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66화 (66/111)

< 남미 왕 아이작 (1) >

아이작은 이제 지나칠 정도로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

정보원이 전한 연락으로 하여금 여러 강대국들이 자신을 기꺼워하지 않아 암살을 꾸미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이작은 남미에 퍼져 있는 호위에 특화된 각성자들을 모조리 소집했다.

초인들 간의 전투는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 능력의 상성으로 결과가 나뉘었다. 물 타입이 불 타입에 강한 여느 일본 애니메이션의 설정처럼.

그리하여 어떤 습격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소집된 이 각성자들이란 무척 든든한 호위였다. 격변이 벌어진 이후 괴수 사냥의 달인이 된 초인들은 인간 사냥에도 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들을 파견했다 한들, 개인이 이 방패막을 뚫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상성 따위는 무시하는 그 네크로맨서와 마법사만 제외한다면.

향하는 길목마다 암살자들이 들끓었다. 저격이나 매복,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려 드는 것들······암살자들의 유형은 참으로 다양했다. 수 차례에 걸친 그 암살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하루에도 다섯 번이 넘게 벌어지는 이 위협에 아이작은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가를 문 아이작이 두 팔이 뜯긴 채 제압된 암살자를 향해 걸어갔다.

"출신은?"

"말할 수 없다······."

"지긋지긋하군. 물량으로 밀어붙이려는 건지 별 잔챙이들만 골라서······날 끊임없이 괴롭혀서 과로로 죽게 하려는 거라면 인정해야겠어."

아이작은 쪼그려 앉아 연기를 뱉었다. 그 뒤, 권총을 꺼내 암살자의 미간에 대고 쏘았다.

피와 뇌수가 터져 튀었다.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아이작이 몸을 일으켰다.

주변엔 정장을 차려 입은 각성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그들을 훑어보던 아이작이 중얼거렸다.

"든든하군. 앞으로도 수고하게."

'절대적인 명령'을 통해 선별한 각성자들은 과연 호위에 능했다. 수 킬로미터 안에 매복한 인물들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요, 원거리 저격이나 특정 각성 능력 따위를 완벽에 가깝게 방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남미 최고의 실력자들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을 완전히 놓지 못했다. 이 인재들이 있는 한, 허망하게 암살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건 높으신 분들이 보낸 암살자들 뿐만이 아니다.

빠르지도 않으면서 숨통을 천천히 조여오는 인물. 습격을 노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군단을 밀어버리며 접근하는 네크로맨서가 있다.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그 힘만 센 애송이······더럽게 끈질기군. 언제까지 무식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지 보자. 내가 당하기만 할 것 같으냐? 살면서 이런 위기를 몇 번이나 이겨냈는데······3주만 버티면 잭팟 터뜨리는 동시에 진짜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언제까지 마약쟁이들 왕 노릇한다는 비웃음이나 듣고 남들 뒤나 닦아줄 것 같으냐?'

격변은 물론이요, 남미의 뒷세계 보스로 살며 중년의 나이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불법적인 일로 대성한 인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이작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어떤 카드든 꺼내들 수 있었다. 정말 무엇이든.

'가장 먼저 거슬리는 그 영국인부터 치워주지······.'

***

성연 일행은 몸을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도시를 행진하며 아이작을 찾으러 다녔다. 그 일행엔 김성철이 새로이 합류하게 되었다. 강력한 압박이 있었던 까닭이다.

성연은 나라 간의 사정 따위는 상관치 않았으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남미 국민들이 싸그리 몰살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절대로.

"저 실력 있다는 거 허세에요. 그냥 중국 돌아갈 테니까 놓아주시면 안될까요?"

"싫은데."

"아······."

지하 미궁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김성철은 멍청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러나 레베카의 말을 전해들은 뒤 성연은 이 인물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했다.

카페인을 섭취한다는 조건을 충족할 시 모든 기척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능력. 열감지 카메라도 무시하는 기능을 가진 저 능력은 네크로맨서만이 미리 알아챌 수 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면, 김성철의 접근은 어떤 각성자도 알아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호위 명목으로 네크로맨서를 세우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아이작의 암살에 김성철은 아주 높은 성공률을 보일 것이다.

