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유성연 >
유성연의 가정은 빈곤층에 속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총 셋으로 구성된 가족은 원래 부족함 없이 살았다.
철 없는 아들이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면 아버지는 기꺼이 사주었다. 어머니는 제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려 돈을 아끼지 않았다.
외동으로 태어난 소년은 자신이 입는 옷들이 하나같이 브랜드 있는 것이며 또래에 비해 넓은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당시에 알지 못했다.
"엄마랑 아빠랑 평생 살고 싶어요. 평생······."
유성연은 소박하게 이 행복을 영원히 누리길 바라는 소년이었다.
소년에겐 안타깝게도 그 소망이란 망가진 현실에서 실현되기 아주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각종 기업에서 벌어진 비각성자 차별이 아버지의 직장에서도 벌어졌으며, 각성한 이력 없이 그럴듯한 대학이 경력의 전부이던 아버지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는 일과 같은 해프닝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어린이가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복잡했다.
유성연은 회사에 출근해야 할 아버지가 집 앞의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막연하게 아빠를 자주 본다는 생각에 이 철 없는 아들이란 기쁘게 웃었다.
"아들? 미안. 우리 또 이사 가야할 것 같······."
어느날부터 유성연의 집은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었다. 거듭된 이사와 함께 그 가정이 살아가는 집은 변해갔다. 대리석 바닥과 고급스런 인테리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사를 다섯 번 간 뒤에는 이제 세 명이 지내기엔 비좁게 되었다.
기껏 사귄 친구들과 늘 금세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어린 소년은 기껍지 않았다. 외동아들의 불평에 부모님은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유성연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미안하다는 말이란 어떠한 꾸중보다도 날카로이 가슴을 찌르는 까닭이다. 행복을 바라는 소년은 부모님의 얼굴에 드리워진 우울함이 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절대로.
"괜찮아!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면 좋고, 맨날 똑같은 집에만 살면 질리니까······."
이제 여름 휴가철이나 연휴에 가까운 바다로 놀러가거나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유성연은 행복했다.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부모님의 금슬은 여전히 좋았고, 아들에겐 사랑이 듬뿍 쏟아졌다. 게다가 여전히 주말마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우리집은 여전히 부자이며 살만한 것이 분명했다. 다만 모종의 사정 때문에 계속 이사를 다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직장이 시골에 있다거나······.
그때까지도 소년은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허리 통증을 참으며 식당일을 나간다는 사실과, 살면서 운동이라곤 해 본 적 없는 공부벌레 아버지가 공사판 일을 나간다는 사실을.
"아빠······."
"어. 아들, 깼어? 미안."
자다깬 유성연은 등이 굽어진 아버지가 소리 죽여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을 보았다. 전에 비하여 까맣게 탄 피부에 면도를 하지 않아 꺼슬한 턱수염이 보였다. 아버지에게선 진한 술냄새가 났다. 유성연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울컥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수염 좀 깎아!"
"그래, 아빠가 내일······."
"몸도 좀 씻고 제발! 얼굴도 더럽고 술냄새 나서 창피하다고. 아빠 완전 거지 같아,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라고 하기 창피할 정도로······."
버릇 없이 쏟아낸 어린 아이의 말에 아버지는 호통치지 않았다.
쓰게 웃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어린 유성연은 씩씩대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있던 소년은 어느새 잠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일어났을 때 소년이 보는 세상이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정말이지 아주 많이.
요란한 소음들과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그 뒤로는 음식물을 씹어내는 듯한 으적거리는 소리와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꿈 같았다. 악몽.
갑자기 아버지에게 심술을 부린 탓에 마음이 편치 않아 꾸게 된 악몽······유성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깰 수 있을 거라고.
땀에 흠뻑 젖은 아버지가 자신을 번쩍 들어올려 황급히 장롱 안에 숨길 때까지도 그리 생각했다.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란 걸 깨닫게 된 건 다음 순간이었다.
