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군주 유성연 (3) >
"아니, 혼자 몇 명을 잡는거야?"
스티븐 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언데드 하나가 능히 괴수 대여섯을 상대했다. 이 정신없는 전장에서 네크로맨서란 과연 일당백을 넘어 일당천의 군주가 되었다.
난전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투란 저 거대 괴수와 언데드의 분투였다.
"워 - 어 - 어!"
그 포효에 스티븐 최는 몸을 떨었다. 생물학적으로 동족일 괴수들 또한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을 정도였다. 침착하게 움직이는 건 언데드와 그들을 이끄는 네크로맨서 뿐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야수성을 띈 거대 괴수는 미쳐 날뛰었다.
스티븐 최는 떨리는 손을 붙잡고 그 위대한 전투를 지켜보았다.
난데없이 액체 괴물로 변하더니, 커다란 팔을 붙들고 올라타서 내달리는 언데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저런 식으로 변화하는 언데드란 들어본 적도 없다.
"뭔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그 거대 괴수는 사소한 행동 하나마다 요란한 현상을 동반했다.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고, 채찍처럼 늘어진 팔을 휘두를 때마다 지저분한 피와 살점이 튀었다. 단순한 발버둥은 초월적인 괴력을 머금자 주변에 위치한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는 폭풍이 되었다. 그 폭풍에 휘말린 이십 미터 고질라들은 넘어지거나, 포효하며 몸뚱이가 뜯겨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워어어어 - 어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언데드는 이제 거대 괴수의 등과 어깨를 누비며 역전의 용사처럼 움직였다. 그 흉측한 외견과 풍기는 썩은내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용맹한 모습이다.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인 언데드는 이제 다소 멋져보이기까지 했다.
굉음과 폭풍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스티븐 최는 그 전투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
두 번째 이벤트의 발생과 함께 출현하여 정확히 인간 백 사십 명을 잡아먹고 진화한 거대 괴수, 협회가 '자이언트'라 명명한 아프리카의 괴물은 강했다.
출현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아프리카인들에게 공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간을 잡아먹을 때마다 덩치를 키우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존재는 가히 아프리카 토속 신앙에서 다루는 요괴들보다 강력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그 거대 괴수를 신의 분노요, 자연이 성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외부인들, 협회가 보내는 양키가 아니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하는 사태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들보다 이 땅에서 역사를 쌓아온 원주민들만이 맞서 싸워 물리칠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 부족민들은 자기네들 중 젊은이들 몇을 선별했다.
성인식을 거친 부족의 전사들 중 가장 용맹하고 강력한 자들.
얼마 전 출현했던 불길한 미궁, 「던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며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불패의 용사들이었다.
가장 현명한 주술사와 부족 전사들로 이루어진 무리는 협회 관리자들은 모르는 은밀한 길로 부족 마을 하나를 멸망시킨 요괴를 물리치기 위해 나섰다.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먼 곳에서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울부짖음과 지진에 가까운 진동이 전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움직이는 것으로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그 장엄한 힘이 몸에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부족 전사임을 증명하는 짙은 화장을 얼굴에 새긴 젊은이들은 본능적으로 떨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도망치면 저 사악한 요괴는 곧 이 땅의 부족들을 모두 집어삼킬 것이다······.
"아아······."
그리고 마침내 거대 괴수가 머무르는 장소에 도착한 부족민들은 놀라운 광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먼저 싸우고 있는 이가 있었다.
검은 물결에 가까운 군단은 커다란 괴수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용맹히 싸웠다.
누군가는 흉측하며 소름끼친다 평할 그 모습은 부족민들이 보기엔 다분히 신화적인 것이었다. 더하여, 저 군단을 이끄는 듯 보이는 저 위대한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복장으로 미루어보아 저 사내도 주술사처럼 보였다.
그들 부족의 주술사보다 훨씬 위대할 것이 분명한······.
그때 선두에 섰던 아프리카 부족 주술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의 사자시다. 진정한 신의 사자······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신화적인 전투 앞에서 주술사는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
부족의 전사들도 함께 그렇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주술사는 생각했다.
