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65화 (65/111)

< 행동대장 에릭 스미스 (3) >

남부의 왕, 아이작은 경계심 많은 사내였다.

혹여라도 예기치 못할 일이 벌어질까 걱정한 그 인물은 경호원을 여럿 대동한 건 물론이요, 포인트로 구입할 수 있는 초고가 방어구들을 구비한 채 등장했다.

마련된 대화의 자리는 영상 통화나 제 3자를 통한 연락을 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연도 일단은 여러 국가를 지배하는 왕에 속했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것이다.

그 중년 사내의 등장에 입국 심사관 여럿이 허리를 숙였다.

현대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과거 봉건제 국가의 왕에게나 보였을 모습이다.

입국 심사를 거치는 이 자리는 왕끼리 대화를 나누기 적합하지 않았기에, 성연 일행은 그들이 안내한 장소로 향했다.

테이블을 두고 두 왕이 마주했다. 비서가 다가와 차를 건넸다.

그 과정에서 성연이 레베카에게 뭐라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작이 말했다.

"독이라도 탔을까 그러신다면 제가 먼저 마시지요. 걱정마십시오. 그런 치졸한 수작을 부릴 생각은 없으니······."

"아."

"게다가, 이란이 이스라엘에 참상 벌인 걸로 왕이 죽으면 소속된 진영 사람들 다 죽는 거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멕시코와 아프리카 여러 사람들 단번에 몰살시키는 건 저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당신이 세간에서 악인으로 평가받는다 한들 그런 짓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따져도, 실리적으로 따져도 그건 옳지 않지요."

"실리적으로 따져도 옳지 않다?"

"예. 저희 관계가 어떻게 될 지 아직 모르며, 무엇보다 그런 짓을 벌이면 협회 슈퍼맨이 남미를 죄다 때려부수고 정의로운 일을 한 것처럼 굴 거 아닙니까?"

"······."

그 말에도 성연은 기어코 레베카에게 차 안에 독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한 모금 마시길 시작했다. 향기로운 내음을 음미하며 성연은 남부의 왕이라는 이 인물이 예상보다 상식인이라고 생각케 되었다. 멕시코의 왕이었던 그 카르텔보단 분명히.

"계속 항복을 권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음에도요······그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건 풍족한 식량이나 자본, 권력 따위가 아니라 세 번째 게임의 우승입니다. 그를 위해선 많은 지원을 받는 것보다 국가를 하나라도 더 점령하는 게 중요하죠."

"매스컴을 통해 그쪽 네크로맨서분께서 이 본 게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20만 포인트란 거금을 자랑하는 세 번째 이벤트는 당연히 중요하겠지요. 지금까지 모으신 포인트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으실테니."

"게다가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거래한 인물들의 정보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는 것. 개중엔 협회에게 마약과 보호비 명목의 자금을 조달한 기록도 있다는 것."

"누구에게 들었는진 모르겠지만······뭐, 이 자리에서까지 숨길 필요는 없겠죠. 맞습니다. 저는 거래한 이들 모두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협회와 거래한 기록도요. 원한다면 전부 넘겨드리지요. 네크로맨서분과 협회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닙니까?"

"고마운 제안이지만 나는 그 정보보다 항복 선언을 원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세 번째 이벤트에서 우승하는 겁니다. 협회를 공격할 수단은 그보다 후순위지요."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아이작은 다소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말했다.

"곤란한 요청이군요. 제가 네크로맨서분에 관해 알고 있는 건 S급 각성자를 둘이나 상대한 적이 있을만큼 강력하다는 것과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라는 것뿐입니다. 오늘 처음 본 상대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이며, 여러 국가의 생명을 짊어진 이 자리를 처음 본 상대에게 어찌 선뜻 넘긴단 말입니까? 왕이라는 자리는 제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리 말하면 설득할 방도가 없군요. 약속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왕의 자리를 넘겨받은 뒤, 이 나라를 곧장 떠날 거라는 사실."