"안돼요······살려주세요. 제발."
"더럽게 재잘대네···아줌마, 좀 닥치고 있으라고요."
"왜 그러세요······제발······."
장롱 틈새로 보이는 광경이란 비현실적이다. 테레비에서 사람들을 구해주는 히어로이자 우리의 든든한 이웃이라 소개된 인물. 그 영웅은 괴수들이 몰려든 가운데 부모님의 머리채를 붙잡고 창 밖에 내놓은 뒤 흔들며 웃고 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정확히 다섯 명의 헌터들은 웃고 있었다.
그 비극을 지켜보며 소년은 입을 틀어막고 끅끅대며 울었다. 거주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괴수와 헌터들이 지나가고 한참 뒤까지도 유성연은 울었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는 모든 것을 뿌옇게 보이게 만들었다. 남겨진 아이를 발견한 어느 어른이 신고를 했고, 출동한 구조대원이 뭐라 물으며 손을 내밀 때까지도 그랬다.
어린 소년의 시야에서 이제 모든 것은 색채를 잃고 흑백이 되었다. 저 구조대원도 다르지 않았다. 앞에서는 영웅적인 양 행세하다가, 이면에선 어떤 참극을 벌일지 모른다. 유성연은 발작을 일으키듯 괴성을 내지르며 구조대원을 밀쳤다. 한참이나.
그날 소년은 모든 것을 잃었다.
***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 삐뚤어진 소년에게 많은 어른들이 찾아왔다. 상담사나 자원봉사자와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안타깝게 부모를 잃은 이 소년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이런 말도 들었다.
개에게 물린 상처는 개를 죽인다고 아물지 않는다.
무슨 연유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유성연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님이 괴수들의 입 속에 삼켜지던 모습, 초라하기 그지 없는 장례식을 기억했다.
그러나 사람이 으레 그렇듯 시간에 의해 강렬하던 감정은 서서히 희미하게 희석되었다. 트라우마를 꽤나 이겨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리 노력하라는 말을 들었다.
유성연은 붙임성 좋던 소년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테레비에 나오는 뉴스를 보기 전까지 그랬다.
「김유현 헌터가 알리는······.」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숨이 턱 막히듯 강렬한 감정이 꿈틀 올라왔다. 그 순간 유성연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말이 개소리임을 깨달았다.
응어리진 감정이란 시간이 희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소년은 깨달았다. 이 비극과 부모님의 죽음에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며, 괜찮아 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저것들이 이 사회에 당당히 존재하는 한.
"여보세요? 예,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드렸······."
유성연은 정말 오랜만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노란 인간을 활동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이다. 이 자극적인 고발과 사연에 관심 갖는 이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저 미치광이는 전부터 여론이 좋지 않았다. 전과 4범이라는 질 나쁜 과거로 자격 논란이 있었으며 위대한 영웅들의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성과가 부실한 인간이었다.
"네가 유성연이니? 다 이야기 해보렴."
사건의 진상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기자도 나타났다. 이제 청소년이 된 유성연은 그 미친놈들을 정의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느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빠짐없이 사연을 적어 게시물로 올리기도 했고, 피켓을 들고 협회 한국 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그 과정이란 과연 순조로웠다. 이대로라면 협회는 논란의 중심에 선 김유현 헌터를 자격박탈하고 처벌할 것이다······.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대한민국의 김유현, 대균열 사태에서 놀라운 활약······.」
「킴이 역사적인 사건을 해결했다!」
김유현이 영웅적인 일을 벌인 즉시 여론이 바뀌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스컴에 의해 쉽게 물타기 당했고 10대 청소년이 제기했던 논란이란 순식간에 묻혔다.
전세계가 코리아에 열광하는 때에 누구도 과거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몇 번과 어려운 이들에게 통 큰 기부를 하는 것. 그러면서 요즘 안티팬들의 음해에 시달려 힘들다고, 우리 안티팬 분들도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개소리를 뱉는 것으로 사태가 종결되었다.
