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더후드 (2) >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은 지구의 인류들을 참가자로 선정한 뒤, 유흥을 위한 놀이를 시작하기 전 여러가지 사항을 검토했다. 이 종족의 문명과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불을 뿜어 철탄을 쏘아내고 전기 신호로 서로 통신하는 모습은 큰 재미 요소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종족이 가진 몇 가지 무기들은 지나치게 강력했다.
남용될 시 명장면들이 뽑히기도 전에, 혹은 우승자가 나오기도 전에 행성 전체가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건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최대한 오래 발악하며 치열하게 싸워주길 바랬다.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이 경계한 무기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자면 핵무기였다. 나라 하나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는 건 물론이요, 그 주변에 죽음을 내리는 현대 무기.
그 강력한 무기는 인류의 최종병기 따위로 보관된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누군가 스타트를 끊는다면 순식간에 핵전쟁으로 발발되어 재미난 이벤트고 뭐고 순식간에 인류에 종말이 찾아올 정도로. 그건 이 게임을 소위 '노잼'으로 만들 요소 중 하나였고,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용두사미 엔딩'을 만들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본 게임의 시작과 함께 핵무기나 단숨에 국가를 멸망시킬만한 무기들을 배제할 수단을 세계에 배치했다.
배치한 국가는 무작위로 선택했다. 멸망했거나 버려진 국토 중 하나에 출현하도록.
혹여나 토벌당하지 않도록 그 등급을 '최대치 오버'로 설정했으며, 공략이 불가한 수준의 스펙을 부여했다. 토벌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온라인 게임의 GM이요,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였다.
인류는 그 존재를 「마운틴」이라고 불렀다.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노잼 엔딩이 나오지 않도록 배치된 그 생물체는 가만히 머무른 채 제 임무를 수행할 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움직일 시간이 다가왔다.
물불 가리지 않는 미치광이가 핵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걸어다니는 마천루는 몸뚱이가 육중하다고 해서 느리지 않았다. 개최자들이 설정한 '오버 스펙'은 모든 능력치에 골고루 적용되었다. 아주 먼 거리였음에도 그 존재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러곤 제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
마운틴이 등장한 것만으로 그 자리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지진을 일으키며 나타난 초거대 괴수는 땅을 밟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성연은 과거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마운틴의 발 밑을 무너뜨린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저 능력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마천루인 저 괴수는 무림 고수처럼 공중을 걸을 수 있다.
"뭔······."
누군가 기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연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저 광경에 경악했다.
저 존재는 등장한 즉시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으로 날아들던 전투기는 물론이요,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과 땅에 흩뿌려지던 생화학 무기마저 정지했다.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리의 누구도.
"워 - 어 - 어어!"
마운틴의 주둥이 안쪽은 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블랙홀과 비슷한 형태로 생겼다. 일련의 외침과 함께 전투기와 핵무기 미사일들, 생화학 무기가 빨려들어갔다. 마침내 식사를 마친 마운틴은 어딘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곤 손을 내뻗어 폐건물 하나를 움켜진 뒤 어디론가 던졌다. 폭격이라도 떨어진 듯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렸다.
거기 자리한 이들은 그 행동이 감히 주최측의 의도를 무시한 채 핵무기를 사용한 국가에게 경고를 내린 것이라 추측하지 못했다. 막연히, 저 미친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하고 탄식을 뱉을 뿐이었다.
'시기가 좋지 않은데, 왜 벌써······.'
성연은 이를 악물어 두려움을 떨쳐낸 뒤 제 언데드를 일으켰다. 직후 글러트니를 필두로 여러 언데드들이 마운틴에게 돌격했다. 이번엔 전과 다르다. 김유현 언데드와 다케다 유이치를 얻었다. 더하여, 성장하는 언데드를 백 미터를 넘어선 규모까지 키웠다.
어쩌면 해볼만 할지도······.
"워 - 어 - 어!"
다음 순간 멍청한 생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내지른 포효와 함께 내달리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주저앉았다. 마운틴은 가장 가까이 접근한 글러트니를 지켜보다 손을 내뻗어 그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그 일련의 행동 직후 글러트니의 몸뚱이가 처참하게 박살났다.
왕웨이나 김윤기도 다르지 않았다.
