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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47화 (47/111)

< 랭커 유성연 (2) >

협회가 S급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두 가지다.

각성 능력 총량이 로버트 데이비스의 80%를 넘으며 국가 영토 하나를 수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 왕웨이는 그 조건을 충족하며 미국의 슈퍼맨 이후 출현한 최초의 S급이다.

그 중국 출신 초인이 가진 능력이란 괴수를 상대하기에 특화되지 않았다. 원숭이 괴수 무리가 몰려드는 상황에서 영국의 대마법사나 중국의 검객보다 그 중국인이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은 한참이나 비효율적이었다.

왕웨이의 능력은 다른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다른 국가가 침공하려 들거나 독보적인 각성자가 깽판치는 상황에서.

그가 타고난 힘이란 이종으로 분류되는 괴수보다 인간종에게 강력하게 작용했다.

"제발 목숨만······."

"자네 불 있나?"

꺼끌한 수염을 매만지는 사내는 쪼그려 앉은 자세로 널브러진 이들을 내려보았다. 연초를 문 채 라이터를 딸깍이던 중국인은 다소 불만스런 표정이다. 이미 담배 여섯 개를 연이어 피웠으나, 왕웨이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구걸하는 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그는 싸늘한 시체 품을 뒤적이며 라이터를 찾았다.

흐릿하게 피어오른 연기는 일대에 뿌옇게 내려앉았다. 연초 여섯 개를 태웠다 한들 과하기 그지 없는 연기였다. 특수효과에 가까운 연기 속에서 널브러진 남자는 마지막까지 떨며 자비를 구했다.

"여기 있군."

끝에 불을 붙인 뒤 쭉 빨아냈다. 입가에서 쏟아지는 연기란 기묘할 정도로 많았다. 바닥에 힘 없이 쓰러진 이들은 그 연기에 가려진 채 고요하게 죽어갔다.

왕웨이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만히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법과 도덕을 지키지 않는 이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이 땅에 너무나 많았다.

이 중국인은 망가진 세상이 기껍지 않다.

더럽고 추악한 현실에 질린 나머지 조용한 곳에 은거하며 살아갈 계획은 버린지 오래였다.

「아저씨?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선량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착한 것이 죄라도 되는 양 허망하게 죽었던 그 재앙의 날을 왕웨이는 기억한다. 약자라는 점은 죽어 마땅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인간이란 본디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다. 왕웨이는 이 짐승처럼 변해버린 사회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누군지 안다.

노아의 방주를 들먹이며 신인류와 구인류를 나누던 미국인.

버릇처럼 연초를 입에서 떼지 못하는 중국인은 전진한다. 핑 도는 니코틴은 정신을 멍하게 만든다. 여전히 악인은 많다.

왕웨이가 걷는 방향 반대서 달려오는 한 여인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아저씨, 도망쳐요! 저기 미친 새끼들이 총 쏴 갈기면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왕웨이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여인이 도망쳐 온 방향으로 느긋하게 나아갔다. 오랫동안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 늙은 동양인의 외모를 알아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여인은 다시금 소리쳤다.

"미쳤어요? 이리로 와요! 저기 온통 미치광이들 천지라고요!"

"미치광이들?"

왕웨이는 짧게 답했다.

"잘됐군."

***

「본 게임」이라 명명된 재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초인들만이 아니다. 소시민이나 다름없는 일반인들조차 강제적으로 참여케 된다.

더하여 이젠 하루에 일정한 괴수를 사냥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다. 결국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주부나 청소년들은 총을 들고 전장에 나와야 했다. 더불어 살던 이웃과 친구, 친척들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인간이란 없었다.

다행히도 여러 명이 모여서 탄환 세례를 퍼붓거나 형편 없는 각성 능력을 모아서 쏟으면 하루에 100포인트를 모으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장으로 나온 소시민들이 걱정해야 하는 건 이십 미터 고질라들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 사냥을 즐기는 미치광이들.

