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데드 김유현 (1) >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날 지지한다고 밝힌 집단들이 있고······그것들 이용하면 협회와 싸울 때 큰 도움 될 거란 소리죠? 집단 중 하나가 네크로맨서 연합인거고."
"예, 맞아요."
"글쎄요, 과연 협회와 맞설 때 도움이 될까요? 유명 길드도 아니고 들어본 적도 없는 집단들······."
"될겁니다. 걔네들 충분히 세다고 들었거든요."
"이현우 씨가 그렇다면야······혹시 제가 해야할 일 있습니까?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걱정마세요. 살짝 얼굴만 비춰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른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정도라면 뭐······."
"분명 든든한 전력 될 거에요. 게다가 협회가 계속 싸이코패스에 미치광이로 여론몰이 하면서 맛들린 거 같은데, 이참에 제대로 이용해줍시다."
"그래요."
성연은 다른 집단이나 여론몰이에 관한 사실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매스컴에서 벌어지는 이미지 메이킹이나 사회적 매장은 망가진 세상에선 강한 위력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게다가 성연은 과거의 경험으로 아주 쉽게 물타기 당하며 매순간 태도를 바꾸는 군중을 직접 경험한 적 있었다. 그 경험이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래서 성연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말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노력해서 쌓아올린 힘과 언데드 군단은 거짓 선동이나 날조 따위에 의해 무너지지 않으며, 언론사가 게시하는 기사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 격변 이후의 세상에서 중요한 건 정치적 올바름이나 선한 인성이 아닌, 그 인물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냐는 것이다.
이미지나 명분 따위는 관심사가 아닌 가운데 성연이 걱정하는 건 협회가 어떤 형태로 공격해 올 것인지, 그 공격에 어찌 대처해야 할 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이현우가 물었다.
"근데 받아야 할 물건이란 건 뭐예요?"
"있습니다, 중요한 물건."
"중요한 물건이 영국에 있어요? 누가 보관하고 있는데요?"
단순한 호기심에 던진 질문에 성연은 덤덤히 답했다.
"레베카 블런트요."
***
나탈리는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다.
그 유명세는 퇴폐미가 물씬 풍기는 얼굴이나 탄탄한 몸매 덕에 생긴 것이 아니다. 나탈리는 너드에 불과하던 네크로맨서를 귀족 반열에 올려놓은 강력한 각성자들 중 하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웅이라 불리는 반열에 속해있었다.
여인은 협회로부터 공식적으로 A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A급 네크로맨서란 난전에서 아주 강력한 전력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너드? 좆까는 소리하네.」
나탈리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유저요, 밀리터리 덕후였다.
군사 무기와 군경에 관해 열광적으로 탐구하는 여인은 일으킨 언데드 군단을 아주 창의적으로 구성했다. 유닛 관리나 효율적인 편성, 운영이 집약된 게임을 즐기던 인물이 군에 관한 전문적 지식까지 가진 채 네크로맨서 능력을 얻었을 때 그 시너지는 이루 말할 것 없었다.
두려움 없이 싸우는 언데드 군인들은 난전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일반 군인보다 전투력이 우월히 뛰어난 언데드 군인들이 수류탄을 쥔 채 괴수의 입 속에서 자살 테러를 감행하거나 하는 작전까지 수행하자 그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그리 여러 희생을 감행해 이십 미터 괴수 하나를 죽이고나면 전력은 순식간에 급상승했다. 생체 전차가 탄생하는 것이다.
네크로맨서의 활약이란 당연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 빛나는 위업으로 네크로맨서는 이제 너드나 네크로필리아가 아닌 귀족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제대로 된 대접에 네크로맨서들은 크게 감격했다.
이참에 네크로맨서들은 자기들만의 연합을 구성했다. 그 연합장은 당연히 큰 공을 세운 나탈리였다.
연합은 쏟아지는 칭송을 달콤하게 맛봤다. 평생 찐따 취급을 받던 이들이 모두에게 대단한 사람이라 대접받는 상황이란 아주 강력한 쾌락으로 다가왔다.
그 칭송은 끊기지 않았다.
던전이라 명명된 지하미궁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들보다 쓸모없고, 힐러들보다 징징대는 찐따 새끼들······.」
이 지하미궁의 등장에 네크로맨서들의 명예란 순식간에 추락했다.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퇴물'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이 그들은 영 기껍지 않았다. 한 번 달콤한 칭송을 받아봤다면 다시 너드 취급받던 시절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네크로맨서 연합은 자기네들이 다시 명예를 되찾길 바랬다. 그러던 와중, 놀라운 사실을 전해들었다. 대단한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
「유성연」
그 인물은 다케다 유이치를 살해한 것은 물론이요, 과거 김유현 헌터를 살해한 적 있었다. 이 영웅적인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 무려 네크로맨서였다. 연합은 이 남자를 간판으로 세울 수 있다면 다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소원권을 얻을 강력한 후보가 저 한국인 네크로맨서인 가운데, 어쩌면 변하게 될 세상에서 한 자리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몇몇 연합원들과 연합장 나탈리는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열렬히 밝혔고 기어이 연락을 받았다.
