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군주 유성연 (2) >
세 번째 이벤트는 난데없이 수도에 출현한 지하 미궁이나 괴수 많이 잡는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세상을 바꿔놓았다. 네 번째 이벤트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여러 세력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승을 노리고 있는 선두권이 미국의 슈퍼맨과 한국의 네크로맨서로 한정된 가운데, 그들의 목적은 자기네들의 자리 보전이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휩쓸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지 않도록.
사람을 써서 유망한 인재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죽였으며,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동료를 믿기 힘들며 지나치게 유능하단 이유로 은밀하게 처리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넘어 다리를 부러뜨리고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본 게임의 배경은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세 번째 이벤트가 끝난 직후, 로버트 데이비스와 비슷한 표를 받았던 미국의 대통령이 실종되었다. 그를 추종하던 정치인들도 함께.
삼엄한 경계 속에서 그런 일을 과감하게 벌일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일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사라짐으로써 이득을 챙길 수 있고, 철저한 경호를 간단히 뚫어버릴 수 있는 초인. 미국 대통령을 사라지게 만든 게 로버트 데이비스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의 그 추측을 감히 입밖으로 내뱉는 이는 없었다.
하루 뒤 천조국의 깃발 위에 미국 대통령의 머리가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미국인들은 국가원수를 살해한 슈퍼히어로가 마지막 정의의 끈만은 놓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리 세상이 망가졌음에도 응답하지 않는 하느님에게.
"오, 신이시여······."
그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일과를 수행하는 이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괴수들은 이제 사람을 보면 군침을 흘리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리나케 달리던 와중,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머리가 꿰뚫리는 순간까지도 바닥을 기며 달아났다. 그러곤 몇 초 뒤에 새로운 군단의 일원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그 지나치게 강력한 네크로맨서의 힘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이제 극소수가 되었다. 각성자들이 보기에 한시도 쉬지 않으며 제 힘을 믿고 으스대지도 않는 저 초인은 신화 속의 군주요,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괴수 개체량 줄어서 이제 포인트 버는 속도 현저히 줄어든 게 체감된다.'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언데드 군단과 끊임없이 수급되는 포인트에도 성연은 충분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도록. 여러 나라의 인물들이 입모아 말하는 것처럼, 정말 신화에 등장하는 초인이라도 되어야 한다.
미쳐버린 슈퍼맨을 상대하기 위해, 이 끔찍하기 그지 없는 게임에서 우승하고 마침내 승리를 따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하여 성연은 보유량 50만에 달하는 포인트를 다소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떠오른 그 '초월자'라는 거창한 단어가 붙은 부문에 말이다.
그 전에 성연은 이현우에게 질문했다. 이 투자에 관해서.
"초월자? 듣기만 해도 엄청 대단해 보이는데요. 요구 포인트 엄청 많아요?"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닙니다. 며칠만 열심히 사냥 뛰면 금세 다시 벌어들일만한 양이에요."
"그럼 투자하죠, 왜 안해요?"
"네 번째 이벤트로 뭐가 나올 지 모르니까요. 싹 다 죽어보라면서 생존비로 몇천 포인트씩 내라고 할 수도 있고······포인트 가장 많은 사람한테 불리한 거 낼 수도 있고······."
"그렇게 고민하면 끝도 없어요. 물론 테크트리 어느 정도 완성한 사람들은 강화 찍어도 체감 안 되서, 장비나 소모품 위주로 구입한다지만 유성연 씨는 다르잖아요. 사소한 것만 달라져도 완전 다른 사람 되던데······."
"그거야 그렇지만."
"투자는 원래 과감하게 해야돼요. 유성연 씨 실력 좋잖아요. 투자 대비 효율 분명하죠? 그럼 하는 게 맞아요. 내가 보기에 유성연 씨는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이 회수할 수 있을 거에요. 이 포인트, 주식처럼 투자할 수 있는 기능 있었으면 저 성연 씨한테 다 때려박았을걸요? 유성연 코인 떡상한다고······."
농담으로 끝난 말은 꽤나 설득력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성연은 스스로의 실력에 꽤 자신감이 있었다. 적어도 능력의 활용성 부분에선 자신을 따라올 인물이 없었다. 그리하여 성연은 '초월자' 부문의 상세 능력 강화를 개방했다.
변화는 비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며 천천히 결과가 나타나는 운동과 다르게, 온라인 게임 캐릭터가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 것처럼 극적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시야가 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는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언데드들 사이를 잇는 흑색의 실처럼 생긴 연결고리들, 죽은 몸뚱이 안쪽을 밀접하게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힘······.
초월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강력한 강화 기능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성연은 이 순간 창조주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전엔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성연은 허공에 손을 한 번 저었다. 그 순간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광경에 이현우는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성연 씨? 지금 뭐한······."
이제 성연이 언데드를 일으키는 행위엔 시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육신이 필요치 않았다. 제 영역 안에 '죽은 자'가 있으면 그것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위치에 언데드를 생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유닛을 뽑는 것처럼.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이현우에게 성연은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 단순한 행동엔 지나치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이 기본 상식 없는 감방 동기에게 네크로맨서 능력의 원리나, 새로운 능력으로 하여금 육신 없이 원하는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 어디에든 떨굴 수 있다는 방법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현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성연이 얻은 힘을 이렇게 평가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
그러니까, 정말 창조주나 신에게나 허락된 힘.