화려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보다 훨씬 더.

"왼쪽 셋, 오른쪽 둘······."

그리 일행에 새로운 인물이 합류하게 된 뒤 얼마나 지났을까.

성연의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이 매복하고 있는 병사들의 존재를 전해왔다.

그 기습은 이 일행의 전진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못했다. 이십 미터 괴수들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초인들은 그 능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죽어나갔다. 시야의 사각에서 뻗어지는 소리 없는 언데드의 기습은 절대적인 선공권을 가졌다.

"미친······."

혼자 뭐라 중얼거리곤, 몇 걸음을 걸으면 처참하게 널브러져 죽은 시체가 보인다. 김성철은 상식을 벗어난 네크로맨서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기습을 준비한 채 매복하던 병사들 대부분은 포인트로 구입한 방어구를 장착했다. 이를테면, 탄환 세례도 칠 초 정도는 버텨내는 강력한 보호력을 가진 장비들. 지나가며 시체를 살핀 김성철은 방탄복이나 중세시대 갑옷보다 훨씬 우월한 방어구가 바닥에서 솟는 언데드의 가시 따위를 막아내지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류탄도 거뜬히 버텨내는 이십 미터 고질라들도 그렇다.

게다가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크기도 커다랗고 땅에서 솟으니 울림이 있을텐데 피하지 못한다고? 격변 전이라면 모를까, 포인트를 투자해 강해졌으며 지금껏 살아남은 전투의 달인들이?

'남미 병사들 상대하기 더럽게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불순한 이유로 입국하려 했다는 명목 가져다 붙이면서 사람들 학살해 포인트 잔뜩 모아서 강화했고······남미 왕이 자기가 국가 다 먹으려고 내전 벌이면서 경험 쌓인 베테랑들이라······.'

그리 생각하며 김성철이 뒤따르던 때, 그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레베카가 말했다.

"왜. 쟤들이 멍청해 보이기라도 하니? 하는 거라곤 발 밑에서 가시 쏴대는 것뿐이라?"

"아, 그게······."

"구경하는 입장에서 보니까 그렇지. 원래 전투란 게 상대적이잖니. 직접 당해보면 너도 뼈저리게 느낄걸. 쟤 진짜 괴물이야. 싸우다보면 사람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것 같다고."

레베카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한몸처럼 움직이는 언데드들의 협공이 얼마나 치밀하며 위협적인지, 저 네크로맨서와 전투하면 얼마나 숨통이 조여오는지 레베카는 아주 잘 알았다.

지금껏 성연과 정면에서 맞서서 살아남은 세상에 몇 없는 인물 중 하나인 까닭이다.

"진짜, 대단한······."

레베카는 다시 저 네크로맨서와 싸워야 한다면 확실한 승리를 점칠 수 없다.

두 S급 각성자 언데드까지 얻게 된 네크로맨서가 어떤 식으로 덤벼올 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아마, 살아남는 것도 벅찰 지 모른다······.

그러던 레베카는 문득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연락처에 저장된 번호였다.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급한 일 아니면 문자로 하랬지."

「수십 통 보냈는데도 답이 없으셔서······죄송합니다.」

"그래서 왜?"

「당장 영국으로 돌아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드리면 긴데, 상황이 좋지 않아요.」

"돌아오라니?"

너머에서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쪽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누가 레베카님께서 지금 다른 국가에 머무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누설했어요. 폐허 돌아다니시는 사진도 함께요.」

"기분 전환 겸으로 여행 왔다고 둘러대면 되잖아."

「그게, 사진에 그 유명한 네크로맨서도 같이 찍힌 탓에 여론이 꽤 곤란해졌습니다. 상황을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신님께서 위험에 빠지신 게 아니냐······에릭 스미스랑 연애했던 것처럼 또 사형수랑 사랑에 빠지신 거 아니냐, 그럼 다 퍼주는 여신님 성격상 선물이랍시고 영국도 팔아넘기는 거 아니냐······.」

뒤에 들려온 말에 레베카가 뜨끔했다.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한 뒤 그녀가 소리쳤다.