영국에서 만나기로.
"언제 온다는거야? 나 한가한 사람 아닌데······."
"아쉬운 사람이 기다려야죠.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우리 자기, 햇빛 오래 받으면 살 다 타는데······."
"아니 씨발, 밖에서는 그 지랄하지 말라고 했지? 대체 왜 그러는거야? 이런 자리에 그 좀비 새끼를 데려오면 어떡해."
"왜요? 무엇도 저와 제 허니를 떨어뜨릴 순 없어요."
"제발······걔 햇빛 2시간 이상 받으면 피부 까맣게 되는 게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살 타면서 녹아버리잖······."
"아, 걱정해 주시는 거군요? 괜찮아요. 썬크림 듬뿍 발랐어요."
당당히 말하는 제임스를 보며 나탈리는 말하길 그만두고 한숨만 연신 뱉었다.
기다리던 시간이 기어이 두 시간이 넘어, 제임스가 여친이라 부르는 여성형 좀비의 몸이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다.
"나탈리? 네크로맨서 연합장?"
선글라스를 낀 동양인 청년이 나타났다.
나탈리는 누구냐고 물으려다 그 청년 뒤에 서있는 네크로맨서를 보고 신음했다. 정확히는 그가 일으켜 데려온 언데드를 보고.
"오, 맙소사······."
"우리를 지지해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어디 앉아서 대화할 만한 곳 없을까요?"
나탈리는 그 동양인이 놀라울 정도로 유창한 발음을 구사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관심사는 오직 한곳에 집중되었다. 간단히 제작된 듯 보이지만, 무척 심도있고 정밀하게 짜여진 저 언데드에게.
'대체 연구를 얼마나 거듭해야 저러한 경지에······?'
옆에 선 제임스도 비슷했다.
같은 계통의 각성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우승 후보로 달리고 있다는 저 한국인 네크로맨서란 상상보다도 더 초월적인 인물이었다. 줄을 타거나 연합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더라도, 저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숭배하고 떠받들만한······.
"이현우 씨? 얼굴 비췄으니 가도 됩니까? 자꾸 연락해서 어디냐고 재촉하는데, 아시다시피 걔가 워낙 미친년이라."
"어우, 그분께서 부르시면 바로 가셔야죠. 제가 잘 말할게요. 그런데 여기 영국이니까 말씀조심 좀······차라리 영국 여왕 욕을 하세요."
두 네크로맨서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성연은 무심하게 고개를 까딱인 뒤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탈리는 순간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이를테면, 저 놀랍도록 정밀하게 짜인 언데드는 어느정도로 강할까에 관한 것. 훌륭한 구성만큼이나 과연 기능도 뛰어날 것인가? 나탈리의 이 호기심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을 개시했다.
그 행동이란 난데없이 습격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다. 각성 능력을 일으켜 저 언데드 내부를 훑어보고자 함이었다.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선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취급되는 행위다.
상대의 언데드를 빼앗으려는 의도나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아주 치명적인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탈리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참지 못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볼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뭔······.'
나탈리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저 한국인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를 들여다 보려고 한 순간, 끈적한 시선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쏟아졌다. 나탈리는 자신이 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선을 넘어가는 순간 나탈리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로 한순간에.
나탈리는 일으켰던 각성 능력을 곧장 회수했다. 그와 함께 오싹한 시선들도 사라졌다.
남아있던 동양인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안색이 안 좋으신데 몸상태가 안 좋으십니까?"
"아, 그게 아니라······."
"나탈리.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건 좋지 않아요."
다른 말로 얼버무리려던 나탈리의 얼굴이 굳었다.
동양인 청년, 이현우는 능글맞은 말투로 말했다.
"내 친구는 두 번 봐주지 않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나에게 묻고 이야기도 나와 합시다. 저 예민한 친구 괜히 건드리지 말고."
그제서야 나탈리는 저 네크로맨서뿐만 아니라 이 동양인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충동적인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것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위해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
"그러죠."
사과를 전함과 함께 자신을 '현우 리'라 소개한 동양인과 네크로맨서 연합은 공적인 대화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나탈리는 이제 실수 따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삼십 분 뒤, 연합장 나탈리는 공적인 대화가 아니라 아주 사적인 말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약에라도 취한 것처럼 나탈리는 물어보지도 않은 가족사나 아픈 과거 따위를 쏟아냈다. 이현우는 인자하게 웃으며 그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
이 사기 전과범의 능력이란 과연 인간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상대의 기억을 읽어내고 지금 생각하는 바를 독심술보다 뛰어나게 잡아낼 수 있는 능력. 나아가서는 상대의 이상형에 가깝게 외모와 목소리, 풍기는 향기와 사소한 버릇까지도 바꿀 수 있는 힘은 테이블을 마주하는 협상에서 패배할 수 없는 무기였다.
