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법사 레베카 (2) >
성연은 네 번째 이벤트의 내용을 확인한 직후 영국행을 결정했다.
대한민국 진영에 왕웨이와 이경민이 새로 합류한 가운데, 성연이 없어도 대한민국의 전력은 꽤 강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더하여 중국의 통치자나 다름없게 된 강윤식마저 위기 상황이 있으면 곧장 지원을 보내주겠노라 약속한 참이었다.
이벤트가 시작된 후, 성연은 그 괴수들이 얼마나 강력하며 까다로운 능력들을 갖고 있는지 확인했다. 감당하기 벅찬 수준의 적들이 출현한 후 이현우가 내린 판단은 단순했다.
그는 캠프의 위치를 다소 옮겼다. 아슬아슬하게 마운틴의 영역에 걸치는 곳으로.
어떤 원리로 그 초거대 괴수가 움직이는 지 확인된 적은 없으나, 여러 실험을 통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자극하지 않는다는 건 증명된 바 있었다.
"저 새끼들 쫄아서 안온다······."
한층 진화했음에도 괴수들에게 마운틴은 지나치게 두려운 적이었다. 놈들은 최상위 포식자가 머무르고 있는 영역 안에 들어가길 꺼렸다. 구역 외곽에 마운틴이 해둔 영역 표시는 괴수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선사했다. 넘어가는 순간 죽을 거라는.
확실한 방어선을 구성한 대한민국 진영은 다소 피해 없이 넘길 수 없었다. 그 대단한 네크로맨서 없이도 이제 그들은 스스로 살아남을 힘을 충분히 가졌다.
이현우는 그 사실에 만족하며 걱정 없이 성연의 영국행을 따라나섰다.
유성연, 이현우, 스티븐 최.
셋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
영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했다.
몰려드는 괴수들은 숫자는 물론이요, 질마저 영국 측보다 우월했다.
성연이 군주를 처치했음에도 전황은 불리해보였다. 그때 레베카가 말했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왔냐고 따지지도 못하겠네. 너 안 왔으면 진짜 위험할 뻔······."
"영국 쪽 각성자들 너무 형편없는데. 너 하나한테만 너무 의존한 거 아닌가?"
"그건······인정할게. 맞아. 여기 나 빼고 다 허접이야."
지나치게 솔직한 말에 레베카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도 네 덕분에 군주 잡았으니 여기 몰려든 놈들은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어. 그 요상한 버프 때문에 힘든 거였다고. 마법 위력 못 내게 하는 버프."
그 말을 끝마치며 레베카는 입을 달싹이며 주문을 외웠다. 0.02초 동안 구성된 마법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복합적으로 구성된 마법은 여러 현상을 동반했다. 땅이 뒤흔들렸고 요란한 굉음이 몇 번 울렸다. 솟아오르는 화염과 폭풍이 괴수들을 집어삼켰다. 한층 진화한 괴수들은 그 괴랄한 마법 속에서도 일부 살아남았다. 그런 놈들은 성연이 처리했다.
정확히는, 먼 곳에서 칼질하는 일본인 언데드가.
성연은 그 소아성애자 좀비에게 포인트로 구매한 날붙이 대신 다른 것을 쥐여줬다. 그가 알고 있는 물질 중 가장 뛰어난 물질. 「마운틴」의 껍질을 본따 만든 신체 조직을 날카롭게 세워 검처럼 만든 물건. 그리 만들어진 검은 금속의 절삭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강화된 괴수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하늘을 날았다. 장비를 교체한 다케다 유이치 좀비는 대단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실상 두 명의 S급 각성자가 여기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까, 국가 전력급이 두 명.
우두머리를 잃은 괴수 군단은 금세 전멸당했다. 하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고작 균열 하나에서 쏟아진 적들을 막아냈는데 피해가 이만큼이다. 옛날이었다면 사망자 없이도 막아낼 수 있었던 우스운 습격이다.
이 지역은 하루에 평균 네 개의 균열이 출현한다. 이번 이벤트로 하여금 균열 출현 빈도가 열 배 늘었으니 하루에 평균 마흔 개의 균열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니까, 절망을 선사하는 군단의 습격이 1일 40번씩······.