"그런 거 해결하라고 너희들 있는 거 아냐? 나 바쁜데 돌아가야 해?"

「이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왕 죽고, 그 국민들 처참하게 전멸한 사진 퍼지면서 사람들이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고요. 아무리 여신님이라고 해도 망가진 세상에선 피치 못할 일에 휘말려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도 전부 죽는 것 아니냐······.」

"내가 누구한테 당하는데."

「잘 알죠. 레베카님 위협할 수 있는 사람 없다는 거. 하지만 국민들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걱정하고 있어요. 시기가 시기 아닙니까. 이스라엘 건 때문에 사람들 걱정 많고, 지금 선출된 왕들 보면서 말빨 좋은 사람이 아니라 힘 센 각성자로 뽑았어야 한다고 시끄러워요. 그 와중에 미국은 슈퍼맨 뽑았으니 자기네들은 전혀 걱정없다고 좋아하는 중이고요.」

"······."

「그러니까 우리도 이런 논란에 휘말려서 괜히 뒷말 나오게 하는 것보다 당당히 귀환하셔서 슈퍼맨처럼 여론 좋게 만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다음 이벤트로도 이런 거 나올 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또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 완전히 멸망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 사태 끝나면 전처럼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이미지 관리해서 나쁠 거 없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들에 레베카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여기서 더 버티는 것은 순전히 고집에 불과했다.

레베카가 슬쩍 성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성연이 중얼거렸다.

"돌아가야 하나?"

"아마······."

"당연한 일이지. 영국 사람들 목숨 다 짊어지고 있는 입장 아냐? 늦지 않게 빨리 가."

"수습하고 돌아올게. 최대한 신속하게······."

이어지는 말에 성연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걸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건지,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레베카는 곧 어딘가로 떠났다.

위대한 대마법사가 일행에서 이탈했다.

그 통화 내용 일부를 스티븐 최에게 전해받았던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누군가 수작을 부렸군. 나와 레베카가 협력하면 곤란한 사람······로버트 데이비스, 혹은 아이작이다. 후자의 확률이 높은가? S급들을 끔찍이 챙기고 레베카를 언젠가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거라 믿는 슈퍼맨이 여신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논란거리를 던질 리 없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전진하던 와중, 또 다시 남미 병사들이 기습해왔다.

평화를 내리는 여신이 사라진 가운데 그 습격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연은 여전히 조금도 손톱만한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습격들은 네크로맨서의 전진을 늦추지 못했다. 레베카 블런트가 떠난 이후, 성연은 부쩍 말이 없어졌다. 이 침묵 속에서 김성철과 스티븐 최는 묵직한 불편함을 느꼈다.

성연의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총을 들게 된 초인 병사도 간간히 출현하는 이십 미터 고질라들도 그 네크로맨서의 행군을 지체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성연과 아이작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만큼 다른 암살자들도 아이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적을 노리는 인물들은 비슷한 경로로 움직이기 마련이고,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은 때때로 마주치기 마련이다.

"오, 성철!"

거리를 걷던 성연 일행에게 낯선 인물이 손을 흔들며 접근했다. 옆에서 울상을 지은 채 함께 걷고 있는 김성철의 이름을 부르며.

성연이 시선을 흘끔 보내며 물었다.

"쟤 누구냐?"

"그게······."

김성철이 뒷말을 흐렸다.

하지만 더 질문할 것 없이 저쪽에서 다시 소리쳤다.

"성철 왜 아는 척 안해? 다음에 보면 또 인사하기로 했잖아."

"······."

"나 기억 안나? 핫산!"

눈살을 찌푸린 성연이 고개를 푹 숙인 김성철을 노려보았다.

"쟤 누구냐고."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김성철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미 왕 뒤쫓다가 만난 인도쪽 암살자요. 서로 목적 같아서 같이 술 한잔 한 적 있는데, 그때부터 친구 먹기로 한 사이······."