***
거창하게 평가된 것과 달리 성연은 포인트 좀 투자한 것으로 전능한 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 가깝게는 되었다. 전에는 시체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적들을 유도해 의도적으로 유리함을 끌어냈다면, 이젠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었다.
전투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네크로맨서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성연이 사냥하는 속도는 전과 비교해 두 배 가량 빨라졌다. 아쉬운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괴수 개체량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슈퍼맨이 마지막 선을 넘어버린 지금 사냥을 위해 외국에 향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래서 성연은 네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는 날까지 대한민국에 머물렀다. 새로이 얻은 능력에 적응하고 철저히 준비하면서.
그렇게 마지막 날 전의 밤이 되었다.
"유성연 씨 전화왔어요."
휴대폰이 울렸다. 통신사들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지금도 괴수 부산물을 재료로 만들어진 첨단 기기는 여전히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휴대폰을 든 성연은 전화를 건 연락처를 확인했다. 이미 등록된 연락처였다. 대마법사 레베카 블런트.
"무슨 용건이지?"
「어. 그게, 뭐라고 하려고 했지, 음. 잠깐만······.」
레베카는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횡설수설했다.
스티븐 최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기 전에도 성연은 레바카가 뭔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레베카가 뒤이어 말했다.
「네 번째 이벤트 시작되고 상황 정리되기 전까지 움직이지마. 로버트, 그 꼰대 미쳤어. 정말 미쳐버렸다고.」
"그게 무슨?"
「당장 자기 도와주지 않으면 런던부터 불태우겠다고 했어. 가만히 중립을 지켜도 습격하겠다고 했다고. 허세가 아니라 진짜 그럴 눈빛이었어. 실제로 그럴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전투기보다 빨리 날아다니는 생체 핵폭탄이잖아, 그 늙은이. 어떻게 된지는 몰라도 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여기서 앉아 버텨도 막을 수 있을지 의심 갈 정도로······.」
"내 도움이 필요한가?"
「도움? 무슨 소리야. 움직이지 말라니까. 정신 나갔어도 마운틴은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거기에 있으면 안전할거야. 천천히 각 재고 있어. 우승까지 얼마 남지 않았잖아. 맞지? 거기서 네가 바라마지 않는 소원 빌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천천히 포인트 모으면서.」
"그럼 너는? 너도 대한민국 오는 건 어때? 저번에 왕웨이가 여기 머물렀을 때 마운틴 움직임에 변화 없었다. 어쩌면 S급 각성자 오는 것으로 행동 변화 한다는 거, 잘못된 추측일지도······."
그 말에 한참이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곧, 무거운 목소리로 레베카가 답했다.
「내가 거기가면 영국 사람들은 누가 지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영국 여신님만 믿겠다고 하루 살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 책임지는 부모들······그 동안 내가 받은만큼은 해줘야지. 이건 의무야. 내가 정말 여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 수 있었던 건 그 의무를 언제나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에 보장받았던 거고.」
"······."
「난 여길 책임져야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럼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협력한다는 말이라도 해라. 너부터 챙겨. 그리고 너의 소중한 사람들도 챙겨."
「싫어. 내가 협력하는 건 곧 영국을 넘기는 거고, 이 사람들이 그 정신병자 손에 넘어가는 거 보느니 죽지. 여기 지키면서 런던 불태우게 두지도 않을거고 로버트 데이비스 밑으로 들어가지도 않을거야. 알지? 평화의 여신. 나타난 이래 한 번도 외부 침입 허락한 적 없는 고결하고 아름다우신······.」
애써 유쾌한 척 하는 말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통역을 위해 스피커폰을 켜두었기에 스티븐 최를 비롯해 이현우마저도 레베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이현우가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성연씨?"
그 물음에 성연은 한참 답하지 못했다.
마운틴을 내세워 방패막이 삼은 채 나머지 백만 포인트를 모으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안전할 것이다. 마침내 우승하는 건 성연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원하는 결과인가? 그렇지 않다.
성연은 날뛰는 슈퍼맨을 가만히 둔 채 온전히 본 게임의 우승만을 노리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을 원했다면 애초에 김유현을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복수를 준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살인 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교도소에 들어가길 자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정을 삭이며 편의점 알바를 했을 것이고, 네크로맨서 능력을 갈고 닦아 그저 그런 헌터가 되길 바랬을 것이다. 성연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유성연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이현우는 그 말에 잠깐 벙쪘다. 그를 만난 이래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 같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이현우는 기껍게 웃었다.
"예. 당연하죠."
밤이 깊도록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던 전과 달리 네 번째 이벤트는 정확히 00시 00분이 되는 순간 시작되었다.
어두운 캠프, 모닥불 앞에서 성연과 이현우는 새로이 떠오른 투명한 창을 맞이했다.
네 번째 이벤트.
우승 상품, 칠십만 포인트가 걸린 웃기지도 않는 내용의 이벤트를.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안혜지가 헛웃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들."
< 죽음의 군주 유성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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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asdasd8954님 연참을 하기 전에 또 보내주셨네요 후원금을!!!
덕분에 6시에 올리려다 더 빨리 올렸습니다. 너무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