***
"왜 이렇게 늦었어?"
레베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성연을 맞이했다. 이현우가 협상을 위해 자리를 옮긴 가운데 결국 성연은 한국계 미국인을 통역사로 다시 불러야만 했다. 잔뜩 긴장한 스티븐 최가 레베카의 말들을 통역했다.
"영국까지 꽤 오래 걸리던데."
"그래?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사족은 됐고, 물건은?"
지나치게 간결하며 본론만 툭툭 던지는 성연 탓에 스티븐 최는 통역하며 얼음장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물론 레베카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물건 잘 챙겼지. 여기."
레베카가 고급스런 쇼핑백을 슬쩍 들었다. 성연이 그걸 잽싸게 낚아채려 하자, 레베카는 쇼핑백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며 웃었다.
"그냥 주긴 아쉬운데. 너 이거 받으면 또 어디로 도망갈 거잖아. 고작 며칠 떨어져 있었는데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너랑 같이 있는 게 진짜 재밌단 말야······."
"어쩌라고. 안 줄거면 왜 부른거야?"
"줄거야. 근데 하나만 약속해. 세 번째 이벤트 시작되면 같이 다닌다고. 응? 진짜 심심해. 여기서 책만 읽는 것도 지긋지긋하다고······."
"어."
성연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 짧은 답변에도 레베카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곤 꽉 안고 있던 쇼핑백을 기꺼이 건넸다.
"자!"
쇼핑백을 받아 안쪽의 물건을 흘끗 바라본 성연은 자신이 기억하는 무기와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이것으로 언데드 군단은 완벽한 비대칭 전력이 되었다. 김유현의 언데드가 생전의 힘을 진정하게 되찾는다면, 성연은 S급과 견줄만한 무력을 가진 언데드 둘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베카가 웃으며 성연에게 말했다.
"하나 말해줄 거 있어."
"뭔데?"
"로버트 그 꼰대 지금 여기 와 있어. 영국에."
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영국에 올 이유가······네가 불렀나?"
"설마. 나 포섭하러 온거야. 왕웨이 그 아저씨, 여전히 적극적으로 움직이질 않잖아. 그럼 페도 새끼랑 김유현이 죽었으니 이제 실질적으로 S급 각성자는 둘 남은거나 다름없는데, 그 꼰대 입장에선 나만 자기편으로 만들면 S급 독점하는 거니까 바로 게임 끝이라고 생각하는거지······."
"포섭······."
"생각해봐. 너, 내가 꼰대쪽에 붙으면 살아남을 자신 있어?"
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로버트 데이비스와 레베카 블런트의 조합이란 생각하는 것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네크로맨서와 대마법사의 조합도 그만큼이나 끔찍하다. 이 초월적인 영국인 대마법사는 혼자 싸우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싸울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로버트 데이비스도 그 사실을 알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 방문한 것일테고.
"알면 나한테 잘해. 나 되게 제멋대로다?"
"······그래."
"아, 그리고 협회장 따라서 각성자 군단도 몇 왔다는데······네크로맨서 연합인지 뭔지하는 것들 소탕하러 왔대. 걔네가 너 지지한다고 밝히자마자 그 사형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들은 다 죽이겠다면서······."
"네크로맨서 연합?"
"왜, 알아?"
안다. 방금 전 얼굴만 슬쩍 비추고 왔던, 이현우가 만난다고 했던 인물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 감방 동기도 위험할 지 모른다. 성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심각해진 표정을 보며 레베카가 넌지시 물었다.
"도움 필요해?"
"아니."
협회의 각성자 군단이란 S급 각성자들을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이다. 만만한 적이 아닐 것이다······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방금 한 영국인에게 건네받은 물건으로 하여금, 치열하게 벌어져야 했을 전투는 지나치게 쉽게 종결될 것이다.
"도움은 이걸로 충분해."
쇼핑백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와 함께 그어어거리며 뒤편에 선 한 언데드가 움직였다.
성연은 물론 레베카에게도 익숙한 얼굴을 한 언데드였다.
김유현.
"······오랜만에 킴이 양학하는 거 보겠네."
과거 대한민국의 최강자, 다섯 번째 S급 헌터.
< 언데드 김유현 (1) > 끝
작가의 말
+제가 예전부터 만들어 둔 김유현 정보창 드디어 내일 쓰겠네요!
오늘은 늦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표지 러프 나왔습니다!!
+ 표지는 완성된 뒤 다시 올리겠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