손쉽게 포인트를 버는 것을 넘어 살육을 즐기게 된 정신병자들은 괴수보다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수 킬로미터 밖에서 냄새를 맡지도, 자잘한 소리를 듣지도 못하면서 인간의 습성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어디에 생존자 캠프가 있을지, 어느 시간에 사람들이 경계심을 놓고 방심하는지······.

그리하여 망가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건 사람이 되었다. PK를 일삼으면 닉네임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둥의 특징이 있는 게임과 달리, 현실에선 살인자와 소시민을 구분하는 법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상 좋은 청년이 강간범이며 연쇄살인마인 사례는 드물지 않다.

천박하게 변한 땅에서 서로 간의 신뢰라는 개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자신이 죽인 인간들의 가죽을 질질 끌며 트로피처럼 자랑하는 미치광이들이 지나갔다.

아프리카의 한 생존자 캠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초라하고 부실하게 세워진 건물 안에 숨어든 아홉 명의 무리는 여기에 갇혔다.

바깥으로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오토바이요, 지프 따위를 탄 미친놈들이 주변을 돌며 한 손에 총을 든 채 나오라고 괴성을 지르고 있는 까닭이다.

무리의 대장이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저놈들 우리 가지고 놀고 있는 거 같은데······."

"총 막 쏴 갈기면서 나가죠. 길동무로 몇 명은 데려가야 억울하지 않을텐데."

"그럴 순 없어. 여기 사람들 다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어."

대장에겐 이 무리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아침에만 해도 기억한다. 누군가의 아내가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고, 누군가의 아들과 딸들이 우리 아빠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가 내리는 결단이 담는 무게란 무겁다. 얼마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육자였던 선생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애써 의연한 표정으로 쥔 총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본 교육 과정과 도덕을 준수하라 가르치던 선생은 여전히 바뀐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는 상황이건, 살기 위해서 상대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상황이건.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답답하게 굴거에요? 그냥 제가 선두 끊겠습니다!"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그는 건물 주변을 빙빙 돌며 농락하고 있는 미친놈 하나를 조준했다. 그러곤 창문 밖으로 총구를 내민 뒤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버티지 못한 돌발행동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천둥과 같은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는 철컥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으나 그뿐이다. 그제서야 청년은 방금까지 총기에서 맴돌던 열기는 사라지고 싸늘한 냉기가 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개 - 새 -끼들이! 우리 쏘려고!"

정식적으로 군 교육 따위를 받은 바 없는 청년은 자신의 총기가 고장난 줄 알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값싸게 구한 총기이니 불발되었거나, 불량품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건물 외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일제히 울렸고 총성이란 없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괴현상이 펼쳐졌다. 요란한 엔진음을 내던 오토바이나 지프의 범퍼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제자리에 멈추었다.

인위적으로 굉음이나 소음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우연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이상한 상황에 청년은 한 인물을 떠올렸다. 글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문맹에 가까운 청년도 알고 있는 영국의 여인.

등장하는 것으로 모든 분쟁을 멈추고 평화를 불러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이 척박한 땅은 그 유명인이 찾을만한 관광명소가 아니다. 세상이 망가지기 전이든 후이든.

그러나 곧 청년의 생각이 맞았음이 증명되었다.

저 멀리서 금발을 찰랑거리는 여인이 나타났다.

"저게 뭔······."

주변엔 100m를 넘어선 괴생명체와 고질라를 본따 만든 듯한 언데드 군단을 거느리며.

"어어······."

끝도 없이 소리를 내지르던 미치광이들도 지금만큼은 조용했다. 그 신화적인 광경을 마주하고도 감히 괴성을 지를 인물이란 여기 없었다. 100m에 달하는 괴생명체의 어깨에 앉은 인간 좀비가 날붙이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동작 이후, 지프나 오토바이는 물론 거기에 탑승해 있었거나 주변에 즐비했던 미치광이들의 몸뚱이가 반토막났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멍청하게 서 있던 누군가 중얼거렸다.

"군주시다······."

***

발성 기관을 가진 인간 좀비가 입을 열어 성연의 말을 전달했다.

"그래서 여기 다 갇혀있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그랬나? 그럼 이제 다들 돌아가면 될 일이군."

