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각성자 이경민 (1) >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국토를 포기한 순간 한국인들은 떠날 나라를 선택해야 했다.
일본과 중국은 더 이상의 이민자는 받지 않겠다 했으며, 유럽 국가들에서도 난민을 거부했다. 비교적 안전한 그 나라들로 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사회 상류층들만이 지불할 수 있는 많은 돈.
그래서 상류층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동남아 국가나 남미로 가게 되었다. 원래도 치안이 엉망이었던 국가, 격변 이후 더욱 난장판이 된 국가들.
이경민도 그런 한국인 이민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멕시코로 이민 오게 되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빠른데. 이제 세 번째 이벤트 시작이지?"
"그래. 이제 하루에 백 포인트씩 지불하지 않아도 되서 얼마나 좋은지······이런 개같은 조건은 다신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
"뭐, 어때. 맨날 잘만 극복하면서."
"쉽게 말하네? 역시 비각성자는 각성자들 이해 못한다니까······."
이경민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민자 한국인과 술잔을 부딪히며 웃었다.
이민 온 초반에는 생지옥과 다를 바 없던 멕시코는 이제 꽤 안정되었다. 난데없이 총기를 난사하는 미치광이들은 이제 없었으며, 고질라들의 습격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백 포인트를 지불하지 못해 죽어나가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이경민은 이 상황이 썩 만족스럽다.
능력 없는 비각성자요, 특별한 재주 없는 소시민인 이경민은 멕시코에서 꽤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이민 와서 끈끈하게 뭉친 한국인 이민자들의 집단에 속한 덕이었다.
옅게 웃은 이경민은 주변을 살폈다.
그들과 비슷하게 여유로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몸을 기댄 채 한곳에서 담배를 태우는 이들도 있다.
이 광경만 보자면 격변 이전과 별 달라진 게 없어보였다.
이십 미터 괴수들은 등장하며 인류의 절반을 집어삼켰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걱정하며 종말론을 운운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이들은 진즉에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진 이들 뿐이다.
인류 전체로 보자면 심각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나 이경민은 이렇게 지내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소한 평화, 여유롭게 갖는 술자리가 좋았다.
'이 일상이 계속 되기를. 평화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다른 한국인 이민자들도 이 술자리에 합류했다.
이 멕시코 땅에서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족처럼 친해진 무리다. 이경민은 그 이민자들 중 한 여성을 흘겨보았다. 자기 이상형에 꽤나 가까운 예쁘장한 여자다.
언젠가 상황이 조금만 더 안정되면 한 번 꼬셔볼 생각이 있는······.
"음?"
그러던 이경민이 갑작스레 눈살을 팍 찌푸렸다.
눈 앞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온라인 게임에나 나올법한 투명한 창.
각성자들만이 볼 수 있는 현상. 비각성자인 자신은 볼 수 없어야 정상일 터인 것.
취기가 돌아서 헛것을 보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이경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경민에게만 보이는 헛것 따위가 아니라, 모두에게 벌어진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나에게 왜? 나는 비각성자인데?
그런 의문을 표하던 이경민은 곧 눈 앞에 떠오른 투명한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돌발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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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난투』
『모든 각성자 분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는 28일간 진행됩니다.』
『3일 뒤, 각 국가는 하나의 진영이 됩니다. 그 국가에 소속된 이들은 일종의 팀이 됩니다!』
『팀에 소속된 이들끼리는 상처 입히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3일 뒤, 각 진영에선 투표로 왕을 선출합니다. 왕이 된 인물은 자신에게 소속된 이들에게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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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죽이거나 진영에 속한 인원이 시작 시점에서 50% 이하로 떨어지면 해당 진영의 모든 인물들이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국민들이요!』
『왕에게 항복을 받아내면 그 국가를 점령한 것으로 인정되어 그 왕의 모든 권한을 넘겨받습니다. 국가 하나를 점령할 때마다 1만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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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이번 이벤트는 비각성자 분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각성자 둘을 살해할 경우, 무작위로 각성 능력을 획득합니다!】
【선택받지 못했던 분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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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국가를 점령하거나, 진영에 가장 많은 인원을 보유한 왕이 우승자가 됩니다!』
『해당 이벤트의 우승자는 상품으로 20만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즐거운 이벤트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받은 각성자 분들을 응원합니다.』
"뭔?"
