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73화 (73/111)

< 중국인 왕웨이 (1) >

성연이 오랜만에 생존자 캠프에 돌아왔을 때, 안부를 묻기 위해 마중을 나왔던 이들은 성연을 태운 거대 언데드를 보곤 기겁했다.

'저번에도 봤던 그 언데드 같은데? 그땐 분명 저리 크지 않았던 것 같······."

성장하는 언데드 따위는 들어본 적 없었으므로, 생존자 캠프의 인원들은 저 대단한 네크로맨서가 한층 더 성장한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던전에서도 겪었듯 저 네크로맨서의 성장 속도란 참으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성연은 치열한 현실을 사는 인물이 아니라, RPG 속의 게임 캐릭터 같았다······.

"버그 쓰는 거 아니죠?"

함께하며 그 성장 속도에 나름 익숙해졌다 생각하던 안혜지마저 헛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소환사 김윤기는 입을 쩍 벌린 채 백 미터를 넘는 언데드를 바라보았다.

'내 소환수는 그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거 없는데······이건 몰래 치트 쓴다고 해도 믿을 지경······.'

김윤기는 이제 생존자 캠프 내에서 꽤 강자로 평가받았다.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 받기도 했고, 반반하게 생긴 여자들이 입에 발린 칭찬들을 하곤 했다. 그래서 요즘 꽤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저 네크로맨서를 마주하자 자신감은 눈녹듯 사라졌다. 괴수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는 저 인물과 비교하자면 자신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때 안혜지가 말했다.

"회장님 잠깐 멕시코 가신 거 알죠? 짧아도 하루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기다리죠. 어차피 대한민국은 안전지대니까······."

"유성연 씨한테나 안전지대죠. 하긴, 스케일이 다르시니."

"주변이나 한 번 둘러보죠. 하루 정도 휴식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그래요. 거기 옆에 계신 분은?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안혜지가 고개를 돌리며 한 말에 이경민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관심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경민은 성연의 일행으로 동행하는 것이 기껍지 않았다. 이 네크로맨서와 함께하며 이경민은 자기가 멋대로 생각했던 것들 중 여러 가지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유성연은 인터넷에서 보았듯 극악무도한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거리가 멀었다. 더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능력만을 믿고 폭군처럼 구는 인물도 아닌 듯 싶었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은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묘한 불쾌감에 이경민은 거북함을 느꼈다. 하루라도 이 일행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생존자 캠프를 마주한 후 이경민은 신세계를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비각성자나 각성자는 물론이요, 강함에 따라 차별하지도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려 지내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때 안혜지가 다시 말했다.

"저기요?"

"아······아, 예?"

"누구시냐고요. 그쪽."

"저, 그, 이경민입니다. 멕시코 쪽으로 이민했다가 거기 발 묶였던······."

"자세한 사정은 별로 안 궁금한데."

툭툭 던지는 말에 이경민이 입을 다문 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물었다.

"이 캠프, 유성연······님께서 만드신 겁니까?"

"정착하는데 도움은 줬는데 만들진 않았죠. 저희 회장님께서 만드셨어요."

"회장님요?"

"있어요. 말 겁나 잘하시는 분······여기 그분이 만든거에요. 할머니 모시면서 사시는데 자기 없어도 할머니 잘 지내셔야 한다고 차별 같은 거 다 사라지게 하셨······."

결과물은 물론이요, 만든 의도마저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경민은 그 회장이라는 남자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 이런 망가진 세상 속에서 그런 인물은 한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저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혜지는 이경민의 표정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곤 성연에게 슬쩍 중얼거렸다.

"저 사람 힘 세요? 여기 관심 있는 거 같은데, 우리가 각성자 하나 하나가 소중하거든요. 영입할만한 인재에요?"

"쓸만은 합니다."

그 말에 안혜지는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성연은 이 캠프에 관심이 많아보이는 이경민을 두고 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곤 어느 정도 걸었다. 여전히 길이 험하며 무너진 건물들이 즐비한 폐허로.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아니라 비명과 파괴의 소음이 울리는 가운데, 그 전장에서 성연은 언데드들을 일제히 일으켰다. 검은 기운이 맴도는 손이 뻗어져 괴수들의 머리통을 꿰뚫고 부수었다. 고요한 평화보다는 치열한 전장이 더 편안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연은 제 손에 묻힌 피가 너무 많아진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세상이 어찌 되든 자신은 그에 발맞춰 적응하지 못하리라.

평화로워지건, 마침내 종말이 찾아오건.

괴수 사냥을 마친 성연은 다시 캠프로 돌아와 잠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울 것 없이 오랜만에 깊은 수면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생존자 캠프 입구에서 「회사」의 일원들이 자기네들 회장을 반기고 있었다.

이현우가 머쓱하게 웃으며 마중을 나온 이들과 대화했다.

그 옆에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왕웨이.

***

이현우는 자기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자료들에 관해 말했다.

이것들이 그 슈퍼맨의 이미지를 얼마나 실추시킬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다른 집단들이 얻는 이득에 관한 것이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지금은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강대국 간의 균형이 나름 잘 맞는 가운데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결정타를 먹이면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지나치게 강해질 우려가 있다. 게다가, 참다 못한 슈퍼맨이 폭발해서 막무가내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은 로버트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이다. 적을 흥분시키면 상대하기 쉽다는 말은 그 슈퍼맨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영웅 행세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날뛴다면 로버트 데이비스는 그야말로 악몽이 될 것이다. 단신으로 국가들을 모조리 멸망시키는 살아 움직이는 악몽.