전과 기록 있는 살인사건 용의자는 어렸을 적 탈선 좀 했던 대한민국의 슈퍼 스타로 거듭났다. 도와주겠다던 기자는 연락이 끊겼다. 그 기자의 이름을 검색한 결과 김유현을 빨아제끼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기관들은 물론 온국민이 칭송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자국의 땅에서 탄생한 초월적인 초인이 마침내 자신이 국가전력급임을 증명한 것이다. 국력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가장 신난 것은 국방부였다.
군대를 대신할 수 있는 개인이 나타났으므로 정부는 방산 비리에 관해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챙기는 것 일부는 정치인들 주머니로도 두둑히 들어가게 된 까닭이다.
이제 「국방부 예산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라는 농담은 더 이상 우스개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국방부는 예산에 대한 전체적인 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무기나 사업에 관한 명목상의 감사만 몇 번 이루어졌다.
횡령이 자연스레 벌어짐에도 경각심을 세워줄만한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국가전력급 초인이란 그 정도로 위대한 것이었다.
북한이 저자세로 나오며 소아성애자 초인을 믿고 까불던 일본도 넌지시 과거의 일들을 사과하는 마당에 국민들은 국뽕에 거하게 취했다. S급 헌터를 보유한 국가와 전쟁을 벌이려는 멍청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뀔수도 있다는 설이 돌았다. 군대의 부름을 받을 예정이었던 청년들이 아주 기뻐했다.
김유현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결국 그 10대 청소년은 안일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재판관의 심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억울함을 풀고 정의를 집행하겠다고.
개에게 물린 상처는 개를 죽인다고 아물지 않는다고?
분명 그 상처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연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는다면 이 상처는 곪고 썩어들어가 곧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복수를 할 것이다. 어떻게든 저것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식 무기가 통하지 않는 국가전력급 초인에게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 고민하던 와중 하늘이 유성연의 손을 들어주었다. 21세가 되는 해에 억울함을 잊지 않은 소년은 초인이 되었다.
허나 판정 검사 결과는 복수를 꿈꾸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판정 등급: D」
「각성능력: 네크로맨서」
고작 두 명의 인간 시체밖에 일으킬 수 없는 총량.
그 초월적인 초인을 살해하는 건 물론이요, 경호원들을 대동한 대기업 임원이나 정치인도 노리지 못할 형편없는 능력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유성연이 살아가는 목적은 복수 하나뿐이다.
이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이라도 써먹기 위해서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던 와중, 오래 전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적 있던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모서리가 뜯어졌으며 낡디 낡은 책.
'우리 아들은 정말 이게 좋아? 신기하네. 아빠는 어렸을 때 공룡 엄청 좋아했······.'
곤충백과사전.
유성연의 어릴 적 꿈은 곤충박사였다.
오랫동안 펴보지 않은 그 책의 페이지를 다시금 넘긴 청년은 방 안을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로 짓밟아 눌러 죽였다. 그러곤 다리가 꿈틀대는 사체를 천천히 되살렸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재구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부터 뜯어고치려 노력했다.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인간의 몸을 완벽히 개조하는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엄지보다도 작은 벌레라면. 상대적으로 그 내부 구조가 단순한 벌레라면······어쩌면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레 따위를 경계하는 초인은 없으므로 기습하기도 편리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성연은 곤충백과사전을 시작으로 각종 서적을 구입하고 아주 자세한 것마저도 연구했다. 청년이 일으키는 벌레들은 천천히 발전했다. 손톱만한 날벌레는 이제 개나 고양이의 급소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나중에 이르러선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총알처럼.
청년은 계획을 세웠다. 복수에 관한 길고 완벽한 계획.
