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길드장 강윤식 (2) >
"예! 작은 형님께서 유성연 님 찾아서 데려오라고 그러셨어요."
김성철의 외침에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왜? 저번에 죽이려 들었던 거 한 번 넘어가 줬는데······함정 아냐? 불러서 확인 사살 하려는······."
"저희도 그 생각을 했는데 아마 아닐겁니다. 작은 형님이 독단적으로 지시 내리신 게 아니라 더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거든요."
"더 윗선?"
"예. 큰 형님, 길드장님께서 내리신······."
큰 형님. 브라더후드의 길드장을 일컫는 호칭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기에 그 정체가 베일에 감추어져 있는.
중국을 집어삼킨 거대 길드의 실질적인 권력자.
그 말에 매몰차게 거절하려던 성연은 다소 흥미를 느꼈다.
브라더후드 길드장이라면 김유현의 무기를 내어준 적 있는 인물 아닌가.
성연의 표정을 본 김성철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전에 작은 형님이 독단적으로 암살 시도하신 것 때문에 사죄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위대하신 네크로맨서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회복할 관계도 없어. 기껏해야 교도소 안에서 잠깐 본 게 전부인 사람이야. 게다가 떠밀려 하는 사과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군."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큰 형님께서 직접 내리신 지시를 따를 때는 독단적인 행동이 불가하니 암살 위협 같은 건 없을······."
"그걸 어찌 믿지? 저번에 한 번 그쪽으로 갔다가 죽을 뻔 했는데 한번 더 내 발로 거기까지 기어들어가라고?"
"그게······."
김성철은 이제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중얼대고 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강태혁이 대신 나섰다.
"이번엔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강태혁 씨? 당신이 보장하는 건 믿을 수 없습니다. 날 죽이려 들었던 자리에 직접 찾아왔었던 장본인 아닙니까? 당신은 여기서 설득을 하려고 입을 여는 게 아니라, 내가 당장 죽이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위치······."
그 살벌한 말에 강태혁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교도소에서건 중국에서 벌어졌던 학살극이건 이 네크로맨서란 지나치게 강했다.
이 폭력범은 아직 저 사형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리라.
그때 성연이 무심한 목소리로 뒤이어 중얼거렸다.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직접 오라고 연락하시죠. 빈손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만한 선물도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겁니다. 이를테면, 브라더후드가 보관하고 있는 귀중한 물건들······."
"유, 유성연 님.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시면······."
"내가 내걸 수 있는 최선의 조건은 이겁니다. 호랑이 굴 안에서 물릴 뻔했는데 제 발로 다시 들어가려는 멍청이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 김성철과 강태혁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설득이란 불가능했다.
이 사형수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는다. 단호한 눈빛을 보며 결국 강태혁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 폭력범이 중얼거렸다.
"예, 형님. 저 태혁이······예예. 아까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좀 틀어져서 상대 측에서 조건을 요구했는데 이 조건이요······."
이쪽을 슬쩍 슬쩍 바라보며 통화하는 그 모습에도 성연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태혁은 저 사형수가 과연 대한민국에 떠돌았던 소문대로 감정이나 공감 능력 따위 없는 싸이코패스요, 소시오패스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상황 보고를 이어가며 강태혁은 자신과 김성철이 머지않아 장기가 전부 사라진 채 통나무가 되어 중국 거리를 떠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괴수 사체 처리나 도맡는 일종의 노예가 될 지 모른다.
강태혁은 후자의 경우가 될 경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죽고 싶진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예? 형님······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격에 젖어 소리치는 강태혁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연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때 그가 기분 좋게 외쳤다.
죽다 살아난 사람의 표정이었다.
"오신답니다! 선물 두둑이 챙겨서 직접 오시겠다고······."
***
상황을 전해받은 강윤식은 허탈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엔 강렬한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부터 모아놓은 각종 자료들. 네크로맨서들을 죽이기에 효과적인 방법들과 가장 위험한 네크로맨서들에 관한 자료들이 있었다.
그것을 비장의 무기인 양 생각하던 강윤식은 서랍을 통째로 들어 쓰레기통에 쳐박았다.