"멕시코 왕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그 사내는 멕시코 거리를 하염없이 뛰다가 죽었죠. 시체는 거리에 장식물처럼 전시되었고요. 나에게 하는 말과 과거의 행적이 다르군요. 처음 본 상대의 말과 정확히 기록된 사실, 둘 중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누구라도 후자를 믿지 않을까요?"

아이작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이 강력한 네크로맨서를 앞에 두고도 저 조심성 많은 남부의 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레베카가 말했다.

"그건 그 놈이 지독하게 발악해서 어쩔 수 없었던거야! 스스로 죽길 자처한 거라고."

"그래요? 나도 병사들을 시켜 총을 쏴 갈기라고 명령했고, 그건 발악의 한 종류 아닙니까? 그럼 나도 처참하게 죽겠군요. 죽은 뒤엔 전시되어서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될테고."

"그건······."

"영국의 여신과 위대한 네크로맨서시여.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하십시오. 구하기 힘든 값진 물건이건, 아주 많은 양의 식량이건 내어드리죠. 하지만 항복은 안 됩니다. 나를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숨이 붙어있을 때 왕의 자리를 빼앗을 순 없습니다. 그게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약속도 지키지 않는 평판 좋지 않은 살인마라면 절대로."

조심성 많은 태도와 달리 그 말과 눈빛은 서늘하게 날이 섰다.

성연은 이 협상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직감했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먼저 일어난 것은 아이작이다. 차를 절반도 마시지 않은 그 중년 사내는 자리에서 떠났다. 그러면서 말했다.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참극을 보았고, 그로 인해 선출된 왕이 믿음직한 인물인 것도 중요하지만 습격에 당하지 않을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꼈을테니까요.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머릿속이 정리되면······."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의미심장한 말은 성연이 뒤돌아 걷는 아이작을 습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부의 왕이 떠난 자리에 한참 앉아있던 성연은 차를 기어이 모두 마시고 나서야 떠났다.

그리고 다섯 시간 뒤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나 항복은 할 수 없으니 자기네들 나라에서 떠나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작은 안전한 위치로 피신했고 비치된 병사들은 아까보다 훨씬 경계가 삼엄해진 채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과연, 그 사내는 지나치게 철저했다.

성연은 가만히 선 채 그 병사들과 눈을 마주했다.

그런 애매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 누군가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안 떠나실 겁니까?"

"······."

그 물음에 성연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가만히 서 있던 성연에게로 한 아이가 접근했다. 어눌한 발음으로 뭐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스티븐 최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전해온 내용은 간단했다.

원 달라 플리즈, 먹을 것 좀 달라······.

깡마른 아이가 부탁하는 모습에 성연은 기꺼이 식량들 일부를 내주려 했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병사들 중 하나가 아이의 머리를 조준하여 쏴 갈긴 것이다.

"뭔······."

성연은 여기 와서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입국 심사관들이 다가와 아이의 시체를 질질 끌고 갔다. 그 모습에 성연이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원칙대로 했을 뿐입니다. 거리 안으로 들어왔으니 외국인인지 검증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냥 아이잖아. 굶주린 아이."

"저런 식으로 위장해서 자살 테러 감행하는 애들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변한 세상에선 다 위험요소일 뿐입니다."

성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그 말을 들었다.

꺼려지긴 하지만 나름 논리적인 이유다. 그래, 바뀐 세상에선 그럴 수 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

그리 중얼대던 성연은 아이의 시체를 끌고 가는 병사들의 대화를 들었다. 키득거리며 말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추모나 위로 따위로 보이지 않았다.

스티븐 최는 곧장 그 대화를 통역해왔다.

"거지 새끼들 알짱거리는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고······이걸로 나는 5킬 달성했으니 점심은 네가 사라······."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나눌만한 대화가 아니었다. 성연은 낄낄거리는 병사들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그러곤 입국 심사관에게 그들이 나눈 천박한 대화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답은 이러했다.

"그래서 떠나실 겁니까, 안 떠나실 겁니까?"

"질문에 대답이나 하지."

"우리 사는 방식에 관해 간섭할 자격이 있습니까? 주변에 알짱거리는 아이들 몇 재미로 죽이고 고기로 만들거나, 쓸모 없어진 사람들 노예 취급하는 건 다들 똑같을텐데······."