딱딱한 어조로 말하는 좀비를 보며 레베카는 질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 새끼······언제까지 저럴거래. 안 죽인다니까, 진짜 겁 엄청 많은······."

레베카가 합류한 이후 성연은 몸을 숨긴 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모든 소통은 저 인간 좀비를 거쳐서 이루어졌다. 참 대단한 남자였다.

물론 매사 철저한 그 점도 매력적이지만.

이 아프리카 생존자 집단은 좀비의 딱딱한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겁쟁이가 좀비를 내세웠다기보다, 초월자들 특유의 감정 없는 의사전달로 보였다.

성연의 말을 전달받은 이들이 조심스레 말했다.

"예, 덕분에······그런데 돌아가는 길 중간에 저놈들보다 더 위험한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위험한 녀석이라니? 대단한 괴수라도 있나?"

그 말을 들은 성연은 내심 기대했다. 아프리카에서 얻은 글러트니라는 언데드에 썩 만족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어쩌면 다른 쓸만한 재료를 또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저들이 다음으로 전해온 '위험'이란 괴수가 아니었다.

"구역 하나 잡고 거기 지나는 사람들 다 죽이는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통행비 내면 지나가게 해준다는데, 그 통행비라고 요구하는 양이 너무 많아서······."

"하나 있다며? 여러 명이서 한 명이 그 횡포를 저지르는데 못 뚫는다고?"

"예. 그게 가진 능력이 굉장히 특이해서 상대할 수가 불가능에 가까운······."

그 말에 성연은 흥미를 느꼈다. 쓸만한 각성자는 쓸만한 괴수만큼이나 좋은 언데드의 재료이다. 횡포를 저지르는 악인이라면 망설일 것도 없는 가운데 성연은 그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프리카 생존자들은 그 무시무시한 총잡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는 네크로맨서를 말리지 못했다.

통행비 걷는 총잡이에게, 일대의 열병기를 고철로 만드는 마법사와 불사의 군단을 끌고 다니는 저 네크로맨서가 패배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여러 경고를 덧붙이며 생존자들은 떠났다.

성연은 떠나는 이들을 슬쩍 본 뒤 다시 전진했다. 괴수들의 숫자가 줄었다 한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전진하는 와중에 몇몇 괴수들과 마주쳤다.

물론 일본인 언데드와 영국인 마법사까지 합류한 가운데 그들은 이 무리의 적이 되지 못했다. 저레벨 사냥터에 등장한 고레벨 유저처럼 그야말로 학살이 벌어졌다.

괴수들은 이제 먹잇감들에게 달려드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티븐 최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오우쉣······."

아무리 봐도 이 학살의 현장에는 익숙해지지 않은 까닭이다.

옆에 서 있던 레베카가 짜증스레 말했다.

"쉣? 지금 욕한거니?"

"아닙니다. 그 감탄사에 가까운······."

"오우쉣 하지마. 나 그 말 싫어해."

"예······."

뒤끝이 쩔기로 유명한 레베카는 과거 대한민국에 연락했을 때 웬 미친년이 자신에게 쉣이라 중얼거렸던 사실을 여전히 기억했다. 초월적인 대마법사에게 한 마디 들은 스티븐 최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걷는 가운데 척박한 벌판 가운데에 세워진 표지판이 하나 보였다.

「통행비 내지 않을 경우 사살.」

「통행비는······.」

"그 사람들이 말한 녀석, 여기 있나본데요."

대충 휘갈겨 적힌 영어를 읽은 스티븐 최가 통역했다. 그 말을 전해받은 성연은 멈추어서 상황을 살피는 대신 전진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생명 감지 능력을 넓게 퍼뜨렸다.

과연 뿔뿔이 흩어진 괴수들 중간에 사람 한 명이 잡혔다.

이상했다. 통행비 내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인다는 그 인물은 지금 불청객들에게 화나서 달려오는 게 아니라, 숨을 헐떡이며 달아나고 있었다. 이들의 등장에 기겁하기라도 한 것처럼.

'둘, 넷.'

