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61화 (61/111)

< 비각성자 이경민 (2) >

멕시코의 왕으로 선출된 남자, 안드레아 구스만은 현재 처한 상황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부하들이 전해오는 소식들이 지나치게 터무니 없었던 까닭이다.

지금 멕시코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본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를테면, 이런 소식들.

「100m 넘는 언데드가 뛰어와서 카르텔을 전멸시켰습니다. 매복해서 기습하려 들면 귀신같이 도망치고, 열병기들이 방아쇠 당겨도 안 나가는 고물로 변했습니다. 게다가 개고생해서 100m 언데드에 상처내면 일초만에 회복하는데 어떡할까요?」

「5분만에 30km 떨어진 구역들 오가면서 깽판치는데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총기들 고물되는 동시에 통신 기기들도 싹 다 먹통 됐습니다. 어떡할까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기동성이 떨어지며 자기 보호수단이 전무하다는 네크로맨서의 약점은 그 한국인 사형수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무력 집단은 초월적인 개인에게 백기를 들어야 했다.

멕시코인들은 동양인 네크로맨서를 보면 '만남을 가질 수 있느냐 정중히 물어보아라'라는 지령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국가에 가까운 집단에 맞서 개인이 고작 며칠만에 승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르텔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 몇몇 멕시코인들이 환호했다.

그 카르텔 조직 보스는 폭군에 가까운 명령을 실행했으며 국민들에게 인권이라곤 조금도 보장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물론 환호하는 이들보다 그 사실에 겁에 질린 이들이 더 많았다. 세 번째 이벤트에 적힌 내용, 왕이 죽으면 그 국가에 소속된 이들도 모두 사망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싸이코패스요, 소시오패스라 알려진 한국인 사형수가 자비를 베풀 리 없었다. 네크로맨서들은 대부분 네크로필리아며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광경을 사랑한다는 말은 이제 일종의 편견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각자 의견이 나뉜 멕시코인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리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사냥하다 괴수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괴수들 부산물 정리하고 강제 노동하다가 과로사하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여자라면 누구나 데려가서 딸이나 부인을 잃고 우울증 걸린 사람들이 몇인데······죽으면 차라리 해방이라니까?"

"죽는 게 해방이라고? 미친 새끼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는 게 낫지!"

"죽느니도 못한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총 든 깡패 새끼들 설치는 꼴 보느니, 다 같이 손잡고 저승 가는 게 훨씬 속 시원하겠다!"

그 자리의 유일한 한국인, 이경민은 치열한 대화에 끼지 못했다.

다리를 절뚝이는 비각성자는 사람 취급 해주지 않았다. 굴러다니는 돌이나 일종의 물건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가만히 앉은 이경민은 설전을 벌이는 사람들 대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속한 비각성자들을 보았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노예나 가축처럼 지내는······.

그 안타까운 이들을 보자니 얼마 전 보았던 네크로맨서가 떠올랐다.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월적이었던 무력. 개인으로써 국가를 긴장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굴복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우월한 힘.

'특별한 노력 없이 그저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세진 거잖아. 난 선택받지 못했단 이유로 짐짝 취급을 받는 거고······만약 힘 센 각성자였다면 그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도 없었을 테고, 허벅지에 총 맞고 절름발이처럼 걷지도 않았을텐데······내가 그 네크로맨서였다면.'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할 일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란 멋대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심각하게 부풀려가기 마련이다. 자신이 비각성자라는 사실에 큰 불만을 가진 적 없던 이경민은 이 순간 하늘이나 세상 따위를 지독하게 원망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헤어져서 행방도 모르는 처지가 되지도 않았겠지. 어쩌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을 지 몰라. 결국 비각성자들은 이 세상에서 사건에 휘말리기만 하는 엑스트라 같은 역할일 뿐······주인공들은 전부 선택받고 힘 센 각성자들······.'

이경민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무력감을 견디기 힘들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하고 성내는 저 멕시코인들이 신경에 거슬렸다. 또한, 잡일을 도맡으며 그 대가로 음식물 쓰레기를 받으며 감사인사를 하는 비각성자들의 모습도 기껍지 않았다.

다리가 완전히 낫게 된다면 이경민도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저리 살아야 할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세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며 생겨난 방법이.