정확한 분석 자료들은 그 사형수에 한정하여 아무 쓸모 없는 자료가 되었다. 게다가 큰 형님의 '강제력'엔 반발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결국 강윤식은 그 네크로맨서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정말이지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으으······."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여러 상상도 해봤다. 일종의 화풀이로써 이 상황을 만든 김성철과 강태혁을 토막내어 괴수들 밥으로 주는 상상.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김성철은 격변 이후의 세상에서 무척 쓸만한 능력을 가진 특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강태혁은······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정이 들어버렸다.
정확히는, 그 폭력범이 아니라 폭력범의 자식들에게.
원래라면 일에 있어서 감정을 분리하는 건 강윤식에게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네크로맨서 무리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뒤, 그 작업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 감정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자식들과 아내의 장례를 치루었을 때 강태혁의 가족들도 찾아왔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우리 아빠 잘 부탁한다고 했던 순간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이제 모든 젊은이와 어린 것들에게 자기 아들 딸을 투영한다.
그러니까, 어느 늙은이의 화풀이로 죽어버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오열하는 아이들의 모습 따위를 보고 견딜 자신이 없다. 절대로.
"아······두통······."
머리를 부여잡은 강윤식은 꾸준히 처방받고 있는 항우울제를 쥐었다. 그 복용량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약을 삼키려던 때 누군가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사전 예고도 없이 이 방에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뿐이다.
"윤식이. 직접 가기로 했다면서?"
"아,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그리 요구했다고······."
"조심성 많군. 하긴, 자기 죽이려 들었던 집단이니 경계할 만 하지."
"······그건 제가 경솔했습니다. 너무 충동적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니."
"지나간 얘기는 됐고, 갈 때 나에게 연락 넣어. 같이 갈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같이 가신다고요?"
큰 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묘한 표정을 보며 강윤식은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큰 형님을 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오로지 이득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기계 같은 사람. 이번에는 어떤 가치를 보고 그 네크로맨서와의 만남에 따라나서겠다는 걸까.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강윤식이 할 수 있는 건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네, 뭐, 그럽시다······."
***
과거 자신의 암살 시도를 한 적 있는 중국 길드의 방문에 성연은 거창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중국 땅으로 제발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
네크로맨서는 제 영역 안에서 싸울 때 가장 강력하다. 게다가 지금 성연의 영역 안엔 소아성애자 언데드와 김유현 언데드, 더하여 생글거리며 웃는 레베카까지 있다.
총 셋의 S급 헌터가 아군이 되어 주변을 지키는 가운데 이 전력은 로버트 데이비스도 함부로 돌격하지 못할 비대칭 전력이다. 성연의 옆에 앉아있던 이현우가 중얼거렸다.
"근데 왜 오라고 했어요? 저번에도 한 번 갔다가 위험한 적 있었다면서."
"세 번째 이벤트 발생 전에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둘 생각입니다. 중국 안에 제발로 들어가서 스스로 포위당하는 거면 모를까, 여기선 어차피 제가 꿀리지 않으니까요."
"나쁘진 않은데······쓸만한 거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뭐, 나라 하나 삼키고 있는 집단이면 우리한테 필요한 게 없진 않겠죠. 듣자하니 협회 쪽 기술로 만든 물건들도 꽤 보유하고 있다던데."
"협회 쪽 기술요?"
"네. 각성자 군단한테만 주는 물건들 있잖아요. 괴수들 마석 이용하는 특수 무기······."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유성연 씨는 모를수도 있겠네요. 상대 반응하기도 전에 날벌레나 럴커로 죽이고, 갑자기 특별 게스트로 김유현 불러오면 그런 거 쓸 틈이 어딨겠어요."
그리 대화하던 와중이었다.
저 너머로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보이진 않았으나, 성연은 그들의 생명 반응을 감지하며 누군지 곧장 알아챘다.
이현우가 말했다.
"저거 브라더후드 맞죠?"
"예, 근데 숫자가 많진 않은데요."
"네크로맨서 상대로 물량 안 통하는 거 아니까 그랬겠죠. 괜히 심기 거슬린다고 싹 다 좀비 군단으로 만들어버리면 대참사니까."
"제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겠습니까?"
"네크로맨서들은 대개 그런 짓을 많이 해요."
말이 오가는 가운데, 저 멀리서 십 년은 더 늙은 듯 보이는 강윤식의 얼굴이 보였다.
여기 방문한 브라더후드의 숫자는 총 마흔 다섯이었다.
모두 각성자라고 가정할 시, 약한 전력은 아니지만 중국을 주름잡는 집단이 동원한 인원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치게 적다.
