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46화 (46/111)

< 랭커 유성연 (1) >

성연은 난데없이 찾아온 영국인 대마법사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구제불능인 미친년이요, 41Km 반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인은 이러한 지형에서 아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다. 어쩌면 이젠 고인이 된 일본인 검객보다도.

던전이라 명명된 지하미궁에서 성연의 감지 능력 범위는 층 하나를 완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제한된 공간에서라면 레베카의 영향력과 성연의 영향력은 엇비슷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밖이라면?

정신 나간 범위를 자랑하는 대마법사의 힘이란 아주 먼 곳에서도 성연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그 탓에 성연은 '하이!'라며 인사해 온 불청객이 다가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땅 아래에 뿔뿔이 흩어진 사체들을 일으켜 그 접근을 견제했다. 그러나 느긋하게 걸어오는 레베카의 속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성연은 전에는 효과적이었던 기습이 실패한 이유를 곧 깨달았다.

저 영국인 대마법사는 전처럼 땅을 딛으며 걸어오지 않았다.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마법사들이 그렇듯,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레베카 블런트는 공중을 걷고 있었다. 높이 30cm 정도의 허공을 행진했다.

단순한 변화였으나 그 변화만으로 지하에서 기습을 강행하는 건 완벽히 봉쇄되었다. 결국 금발의 미녀는 기어이 전진을 거듭했다.

성연은 몸을 숨긴 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다케다 유이치의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했다. 검성의 능력을 보유한 채 되살아난 일본인 좀비란 생전보단 무디지만 초감각도 발휘할 수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다면 곧장 경종을 울릴 것이다.

그리하여 척박한 땅 끝에서 허공답보를 하는 마법사가 등장했다.

"와우! 여전히 화끈하네!"

레베카는 이번에도 미친 소리로 문장을 시작했다. 초감각은 경종을 울려오지 않았다.

"근데 오늘은 싸우러 온 거 아니라 얘기하러 왔는데······저것들 좀 치워줘."

물론 의심병 환자나 다름없는 네크로맨서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언데드 여럿을 추가로 일으킨 뒤 레베카를 맞이했다. 발성 기관으로 하여금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변이한 좀비가 주둥이를 벌렸다. 레베카가 아니라 스티븐 최를 보며.

"통역."

"예?"

"통,역 하라고."

"어우. 깜빡이도 안 키고······."

제 업무에 충실한 한국계 미국인은 징그럽게 꿈틀대는 좀비를 보며 숨을 돌린 뒤, 들려오는 영어 문장을 통역했다. 그리하여 아주 먼 거리에서 끔찍한 몰골의 좀비와 미녀 영국인이 통역사 하나를 두고 대화를 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었다.

스티븐 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선 레베카를 보며 소리쳤다.

"거기서 말하시랍니다!"

"응?"

"더 오지 말고 거기서 말하래요!"

"뭐야······이래도 돼? 나 엄청 귀한 손님인데. 와인은 몰라도 커피라도 대접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에 스티븐 최가 뭐라 대답하냐고 물었다.

좀비가 답했다.

"꼬우면 꺼······지라 그래."

"······."

"통역 안해?"

"다, 다케다 유이치에게 습격받은 직후이고 사정도 여의치 않아 이렇게 대화하는 걸 이해해달라고 하십니다. 귀한 손님이신 건 알지만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다고······."

스티븐 최는 머리를 쥐어짜 짧은 문장을 예의범절에 맞게 통역했다.

레베카는 이 유능한 통역사가 전해온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 미친 새끼 만난 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대충 수긍한 레베카는 옅게 웃으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글러트니 위에 선 다케다 유이치의 언데드를 보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할리우드 여배우에 버금가는 미모라 한들,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며 아이처럼 웃는 모습이란 아름답기보단 소름끼쳤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레베카가 말했다.

"죽여서 언데드로 쓰고 있네? 너 진짜 개쩐다! 이거 로버트, 그 꼰대가 보면 아주 눈 돌아갈 광경······."

레베카가 보기에는 저 소아성애자의 시체를 저리 써먹는 건 놀랍고도 아주 대담한 일이었다. S급 헌터를 종교의 숭배 대상 정도로 만드려는 계획을 가진 협회장이 보기에 저 언데드는 빅엿을 선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레베카는 그저 그 광경을 재밌어했다. 이 일로 하여금 협회를 이끄는 꼰대의 심기가 뒤틀리건 말건, 그녀는 마냥 즐거웠다.

통역을 전달받은 인간 좀비가 성연의 말을 전했다.

"눈 돌아간다고? 그래서 심기 거슬린 협회장이 널 보낸건가?"

"설마! 그땐 부탁 열심히 하길래 들어준거고······내가 꼰대 말을 왜 두 번이나 들어?"

"그럼 왜?"