그 문구들을 읽으며 이경민이 생각했다.
'완전 비인권적이며 불합리하잖아······그럼 머릿수 많고 힘 센 집단이 무조건 왕 될거고 내키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독재자로 군림······같은 팀끼리는 상처 입힐 수 없으니, 한 번 선출되면 쿠데타도 불가능······게다가 왕이 죽으면 국민들 모두가 싸그리 죽는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은 뭔······.'
다른 이들도 그 사실을 눈치챘을까?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자리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모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경민은 그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애써 억지 웃음을 지으며 나서려고 했다.
이를테면, 전에 숨겨두었던 초콜릿을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변한 세상. 특히 멕시코와 같은 곳에서 달콤한 것은 구하기 힘든 기호품이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법 같은 간식이다.
그런 순수한 의도로 이경민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일행의 관심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쏠렸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가라앉은 침묵만큼이나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경민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 그가 나중에 잘해보리라 생각했던 여자가 허리춤에 찬 권총을 들어 난데없이 이경민의 허벅지에 쏘았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이경민이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여자는 땀에 젖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 - 아아아악! 왜······."
"이, 이 비각성자 새끼. 주머니에 손. 총 꺼내려고. 우리 죽이고 각성 능력 어, 얻으려고!"
이경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을 맞아봤다. 탄환이 살점을 헤집고 찢는 기분이란 과연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얼굴이 눈물과 땀으로 범벅되었다. 통증으로 머리가 마비되어 반복 재생을 하듯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되뇌었다.
허벅지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우수수 쏟아지건 말건 이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진 한국인 이민자들은 이경민을 붙잡은 채 그의 뒷주머니를 뒤졌다.
뒤집어진 주머니에서 이제 구하기 힘들어진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가 나왔다.
방아쇠를 당긴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왜······."
"흐윽. 분위기를 좀···바꿔보려고······그랬는데······."
그 울음 섞인 말에 모두의 얼굴에 무거운 죄책감이 맴돌았다.
아직도 손에 피를 묻힌 바 없는 이 운 좋은 비각성자는 지나치게 순수했다. 핏물 위로 뭉개진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가 떨어졌다. 그 동안 쌓아온 서로 간의 신뢰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국인 이민자들은 사과했다. 진심으로.
그리고 그 해프닝 이후 이경민은 다신 그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허벅지에 입은 총상은 응급조치를 마쳤으나 상처가 깊어 한쪽 다리를 절뚝이게 되었다. 100포인트도 되지 않는 회복약 하나면 곧장 나을 수 있겠으나, 이 쓸모없는 비각성자에게 포인트를 투자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경민은 혼자 남겨진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 3일은 금세 흘렀다.
"결국······."
격변 이후 멕시코를 지배하는 건 정부가 아닌 카르텔들이었다. 머릿수는 물론이요, 그 무력까지 충분한 자들. 그래서 멕시코의 왕으로 선출된 것은 그 카르텔 중 가장 강력한 카르텔의 우두머리였다.
왕을 선출하는 투표는 같은 시간에 후보로 나온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투명성이나 공정성은 존재치 않았다.
대놓고 무력을 내세워 부정선거가 이뤄지는 상황에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머리에 총구를 겨눈 이들에 대고 선거의 4원칙을 따지고 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왕으로 선출된 카르텔 보스, '안드레아 구스만'이 처음으로 내린 명령은 이랬다.
모든 이들은 내게 복종할 것.
더하여, 내가 지나갈 땐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것.
그 터무니 없는 명령이란 직후 멕시코 온 국민에게 적용되었다. 거스를 수 없는 명령으로.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이란 아주 끔찍한 것이었다. 그 강제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이 자기 이익밖에 챙길 줄 모르는 마피아 카르텔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불합리한 명령에 강제로 징집되고 여자들이 불려가는 가운데 거주지엔 이경민만 남게 되었다. 비각성자이며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장애인과 비슷한 모습이었기에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리 가만히 앉아있던 이경민은 멍한 얼굴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따금씩 몰려오는 무력감이 우울증 증세 중 하나란 사실은 알지 못했다.