"그렇군."

그제서야 성연은 남부의 왕이라 불리는 인물이 마약을 가장 큰 규모로 다루는 국가이며, 불법적인 일을 국가적으로 다루는 집단이 정상적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갈증이나 굶주림을 호소하듯 보이던 사람들 중 몇의 특징이 마약중독자들이 으레 보이는 특징이라는 것도 잡아냈다. 어른이나 아이 가릴 것 없이.

"그래······."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여전히 낄낄대는 병사들을 보며 성연이 읊조렸다.

말로 해봤자 이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때 땅 아래에서 말라 비틀어진 살점들이 솟았다. 순간 낄낄거리던 병사들은 물론이요, 입국 심사관들도 입을 다물었다. 언데드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뒤 그제서야 병사들이 난리를 피우며 소리쳤다. 경고를 보냄에도 이 네크로맨서가 반응이 없자 총구를 겨누던 이들이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은 울려퍼지지 않았다.

일대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다.

"뭔······."

포인트로 구입한 강화 총기는 고장나지 않으며 불발되지 않는다. 총기에서 일제히 싸늘한 냉기가 풍겼다. 뒤늦게 모두 저 일행 중의 초월적인 대마법사가 움직였음을 알았다.

41Km 반경의 현대화기는 이제 모두 고철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이래!"

무전기나 통신 기기 따위가 모조리 먹통이 되었다. 전기도 원소의 한 가지로 포함되는 가운데 이 대마법사가 지배하는 영역 안의 적들의 기술은 모두 원시시대로 전락한다. 고물을 든 원시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격변과 함께 얻게 된 초인적인 힘을 꺼내들었다.

통신 기기가 작동하지 않았으므로 지휘관들은 육성으로 명령을 내려야했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졌고, 불꽃과 번개가 솟았다. 마법사들이다.

그리고 그 마법들은 발동된 즉시 꺼뜨려졌다. 불씨는 연기가 되었고 번개는 흩어져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계 초인. 0.02초 안에 모든 연산을 완료할 수 있는 대마법사란 다른 마법사들의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각성자들이 모조리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가운데 육탄계 능력자들이 돌진했다.

여러 차례 격변을 이겨내며 전투의 달인이 된 이들. 더하여 그 능력도 발전하여 맨몸으로 이십 미터 고질라들도 학살할 수 있는 걸어다니는 전차 무리다.

레베카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상대할 인물은 따로 있었다.

"달려! 네크로맨서와 마법사들 상대로 시간 주면 다 뒈지는······겈."

목이 터져라 소리치던 지휘관의 머리가 폭발했다. 저격이나 폭격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성대가 진동하며 발생하던 음파가 증폭되며 충격파가 되었다. 김유현의 힘이다. 이런 전장에서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과거의 초인.

특유의 무기를 든 언데드가 삐걱이며 행동을 개시했다.

전투라기보단 사냥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병사들의 중심에 위치하던 지휘관은 머리를 잃은 채 뒤로 넘어갔다. 땅에 부딪히며 핏물이 튀었다. 그때 죽은 지휘관 시체의 가슴이 크게 꿀렁였다. 뒤이어 물이 끓는듯한 부글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 소리가 어떤 현상을 불러올 지, 거기 자리한 병사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재빨리 대피하지 못하고 휘말렸다.

"아 - 아아악!"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폭발이 전장 중심을 덮쳤다. 그 폭발은 주변 병사들을 집어삼켜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발생한 사상자도 또 다른 시체 폭탄이 되어 다시 그 주변을 휩쓸었다. 폭발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수류탄이나 폭격에 뒤지지 않는 그 위력적인 공격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후방에서 대기하던 이들은 이 괴상한 광경에 기겁했다.

이렇게 전투하는 네크로맨서란 들어본 적 없었다. 한 번도.

"워 - 어어어어어 -!"