저 산만한 괴수가 내지르는 포효는 인간의 뇌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한다. 아무리 강한 각성 능력이든 발동시킬 수 없으면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 순식간에 골초 늙은이요, 오타쿠 고등학생으로 전락한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멀쩡히 서 있는 건 성연뿐이었다. 글러트니를 다시금 회복시켜 일으킨 성연은 다시 한 번 저 괴수가 포효하길 기다렸다.
과연 마운틴은 물러서지 않는 네크로맨서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포효를 내지르려 했다.
그때, 성연은 김유현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할 수 있는 최대치로 그 음파를 폭탄처럼 터뜨려 피해를 입히도록.
김유현 좀비는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쩍 벌린 입에서 웅장한 포효 대신 성대한 폭음이 울렸다. 마운틴의 아가리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성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교도소 지하. 고립되었던 그때 보았던 껍질이다.
슈퍼맨에게도 상처를 입혔던 공격은 과연 저 지상 최강의 괴수에게도 유의미한 피해를 주었다. 어쩌면, 꽤 심각한 부상일지도 몰랐다.
그때 마운틴의 입가에서 긁는듯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성연은 그 산만한 괴수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꺼림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며 성연은 움직이지 못했다. 사고가 완전히 멈추어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릴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직후 마운틴은 다시금 허공을 박차 어디론가 사라졌다.
원래부터 늘 자리하던 곳. 중앙각성자교도소의 잔해 위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연은 생각했다.
저 괴물에게 닿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마침내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물론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힘이 다소 부족한 것은 물론이요, 당장 처리해야 할 다른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죽음을 내리려고 했던 미친놈. 핵무기를 투하하려 했던 중국의 왕.
"······선을 제대로 넘는데."
브라더후드 길드장.
지금은 놈이 우선이다.
***
중국은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토를 모조리 날릴 생각으로 핵무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저 작은 땅덩어리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역으로 날아든 폐건물 잔해는 중국의 도시 여럿을 일순간에 쓸어버렸다. 중국 사령부는 그 폐건물 잔해가 어떤 생명체의 순수한 근력에 의해 쏘아진 것이라곤 추측도 하지 못했다. 단순한 폭격을 아득히 넘어서는 위력이었던 까닭이다. 그 괴랄한 역습에 중국엔 그야말로 혼란이 찾아왔다.
게다가 언제나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미국의 협회 측은 중국이 핵무기를 사용했다는 사실과 그로인해 대한민국에 머무르는 최강의 괴수가 반응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즉시 연락이 왔다.
핵무기 사용을 엄중하게 금하며 대한민국 영토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 절대로.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심판의 화살이 중국에 향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에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수십 년 동안 웅크려있던 늙은이가 갑자기 나서질 않나, 격변 이후로 한 발자국도 움직인 적 없는 놈이 난데없이 핵무기에 반응해서 날뛰지 않나······대체 왜 이런 빌어먹을 일들이······.'
투쟁을 즐긴다고 해서 끝없는 변수와 패배에 가까운 상황마저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이 상황이 기껍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주.
그때였다. 비서실을 통해서 다시금 연락이 찾아왔다.
이번엔 미국에서 온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온 연락이었다.
대한민국의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세력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음지에서 은밀히 활동하며 유성연에 대한 지지를 밝혔던 세력들과 아프리카의 악몽이라 불리우는 부족 전사들을 대거 이끌고. 그 소식에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이를 갈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에 변수가 다수 출현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준비시켜, 나도 나선다."
불리해진 전황을 뒤집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적의 장수를 잡는 것.
그러니까, 몰려드는 군세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네크로맨서. 유성연을 잡는 것.
***
"브라더후드 길드장······계속 이리 말하니 불편한데 그 놈 이름이 뭡니까?"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저 큰형님이라고 부르라고 밖엔······."
"그래요? 그럼 큰형님이라고 하죠. 우리 목적은 큰형님 잡는거에요. 머리만 딱 잡아서 불필요한 싸움 없게 평화롭게 끝내는 거라고요."
전진하는 와중, 이현우는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말했다.
"큰형님을 죽일 순 없어요. 안 그래도 종말론이니 뭐니 하면서 떠드는데 하루 아침에 그만한 인구 사라지면 인류 재건은 거의 불가능하죠."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승리할 생각인가?"