이경민은 허리춤을 슬쩍 만졌다. 오래 전 호신용으로 구비해두고 한 번도 방아쇠를 당긴 적 없던 권총이다. 평범한 사람이건, 대단한 초인이건 간단히 죽여버릴 수 있는 과학의 산물. 이경민은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격변 이후의 세상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부류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두 명의 각성자를 죽이면 된다.

***

멕시코 왕의 초대를 성연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항복만 받아낸다면 더 이상 카르텔들을 죽일 필요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방문한 네크로맨서를 맞이한 안드레아와 카르텔들은 멕시코를 뒤집어 놓은 초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 사형수 옆에 반짝이는 금발을 늘어뜨린 영국인 여자가 보였다.

SNS에 올리는 명품으로 도배된 차림과 달리 소박한 것을 넘어 허름한 수준의 차림을 한 영국인. 밖에선 마스크를 쓴 탓에 알아보지 못했으나, 저택에 들어온 순간 마스크를 벗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얼굴을 드러낸 대마법사.

레베카가 말했다.

"손님 대접하는데 와인도 없어? 원두 커피는?"

"죄송합니다. 레베카······님께서 함께 다니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다면 미리 철저히 준비 해뒀을텐데······."

"그럼 내가 같이 안 왔으면 그런 당연한 대접 안 했을거니? 너 지금 우리 성연이 무시하니? 원래라면 나랑 눈도 못 마주칠 마약상 새끼가 어디서 면전에서 사람차별을······."

공격적으로 쏘아붙이는 말에 안드레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이 영국인 대마법사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레베카가 기선제압을 마친 가운데 성연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먼저 앉았다.

"여기 앉으면 되나?"

안드레아는 그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스티븐 최가 통역을 해주자 그제서야 그렇다 대답한 뒤 자신도 착석했다.

서로 마주앉은 상황에서 성연이 말했다.

"나한테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뭐지? 만나자고 한 이유는?"

스티븐 최는 헛기침하며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냐는 부분만 통역했다.

곧 대답이 돌아왔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려 불렀습니다. 이유도 없이 멕시코에서 난동을 피우시진 않았을 거라 생각되어서······."

"원하는 것?"

"예. 그게 뭐든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멕시코에 머무르시지 말고 떠나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꽤 곤란한 입장이 되어서요. 뒤집어 놓으신 곳들이 대부분 저희 중요 사업장들인 까닭에······."

"중요 사업장? 사람 장사하고 마약 재배하고 있길래 공격한건데?"

"지금 우리 먹여살리는 게 그겁니다. 고질라들 쏟아지고 식량들이 제일 잘 나갈 줄 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약 수요가 급증해서······."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레베카가 말했다.

"수요 급증한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팔아?"

"저희도 먹고 살긴 해야죠. 식량 값이 나날이 오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영국 쪽도 꽤 주문이 많습니다. 혹시 레베카님도 원하신다면 싼값에 드릴 의향이······."

"지금 나 약쟁이 취급 하는거니? 이 떨거지 새 - 끼가!"

날카로이 내지른 외침과 함께 저택 안의 원소들이 요동쳤다. 안을 밝게 비추던 조명들이 과열되며 폭발해 유리 파편이 튀었고, 모든 전자기기들의 전원이 다운되었다. 테이블에 내온 커피가 끓어오르다 얼어붙기도 했다. 이 대마법사의 분노란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반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안드레아가 중얼거렸다.

"지, 진정하시죠. 잘못 휘말려서 제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죽으면 뭐? 살인죄로 교도소에 쳐넣기라도 하게?"

"저 죽으면 멕시코 사람들도 다 함께 죽는겁니다. 그럼 레베카님은 나라 하나 통째로 멸망시킨 역사적인 살인마 되는거고, 그 동안 쌓으신 이미지는 물론 영국에서 받는 지지도 단번에 추락할 게 분명······."

"내가 그런 걸 신경 쓰겠니?"

"신경 쓰셔야죠. 이번과 비슷한 이벤트 또 등장할 수도 있는데, 만약 민심 돌아서서 다른 인물이 절대자로 뽑히면 명색이 영국의 여신인데 총리 말에 복종하는 개로 전락할지도 있잖습니까."

"이 새끼가 진짜······."

그 멕시코인의 말에 레베카는 분노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상식을 벗어난 이벤트가 발생한 가운데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이 이러한 수작을 또 부리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까, 이젠 여론 따윈 신경쓰지 않으며 막무가내로 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 이벤트로 하여금 국가를 아래에 둔 권력자가 된 멕시코인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물론, 그 능글맞은 말솜씨란 대화에 미숙한 영국인 대마법사에겐 다소 통했으나 한국인 네크로맨서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연이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저택 아래, 지하를 기고 있던 언데드가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바닥을 뚫고 일어났다.

