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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56화 (56/111)

<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1) >

로버트 데이비스는 어디서나 찾아볼 법한 소시민이었다. 주말마다 교회를 찾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요, 모난 것 없는 평범한 인간. 하나 특이한 것이라면 할리우드 히어로들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코믹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읽었고 그 내용들이 꿈에서 종종 등장할 정도로.

개인이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인류의 안녕과 정의를 수호하는 이야기. 이 미국인은 따분하고 뻔한 그 시나리오를 사랑했다.

그리고 이 히어로 매니아 미국인은 우연히 각성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날 생겨난 초인적인 힘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히어로의 것과 똑닮아 있었다.

신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실존하는 슈퍼맨은 그렇게 탄생했다.

히어로가 될 재능을 가진 선택받은 각성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현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이 상황이 썩 기껍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움직였다.

개인이 가지기엔 지나치게 강력한 능력은 곧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것이 간단하고 편리해졌다. 정말이지 아주.

로버트 데이비스는 새로이 얻은 힘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모두가 정의를 지키는 유토피아를.

그러나 현실이란 대개 코믹스나 뻔한 할리우드 시나리오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난데없이 사회 상류층으로 발을 들인 로버트는 사회의 뒷면과 여러 가지 명목에 의해 묵인되는 끔찍한 현실을 보았다. 히어로 영화에서는 절대로 다루어지지 않을 장면들이다.

더불어 자신에 대한 선동과 날조를 일삼는 언론들과 시시각각 바뀌는 군중들이란 소시민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벅찼다.

로버트는 억지로 견뎠다. 평생을 꿈꿔온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수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미국인은 아주 서서히 바뀌었다. 이 변화란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로버트는 미쳐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끔찍한 일들은 그 미국인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바꾸었다. 이를테면 각성자는 선택받은 신인류요, 일반인들은 구인류이므로 마땅히 차별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아무런 노력과 준비 없이 막강한 능력을 가지게 된 인간이란 누구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변하거나 미칠 것이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그 정의로운 슈퍼히어로들도 꼭대기에서 수십 년간 현실을 마주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힘과 권력을 주어준다면 그들은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욕망에 충실한 삶, 혹은 이상한 신념에 빠져 미치광이가 되는 삶.

***

감사를 거듭 전했으며 앞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을 약속한 네크로맨서 연합이 곧 돌아갔다. 전투 직후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소 달라져 있었다. 이현우는 이들이 저 사형수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망가진 세상에선 말만 번지르르한 부하보다 지나친 광신도들이 더 믿을만 하므로.

이현우가 말했다.

"그런데 받아야 할 물건이란 게 김유현 무기였어요? 게다가 레베카가 그걸 직접 전해주는 건 뭔······."

이해하기 힘든 일들 투성이었다. 그러나 자세하게 캐묻지는 않았다. 이 사형수가 벌이는 일들 대부분이 터무니 없는 것인 까닭이다.

이현우는 성연에 대해 생각할 때만큼은 상식을 버리기로 했다.

S급 헌터를 둘이나 죽이고 각성자 군단을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는 네크로맨서에겐 어차피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이요, 비상식적인 전력인 것이다.

성연이 말했다.

"대충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전에는 치고 받고 싸우지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설명하기 힘든데······."

"소년 만화도 아니고, 싸우다 보니 같은 편······."

스티븐 최는 둘 사이에서 자주 통역을 했으며 아프리카에서 꽤 함께한 덕분에 레베카가 성연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 호감이란 연인들 사이에 으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 광적인 것인 까닭이다. 말해봤자 좋을 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았다.

저 네크로맨서건, 영국의 대마법사건 스티븐 최에겐 아주 두려운 인물들이었다.

"그럼 성연 씨랑 같이 다니면 나중에 레베카도 만나겠네요?"

"그렇겠죠."

"와, 옛날엔 진짜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이현우는 언제든 참 긍정적이었다.

영국의 여신이라 통칭되는 위대한 영웅은 격변 이전,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각국의 대통령들보다도 만나기 힘들며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다시금 이 감방 동기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며 거물이라는 걸 체감한 이현우가 말했다.

"그럼 물건도 받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요? 다시 아프리카? 아니면 대한민국?"

