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70화 (70/111)

< 죽음의 군주 유성연 (2) >

재생력은 물론 돌진까지 할 수 없게 된 언데드들은 커다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잘 훈련된 군인들은 신나게 허수아비들을 쏴 갈겨 죽였다. 아군을 쳐부수던 괴랄한 군단을 학살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 군인들은 마하트마에 대한 신앙이 점점 깊어졌다. 비폭력 운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마하트마를 전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전쟁의 신 따위로 추앙했다. 어쨌건, 그것도 숭배의 한 종류로 포함되었기에 각성 능력은 군인들을 신도로 규정했다. 일방적인 비폭력과 무저항이 일어난 가운데 언데드들이 픽픽 죽어나갔다. 물론 성연은 이러한 사태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우수한 언데드들을 전원 동원하는 대신, 파키스탄인들을 좀비로 일으켜 돌격하게 만든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 협회가 발표했듯 마하트마의 능력엔 몇 가지 결함이 존재한다. 그 능력은 특정 현상까지 '비폭력'으로 규정하진 못한다.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는 막을 수 있으나, 이미 쏘아진 총알 따위를 멈추게 만들 순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 헛점을 노리면 얼마든지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꼴 좋······ㄷ"

멍청하게 서 있는 파키스탄인 좀비를 보며 군인들은 탄환이 다 소진되도록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던 와중, 어디선가 폭음이 들렸다.

시체 폭팔? 아니었다. 공격 의사를 가진 행동을 제한하는 가운데 성연의 능력은 공격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 폭발은 각성 능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화학 반응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파키스탄인 좀비 몇몇의 뱃속엔 폭발물이 가득 차 있었다.

멕시코와 남미에서 성연이 구해와 손수 집어넣은 것이다.

화학반응으로 일어난 폭발은 시체 폭발에 뒤지지 않는 위력을 발휘했다. 괴수들을 상대로는 효과적이지 못하겠지만, 인간의 피부를 태우고 죽이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폭발에 군인들이 위축되었다.

마하트마의 능력은 레베카의 것과 비슷하지만 헛점이 존재한다. 위대한 영국인 대마법사의 능력은 결점 없이 완벽에 가깝게 반경 41Km를 통제한다. 하지만 마하트마의 힘은 현상을 통제하지도 못하며, 저러한 꼼수를 막지도 못한다. 그게 저 가짜 간디가 인류 최강자들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까닭이다.

물론 어떤면에선 레베카보다 우월한 면도 있었다. 각성 능력을 약화시키며 공격 의사를 봉쇄한다는 게 그렇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마하트마의 삶 자체가 무기이다.

비틀린 카스트를 전파한 저 노인은 많은 전쟁에서 활약했고 승리했다. 차곡차곡 쌓인 경험치란 때론 화려한 능력보다 강한 무기가 되기 마련이다.

"굳이 싸워줄 필요 없습니다. 무익한 폭력을 휘두를 필요는 없지요. 저들은 모두 싸울 의지를 잃지 않았습니까? 불필요한 살생을 하는 대신 죽은 이들까지 괴롭히고 있는 그 불경한 네크로맨서를 찾는 일에 힘씁시다."

마하트마의 말에 군인들이 동의했다. 공격하지도 못하는 꼭두각시들을 상대하기보다 능력의 주체가 되는 인물을 찾고자 했다.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부릴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마하트마는 군인 중 하나에게 우뚝 멈춰 선 언데드를 데려오라 명령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키스탄인 좀비 둘이 손발이 묶인 채 바닥에 놓였다.

"거리가 멀어지면 스스로 흙이 되어 돌아갈 겁니다. 안타깝게 먼저 떠난 이들이 전해왔듯, 정말 최전방 어딘가에 숨어있는지 우리를 능멸하기 위해 인도 안에 들어왔는지 찾아봅시다. 위대하신 영국인 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면, 찾아내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 말에 군인들이 움직였다. 그 추측은 사실이었다. 강화를 거듭했다 한들, 성연이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의 범위는 무한이 아니다. 오히려 레베카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좁다. 모든 군인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인도군의 특성상,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면 성연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였다.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하던 성연의 몸을 누군가 흔들었다. 전장을 살피던 시야가 까맣게 물들고 곧 인도 대피소의 광경이 펼쳐졌다. 고개를 돌리자 난처한 표정의 스티븐 최가 보였다. 인도인 군인도 함께.

"후드 벗으랍니다. 안 그러면 쏴 버린다고······."

"언령은?"

"왕이 직접 내린 명령으로 움직이는 놈들이에요. 언령 안 통해요."

과연 그 군인의 눈엔 초점이 사라졌다. 왕의 절대적 명령은 모든 정신적 각성 능력보다 우위에 있다. 후드를 당장 벗지 않으면 정말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신원 증명, 안 하십니까?"