"--!"
그때였다. 거리를 걷던 카르텔 몇이 시끄러이 소리치더니 총을 들고 어디론가 달렸다. 직후, 이경민은 괴이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헬기가 이륙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카르텔들의 머리가 터지거나, 바닥에서 기다란 가시가 솟아나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뒤로 힘 없이 넘어진 그 시체들은 곧 말라 비틀어진 몰골로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언데드였다.
이경민들은 이제 좀비가 된 카르텔들 너머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를 보았다.
후드에 절반쯤 가려진 얼굴, 손에 쥔 게임 아이템과 비슷한 지팡이, 그 뒤를 따르는 언데드 군단······.
네크로맨서는 몇 번 본 적이 있으나 이런 웅장한 광경을 만들 수 있는 네크로맨서란 본 적 없었다. 현실에서도, 매스컴에서도.
이경민쪽으로 접근한 그 초월적인 네크로맨서가 입을 열었다.
"한국인? 멕시코에 한국인도 있나?"
놀랍게도 그 네크로맨서는 한국인이었다.
***
대난투라 명명된 세 번째 이벤트는 명백히 인류 간의 분쟁을 유도했다.
다 함께 괴수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닌, 초인들끼리 미치도록 싸워보라는 목적이 다분히 보였다. 그 목적이란 세계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이 본 게임을 개최한 이들은 사이좋게 포인트를 모아 소원권을 따내 행복한 소망을 이루는 광경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 국가들끼리 싸워보라고 대놓고 말했으며, 왕으로 선출된 인물이 죽으면 그 국민들 전체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제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희생이 나오지 않기 위해선 인류의 단합이 필요했다.
그 단합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주 긴 역사 동안 인류가 하나로 모인 적은 없었다.
오랜 역사가 이루지 못했던 그 일을 28일 안에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난리 나겠는데요, 진짜······."
성연 일행은 이번에 발생한 이벤트가 초래할 상황들을 상상했다.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뿐이다. 서로 다투다가 우연히 선출된 왕이 죽고, 일순간에 엄청난 숫자의 국민들이 전멸하는 사건. 그 사건이 반복되면 결국 인류의 숫자란 전에 비하여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게 끝났을 땐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낫겠네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신다고요?"
"예. 협회 본부 습격 당해서 로버트 데이비스 발 묶여있을 때를 놓치면 안되죠."
성연의 말대로 미국의 슈퍼맨은 지금 어디론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론이 심각하게 나빠진 것은 물론이요, 협회 본부가 의문의 각성자에게 습격받는 가운데 그 슈퍼맨은 당분간 천조국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현우 씨가 맡아주세요. 이현우 씨 세력이 거기서 제일 크다면서요? 그럼 왕 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
"제가 왕 되라고요? 그럼 유성연 씨는요? 세 번째 이벤트 우승 조건이 왕이어야 가능한건데, 한 번 선출 끝나면 재투표 같은 거 가능하단 언급은 없었어요."
"저 뽑아줄 곳은 많습니다. 당장 아프리카 쪽만 해도······."
그 말에 이현우가 납득했다.
결국 상식을 벗어난 세 번째 이벤트의 시작과 함께 이현우는 성연과 떨어져 잠시 대한민국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 네크로맨서와 함께 전장을 누비는 것보다 뒤에 숨어서 지금처럼 여론전에 더 신경쓰며 대한민국의 관리에 더 힘쓰는 것이 좋을 듯했다.
게다가 이현우는 얼마 전 중국 측, 브라더후드의 방문도 신경쓰이는 마당이었다.
급발진을 했던 강윤식이 아니라 베일에 싸인 길드장이 마음에 걸렸다.
난데없이 브라더후드로 들어오라지 않나, 동맹이 되었으니 의형제를 맺는 건 어떻느냐고 제안하지 않나······.
그 능글맞은 인물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인간 백과사전」을 사용해 그 인물을 단편적으로나마 분석한 이현우는 알았다. 성연도 그 브라더후드 길드장을 꽤 꺼려하는 기색이었다.
"한 번 더 접근해오면 저한테 알려주시죠. 두 번씩이나 인재 빼가려 들면 짜증날 거 같아서."
"넘어갈 생각도 없어요."