마침내 전투가 끝났을 때 레베카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번째 이벤트가 30일 진행된다고 했었나? 내가 보기엔 3일도 못 버텨. 3일이면 저놈들 습격이 총 백 이십 번인데, 그럼 그 물량 감당 못해서 사람보다 괴수 숫자가 더 많아질지도 몰라. 진짜 괴수들 땅으로 변하는 거라고.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던 좀비 영화처럼 사람보다 다른 괴물들이 즐비한 멸망한 세상이 되는거야······."
"멸망한 세상······."
"그래. 30일 간의 습격을 버텨낸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저놈들 죽이면 게임처럼 사라져? 아니, 시체 남잖아. 오랫동안 방치되면 괴수들 몸에서 유해가스 나오는데, 개떼처럼 몰려나와서 공간 다 잡아먹은 채로 죽어있기만 해도 인류 멸망이라고. 이 빌어먹을 게임 개최한 놈들은 진짜 우리가 죽는 걸 보고 싶나봐. 죽어가면서 처절히 발악하는 거 보면서 낄낄대고 좋아하겠지."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겠네."
그 말에 레베카가 성연을 슬쩍 보았다.
성연은 덧붙여 말했다.
"이 세계 자체를 바꾸는 것."
"소원? 그래. 소원 빌면 뭔가 바뀔수도 있겠네······지금으로썬 그게 유일한······."
레베카의 말을 들으며 성연은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어떤 소원을 빌어야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시간을 돌려달라고 할까? 아니. 그러면 이 끔찍한 사태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괴수나 초인 따위는 사라진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할까?
아니. 그런 건 원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사태의 원인은 모두 '튜토리얼'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며 세상에 초인을 만들고 괴수를 뿌린 것들, '본 게임'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며 인류를 싸움붙이고 이십 미터 고질라들을 세계 전역에 떨군 것들이다. 결국 그들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사태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시간을 돌려도, 망가진 세상을 원래대로 고치더라도.
그들은 유희라는 명목으로 다시금 어찌 접근할 지 모른다.
성연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선 결국 그들이 사라져야 한다. 게임이니 유희니 하며 인류를 장기말처럼 다루고 비웃어대는 것들.
그러니까, 본 게임의 주최측.
그런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칠판 긁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구멍이 뻥 뚫렸다. 깃발을 휘날리며 군주가 나타났고 특수한 힘을 얻은 괴수들이 돌격했다.
「군주, 레비아탄이 출현했습니다!」
「레비아탄은 창공의 지배자인 용족이며 기후를 지배하는 위대한 종족입니다!」
.
.
「창공의 지배자!」
「레비아탄이 이끄는 괴수들은 모두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기후 지배!」
「레비아탄은 모든 자연 현상을 통제합니다. 그러니까, 불과 물. 전기 따위는 그 위대한 종족 앞에서 무용지물이 됩니다! 혹시 당신이 마법사라면 당장 도망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원소를 부리는 마법사는 용족에게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요!」
그 알림창을 본 레베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씨. 자꾸 나 저격하는데."
그 말을 들은 성연은 레베카를 흘긋 보더니 전투가 시작되기 전 한 마디를 건넸다.
"포인트 투자 좀 하지?"
"뭐? 나 투자 많이 했는데?"
"아니, 총량 늘리는 데만 때려박지 말고 테크 트리를 타라고."
"내가 네 말 잘 듣긴 해도 이 부분에서 훈수 들을 짬은 아니거든? 내 능력은 더 없이 완벽해서 여기서 더 투자한다고 달라질 거 없어. 총량 늘리는 게 최선······."
"한 번 해보기라도 해."
그 단호한 말에 레베카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물론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포인트 상점을 열어 상세 능력 강화 부문을 살폈다.
마법사는 상세 능력 강화가 가득하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이 부분의 강화가 한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한 가지는 별 흥미도 돌지 않는 문장이었다.
「'대마법사'- 신비한 백과사전」
「지식이 늘어납니다.」
여기 투자하느니 좀 더 모아서 총량을 더 늘리는 게 낫지 않나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레베카는 순순히 성연의 말을 따랐다.
전투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시점, 레베카는 곧 새로이 개방한 상세 능력 강화의 효과를 체감했다. 그리고 지식이 늘어난다고 단순히 적혀있던 그 문장의 뜻을 알았다.
"이거, 뭔."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가 늘었다.
전에 알지 못했던 마법 하나가 생생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온라인 게임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마법엔 기록된 바 없는.
마법사의 약점을 완전보완하는 것이 가능하며 더욱 창의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마법.
"온 - 다 -!"