기계적인 어조에 스티븐 최가 다시 한 번 이쪽을 쳐다보았다. 잠깐 서 있던 성연은 다음 순간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을 살핀 군인은 잠깐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그 얼굴이 곧 아주 익숙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협회가 공공의 적이라 공표한 네크로맨서······.

그러나 그것을 알아챘을 땐 이미 늦었다.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군인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언제나 성연의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 언데드가 움직인 것이다.

피가 튀어올랐다. 주변 군인들이 눈을 크게 떴고, 뭐라 외치려던 순간 피잉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그 즉시 성연은 두 번째 이벤트의 우승 상품, 이클립스를 꺼내 손에 쥐었다. 능력을 사용할 것 없이 주변의 죽은 이들을 모두 언데드로 일으키는 기능이 발동되었다. 뒤로 넘어진 군인들이 하나 둘씩 좀비가 되어 일어났다.

"흐악, 흐아아아악!"

대피소 안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절규하며 달아났다. 성연은 그들을 굳이 붙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다만,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움직일 준비를 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좁혀오는 포위망을 벗어나며 아슬아슬하게 마하트마를 노려야 한다. 그 능력이 발동되기 전, 이경민이 언령을 걸어 항복을 받아내면 성공이다. 그러나 마하트마가 이쪽을 먼저 발견해서 비폭력 지대를 만들면 이쪽이 패배다. 그러니까, 먼저 상대를 인지하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마하트마는 자신을 추앙하는 신도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정말 신처럼 그 신도들의 기도를 들을 수도 있다 알려졌다. 인도인들 대부분이 그의 추종자이므로 여기서 마하트마의 눈에서 벗어나는 건 아주 어려울 것이다.

"오, 위대한 분이시여······."

성연은 대피소 한켠에서 뭐라 중얼거리는 이를 보았다. 아프리카에 유행하는 자신을 교주로 한 사이비 비슷한 종교가 인도까지 퍼졌으리라 생각할 순 없었다. 그 기도는 네크로맨서를 숭배하는 기도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떤 존재에게 닿는 목소리였다. 이경민이 그 입을 다물라 외쳤고, 그때가 되서야 인도인들은 입을 다문 채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늦었다. 성연의 위치는 마하트마에게 이미 전해졌을 것이다.

그 예상은 과연 사실이었는지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이 우르르 몰려오는 각성자들을 잡아냈다. 마하트마의 능력은 목소리를 전해받을 수만 있고, 자기네 신도들에게 반대로 무언가를 전할 순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런 건 결점이 되지 않는다.

첨단 기술이 발전한 가운데 수십 킬로미터는 물론이요,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연락을 보낼 수단이란 차고 넘친다.

'최소 A급, 여기 이상한 카스트제 기준으로 하면 크샤트리아들······.'

성연은 접근해오는 적들이 인간을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실용성 위주의 능력자로 구성된 군인들이 아니라, 명백히 초인을 상대키 위해 구성된 전력들임을 알아챘다.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이 전해오는 적들의 힘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성연은 저들이 이 코앞까지 접근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발 아래에 파묻힌 시체들을 일으켰다. 가시며, 촉수들이 솟아나 그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느껴지는 생명 반응들은 줄지 않았다. 기습이 실패한 것이다.

미리 예측하고 피했나? 아니다.

정확히 사각에서 쏘아지며 탄환의 속도를 넘어서는 기습을 반응속도만으로 피하기는 지나치게 어렵다. 피한 게 아니라 막은 것이다. 저들 중 누군가가 배리어를 펼쳤다.

아주 단단한 방호력을 가진 배리어.

"나 - 와라!"

대피소 문을 깨부수며 각성자 열 다섯이 진입했다. 모두가 만만히 볼 수 없는 총량의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다. 마하트마의 신도들은 죄다 능력 강화 버프를 받는 가운데 전력으로만 따지자면, 그들은 협회 각성자 군단보다도 우월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 주변에 마하트마는 아직 없다. 놈이 도달하기 전에 뚫고 도망치던가, 싸그리 죽여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최선이 아니다. 네크로맨서 능력은 다른 능력들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언데드 군단은 후퇴하는 상황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네크로맨서에겐 후자가 더 어울린다.

'방어막 쓰는 놈은 왼쪽······저 녀석 혼자 나머지 열 넷 커버하는 중······.'

생명 반응 감지 능력으로 성연은 가장 까다로운 적부터 파악했다. 방어나 보조 계열 각성자들은 언제나 우선 제거 대상에 속한다. 성연은 기습을 원천봉쇄하는 그 각성자를 노려보았다. 이 전투에선 성연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전력인 S급 좀비 둘을 쓸 수 없다. 다케다 유이치는 글러트니와 함께 있고, 김유현은 지금 위치를 드러내기엔 지나치게 아깝다. 최종병기에 가까운 그 좀비는 결정타를 날릴 때 쓰는 게 옳다. 마하트마가 대처할 수 없도록.

그러니까, 습격해 온 열다섯은 오로지 지금 상황만을 이용해 죽여야 한다.