그리고 형식적인 경고 따윈 없이 말 많은 저 멕시코 왕의 양팔을 부여잡고 통째로 뜯어버렸다. 비명 소리와 함께 핏물이 우수수 쏟아졌다.

자신들의 보스가 공격받은 상황에서 카르텔의 일원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예고 없이 등장한 언데드를 본 순간 얼어붙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공포, 절망과 무력감, 본능적인 두려움이 뇌를 잠식했다.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안드레아가 말했다.

"이, 게 무슨······."

"지금부터 내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답하도록. 쓸데없는 사족 붙이지 말고."

"이러다 과다, 출혈로 죽으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나마 있는 조력자들도 다 기겁해서 떠날텐, 데······감당할 수 있······."

"조력자들이 떠난다? 그럴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 대신 재미있는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나? 이를테면, 왕이 죽어서 국민들도 다 따라 죽으면 그 시체가 남는지 아니면 게임처럼 사라지는지에 관한 실험. 만약 시체가 남는다면 사라진 조력자들만큼 언데드를 더 일으켜 전력을 보충하면 되지 않나? 나로써는 큰 손해가 없을 듯한데."

그 말에 안드레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제서야 눈 앞의 인물이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간에 알려진 바를 떠올려보면 네크로맨서라는 족속이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시체가 많을수록 강대해지는 초인들에게 떼죽음이란 기꺼이 반길 일에 속했다.

성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안드레아를 바라보았다.

물론 성연은 실험을 위해 국가 하나를 통째로 날릴 생각은 없었다. 이현우와 함께 다니며 덩달아 능숙해진 협상을 위한 과감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감방 동기가 언제나 협상에서 승리했듯, 그를 흉내내어 뱉은 단호한 말은 이번에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원하는 건 뭐든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지혈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싸이코패스이며 소시오패스라는 소문은 지금에 이르러 무척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성연은 안드레아가 포션을 마시고 부상을 회복하는 것을 허락했다.

상처가 나아가며 가빠졌던 호흡을 진정한 안드레아가 다시금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뭔지······."

"항복."

"그건 제가 짊어질 리스크가 너무 많, 습니다. 절대 복종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것만은 제발······."

"말로만 하는 약속보다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넘겨받아서 나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게 훨씬 낫지 않나?"

"부탁드립니다. 항복하면 왕 되면서 얻은 권한들 다 사라지는데, 그럼 명령 내릴 수 없게 되고 그대로 저 죽은 목숨입니다······."

"그 동안 뭔짓을 했길래?"

안드레아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카르텔 일원들이 안드레아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하여금 이 인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확실해졌다. 이 멕시코인은 자신을 호위하는 심복들에게조차 원한을 살 정도로 난폭한 짓들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때 카르텔 일원들 중 하나가 말했다.

"시키는 거 군말 않고 다 했습니다. 왕 되면 부족함 없이 살게 해준다 해놓고, 권력 얻자마자 제 아내를 자기 침실로 불러선······!"

그것을 시작으로 폭로가 이어졌다. 결국 안드레아 구스만은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다. 이 네크로맨서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지는 것을 알아챈 그 멕시코인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만약 저 네크로맨서가 원하는 것이 정말로 국가 전체에 해당되는 시체였다면, 양팔을 뜯는 게 아니라 심기를 거스른 즉시 목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네크로맨서도 이 국가가 통째로 멸망하는 건 원하지 않는단 뜻이다.

안드레아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곤 제 턱 아래에 총구를 갖다댄 채로 악을 쓰며 소리쳤다.

"하는 말 다 듣는다고! 항복?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지마! 당장 내 왕국에서 다 꺼져! 안 그러면 지금 자살할거야. 죽어버릴거라고!"

그 돌발 행동에 카르텔 일원들은 물론 통역을 맡은 스티븐 최까지 당황했다.

그때 성연이 말했다.

"쏘던가."

저 네크로맨서는 이 협박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안드레아의 몸이 미칠듯이 떨렸다. 흘러내린 땀이 옷을 흠뻑 적셨고, 호흡이 거칠어져 숨을 헐떡였다.

