신이 화풀이하고 있는 동안 괴수들한테 개박살나고 있는 미국부터 지키러 가. 그게 당신을 사랑해주고 떠받들어 준 이들에게 해야 할 의무이며, 그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이 짊어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야. 지켜야 할 영토를 지켜. 애먼 곳에 힘쓰지 말고."

"······기꺼이."

로버트는 레베카의 말에 반발하지 못했다.

내심 어쩌면 그녀가 자신보다 더 영웅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을 정도였다. 역시나 레베카 블런트는 새로이 세워질 낙원에 어울리는 여신이다. 자신의 곁을 지키며 신인류에게 평화를 내릴 영웅적인 여신······.

로버트가 말했다.

"또 다시 생각할 3일을 주겠다. 정말 다음은 없다. 알겠나? 그땐 런던을 불태우는 것뿐만 아니라 이 영국 땅 전체를 바다 아래로 가라앉힐거다."

방금 전 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하여금 로버트 데이비스가 저 경고를 현실에 실행시킬 수 있다는 인물이란 것은 증명되었다. 영국인들 몇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레베카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로버트 데이비스는 영국인 대마법사의 옆에 선 녀석을 쳐다보았다. 네크로맨서, 유성연.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 전보다 몸뚱이가 더 단단해졌음에도 무시할 수 없는 부상을 입혔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심각한 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뭐지? 킴의 언데드로 사용한 능력으로 상처 입힌 건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조잡한 공격으로 내 몸에 상처를 새길수가······.'

로버트는 어떤 원리의 공격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그의 육체를 침범하지 못한다. 그럼 대체 무엇을 사용했단 말인가. 로버트는 허리춤에 찬 대각성자용 권총을 움켜쥐었다. 여기서 처리해야 할까?

어떤 수작을 부리건 이 총알을 박아넣는 순간 그 계획을 모조리 박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로버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깨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여전히 멎지 않았다. 쓰라린 통증이 몸을 뒤덮고 있었다.

결국 로버트는 판단을 내렸다.

'다음도 늦지 않다. 마침내 영국의 대마법사가 내 편으로 들어온 뒤 확실하게 해도 늦지 않아. 그 사이 이 몸뚱이를 더 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군. 다행히도 포인트를 보충할 길은 많으니······.'

협회는 대다수가 각성자로 구성된 집단이다. 그리고 본 게임이 시작된 이후, 각성자를 살해하면 그 보유 포인트를 약탈할 수 있게 되었다. 보유하고 있던 모든 포인트를 제 힘을 키우는데 투자한 로버트는 다시 그 강화에 필요한 포인트를 보충하길 원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각성자 몇을 무리한 임무에 투입시키고 대신 자신이 팀에 합류해 든든히 지원하겠노라 말하는 것. 그리고 네 번째 이벤트와 함께 발생한 적들이 지나치게 강력했으므로, 몇몇의 죽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애써 추모하는 표정을 짓는 것.

그리하여 저 네크로맨서를 완벽히 상대하기 위해선 더 강대한 힘이 필요하다 생각한 로버트는 곧 자리를 떠났다. 슈퍼맨이 사라지고 난 후, 성연이 물었다.

"영국 진짜 넘길 생각인가?"

"미쳤어? 아니지. 당장 시간 좀 벌려고 그런거지. 이런 말이라도 안하면 죄다 때려부수면서 테러할테니까······."

"시간 벌어서 어떻게 할건데?"

"나도 몰라. 막막해 죽겠다고. 왜 저런 강력한 힘을 미치광이에게 준거야? 로버트가 계속 영웅으로 남았다면······그럼 정말 구원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쓸데없는 죽음도, 비극도 없이 다 함께 맞서 싸울 수 있었을텐데······."

그 말을 듣던 성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현실은 코믹스나 할리우드 영화와 달랐다.

노력 없이 주어진 강력한 힘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린 시절, 다케다 유이치에게 끔찍한 꼴을 당한 바 있던 레베카 블런트만이 예외였다.

물론 그녀도 어딘가 비틀려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그래도 레베카는 유일하게 의무나 책임을 아는 인물이었다. 성연은 레베카를 바라보다 이내 말했다.

"3일. 그 3일 동안 날 도와줄 수 있나?"

"······뭐?"

"이 모든 전황을 뒤집을 방법을 알아."

레베카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마주하며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운틴의 껍질에 근접하게 만든 언데드의 부위는 분명 강력한 무기이다. 하지만 '근접'한 수준만으로는 그 슈퍼맨에게 심각한 상처를 새길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모든 경험을 학습하는 그 천부적인 전투 감각이 있으므로, 다음엔 그와 비슷한 기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초인은 그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공략법이다.

그러니까, 성연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괴수를 흉내내어 껍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괴수가 필요하다.

성연이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이현우 씨. 브라더후드 측에 연락 보내요. 그때 나에게 주겠다고 했던 도움, 지금 받고 싶다고."

미쳐 날뛰는 그 미국인을 막기 위해서는 그놈이 필요하다.

마운틴. 지상 최강의 괴수.

<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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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독자님들 오늘도 사랑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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