물론 멍하니 서 있을 틈은 없었다. 처참하게 몸이 찢겨 죽은 병사들은 곧 다시 되살아났다. 남부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병사가 아니라, 네크로맨서의 명을 받드는 언데드 군단의 일원으로. 새로이 일어나게 된 언데드들은 두 다리가 아니라 여덟 개의 다리를 가졌다.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인간 좀비들은 낫과 비슷하게 휘어진 다리로 주변 병사들의 머리를 베어내고, 가슴을 꿰뚫어 심장을 파괴했다. 이 악몽에 가까운 광경에 병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맞서 싸울 수 없는 적이라고 판단했다. 저 네크로맨서는 괴물이다.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괴물······.

"도망쳐!"

십 단위에 불과하던 언데드 군단은 이제 아군의 배에 달할 숫자까지 불어났다. 끝없이 증식하는 벌레떼와 같은 군단을 보며 모두 전의를 상실했다. 성연은 착실히 그 병력을 천천히 집어삼켰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졌을 땐, 성연의 군단은 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고 들어가 날뛰기 시작했다. 이십 미터 고질라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

"이러다 죽인 사람들 숫자가 국민들 절반 넘어가서 나라 멸망하는 건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많이 죽이진 않았어."

"말이 그렇다는 거죠······이렇게 밀어대는데도 항복하질 않으니, 정말 다 죽여야 끝나는 건지 싶기도 하고."

스티븐 최의 말에 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대로 아이작은 성연이 날뛰든 말든 위치를 끝없이 옮기며 도망칠 뿐 특별한 조치를 취해오지 않았다. 더해서, 이제 병사들은 막무가내로 이 네크로맨서를 사살하겠답시고 달려오지 않았다.

기습에 최적화 된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 민간인들 틈에 숨어서 암살을 노리거나, 저격수를 배치하거나, 성연이 움직일 동선에 폭발물을 잔뜩 매설해두곤 했다.

통상의 네크로맨서에겐 아주 잘 먹힐 방법들이었다.

물론 보통의 네크로맨서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생명 반응을 감지할 수 있으며, 위협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이는 언데드 방어막을 보유했고, 모든 화학작용을 0.02초 안에 해체하는 대마법사 일행이 있는 인물에겐 택도 없었다.

그 와중, 스티븐 최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이란에 이어서 나라 몇 개 더 작살났네요. 이게 뭔······."

"이스라엘 쪽이 시발점이었던 거지."

오래 이어져 온 원한부터 정치적인 이유 따위로 순식간에 국가들이 몰락해갔다. 파산했거나, 어딘가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방식의 몰락이 아니었다. 단어 그대로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들이 싸그리 시체가 되어 죽었다. 이제 세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며 죽게 된 사람들의 숫자는 현실감이 사라질만큼 많아졌다.

"그럼 중국이나 인도 쪽도 슬슬 움직이겠네요. 걔네는 가만있어도 인구수로 압승이니까 나라들 많이 점령한 왕만 없애면 자기네들 우승 확정이잖아요. 세 번째 이벤트 우승하면 상품으로 20만 포인트 받는데, 적극적이지 않던 국가들도 소원에 욕심 생겨서 움직이지 않을까요? 먼저 당하느니 치겠다는 식으로······."

"그렇겠지. 그 과정에서 사람들 더 많이 죽을거고."

"세상이······진짜 엉망진창되긴 했네요."

"새삼스레 뭘."

쓰게 웃는 스티븐 최를 보며 성연은 간단히 답했다.

그러던 와중, 성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느껴지는 생명 반응들 중 뭔가 익숙한 것이 하나 있었던 까닭이다.

성연은 그 주변의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킨 뒤, 그 인물을 붙잡았다.

잠깐 발버둥치던 그는 이내 체념한 듯 축 늘어졌다. 곧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데드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곧 비굴한 웃음을 짓는 사내가 등장했다.

"이거 또 우연이네요. 주변에 계신 줄 알았으면 인사라도 드리러 왔을텐데······."

"네가 여기 왜 있지?"

"그게 말씀드리기 좀 곤란한 이유라······."

"그래서 말 못한다?"

"아뇨!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딨겠습니까?"

그 말을 들으며 성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가 잡아온 인물은 김성철이었다. 브라더후드 소속의 인물.