"좆같은 페도 죽여줘서 고마워서 온 거지! 힘 좀 생긴 너드 새끼가 역겨운 짓하는데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거 꼴 뵈기 싫었거든······."

레베카가 과거 다케다 유이치에게 험한 꼴을 당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뒤끝 엄청나기로 유명하며 참을성 부족한 저 영국인이라면 어릴 적의 트라우마에 여전히 분을 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저 여자라면 속이 후련해진 감사를 하기 위해 영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찾아왔다는 것도 나름 설득력 있었다.

그만큼 제멋대로니까.

"그렇군. 그럼 가지?"

"응? 아니,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자꾸 섭섭하게······."

"감사를 표하고 싶으면 협회로 가서 내가 다케다 유이치를 죽인 건 특정 목적을 가진 게 아니라 정당 방위였다는 사실만 전해주지? 고생할 것 없이 한 마디면 되겠는데."

그 제안에 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해줄 수 있어. 근데 나도 같이 다니면 안돼? 솔직히 뉴스 봤을 때 그 페도 새끼 죽는 거 직관 못해서 좀 빡쳤단 말야. 두 눈으로 봤어야 했는데······."

"······."

"너 앞으로도 빠꾸 없이 여포짓 할거잖아. 방해 안 하고 보기만 할게. 응? 게다가 나랑 같이 다니면 엄청 든든할텐데······."

확실히 레베카 블런트는 아군이 되었을 때 든든한 전력이다.

41Km 반경을 커버하는 힘은 습격 자체를 대비하며 일정 영역 내에서 비정상적인 강함을 발휘하는 성연과도 어울리는 능력이다. 대마법사와 네크로맨서의 조합은 확실히 무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인물이 레베카라는 게 문제였다.

"같이 다니기엔 넌 너무 위험한데."

"위험하다고? 내가 뭐 일내는 거 봤어? 나 완전 법과 도덕 잘 지키는 바르고 착한······."

"비각성자 폭행 건만 여덟 건 아닌가?"

"······그건 그 머글 새끼들이 먼저 잘못한거야! 억울해!"

성연은 머리를 굴렸다.

확실히 S급 각성자들 중에서 가장 얌전한 편에 속하는 건 레베카 블런트일 것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그나마 평화로운 초인에 속하니까.

그 머릿속부터 괴상한 사상에 찌들어있는 협회장이나 소아성애자 일본인보다는 몇 배 나을 것이다. 그리 생각을 이어가던 때, 레베카가 말했다.

"이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로버트 그 꼰대가 너 죽이려 벼르고 있거든? 나 필요할 걸? 알잖아. 그 노땅 나이 뒈지게 많이 쳐먹고도 아직도 미치게 센 거······."

마지막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로버트 데이비스.

최초로 기록된 최강자이자 칠십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적폐 슈퍼맨.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거대 무력 집단을 세운 초인이란 개인이 상대할 수 없는 존재에 속한다. 그러니까, 힘 센 미친년과 손을 잡아야만 그나마 비벼볼 만한 적이다.

한참 고민하다 성연이 말했다.

"······그래, 같이 다니지."

사형수 네크로맨서와 미치광이 아프리카 원주민, 소아성애자 언데드가 모인 괴상한 조합에 정신 나간 마법사까지 합류했다.

***

성연 일행의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레베카가 합류했음에도 여전히 사냥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레베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성연이 괴수를 한 마리도 잡지 말라고 한 탓이었다. 두 번째 이벤트의 순위가 혹시라도 뒤집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다분한 의도를 눈치챘음에도 이 영국인은 흔쾌히 알겠다고 말했다.

애초에 본 게임이니, 이벤트니, 소원이니 레베카에겐 별 관심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당장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레베카는 높은 곳이 좋다는 이유로 글러트니의 어깨에 앉았다. 그러곤 틈만나면 고인능욕을 해댔다.

"야, 야."

"우으······."

"야, 우냐?"

검을 쥔 채 끄르륵대는 다케다 언데드의 뺨을 때리며 깔깔대는 모습이란 과연 정상인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물론 이 일행에 정상인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스티븐 최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진짜 예쁘긴 예쁘네요. 웃으니까 더 예쁘시네."

"시체 때리면서 웃는 거 보고 그런 말이······."

괴수들로 즐비하여 원시시대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던 아프리카 대륙은 이제 한 네크로맨서의 방문한 것만으로 구원되었다. 들르는 마을마다 성연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두 번째 이벤트에서 우승하기 위해 열렬히 움직인 것이 국가적 위기를 해결한 것은 물론 영웅적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제 두 번째 이벤트의 종료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인터넷에 글도 잘 안 올라오네요, 이제······."

인터넷의 글 리젠율이 확연히 낮아진 것과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기사들이 암담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세계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100포인트를 모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각성했음에도 이십 미터 괴수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댓글을 쓰거나 인터넷 기사 따위에 열광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현상은 그러한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는 뜻이다.