생명 감지 능력 범위에 잡혔다는 건 성연의 '범위' 안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범위 안에 들어온 이상 네크로맨서로부터 도주할 수 있는 부류는 극히 드물다. 마하로 달리는 초인도 도망치지 못하게 저지한 가운데 일반인과 비슷한 달리기 실력을 가진 인물은 금세 잡히게 되었다.

아프리카 땅 아래에 즐비한 사체들 중 하나가 언데드가 되어, 도망치는 인물의 다리를 붙잡은 뒤 두 다리를 분지르고 여기로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죽음의 군주로 발전한 능력에 의하여 성연의 언데드는 이제 한 마리 한 마리가 놀라운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악스런 언데드의 손아귀에 붙잡혀 매달린 사내 하나가 질질 끌려와 성연의 앞으로 던져졌다. 이 땅의 주민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어울리는 흑인이 아니라, 살갗이 조금 탄 동양인이었다.

질질 짜고 있는 얼굴을 마주한 성연은 문득 그 인물과 안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 본 적 있었나?"

분명 안다. 근데 성연은 도통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사내는 끙끙대며 말했다.

"예, 저번에 던전에서 만난 적 있습죠······."

"이름이?"

"김성철요······그때 저 구해주셨던 네크로맨서 맞으시죠······."

이제서야 기억났다. 선발대니 뭐니 하며 형편없는 능력으로 던전을 앞서 공략했던 남자. 브라더 후드 소속의······.

"여기엔 왜 있지? 아프리카에도 선발대 겸으로 왔나?"

"아뇨······한 달마다 구역마다 상납금 걷어서 바쳐야 되는데, 저는 뺑뺑이 잘못 걸려서 아프리카 나와서······."

"상납금? 길드라더니 아직도 깡패집단 같은 짓을······그런데 네가 어떻게 구역을 맡았지? 전투능력은 쥐뿔도 없지 않나?"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대화에 레베카는 갈피를 잡지 못해 답답하단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러던 와중 말했다.

"어, 나 얘 알아. 브라더후드 더러운 일처리 하는 애잖아. 나름 유명한데······."

통역받은 성연이 되물었다.

"유명하다고? 왜?"

"괴수 잡는건 몰라도 사람 상대할 때 엄청 쓸만한 능력이니까."

레베카의 말을 성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누워있던 김성철은 익숙한 목소리를 내는 인간 좀비 옆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레베카 블런트님 아니십니까?"

"영어도 할 줄 알아? 와, 통역사 바꿀까 우리?"

"조금은 할 줄 압니다······."

김성철은 과거에 영어를 조금 배웠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로써 살길이 조금 생겨난 기분이었다.

그때 성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상납금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사람 죽이고 다녔다는 건가?"

"아이나 여자는 안 죽였습니다. 저도 나름 규칙이 있어서······."

"남자는 사람도 아니다?"

"그건 아니죠. 근데 저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작은 형님이 아니라 큰 형님이 내리신 임무라서 도저히 거부할 수가······."

"큰 형님? 브라더후드 길드장? 누군지 모르겠군. 언론에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저희쪽에도 그분 얼굴 뵌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임무 성공 못하면 장기 다 팔아치우고 통나무 꼴 된다는 사실밖에는······."

그 참혹한 말에 성연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테러조직의 수장이 길드장이 되었다고 해서 변할 리가 없을테니.

그래서 성연은 이 질질 짜는 남자를 어떻게 할지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레베카가 은밀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너 백만 포인트 모아서 소원 이루는 게 목표지?"

"······그래."

"그럼 죽여봤자 포인트 얼마 뱉지도 않을 놈 죽이는 대신 이용해먹자."

"이용하자고? 어떻게?"

"브라더후드 길드장한테 좀 뜯어먹자고."

그 말에 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는, 인간 좀비가.

"얼굴 뵌 사람도 없다는데? 저 말단이랑 연결점이 있을리가······."

"무조건 있어. 저 새끼가 왜 말단이야?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저놈이 했던 일들 중에 윗놈들 엮인 게 얼만데······카페인 섭취하면 은신하는 능력으로 암살 말고도 연예인이나 일반인 몰카 엄청 팔아먹었던······."