"글쎄요. 일단은 천천히 움직이다가 세 번째 이벤트 시작하면 정착지 정하려고 합니다. 사실 대한민국이 제일 마음에 들긴 합니다."

"왜요?"

"거기엔 방해꾼들이 오지 않으니까요."

"아, 마운틴 덕분에······."

"네. 게다가 관심 있는 사람도 있고."

성연은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만났던 그 중국인을 아직 잊지 않았다. 스스로를 왕웨이라 소개한 인물은 명확한 목적을 갖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의 자신처럼.

그 인물에게 다소 관심이 향했다.

가장 위험하다 평가된 능력을 가진 사내는 과연 지금까지 그랬듯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포인트를 대량 쌓았듯 수면 위로 나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인가?

성연으로썬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떠오르는 감정은 있었다. 왕웨이는 적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는 나머지 네 명의 S급 헌터들과 달리 망가지지 않았다. 망가지기 전에 스스로 정상의 자리를 포기한 까닭이다. 달콤한 힘과 권력을 내려놓고 은거한 초인은 미치광이가 되는 대신 방관자가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간 방관자로 살아온 인물은 다시 움직이기 위해선 강력한 각오나 동기가 필요하다.

오래 전 모든 걸 잃은 성연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동기는 복수심이었다.

그 늙은 중국인은 어떨까······.

"유성연 씨?"

"아, 예."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요? 계속 불렀는데."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하느라."

"연합쪽에서 한 명씩 따로 쓰라고 방 세 개 잡아줬어요. 오늘 늦었으니 좀 쉬고 내일 일어나서 다음 일정 생각합시다. 어때요?"

"그래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이 다시 열렸다. 이현우와 스티븐 최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가운데 성연은 잠을 청하지 못했다.

김유현의 언데드를 일으키며 묻어두었던 아픈 과거가 드문드문 떠오르는 탓이다. 나은 줄 알았던 불면증이 재발했다. 눈을 감고 의식이 멀어져 갈 즈음 그날이 떠오른다.

박동치는 심장 소리. 뜨겁고 가쁜 숨.

괴수의 입가에서 흔들리던 부모님과 재미난 것을 보듯 웃는 헌터 다섯 명.

원수들을 죽인 것은 물론 가장 증오스런 놈을 언데드로 일으켰다. 복수심을 불태워 목적을 달성했지만 편히 잠들지 못한다.

성연은 생각했다.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이제 청년이 된 소년은 여전히 비극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 비극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HEY-!"

성연은 감정 없는 표정으로 밤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덩치 큰 서양인 여럿이 모여있었다.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이 전해오길, 대다수가 각성자였다.

뛰어나진 않고 일반인들이나 떨거지들 사이에선 나름 이름 좀 날릴 수준이다.

"YELLOW MONKEY! COME!"

두 번째 이벤트가 끝난 뒤 생존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치안은 더 개판이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괴수를 사냥하고 강해진 이들이 귀환했다. 생존을 목적으로 살던 그들은 치열한 전투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이를테면, 성적 욕구를 채우는 것이나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아 주머니를 채우는 일 따위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이십 미터 고질라들 고작 십수마리 사냥한 것으로 대단한 영웅쯤 되는 줄 아는 족속들이다.

그 부름에 따라 걸어간 성연은 이 서양인 무리가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은 물론이요, 성욕마저도 왕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에 널브러진 여자들이 몇 보였다. 주변에 온몸에 멍이 들었거나 이미 숨이 끊어진 남성들도 있었다. 성연은 쉬지 않고 떠드는 이 서양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다만, 이 상황으로 추측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들이 많아진다.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은 머저리 취급을 받으며, 비난까지 받는 시대······.'

바뀌어가는 세상이 성연은 기껍지 않다.

시간이 지남에도 썩 적응할 수가 없다. 시끄럽게 지껄이던 서양인이 손에서 불길을 일으켰다. 초감각은 경종을 울리지도 않았다. 이제 저러한 공격은 성연에게 있어서 경계할만한 위협으로 작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로 성연의 주변에 항시 머무는 날벌레 언데드가 날개를 펼쳤다. 위험을 감지하는 즉시 방패막이 되는 이 언데드들은 상황에 따라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피어오르던 불길이 꺼졌다. 시끄러이 쏟아지던 영어가 끊기며 서양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인지가 불가능한 속도로 미간과 목덜미에 각각 구멍이 뚫렸다. 쓰러진 사내가 피를 울컥 토해냈고 가슴이 들썩였다. 싸늘한 침묵이 자리했다.