일단 민간인 신분으로 그 국가적인 초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기에 헌터가 되고자 했다. 그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 등록을 위해선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가까운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점장은 친절했고 손님이 많지 않아 근무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러던 날이었다.
"애들 시키시지, 왜 오셨습니까?"
"서민적인 이미지도 챙기고 눈치 안 보면서 쉬는 시간도 챙기는 거지, 새끼야······."
다섯 명의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유성연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다섯 명이.
***
가슴이 두근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그들이 말하는 담배를 건넸다.
"이거 말고요. 저 옆에 있는 거······."
"아, 예. 죄송······."
"괜찮습니다. 근데 혹시 사인 해드릴까요? 나 알죠?"
"당연하죠. 김유현 헌터······."
"알면서 왜 말을 안해요? 내 사인이 얼만데!"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 나머지 네 명도 따라웃었다. 성연은 억지로 입꼬리를 밀어올렸다. 어색하기 그지 없는 웃음을 보며 김유현은 유명인을 앞에 두고 긴장한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성연이 공부를 위해 가져온 노트를 건넸고, 그는 흰 종이에 제 이름을 유려한 필체로 휘갈겼다. 계산을 마친 상황까지도 유성연은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유명인이 눈 앞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길고 복잡하게 세웠던 살인 계획을 실시간으로 수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기회는 절대 다시 찾아오지 않을테니까. 지금 죽여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정면에서 마주한 상태라면 불가능하다. 성연은 담배를 받아들고 편의점을 나선 김유현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담배 한 개비를 물자 동료가 그 끝에 불을 붙였다.
낄낄거리며 다섯 초인들이 대화했다. 그 유명인들을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달라느니, 사인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성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가 편의점을 방문한 목적이 단순히 담배 세 갑뿐이 아니라 서민적인 이미지메이킹이요, 팬서비스를 위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담배를 다 태우는 즉시 떠나진 않을 것이다. 충분히 여기 머무르며 자신에 관한 미담이 퍼질 구실을 만들테니까. 그렇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성연은 카운터에서 나왔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혹시 결제 다시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
"제가 알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서 서툴렀나봐요, 죄송합니다. 다시 해주시면······."
"아, 그래요. 이거만 태우고 금방 다시 해드릴······."
김유현은 가식적으로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성연은 편의점 유리에 손을 슬쩍 올렸다. 불빛에 이끌려 다닥다닥 붙었던 날벌레들 몇이 손바닥에 눌린 채 몸이 터져 죽었다. 재료가 생겼다. 날개가 뜯어지고 다리가 부러진 벌레 몇이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된 채로.
성연은 저 초월적인 헌터가 혹여나 이 재구성의 과정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바로 좀 해주세요. 화장실이 급해서."
"아, 이거만 태우고 해드린다니까."
"안되는데, 아 진짜 김유현 인성 좋다는 거 다 거짓말이었······."
"아니 저기요. 내가 안 해준대? 왜 이래?"
감히 편의점 알바생이 거슬리게 구는 상황에 김유현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나왔다.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하던 다른 사람들은 이 유명인의 편을 들었다.
"뭐래. 해주신다잖아요!"
"인성 얘기가 왜 나와? 웃겨."
"편돌이 새끼, 급발진 뭐야?"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성연이 의도한 그대로이다.
김유현이 재차 가식적으로 웃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때였다.
"괜찮습니다. 뭐 그러실수도 있···커흠!"
"왜 그러십니까?"
"아, 담배 연기······케헥!"
연초를 문 채 중얼거리던 김유현이 연신 기침했다. 성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김유현이 가진 능력의 원천은 호흡이다. 그 호흡과 특유의 무기가 얽혀 국가와 맞먹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숨이 순간 흐트러졌다. 1초도 되지 않는 틈.
성연의 생애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다. 망설임은 없었다. 자그마한 벌레 언데드가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흐트러진 호흡 틈새로 끼어들어 김유현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그 간지러운 감각에 다시 한 번 재채기를 했다.