"······."

"그 일들 대부분 강윤식인가 하는 부길마가 아니라 큰형님이라는 길마가 할만한 짓이거든? 요즘 이미지 세탁하고 중국인들 죽지 않게 구원한다고 개짓거리하는 마당에 이걸로 좀 뜯어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걔네 네크로맨서 싫어해. 그중에선 나도 엄청나게 싫어할걸."

"왜? 몇 명 죽인 적 있어?"

몇 명이 아니라 꽤 많이 죽인 적 있다.

그리 말하려고 했는데, 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걱정마. 브라더후드 길마, 매스컴에 얼굴 드러낸 적은 없는데 윗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 돈에 미친 싸이코 새끼라고······돈만 주면 뭐든 다 해준다는데."

"그래도 좀 꺼려지는데."

"빠꾸 없이 가는 거 아니었어? 거기서 못 뜯어내면 슈퍼맨 상대 못한다? 우리 노땅한텐 크립토나이트도 안 통하는 거 알지? 우리 둘로도 부족한 거 알잖아."

"거기에 뜯어먹을 게 뭐가 있다고."

사실이다. 최강자로 기록된 로버트 데이비스란 칠십 년간 압도적인 자리를 지켜왔다.

이 영국의 대마법사와 힘을 합친다면 죽음은 면할 수 있겠지만, 그를 죽이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브라더후드에서 그 대비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나?

성연은 알지 못했다. 윗사람들 간에 얽힌 사실에 관해서는 성연이 아는 바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레베카는 이 사회의 귀족 중에서도 왕족에 해당하는 윗사람이다.

많은 것을 알았고, 슈퍼맨이라 명명된 협회장을 위협할만한 수단이 그곳에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크게 중요치 생각하지 않으며 요즘 중국의 영웅으로 부상하며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그 집단이 과거 더러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놓을만한 물건을.

"있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한테 들어오면 엄청 쓸만해질 물건. 제대로 써먹으면 로버트 노땅은 물론이고, 다들 기겁해서 감히 덤비지 못하게 해줄 무기······."

"대체 뭔데, 그게?"

레베카는 옅은 웃음만 머금은 채 답하지 않았다.

각종 판타지 소설의 열광적인 애독자인 이 대마법사는 인물 설정이나 소설 내의 자잘한 설정들을 사랑했다. 소위 말하는 '캐빨'을 좋아했다. 그래서 난데없이 등장한 유성연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도 소설 속 인물처럼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캐빨 덕후가 바라보기에 일본인 검객을 일으킨 네크로맨서라면,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과거의 강자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맨손으로는 일반인과 다름없으나 무기가 쥐여지면 완벽하다 평가된 S급 헌터를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만에 압도적으로 유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초인.

대한민국에 묘비가 세워져 땅 아래에 묻힌 고인. 김유현.

언젠가 이 네크로맨서는 자신이 살해한 초인을 노예로 부리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리 된다면 중국을 집어삼킨 거대 길드가 은밀하게 보유하고 있는 그 물건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있어, 그런게."

과거 어떤 수집가가 초고가에 구매한 물건. 격변에 이르러 이제는 중국에 자리한 테러집단에게 흘러들어간 무기. 어떤 한국인을 진정한 인류의 수호자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물건.

이 매력적인 사형수가 그 물건을 손에 넣고, 과거의 피해자를 일으켜 썩어문드러진 손에 쥐여주는 순간 각성자들의 왕은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절대로.

< 랭커 유성연 (2) > 끝

작가의 말

아린초연님 500 포인트감사합니다!!! 괴수 50마리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양이군요!

하이바괴수님 5000포인트 감사합니다!!! 괴수 500마리!!! 잡야야!! 얻을 수 있는 양이네요!! 사랑합니다.

슬슬 주인공이 깽판칠 수 있을 기반이 마련되겠네요.

어렴풋이 썼던 김유현에 대해서도 드디어 나올 거 같습니다 :) 사랑해요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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