이 숨막히는 상황에서 안드레아는 많은 생각을 했다.

마침내 지금 죽는 것이 발악하다가 고통스레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되었다. 벌벌 떨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 대신, 딸칵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한계까지 치솟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와 함께 손에서 권총을 떨어뜨리며 안드레아가 소파에 축 늘어졌다. 성연은 한심하다는 듯 그 멕시코인을 바라보았다.

"팀에 소속된 이들끼리는 상처 입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설명 안 읽었나? 너도 멕시코에 소속된 인물이니, 당연히 자살하는 건 불가능······."

세 번째 이벤트 발생 이후 자살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선 굶어죽거나 목말라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자해하거나, 독약을 먹는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다. 절대로.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그래. 그럼 죽기 딱 직전까지 괴롭혀주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고통을 겪다보면, 지금 항복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네크로맨서의 협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축 늘어진 안드레아가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어찌 행동해야······.

모르겠다. 강자와 붙기보단 약자를 주로 상대해왔던 카르텔의 보스로써 이 멕시코인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힘을 쥐어짜 소리칠 뿐이었다. 마지막 발악으로.

"나를 지켜라! 저 네크로맨서와 영국인을 죽여! 너희들 몸을 던져서라도!"

왕으로 선출된 인물의 명령은 온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며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저 악에 받힌 외침은 곧 모든 멕시코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말이다.

기름칠이 덜 된 기계 장치처럼 저택 내에 대기하던 카르텔 일원들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명령이 내려온 가운데 강제력이 집행되었다. 눈에 초점이 사라진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성연은 기겁해 도망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불쾌감을 느꼈다. 한 인물의 추악함에 솟아오른 강렬한 불쾌감.

달려드는 카르텔을 보며 성연은 굳이 언데드 군단을 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이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했다.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이 일대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의 위치 좌표를 전했다. 그리고 그 좌표를 참고하여 감각을 연결한 인간 좀비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 순간, 물수제비를 하듯 무언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김유현 좀비의 능력이다. 이 일대에 일렁이는 모든 음파를 지배하여 지정된 위치에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그와 함께 안드레아를 제외한 근방의 멕시코인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달려오던 와중 쓰러졌다.

"뭔······."

다가오는 이들의 머리를 겨냥해 발생된 충격파는 턱에 주먹이 꽂힌 것보다 더 강렬하게 뇌를 뒤흔들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요, 곧바로 의식이 날아갈 정도로.

우수수 쓰러진 자기 부하들을 본 안드레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챌 겨를도 없었다. 머릿속이 백지 상태가 된 안드레아는 아까 자살 소동을 벌였던 권총을 다른 곳에 겨누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네크로맨서를 향해서.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이번에도 총성 대신 딸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왜, 왜!"

안드레아가 소리쳤다.

멕시코 출신도 아닌 저 한국인 사형수에 대고 쐈는데 나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

그리 울분을 터뜨리며 방아쇠를 반복해 당기는 안드레아에게 레베카가 말했다.

"추하다, 너 진짜 추해."

그제서야 안드레아는 네크로맨서와 함께 온 영국인이 41Km 반경 내의 모든 현상을 통제할 수 있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화학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탄환은 발사될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모든 수단이 막힌 가운데 안드레아는 뒤로 물러나려다 그대로 소파에서 넘어져 바닥을 굴렀다. 꼴사나운 광경이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대며 기어서 도망쳤다.

어떻게든 시간을 더 끌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 그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되고 은밀하게 받았던 연락.

대량의 마약을 공급해줄 것이며 절대적인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인건비 필요없는 노예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음지에서 맺었던 계약.

만약 자신이나 멕시코가 위험에 처하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던, 도움이 필요하면 버튼을 열렬히 누르라고 말했던 인물.

'몇 번 눌러야 오는거야. 제발 잡히기 전에, 끔찍한 고문 당하기 전에······.'

멕시코와 아주 가까운 나라.

격변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 커져가는 논란들과 망가진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근소한 차이로 가까스로 왕으로 선출된 인물.

안드레아는 전투기보다도 빠르게 날 수 있는 그 미국인을 속으로 간절히 불렀다. 미국 대통령에게 밀려서 왕이 되지 못할 뻔했던, 그랬기에 이젠 음지까지 손을 벌리게 된 천조국의 영웅을.

'슈퍼맨······로버트 데이비스, 빨리······.'

< 비각성자 이경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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