"아, 씹······콧속에 벌레······켁, 켁!"
김유현은 두 손으로 코를 부여잡았다. 혹시나 굴욕적인 사진이 찍힐까 우려하여 한 손으로 가리고, 한 손으로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호흡이 흐트러진 것에 더해 두 손까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성연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채 김유현에게 다가가며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알에 가까운 추진력을 내도록 개조된 벌레 언데드는 코털 따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말 걸어서······."
한 손은 김유현 쪽으로 다른 한 손으로는 뒷주머니를 향했다.
칼이다. 문구점에서 파는 커터칼보다 훨씬 날이 잘 선, 인간 피부를 무처럼 썰어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날카로운 칼.
복수 계획을 세운 이래 성연은 가방 안에 많은 무기들을 갖고 다녔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도록. 카운터에서 나오며 성연은 그 무기 중 하나를 챙겼다.
모두가 이 유명인이 담배 연기에 의해 콜록대는 것을 걱정하는 가운데 유성연은 그 손잡이를 잡고 꺼내들었다. 동시에 벌레 언데드를 움직였다.
날갯짓이 있었다. 그 날벌레는 일순간 코점막을 뚫고 머리속으로 파고들었다.
성연은 이 초인이라면 짧은 순간 곧바로 대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호흡을 어떻게든 되찾아서 모든 위협을 몰아내는 식으로.
그래서 꺼내든 칼을 휘둘러 김유현의 목덜미에 쑤셔넣었다. 타고난 능력이 더없이 뛰어난 이 초인은 몸뚱이만큼은 일반인에 가깝다. 그리고 일반인의 피부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파고드는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다. 칼날이 목을 뚫었다. 입가에서 피가 울컥 섞여서 쏟아졌다. 역류하는 혈액과 기도에 구멍이 뚫린 상황에서 숨을 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에 아무도 행동하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다.
"뭔······."
그때 나머지 네 명의 초인이 무너지듯 뒤로 넘어졌다. 다른 벌레 언데드가 움직인 결과다. 편의점 천장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 언데드와 여러 바퀴벌레들. 성연의 명령을 듣고 전투를 위해 기어나온 벌레들이다. 가장 먼저 바퀴벌레들이 땅 아래에서 솟아 나머지 넷의 발바닥을 뚫고 발등까지 관통했다. 찌릿한 격통, 그 직후 투명하고 얇은 거미줄이 그들의 발목을 휘감고 넘어뜨렸다.
본래라면 불가능하지만 세포 단위로 새로이 재구성된 거미 언데드는 스파이더맨을 물었던 슈퍼 거미보다 훨씬 강력하게 진화했다.
헬리콥터가 이륙하는 듯한 굉음이 몇 번 울렸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두 발이 묶여 넘어진 네 초인은 우선 눈알을 잃었다. 비행한 날벌레가 가장 먼저 그 눈알을 부순 까닭이다. 그제서야 주변에 모여있던 이들과 초인들이 겁에 질린 비명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넘어지고 시각을 상실한 초인들 중 몇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도망치려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누구보다 믿고 따른 위대한 영웅이 목에 칼을 맞은 가운데 당연히 과감한 살인을 강행한 인물도 그만한 강자라 착각한 까닭이다.
싸울 의욕을 완전히 잃은 초인들이 울음에 가까운 신음을 내는 가운데 성연은 다른 네 명에게 신경을 두지 않은 채 김유현의 목에 꽂았던 칼을 빼내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동자에 성연의 얼굴이 비추었다.
김유현이 힘 없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의식이 완전히 날아갔다.
점막을 파고든 벌레가 기어이 두개골을 뚫고 뇌를 박살내는 것을 성공했다. 김유현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성연은 멈추지 않았다. 이 녀석은 악마다. 인간이 아닌 악마.