중국에 있어야 할 녀석이 여긴 왜?

아프리카에서 영역을 나누면서 통행료를 걷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비슷한 역할인가?

하지만 남부는 외국인을 절대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의문은 곧 김성철의 대답으로 하여금 해결되었다.

"정찰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능력이 어디 들어가는데 꽤 쓸만하지 않습니까? 카페인 쭉 빨면서 몸 숨기고 입국했죠. 큰 형님께서 여기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관심이 많다고?"

"예. 사실 중국뿐만이 아니죠. 미국이나 일본, 인도 쪽에서도 발 빠르고 몸 잘 숨기는 녀석들 몇 보냈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남부의 왕이라는 놈이 나라를 꽤 많이 먹었잖아요. 인구수 제일 많은 진영 아니면 점령 가장 많이 한 진영이 우승하는 거 아시죠?"

"알지."

"아시다시피 첫 번째 조건으로 가면 중국이 압승이에요. 근데 이게 보유한 인구수가 많은 게 우선인건지, 점령을 가장 많이 한 게 우선인건지 적혀있지가 않았잖아요. 거기 적히기로는 '가장 많은 국가를 점령한'이라는 문장이 먼저 나왔거든요? 그래서 우린 점령 많이 한 걸 우선 순위로 따진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인구가 몇이든, 나라 하나도 점령 못했으면 우승 꿈도 꿀 수 없다고."

그럴싸한 발상이다.

어느 것이 우선인지 말해주지 않았으니 먼저 나온 조건이 우선 순위라는 발상.

게다가 이 「본 게임」을 개최한 인물들의 행보를 떠올려보면, 사람수가 많은 진영보단 끝도 없이 싸워대며 점령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니까, 인구수가 넘치는 나라들도 안심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승 상품이 20만 포인트라면 모두가 욕심을 낼 것이 당연하다.

"첫 목적은 남부 왕한테 항복 받아내는 거였어요. 근데 그 새끼, 외국인이면 대화고 뭐고 그냥 죽여요. 어디서 보냈든지 직접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유성연 님께서 특이 케이스였던거죠."

"······."

"결국 나머지 나라들 다 비슷한 생각했어요. 나라들 꽤 많이 통합했는데 자기네들한테 넘기지 않을 놈. 당연히 거슬리는 녀석이겠죠? 그래서 은밀하게 암살자들 여럿 입국시킨 거에요. 가지지 못할 바에야 부숴버리겠다······뭐, 그런거죠."

"죽이면 그 많은 나라 국민들 다 죽는데도?"

"누가 죽였는지만 밝혀지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이 자기들한테 꽃힐 일이 없잖아요. 사람이 얼마나 죽어나가던, 누가 죽였는지 명확히 밝힐 수 없다면 꺼릴 거 없다 이거죠."

"······그래서, 중국 쪽에서 파견된 암살자는 너라는 건가?"

김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래봬도 저 꽤 유능해요. 네크로맨서님이 특이해서 저 알아채는 거지, 저 카페인 빨고 있으면 웬만한 각성자들은 눈치도 못채요. 솔직히 위치만 특정하면 죽이는 거 일도 아니죠."

"다른 나라에서 보낸 암살자들은 총 몇이지?"

"정확히는 몰라요. 그런데 아마 숫자가 꽤 많은 걸로 알아요. 남부쪽 왕, 거슬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나라들 먹고 꾸역꾸역 버티는 것도 그렇고, 거래 내역들 다 보관하면서 약점 잡아두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암살에 특화된 각성자들이 나섰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건, 아이작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 죽을 지 모른다.

성연은 그 인물이 난데없이 픽 죽어버리길 바라지 않았다.

그 진영에 소속된 인물들이 모조리 죽는 것은 물론이요, 여러 나라를 점령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나, 인도에서 보낸 인물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미치광이들······.'

스스로를 간디의 환생이라 칭하며 '마하트마'라 불러달라 선언한 미친놈이 군림하고 있는 그 나라의 암살자라면 어떤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로.

< 행동대장 에릭 스미스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