이현우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뒤로 사소한 대화를 나눈 성연은 곧 이현우와 헤어지게 되었다.
영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이현우는 어렵지 않게 왕으로 선출되었고, 곧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 퍼진 사이비 광신도들이 자신들의 군주를 왕으로 투표했으며 그 네크로맨서가 세 국가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사형수 감방 동기가 전해온 개인적인 연락도 함께.
"비교적 만만한 국가들 돌면서 하나씩 점령하겠다······무슨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하는 것처럼 되게 편하게 말하시네······."
그 초월적인 네크로맨서는 이제 웬만한 국가와 맞서도 꿀리지 않는 전력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국가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성연은 혼자가 아니다.
지나치게 든든한 전력이 합류함으로써 그 일행은 완벽한 비대칭 전력이 되었다.
"영국의 여신님도 같이 갔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
남미 쪽, 멕시코부터 향한다 전해들었다.
카르텔이 지배하고 있는 그 나라부터.
***
잘 훈련된 군인과 비슷한 카르텔도, 괴수들을 우습게 쓸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각성자들도 그 네크로맨서를 막지 못했다.
요란하게 움직이지 않는 네크로맨서란 걸어다니는 군단이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특수한 장비를 구입해 뒤집어 쓴 가운데 그 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군단의 힘을 가진 개인이란 그만큼이나 강력했다.
예고 없이 등장한 네크로맨서는 불합리한 일들을 벌이는 카르텔들을 하나씩 사냥했다. 그 미친놈에게 누구도 상처입히지 못했다.
기습하려 들면 어떻게 알았는지 곧장 자리를 피했으며, 기습이 가까스로 성공해도 순식간에 등장한 언데드들이 몸으로 방어했다. 더욱이 그와 함께 다니는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여인도 지나치게 터무니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오히려 총기가 싸늘하게 식고 역으로 폭발하는 상황이란 영국의 한 대마법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멕시코 지역 곳곳을 단어 그대로 휩쓸고 있는 것이다.
"저기! 네크로맨······서엌."
누군가 그 네크로맨서를 목격하여 소리치면 그 목소리는 곧 끊겼다. 강제로 증폭된 목소리는 충격파가 되었고, 곧 소리친 인물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영국의 레베카를 연상케 하는 능력에 뒤이어 과거 대한민국의 김유현을 연상케 하는 능력이 등장했다. 현악기의 선율 소리가 한 번 이어졌고, 곧 카르텔들의 몸이 유리잔처럼 깨져나갔다. 익숙한 클래식 멜로디와 함께 성대하게 몸이 폭발하는 현상이란 괴이한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동원할 수 있는 각성자들을 모조리 모아서 그 네크로맨서를 습격하고자 했을 때, 자리를 피한 뒤 다시 나타난 네크로맨서는 걸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무언가에 탑승한 채 나타났다.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시각적인 폭력. 추정하기로 100m가 넘는 거대 언데드를 탄 채로.
집중 사격에도 흠집 조금 날 뿐이요, 운 좋게 상처를 새겨넣어도 1초 안에 회복하는 초생물의 등장에 모두가 도망쳤다. 저 동양인 네크로맨서란 모든 상식을 파괴하는 괴물이었다.
독재자처럼 행세하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던 멕시코의 왕, 안드레아 구스만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무력 면에선 상대가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네크로맨서에게 말을 전해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만남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곧 모든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가운데 뭐라 중얼거리는 멕시코인을 본 성연이 이번 여행에도 데려온 한국계 미국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뭐래는거야?"
그 통역사는 이번에도 충실히 역할을 수행했다.
"멕시코 왕이 말을 전해달라고 했대요."
"무슨 말?"
"관심 있어요, 한 번 만나봐요······이랬다는데······."
< 비각성자 이경민 (1) > 끝
작가의 말
알레르기성 결막염 때문에 고생하고 있네요.
넘어지면서 한곳이 아프니 다른곳도 아프나봅니다 ㅠㅠ.
역시 몸관리는 건강할 때 해두는 게 최고라고 생각되네요.
독자님들도 건강 잘 챙기시고 아직 코로나가 잠잠해지지 않았으니 마스크도 잘 쓰시길 바래요.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