그러나 그 대단한 마법을 시험해 볼 새도 없이 괴수 군단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 미터로 축소된 괴수들은 그 껍질의 경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해졌다. 단순히 강화 총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는 죽이기 힘들 정도였다. 녀석들을 죽이기 위해선 능력이 필요했다. 총기보다 훨씬 위력적인 파괴 수단.
초라한 영국군에도 당연히 그런 능력자들은 있었다. 하지만 군주의 버프와 함께 적들이 비행 능력을 얻게 된 가운데 공중을 나는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은 많지 않았다. 탱커들은 물론이요, 마법사와 힐러들마저 소총을 쥐고 쏴 갈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치열한 전투의 균형을 깨부순 건 성연이었다.
여러 테크 트리를 탐으로써 언데드들의 내부 구조를 어찌 개조하건 페널티를 받지 않게 된 네크로맨서는 이제 고속비행이 가능한 고질라마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싸우진 않았다. 원하는 좌표에 언데드를 만들 수 있게 된 능력은 성연이 자주 써먹는 기술인 시체 폭발에 특화된 힘이었다. 성연은 비행하는 괴수들 사이에 살덩이들을 몇 개 끼워넣곤 곧장 폭파시켰다.
이 시체를 터뜨리는 과정에 원소 마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으며 성연은 착실히 적을 학살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깃발을 휘날리는 군주가 포효했다.
【건 - 방 - 진 - 놈 - !】
울부짖으며 비행하는 군주의 속도는 거의 음속에 가까웠다. 군주 레비아탄은 직선을 그리며 성연에게 돌진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 돌격은 저 네크로맨서를 부수고도 남을만큼 위력적으로 보였다. 성연만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충분히 접근하면 다케다 유이치 언데드와 김유현 언데드를 기용해 일격에 죽이기 위해서.
하지만 그 계획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저 네크로맨서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멀뚱히 선 것으로 보였다. 레베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급히 움직였다. 몸이 아니라 입을.
0.01초.
레베카 블런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 동안 자주 외웠던 것이 아니라, 이번에 테크 트리를 개방하며 새롭게 얻게 된 신규 주문. 백 년간 한 번도 출현한 적 없던, 그러나 게임에 자주 출현한 덕에 아주 유명한 마법.
마법사를 대표하는 마법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주문.
" - - !"
구성된 주문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성연은 군주가 돌격해오기 바로 직전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성연은 그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당사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하지만 그 현상을 지켜본 제삼자들은 방금 무슨 마법이 사용되었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이현우가 벙찐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텔레포트?"
순간이동 마법. 텔레포트.
레베카는 그 마법을 사용해 성연을 옮겼다. 위치가 변했음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언데드들을 움직여 군주 레비아탄을 살해한 성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드물게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레비아탄의 시체를 일으켜 언데드로 만들며 성연이 레베카에게 말했다.
"그거 범위 얼마나 되나?"
"대충 300m······."
"범위는 300m······거기다 마법 쓰는데 제한 없으니, 게임처럼 마나 걱정할 것도 없이 무한히 텔레포트까지 가능······."
그 사실을 알아챈 성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말했다.
"런던 불태우러 온다던 슈퍼맨, 와서 보면 아주 좋아죽겠군."
반경 300m 어디로든 자신과 타인을 텔레포트할 수 있는 마법사, 시체 없이 자유로이 어디든 언데드 떨굴 수 있는 네크로맨서. 두 조합은 참으로 볼만할 것이다. 옛 시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의 히어로와 비슷한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할테니.
새로운 능력을 개방한 레베카는 성연과 함께 영국에 쏟아지는 괴수들을 힘겹게 막아냈다. 균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으므로 휴식 시간도 없었다.
쌓이는 피로는 힐러의 능력이나 포인트로 구매하는 포션 따위로 해소했다. 그럼에도 정신적 피로는 끊임없이 쌓였다. 그러던 와중, 레베카의 비서를 통해 어디선가 연락이 왔다.
협회였다. 그 연락의 내용은 단순했다.
「어느쪽에 설 지 정했는가?」
< 대마법사 레베카 (2) > 끝
(82)
작가의 말
g7993_outergap님 후원금을 두 번이나.....
무려 10000포인트나 주셨습니다 ㅠㅠ
나라 하나 점령해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를 주셨네요 ㅠㅠ
사랑합니다!!!!! 공중제비 일만 번 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