"우리 쪽에 정신계 능력자가 몇인데요? 잘만 이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어요.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침투에요. 거기까지 어떻게 파고드느냐? 그리고 같은 정신계 능력자인 큰 형님을 어찌 정신적으로 굴복시키느냐? 여기서 41Km 죄다 정지시킬 수 있으신 영국 레이디 계셨으면 참 좋았겠지만······아쉽게도 집 가셨죠."
"······."
"우리 쪽에 든든한 지원도 왔으니 중국군과 대치하며 시간은 오래 끌 수 있을 거에요. 그 사이에 소수로 구성된 우리 측 침투팀이 중국 안쪽으로 들어갈 겁니다. 침투팀은 유성연 씨와 나, 이경민 씨, 인질 강윤식 씨로 구성합니다. 총 네 명이에요."
"나는 왜?"
"고기방패요. 같은 진영끼리는 공격 못하는 것도 있고, 브라더후드 소속원들끼리도 큰형님 얼굴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라면서요? 그럼 얼굴 잘 알려진 강윤식 씨 내세우기만 해도 일이 편해지겠죠."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 큰형님이 가지신 능력이 정신계에 불과하다고 어찌 생각하나? 정확하게는 누구도 몰라. 사람 세뇌하는 힘은 극히 일부일지도······."
"그래서 뭐요? 저기 옛날에 은퇴하신 S급 헌터분이라도 침투팀에 끼라는 말이에요?"
"······."
"미안하지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함께하면 충분히 도움되겠지만 중국엔 마운틴이 없는 이상 저쪽이 아군이랑 우리 함께 다 날려 버리려 극단적인 무기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그 방면 무기 봉쇄할 수 있는 건 왕웨이 님밖에 없어요. 큰형님 붙잡는다고 해도, 우리쪽 전력 전부 다 당한 뒤가 되면 의미 없다고요."
"그래. 이해했다. 근데 이 팀에 네가 끼어있는 이유는 뭐지? 이런 쪽에선 아무런 쓸모도 없고 재주라곤 말솜씨 있는 게 전부인 놈이······."
"말솜씨 말고도 재주가 몇 개 더 있으니까 합류했죠."
그 말과 함께 이현우는 손가락을 여러 번 튕겼다.
처음 튕겼을 때 이현우는 왕웨이가 되었고, 두 번째로는 강윤식이 되었으며, 마지막으론 유성연이 되었다. 「인간 백과사전」이라 명명된 능력은 포인트를 투자해 발전된 결과 이제 일초에 한 번씩 타인의 외모로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소수 정예로 움직이며 서로가 서로의 왕을 노릴 지금의 상황에서 이 능력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아주 크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크다. 외모를 모방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타인의 능력 일부도 베낄 수 있지만, 이현우는 모방한 능력을 딱 'B급' 정도의 총량으로밖에 내지 못한다. 그 정도 힘으론 브라더후드의 전문 싸움꾼들 하나도 정면에서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전장을 돌아다니다 잘못 습격받으면 곧장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포인트를 투자한 A급 각성자들, 그 전투의 달인들은 일 초안에 사람을 조각 단위로 썰어버릴 수 있는 초인들이다. 당연히 이현우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분노가 머릿속을 데우고 있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상황 못 두고 봅니다. 선을 지나치게 넘었어요, 그 놈."
"너무 감정적인 것 아닌가? 그러다 정말 죽으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끝장이야."
"저 죽어도 대한민국 국민들 안 죽습니다."
"뭐?"
"이 작전 참여하기 전에 유성연 씨에게 항복 의사 밝히고 권한 전부 넘겼어요. 그러니까 이제 뒤볼 것 없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발언에 강윤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사기범으로 들어왔으며 교도관들에게 겁쟁이로 평가되던 청년은 격변 이후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강윤식은 그때 보았던 말 많은 쭈구리와 지금 눈 앞의 청년이 같은 인물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이현우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전과 기록에 한 줄 추가할 겁니다. 사기죄, 피해자는 브라더후드 길드장."
< 브라더후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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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빨리 레베카 등장시키고 싶네요.
손이 부들부들 떨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