"FUC······K!"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려던 서양인들의 머리가 터졌다. 그들이 때려죽인 시체에서 가시가 솟아나 뒤통수를 꿰뚫고 부순 것이다. 업보를 돌려받는 모습에 성연은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널브러진 여자들은 피와 살점이 난자한 이 현장을 마주하며 몸을 떨었다. 성연은 시체가 된 무리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도망가도 된다는 말을 건네려던 그때, 생명 반응 감지 능력에 무언가가 걸렸다.

'뭔······.'

범위 내로 들어온 그 생명체는 지나치게 빠른 속력으로 달렸다. 아니,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공중을 비행하고 있었다. 독수리나 치타와 같은 동물과 비교할 게 아니라 탄환이나 전투기 따위에 빗대야 할 수준의 속력이다. 성연이 상대한 바 있었던 그 소아성애자 일본인보다도 빠르다. 그 순간 다케다 언데드와 공유해 얻은 육감, 초감각이 경종을 냈다.

대상의 정보를 전해받은 성연은 눈을 크게 떴다.

'로버트 데이비스'.

레베카를 포섭하기 위해 영국을 찾았다던 슈퍼맨.

세계 최강의 초인으로 유명하며 매년마다 스스로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괴물이 날고 있다. 이곳을 향해서.

***

「본 게임」을 진행하는 관중들은 이 장면에 대해 아주 즐거워했다.

두 번째 이벤트 자체는 나름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이벤트 과정에서 일본 출신의 초인과 네크로맨서가 전투했던 것은 모두에게 명장면으로 꼽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들이 갖는 기대감이 컸다.

현재 본 게임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두 인물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것이다.

괴수 사냥과 망가진 세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네크로맨서,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인류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는 최강의 초인.

파워 밸런스 따위는 존재치 않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은 즐거워했다.

재미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본 게임을 주최한 어떤 이들은 이 여흥을 함께 즐기는 이들에게 제안했다. 각자 무언가를 거는 내기. 만약 싸움이 벌어진다면 누가 이길까?를 주제로 한 내기였다.

이 유치하기 그지 없는 내기에 모두 열광했다.

스포츠 토토나 다름없는 도박이 벌어진 가운데 판돈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대부분이 한쪽에 건 것이다.

미국의 초인. 정신 나간 오버 스펙을 갖고 있는 슈퍼맨.

모두가 그의 승리를 점쳤다.

혹시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럼 이 내기는 나중의 승패로 인해 결과가 결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로버트 데이비스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 슈퍼맨은 방구석 히키코모리 출신 일본인처럼 기술이 형편없지 않았다. 그는 많은 기술들을 전문적으로 몸에 익혔다.

더하여, 그는 대한민국의 김유현처럼 안일한 행동을 보이거나 방심하지 않았다. 끔찍한 현실을 마주한 슈퍼맨은 매사에 철저하게 행동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베카 블런트처럼 어리지 않다. 칠십 년에 가까운 시간은 길다. 꼭대기의 자리에서 수십 년을 머무른 인간이란 그 자체로 괴물과 같다. 거의 백 년에 달할 세월 동안 쌓아올린 경험은 엄청난 무기이다. 이십대 사형수가 상대하기엔 지나치게 벅찰 정도로.

저 네크로맨서가 포인트를 열심히 모아 성장하건 말건, 오랫동안 각성자 사회의 왕으로 군림해 온 인물이란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정말이지 아주.

***

로버트 데이비스에게 탐지나 탐색 능력이 있던가?

모르겠다.

여러 기록들을 뒤지며 S급 헌터들을 분석한 바 있던 성연이 '모르겠다'라는 결론을 내놓은 이유은 단순했다. 그 슈퍼맨은 매년마다 발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작년에는 없던 탐지 능력이 올해에는 생겼다고 해도 모두가 그러려니 할 것이다. 천조국을 수호하는 슈퍼맨이란 그만큼 정신 나간 초인이다.

인터넷 상에서 로버트 데이비스를 이기는 방법에 대해 네티즌들이 토론을 나눌 때, 이제 노인이 되었으니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정도로.