그 마흔 다섯의 인원들은 이곳으로 접근하며 괴수들 여럿을 사냥하며 왔다. 그 과정에서 성연은 강윤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2인자라는 중요한 직책에 앉은 저 인물이 움직일 때마다 괴수들이 픽픽 죽어나갔다.
성연은 강윤식의 각성 능력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수단을 뚫고 온전한 피해를 입히는 것. 격변 이전의 세상에선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고질라들의 껍질을 단숨에 부술 수 있기에 제대로 쓸모를 증명한······.
'······마운틴의 껍질도 뚫을 수 있나? 능력으로 인해 단단해진 슈퍼맨의 몸뚱이는? 아니, 뚫지 못하더라도 다케다 유이치 언데드와 능력을 융합하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물론 멋대로 시작된 발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강윤식의 능력이 큰 쓸모가 있음을 떠올린 성연은 여러 가정을 세웠지만, 그 가정은 모두 강윤식을 죽이고 언데드로 일으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끌고 온 전력이 마흔 다섯 명에 불과한 가운데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분이 없었다.
"오랜만이네. 그땐 정말······."
이제 가까이 다가온 강윤식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러 온 인물을 죽이고 언데드로 일으켜 부리는 것, 그 뻔뻔하고 무례한 일은 여러 네크로맨서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성연은 그럴 수 없다. 애초에 그런 사상을 가졌다면 불사의 군단으로 나라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잡아죽이며 포인트를 긁어모았을 것이다.
성연이 입을 열었다.
"떠밀려 하는 사과는 됐습니다. 가져온 선물이나 보죠. 그걸 보고 마음을 바꿀테니."
"그래. 알겠네. 그럼······."
"뭐야? 고개 숙이고 끝이야? 그거 안해? 막 땅에 무릎대고 고개 조아리는 거······절하는 거 였나?"
옆에 서 있던 레베카가 그리 말했다.
이현우는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 말을 통역했다. 강윤식의 얼굴이 곧 하얗게 질렸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에게 억지로 사과받는 건 물론이요, 굴욕감을 주는 건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절을 할 준비를 하는 강윤식을 보며 성연이 제지하려던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 말했다.
"절 좋지요. 그런데 우리 부길드장 절 한 번 받는 값이 좀 비쌉니다. 선물 대신 이 절 받고 끝내시렵니까? 우리한텐 좋지만, 그쪽에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말라고 하시죠. 별로 받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성연은 그 인물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다음 순간,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얼굴 절반 가량을 채운 문신이 보였다. 그 인물은 강윤식을 잡아 일으켰다. 머뭇거리던 강윤식이 잠깐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앉아있던 레베카가 귓가에 대고 슬쩍 속삭였다.
"쟤가 브라더후드 길드장이야······."
영어를 잘 알지 못하는 성연이었으나, 브라더후드라는 단어와 길드마스터라는 단어 정도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상황이 저 인물이 집단의 수장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길드장이 한 번 손짓하니 뒤편에 있던 이들이 잘 포장된 선물들을 대령했다.
성연이 말했다.
"인육 같은 말도 안 되는 선물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걱정마십시오. 그쪽 분 취향은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딱 마음에 드실만한 물건들로 집어넣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현우? 이현우라는 분을 좀 만나고 싶은데······."
"저요?"
그 말에 이현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오,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언론전에 능통하길래 나이가 꽤 찬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저한테 할말이라도?"
"나누고 싶은 대화가 많지요. 잠깐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와 함께 브라더후드 길드장과 이현우는 이 거래에서 빠져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성연은 썩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그들과 한참 눈싸움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힘겹게 한 마디 뱉었다.
"이렇게 불편해 할 거면서 도대체 왜 온 겁니까?"
"사과하러······."
"진심으로 말하시죠. 누가 봐도 억지로 떠밀려 온 것처럼 보이는데······저 사람이 시킨겁니까? 네크로맨서들 싫다고 광고하고 다녔는데, 네크로맨서한테 고개 숙이라고 했어요?"
"큰 형님이 억지로 시키신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네."
"참······."
그 모습에 성연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문득 말했다.
"네크로맨서를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싫어하지 않네."
"진심으로 말하라고요."
재차 묻는 말에 강윤식의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우물쭈물거리던 강윤식이 입을 열었고 순간 눈에 핏발이 섰다. 미친 사람처럼.
"미친 새끼들이니까 - !"