"아무리 유성연 씨라고 해도 슈퍼맨 잡긴 힘들잖아요. 맞죠?"

"예, 지금은."

성연의 말에 이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여러 부연 설명들을 더 덧붙인 뒤, 들어온 부하 직원과 함께 일을 처리하러 떠났다.

그리하여 방에 혼자 남겨진 성연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대로 여기에만 죽치고 앉아있어도 세 번째 이벤트는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에 마운틴이 머무르는 가운데 그 지상 최강의 괴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함부로 여기 쳐들어 오지 못할 것이다. 자기 몸을 끔찍이 아끼는 그 미국인이라면 더더욱.

'급할 것 없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성연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초거대 괴수를 떠올렸다.

그놈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전황이 뒤집어 질 것이다. 슈퍼맨이건, 초강대국이건 따질 것 없이 그 괴물의 상대가 되지 못할테니까.

그때였다. 성연이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는 와중,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왕웨이?"

그 중국인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몇 년은 더 늙은 듯 보였다.

능력을 쓸 때마다 노화라도 진행되나?

"오랜만이군."

"어디 있었습니까? 협회 습격한 테러리스트, 당신 맞죠? 방관자라는 말을 듣고 이제 움직일 생각이라도 들었던 겁니까?"

"가만히만 있기보단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긴 했지. 끝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무슨 뜻입니까?"

"몇 분만 늦었으면 죽었을 거라더군."

"로버트 데이비스와 싸웠습니까?"

왕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연이 말했다.

"상성에서 밀릴 게 당연하지만······압도적이진 않았을텐데요."

"압도적이더군. 수십 년 동안 지나치게 강해졌어."

"그럴리가."

"내 능력이 조금도 통하지 않더군. 과거엔 몇 초 정도 정신을 잃게 할 수 있었는데······수십 년 동안 약에 내성이라도 생긴건지 효과가 전혀 없었어. 마약쟁이들이 아닌 이상 그럴수가 없는데······."

"마약쟁이가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고요?"

그 말에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왕웨이가 협회를 습격하러 간 시점과 로버트가 범죄 조직들을 돕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하다. 협회는 돈은 물론이요, 마약까지 많은 양을 요청한 적이 있다.

각성자가 약을 하면 병신이 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협회가 직접 약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물량을 원할 필요가 있나? 그리 생각하던 성연은 곧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독성에 강력한 내성이 있는 인물. 그래서 약에 취하고자 한다면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약이 필요할 인물.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덕에 마약을 해도 그 능력이 망가지지 않을만한 인물. 더하여, 짧은 시간 동안 그간 느껴보지 못했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성연이 제 생각을 입밖으로 뱉었다.

"로버트 데이비스가 최근에 약쟁이가 되었을 확률이 있습니까?"

"약쟁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우리 쪽에서 녀석이 살인 저지른 거 공개하고 제대로 한 방 먹였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다니요?"

"옛날에도 느꼈고 얼마 전 싸움에서도 느꼈지만 놈은 애새끼다. 몸은 늙었지만 머리는 조금도 크지 않은 애새끼. 사람들에게 욕 먹고 힘들다고 징징짜며 마약에 손을 댔을 확률?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겠군······그럼 내 능력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가······."

약에 손을 대었는데 능력이나 몸이 망가지긴 커녕 약 성분에 내성을 얻는다니?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모든 행동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그 슈퍼맨의 몸뚱이라면 충분히 그럴듯한 일이다.

성연은 그런 추측을 하며 한편으론 씁쓸함을 느꼈다. 정의의 수호자이자 인류의 희망인 든든한 인물은 실수를 감추겠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요,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다는 이유로 마약에 서슴없이 손을 대는 병신이었다.

망가진 세상에서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겐 죄다 결함이 있었다. 심각한 결함.

그 씁쓸함을 왕웨이도 느끼고 있는 가운데 두 명이 머무르고 있는 방에 누군가 들어왔다.

아까 떠났던 이현우였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유성연 씨. 아무래도 자리를 옮기셔야겠는데요."

"그게 무슨?"

"유성연 씨 잡겠다고 누가 쳐들어왔습니다."

"마운틴 있으니 협회 쪽은 아닐텐데, 협회 쪽 제외하면 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적 없지 않습니까?"

"협회 말고 하나 있잖아요."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던 성연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이현우가 대신 답을 해주었다.

"중국요. 거기서 그냥 막무가내로······."

중국.

그 이름을 들은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 전 동맹을 맺은 관계 아니던가? 게다가 중국 쪽이 군대를 끌고 왔다고 한들, 영역 안에서 머무르고 있는 성연을 상대할만큼 강력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군대를 내다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꽤 영리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선택을 할 이유가 있나?

곰곰히 생각하던 성연 대신, 옆에 있던 왕웨이가 입을 열었다.

"중국? 중국이 여길 침략하려 한다는 소린가?"

< 중국인 왕웨이 (1) > 끝

(73)

작가의 말

오늘은 연참 없습니다 ㅠㅠ

지각했네요. 대신 이번주는 주말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