오타쿠들이 으레 벌이는 VS 놀이, 그러니까 각 캐릭터를 붙여놓고 누가 더 세느냐며 유치하게 노는 놀이에서도 이 위대한 미국인은 거론되지 않았다.

현실에 실존하는 세계관 최강자란 그런 것이다. 무력은 물론이요, 자본과 사회적인 힘까지 무적에 가까운 인물은 존재 자체가 반칙이다. 그러나 세상에 반칙과 같은 존재들은 많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그런 존재들 중에서도 꼭대기에 선 인물이다.

'도망, 어디로?'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슈퍼맨의 출현에 성연은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미국인은 정말이지 지나치게 빨랐다. 성연이 도망치려던 루트에 붉은 빛, 레이저와 비슷한 무언가가 번쩍였다. 담장과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성대한 붕괴에 성연이 잠깐 멈칫한 사이 뒤편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슈퍼히어로 랜딩이라 명명된, 영화 주인공들이나 취할 자세로 착지한 늙은 미국인이 보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쫄쫄이 의상은 조금도 우습지 않다. 오히려 위대해 보일 지경이다.

강철과 같은 근육이 부각된 의상, 더하여 휘날리는 망토.

슈퍼히어로의 탈을 쓴 차별주의자가 나타났다.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이꼴로 만든건가?"

로버트 데이비스는 등장한 직후 그리 물었다. 여러 서양인 남성이 죽어있고, 널브러진 여성들이 피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다.

다행히도 그 미국인과 가까운 곳에 있던 여자들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저분께서 도와주셔서 우리가······."

그 말에 로버트 데이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자는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유명한 이 정의의 사도가 저 네크로맨서를 오해하지 않길 원했다. 물론 그건 이 미국인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다. 그럴 경우, 로버트 데이비스는 뒤늦게 나타난 멍청이가 되며 상황도 모른 채 건물까지 때려부순 무능한 히어로가 될 것이다.

로버트 데이비스는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지 못하는 이 여인의 말이 기껍지 않았다.

그래서 손가락을 들어 미간에 쑤셔넣었다. 저 네크로맨서가 다른 시체에 새긴 상처와 똑같은 형태로.

"뭔······."

성연은 그 비상식적인 행동에 경악했다. 그도 매스컴을 통해 전해받기만 했지, 로버트 데이비스의 실체에 관해서는 조금도 몰랐던 까닭이다.

세간에 '실수하지 않고 완벽한 슈퍼히어로'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사소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실수들을 모조리 제거해왔다.

대단한 위업을 백 번 성공시키는 히어로를 보며 군중은 더 이상 놀라워하거나 칭찬하는 대신, 그 히어로를 깎아내릴 수단을 모색했다. 사소한 실수를 물어뜯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논란삼는 방식으로. 그리하여 로버트 데이비스는 결벽에 가까운 완벽을 추구했다.

조금이라도 흠결이 될만한 징조가 보인다면 그리 되지 않도록 죽이거나 없앴다. 뭐든지.

로버트 데이비스는 널브러진 시체들, 경악한 표정을 지은 성연을 보며 생각했다.

'영국이 레베카만 믿으며 협회에게 권한을 내주지 않아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고 설명하면 되겠군. 그랬다면 내가 미리 알았을 것이고, 당연히 막았으리라 설명하면 대중은 내 편······여론만 끌어들이면 레베카 블런트를 협회 인물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은······.'

현대 사회의 상류층으로 살아가는 슈퍼맨은 정의롭지 않다. 그 머리가 돌아가는 방식은 정치인의 것에 가깝다. 손가락에 묻은 피를 털어낸 로버트 데이비스는 몸을 일으켜 성연을 마주보았다. 2m 27cm에 달하는 몸이 올곧게 펴졌다.

그 미국인이 유창한 발음으로 말했다.

"백인이었다면 협회로 들어오라 한번 더 제안했을텐데 아쉽군."

그 차별주의자가 차별하는 것은 비각성자뿐만이 아니다. 칠십 년간 우월감에 찌들며 로버트 데이비스는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우월하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백인이므로 백인우월주의에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동양인에게 기회를 두 번이나 주기는 아깝지. 너무나도."

<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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