그리고 김성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도인, 핫산이 다시 말했다.

"오, 옆에는 그 유명한 네크로맨서야? 시도 때도 없이 너 괴롭혔다는 씹새끼? 그 네크로맨서도 남미 왕 노려? 그래서 협력하기로 한거야?"

그 말을 들으며 김성철은 저 해맑게 웃는 새끼가 인도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만약 한국말로 저딴 소리를 지껄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감사가 무색하게도 옆에 서 있던 한국계 미국인이 제 업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저놈이 유성연님 보고 씹새끼라는데요. 개 족같은 씹새끼."

***

남미의 국경 주변을 돌아다니는 건 자살행위라 불리운다.

외국인들을 지나치게 꺼리며, 사람을 죽이면 포인트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국경을 수비하는 병사들은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에게 방아쇠를 당기길 주저하지 않는 까닭이다. 개중엔 대상이 포인트를 주는 각성자던 아니던, 단순히 살인의 즐거움을 위해 총을 쏴 갈기는 미치광이들도 몇 있었다. 격변 이후 급격히 증가한 부류들 중 하나였다.

"왜, 왜 그 주변에 갔니. 왜······."

눈 뜬 채 죽은 아이를 끌어안은 어미가 울부짖었다.

남미 국경 주변을 도는 것이 무척 위험한 것은 잘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오래 굶주렸으며 스스로 무언가를 할만한 힘이 없는 약자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입국하려는 이들의 동정을 사 어떻게든 구걸하거나, 병사들이 먹고 떨어지라는 듯 던져주는 식량도 간절했다.

어린 아이들은 하루 굶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아이라는 이유로 동정심을 사 입국하는 이들에게 맛난 것을 얻어먹었던 것을 기억해 내서, 그곳으로 자주 향하곤 했다.

이러한 오열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괜히 씁쓸한 탓에 모두 시선을 주지 않는 가운데 한 사내가 그 어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도움이 필요하세요?"

"흐윽, 흑.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놈들이 그런겁니까? 저 녀석들이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쏴 죽였어요? 왜?"

그 단순한 질문엔 모종의 힘이 실려있었다. 그리하여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원래 남미 국경 주변 돌아다니다 눈에 띄면 죽는 거 잦은 일이에요. 다 제 탓이에요······힘도 능력도 없어서 삼 일이나 애를 굶겨서······그래서 전에 샌드위치 얻어먹은 거 떠올리고 여기로 쪼르르 달려와선······."

"그게 어떻게 어머니 잘못입니까. 약자들은 자식 굶길 수밖에 없게 만들고, 순수한 아이들 머리 쏴 죽이는 저놈들 잘못이지."

낡은 후드를 뒤집어 쓴 사내는 그리 말했다.

그 사내 뒤로 여러 사람들이 뒤따랐다. 여러 인종이 섞인 그 무리는 숫자가 꽤 많았다.

무리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 이경민은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여기도 문제가 많군요."

공허한 눈빛이 입국 심사랍시고 총구를 들이대는 이들과, 낄낄대며 사람을 몇 죽였느니 떠드는 병사들을 향했다. 이러한 광경은 옳지 않다. 마땅히 고쳐져야 하는 모습이다.

이경민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각성한 언령의 힘은 사람의 정신에 작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특정 자연 현상을 일으키는 것 또한 가능하다.

"죄 없는 어린 아이를 죽인 적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질 거라던데."

그로부터 일 초 뒤, 하늘에서 거친 빛줄기가 떨어졌다.

굉음을 내며 여러 갈래로 떨어진 낙뢰는 병사들의 몸에 꽃혔다.

굶주린 아이를 재미 삼아 죽인 병사들은 많았다. 정말이지 많았다.

마른 하늘에 떨어지는 벼락을 보며 이경민은 혀를 쯧찼다.

망가진 세상엔 역시나 뜯어 고쳐야 할 곳이 너무 많다.

< 남미 왕 아이작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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