"투항해라! 마하트마께서 자비를 베풀겠다고 하시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열다섯 중 하나가 그리 소리쳤다.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성연은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그 외침이 아주 멍청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공격을 해서 타이밍을 빼앗아도 모자랄 판에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니. 스스로 불리하게 시작하길 택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연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뭐라 외치던 이의 발 아래에서 삐쩍 마른 손이 솟았다. 그 기습에 반응해 재차 무형의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유리벽에 막힌 듯, 언데드의 몸뚱이가 퉁겨나갔다.

성연은 그 순간 방어막을 만든 각성자의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목표를 본 뒤, 슬쩍 손짓을 하는 준비 동작이 있었다. 저게 능력 발동 조건일 것이다.

"감히!"

저 네크로맨서가 자기 말을 끊고 기습을 강행했음을 알아챈 사내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성연은 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황에 맞추어 언데드를 새로이 설계하며 짜내고 있었다. 흥분한 각성자가 성연을 향해 돌진했다. 후방에 위치한 이는 이번에도 적절한 때에 맞춰 방어막을 생성시킬 생각인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성연의 의도대로였다.

거의 코앞까지 그가 다가왔을 즈음, 성연의 주변을 맴돌던 날벌레 언데드 중 네 마리가 특정한 형태로 변이하기 시작했다. 촘촘한 방패막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날벌레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다른 벌레의 것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도록. 반딧불이의 것과 비슷하게.

배 부분에서 번쩍이기 시작한 빛은 어둠을 밝히는 수준의 빛이 아니었다. 섬광탄처럼 시야를 앗아갈만큼 강력한 광채였다. 무작정 돌격하던 이가 순간 신음을 뱉으며 제 눈을 가렸다. 그건 뒤편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각성자도 마찬가지였다.

"아······."

강렬한 빛은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했다. 예상치 못한 그 공격은 일시적으로 주변 모든 이들의 시력을 빼앗았다. 미리 알고 눈을 감고 있던 성연만이 멀쩡했다. 성연은 날벌레 언데드에게 움직이도록 명령했다. 그 곤충 언데드들은 빠르게 비행하는만큼 요란한 소음을 만든다. 시력을 빼앗긴 이들은 옛날 액션 영화에서나 본 장면이라도 재현해보려 움직였다. 이를테면,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청각에 의지해 마음의 눈으로 보며 싸우는······.

"어엌······."

물론 말도 안 되는 시도였다. 눈을 감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멍청한 행위였다. 더불어 성연은 일말의 여지도 줄 생각이 없었다. 날벌레들은 그들 주변에서 날며 청각을 자극했으나, 직접적으로 습격하진 않았다. 그것들은 관심만 끌었고 마무리는 땅 아래에서 기어나온 좀비들이 했다. 방어막도 없으며, 괴수들처럼 단단한 껍데기도 없는 인간을 죽이는 건 지나치게 쉬웠다. 양팔을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목에 길게 늘어진 손톱을 밀어넣었다가 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구멍이 뚫리고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이 열다섯 번 반복되었다. 이제 대피소 바닥엔 진득한 핏물이 가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연은 이 습격을 막아냈음에 안심하지 않았다. 마하트마는 자신을 투항시키거나, 죽이기 위해 끝도 없이 제 신도들을 보내리라.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습격자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피소 밖으로 빠져나온 직후 성연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한 인물을 보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만만찮은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뭔······."

스티븐 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성연도 동의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적은 모습을 숨길 생각도 없이, 대놓고 쿵쾅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그 몸집은 지나치게 거대했다. 고릴라나 곰 같은 동물에 빗댈 것이 아니라, 고층 건물에 비유해야 할 정도로. 인도 거리 한복판에 거인이 나타났다.

'거대화 능력? 포인트 투자로 총량 무식하게 늘리고 거기다 마하트마 신도라 강화까지 되어서 저런 무식한 모습으로······.'

세 번째 이벤트의 시작과 함께 같은 진영 사람들끼리는 해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거인이 전진한다고 해서 짓밟혀 죽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몸집과 함께 성량도 커졌는지 뭐라 소리친 순간 주변의 창문이 깨져나갔다. 언어라기보단 짐승의 포효에 가까운 그 말을 통역하는 건 불가능한건지, 스티븐 최는 아무런 말도 전해오지 않았다. 성연은 저 시끄러운 놈을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었다. 정말로.

다행히 저런 큰 놈을 상대하기 아주 적합한 부하가 마침 이 주변에 도착했다. 거인의 발자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밤이라도 찾아온 듯, 일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자기가 SF영화의 거대 합체 로봇이라도 되는 양 신나서 달려오던 거인은 곧 제자리에 우뚝 선 채 고개를 올려다 보았다.

거대 합체 로봇 거인에 맞서서 초거대 괴수가 등장했다.

신장 110m를 자랑하는 레벨업 하는 언데드. 글러트니가 거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죽음의 군주 유성연 (2) > 끝

(70)

작가의 말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내일도 연참할 예정입니다.

다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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