망가진 세상에 걸맞게 괴수나 사람을 살해하고 살아남았거나, 최후의 순간까지 기적을 바라고 있다가 목숨을 잃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에 벌어진 「본 게임」에 대해 소원을 들어주는 커다란 행사나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급감하게 된 인류의 숫자가 증명했다.

이 사건이란 재앙이다.

그때였다.

『3일 뒤, 두 번째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실시간 두 번째 이벤트 순위를 공개합니다.』

예고 없이 떠오른 투명한 창에 여러 이름들이 적혔다.

여전히 1등은 변하지 않았다. 유성연.

그리고 3등에 자리했던 레베카가 2등으로 오르게 되었다.

대량 학살전에 있어서 더 없이 뛰어난 네크로맨서와 마법사를 넘어선 이들은 끝끝내 없었다. 그런데 투명한 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 또 길게 이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획득한 포인트 총량을 기준으로 매긴 순위를 공개합니다.』

『순위는 10위까지 공개됩니다.』

그 포인트 총량 순위에서도 여전히 1위를 달리는 것은 성연이다.

던전 최종층을 돌파하고 두 번째 이벤트에서까지 두각을 드러낸 결과는 과연 헛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연은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그 순위에 적힌 이름 하나를 유심히 읽었다. 표정이 굳은 건 레베카 블런트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 아저씨 어떻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2위'로 기록된 인물의 능력이란 이십 미터 괴수들을 상대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각성 능력이다.

어떤 이벤트에서도 목격된 바 없으며, 괴수들을 잡으러 다니지도 않은 인물.

그 능력이 괴수를 잡는데 지나치게 불리한 인물.

"다른 거 잡았네. 괴수보다 포인트 훨씬 많이 주면서 사냥하기 쉬운······."

모든 정황들이 '인간 사냥'을 했다고 가리키고 있었다.

더하여, 이 인물의 능력이란 사람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된 힘이었다.

성연은 투명한 창에 적힌 이름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2위』

『왕웨이』

협회장 로버트 데이비스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자취를 감춘 뒤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 없는 초인. 존재하는 모든 각성 능력을 통틀어 가장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던 중국인.

역사상 두 번째로 등장한 S급 각성자.

***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이들의 집단이란 영원토록 청렴하고 정의로울 수 없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동물이요, 조금이라도 우월하다면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짓밟고 올라서길 원한다.

서류상의 스펙 한 줄이 더 많다고 으스대는 본성을 가진 이들이 초자연적인 힘까지 얻게 된다면 그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자신들은 신인류이며 다른 이들은 선택받지 못한 구인류라고 말하는 단계까지 격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발생하게 된 차별이란 과거 백인이 벌였던 인종차별보다도 심하게 벌어졌다.

심각한 문제가 된 비각성자 차별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웠던 「협회」였다.

협회 본건물엔 화장실이 두 종류로 존재했다. 비각성자 화장실과 각성자 화장실.

비각성자 화장실은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 나누어져 있지도 않았다.

남녀 공용으로 만들어진 화장실이었고, 커피를 따라마실 때도 비각성자 사무원들은 '비각성자 전용'이라고 적힌 커피포트를 사용해야 했다.

이 심각하기 그지 없는 차별에 큰 소리를 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의 슈퍼맨이 이끄는 집단의 영향력이란 세계적이었고, 각성자들이 귀족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까지 나타날 지경이었다.

사소한 것에 트집잡는 PC충들은 이 문제에 관해선 이상할 정도로 침묵했다. 그 시절 협회의 영향력이란 그 정도로 강력했다. 흑인, 남녀 문제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학을 떠는 이들은 그 문제에 관해선 아주 고요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들고 일어난 것은 한 중국인이었다. 이 차별들을 묵묵히 참아내다 못해 끝내 폭발해버린 중국인. 그는 이러한 일들을 고발하며 당장 멈추지 않으면 협회에서 나갈 것이며 로버트 데이비스와 적대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물론 미국의 슈퍼맨은 이 일들이 마땅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가운데 차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강압적으로 나오며 그 중국인을 압박했다.

물론 역사상 두 번째로 등장한 S급 초인을 물리적으로 누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중국인이 가진 힘이 모든 각성 능력을 통틀어 가장 위험하다 평가받았다면 더욱.

그 날, 협회 안에서 언론엔 공개되지 않은 다툼이 벌어졌다. 이후 놀랍게도 협회는 그 차별 중 일부를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거대 집단과 개인의 다툼에서 아주 드물게도 개인이 승리한 결과였다.

공식적으로 그 중국인은 협회 소속이 아니게 되었고, 헌터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역사적인 일을 벌인 초인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소원이라는 세상을 바꿀 기회가 찾아오며 인류에 거대한 재앙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 랭커 유성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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