방심하지 말고 확실하게 죽여야만 한다. 뇌가 걸레짝이 된 시체를 두고도 성연은 김유현이 저항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후경직으로 꿈틀대는 시체 위에 올라타서 두 팔을 무릎으로 누른 채 머리채를 잡고 한 손으로 칼질을 시작했다.
벌레 언데드에 의해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에 상처를 새겨넣는 그 과정은 부관참시보다도 끔찍한 형벌이었다. 목을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 해체하고 보는 것만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얼굴을 완전히 난자해 찢어놓았다.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은 세계적인 유명인이 토막 살인 당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도망치지도 못했다.
이제 더 이상 김유현의 몸에서 핏물이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로 얼룩져 무딘 칼날을 빼냈다. 그 다음으론 나머지 넷의 초인들을 김유현과 똑같은 시체로 만들었다.
경찰이 뒤늦게 도착했을 때, 그 사건 현장이란 끔찍했다.
정말이지 아주 끔찍했다.
그 날 국가의 모든 기관과 저명한 전문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떤 이십대 편의점 알바가 국가적 영웅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의 팀 4명도 함께.
***
당연하게도 군대를 대신하던 위대한 영웅을 살해한 청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잔혹한 살인을 벌인 청년에게 당장 사형을 집행하라는 국민 청원은 419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온국민이 한마음 되어 분노했다.
그 살인자가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던 청년이요, 오랫동안 1인 시위를 벌인 바 있다는 과거의 사정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국민들은 이 분노에만 집중했다.
몇몇 이들이 유성연의 과거 행보를 보며 이건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한 청년의 복수극과 비슷하다는 게시물을 올렸으나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올린 즉시 검열되어 삭제되거나, 각종 욕설들이 댓글에 달릴 뿐이었다.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살인마를 옹호하는 의견은 엄청난 비추천 수를 받았다. 반대로 김유현을 애도하며 그 싸이코패스의 사형을 당장 집행하라는 의견들은 모두 베스트 댓글이 디었다.
살인마 유성연에 대한 언급을 하는 이들은 그게 팩트건, 뇌피셜이건 상관없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감히 몸 바쳐 우리 영토를 지키던 영웅을 살해한 개새끼를 옹호하는 게 말이 되냐는 이유였다. 그 국민들의 분노는 과거 논란이 된 바 있었던 위안부나 독도 문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탔다. 말실수를 한 연예인이나 정치인, 뉴투버들이나 SNS 셀럽들이 매장당하는 가운데 네티즌은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그들을 까내렸다.
누군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그 살인마도 듣고보니 사정이 있다던데라는 소리를 하면 키보드 워리어들이 나서 신상을 털고 공개처형하며 비웃었다.
'유성연 사형 집행 챌린지'라 명명된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관심종자들이 그 사형수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날조해 퍼뜨렸다. 아직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 불과할 소위 잼민이들이 뉴튜브에 저격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과거 1인 시위를 한 바도 있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청년은 고아라 배운 것 없으며 감정에 곰강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요, 소시오패스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더하여 세계헌터협회까지 강력한 압박을 넣는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이후 집행하지 않았던 사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했다.
마침내 중앙각성자교도소에 온 국민의 분노를 한몸에 받는 사형수가 수감되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려되던 사형 집행보다 먼저 세계에 격변이 벌어졌다.
1968년 개봉한 혹성탈출 원숭이 외계인에 불과하던 침략자들이 1954년에 개봉한 괴수 영화의 주연, 이십 미터 고질라가 된 것이다.
안일하게도 개인의 무력에 십 년이 넘도록 의존하던 국가는 찾아온 격변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서 있던 대한민국은 무너졌다. 돌이킬 수 없이 빠르게.
그 격변의 사태 속에서 삶의 목적을 완료한 채 무기력함을 느끼던 사형수는 새로운 목적을 찾게 되었다.
'······죽은 사람을 살릴수도 있나?'
영혼을 맞바꿔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외전. 유성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