그리고 다음 순간 목소리가 확 커졌다.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브라더후드의 길드원들이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을 죽여 죄다 언데드로 일으키려 들고, 시체를 사랑하는 것들! 사소한 잘못을 트집잡아서 모두 몰살시키려 드는······악마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새끼들이니까!"
"······."
"그 새끼들 머릿속엔 사람을 어떻게 죽이고 어떤 시체로 일으킬 지에 관한 생각밖에 없어. 네크로맨서들은 다 교활하고 사악한 것들뿐이라고. 너도, 너도 다를 거 없겠지! 누군가의 자식이고 가족일 영웅들을 저런 언데드로 당당히 끌고 다니는 게 자랑스럽나? 전혀! 끔찍하고 역겨울 뿐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이기적인 족속들······."
그 외침은 일종의 발작과 같았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게 된 강윤식은 조금만 자극해도 이렇게 폭발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는 강윤식은 곧 자신이 크게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주변 이들이 말렸으나 이미 늦어버린 가운데 성연은 낯빛이 어두웠다.
사과 이후 선물을 건네고 나름 줄을 이어두려던 목적은 완전히 망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수의 전투원들만 데려왔으므로 저 네크로맨서가 심판하고자 하면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저 사악하고 교활한 놈이 우리를 다 죽여서 언데드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잘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지도 않았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성연은 무덤하게 서서 브라더후드 측이 가져온 선물들을 모두 받은 뒤, 연락처 교환까지 마무리했다. 만약 성연에게 곤란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쪽에서 도움을 줄 거라는 협상도 끝났다. 그로써 공적으로는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일종의 동맹이 된 것 같은 그림까지 이어졌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모습을 보며 레베카가 말했다.
"화도 안 나? 저 미치광이가 말한 것들 짜증나지 않냐구. 나였으면 당장 두들겨 패고 난리쳤을텐데······."
"딱히 화가 나진 않았는데."
성연은 포장된 선물들을 풀며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강윤식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던 까닭이다. 속에 응어리 진 증오가 발작적으로 쏟아지며, 극도로 예민한 그 모습. 성연의 과거와 비슷했다.
그 광기를 이해하진 않았지만, 따지고 들 생각은 없었다.
"쓸만한 물건들도 받았고 중국 집어삼킨 쪽으로부터 동맹도 받았는데 나쁠 건 없지."
"참······."
그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브라더후드 길드장과 둘만의 자리를 가졌던 이현우가 돌아왔다. 돌아온 이현우는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표정이 이상한데."
"아, 그······저보고 브라더후드 들어올 생각 있냐는데요? 자리 제대로 주겠다고······."
"갑자기요?"
"예.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꼭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이곳까지 찾아온 브라더후드 길드장은 이제 거물이 된 성연과 대화를 하긴 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고, 이현우와만 자리를 가진 채 떠났다.
일종의 괴짜 같은 인물이었다.
성연은 이 만남이 앞으로 크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강력한 적은 협회 하나로 충분한 가운데 굳이 화해하길 바라는 이들을 쳐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공식적인 기사로 발표되진 않았으나 나름 소문이 퍼졌는지 이현우를 통해 성연과 접촉해오는 길드들이 몇 있었다. 그러는 이유엔 협회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과, 나날이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 로버트 데이비스가 당혹해하며 올바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 있었다. 그 슈퍼맨은 마녀사냥을 당해본 경험이 없었다.
몇 번 논란이 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무너뜨리는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없었으리라.
그리하여 로버트는 얼버무리며 잘못된 발언을 몇 차례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사람들은 꼬투리를 잡으며 물어뜯었다.
그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세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
두 번째 이벤트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공개된 세 번째 이벤트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주.
생존비 100P를 지불하라던 일방적인 통보보다 훨씬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 세 번째 이벤트의 문장을 읽은 각성자들은 모두 깨달았다.
이 「본 게임」을 개최한 존재들은 정말로 유희만을 위해 움직이며, 그들은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성연도 그랬다.
"······이제 이런 식으로 나오나? 그러면 백만 포인트를 모은 사람이 나올 때쯤엔······."
세 번째 이벤트의 내용을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백만 포인트를 벌만큼 이 본 게임이 진행된다면, 그때쯤엔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결국 이 재난에 가까운 사태는 인류의 대부분을 집어삼킬 것이다. 분명히.
< 부길드장 강윤식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