아주 옛날 양키들의 식민지가 되며 야생 벌판을 뛰며 자연을 사랑하던 아프리카인들은 이슬람이나 기독교 따위를 믿으며 타락했다. 종교적 이유로 충돌은 빈번한 일이 되었고, 그리하여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토속신앙은 버려졌다.
모두 그들 부족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주술사는 확신했다.
'여기 신의 사자께서 계시는데······이래도 우릴 비웃을테냐······.'
죽음에서 군단을 일으키시며 신앙심을 품은 이들을 지키시는 위대한 분.
전통적으로 내려져오던 이야기에 담겨있던 묘사와 판박이다. 절망적인 사태가 되어서야 마침내 신께서 사자를 보내신 것이다. 신성모독을 하는 이들에게 존재를 증명하며 구원을 내리시고자······.
"오, 위대하며 전능하신······죽음에서 군단을 일으키시는 분이시여······."
***
「마운틴」에게 수차례 도전하며 성연은 커다란 놈과 싸우는 요령을 나름 터득했다. 그 요령을 착실하게 활용한 가운데 전투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애초에 훨씬 강력한 스펙을 가진 초거대 괴수와 전투를 거듭하며 경험을 쌓은 결과, 성연에게 이 거대 괴수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상황 판단이 느리군. 등에 괴수가 올라타자 당황을 감추지 못해.'
거대 괴수의 등에 올라탄 언데드는 교묘하게 움직이며 발버둥을 피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뒤통수와 목덜미를 끊임없이 공격하며 놈을 자극했다. 녀석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일체 모르는 듯했다. 이런 부분에서도 마운틴과 달랐다.
'놈은 살벌했지.'
대한민국에 머무른 공략불가의 초거대 괴수는 모든 상황에 대처했다. 등에 언데드가 올라타자 놈은 그 언데드를 부리는 주체가 누군지 곧장 알아챘다. 커다란 눈이 자신을 향한 순간 성연은 정말 목숨을 잃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저 놈에겐 그런 면이 없었다.
당장의 상황에 짜증을 부리며 허둥지둥 움직였다.
"둘, 넷, 여덟."
성연은 녀석의 관심을 돌리며 착실히 언데드의 숫자를 늘렸다. 이제 모여있던 괴수들은 대부분 성연의 명령을 받드는 병사가 되어있었다. 검은 물결이 파도치며 달려들었다.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공격은 저 거대 괴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전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성연은 거대 괴수의 등에 올라탄 괴수의 몸뚱이를 다소 변이시켰다.
팔과 다리를 액체와 고체 사이에 위치한 어중간한 형태로 변이시켰다. 그 커다란 놈의 껍질 틈새에 스며들어 끈적하게 달라붙도록.
"워 - 어 - 어!"
놈이 몸뚱에 크기에 맞게 무척이나 두터운 껍질을 가진 터라 일일히 때려 부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연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끈적한 팔 다리를 가진 언데드가 거대 괴수의 뒤통수에 딱 달라붙었다. 직후 주전자 끓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 괴수가 발버둥쳤다.
그러나 검은 물결처럼 몰려드는 언데드의 숫자가 아주 많은 가운데 뒤통수에 들러붙은 귀찮은 놈을 떼낼 여유는 없었다.
결국 거대 괴수는 자신의 질긴 가죽과 근육, 두터운 껍질을 믿기로 했다.
이 숫자만 많은 잔챙이들부터 처리하고 자꾸 귀찮게 굴며 기어이 뒤통수에 달라붙은 놈은 그 다음에 상대하기로······.
"워······어읔-"
그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뒤통수에서 강렬한 폭발이 터졌다. 아주 날카로우며 단단한 껍질을 파편으로 쏟아내는 폭발.
거대 괴수의 머리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흙먼지가 솟구쳤고 핏물이 폭포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벌어진 아가리에서 침이 줄줄 떨어졌다.
그러나 네크로맨서의 생명 반응 감지 능력은 녀석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백 단위의 인간을 먹어치우고 진화한 괴수가 한 번에 죽으면 시시하지 않은가.
"한 번, 두 번, 세 번······."
죽음의 군주라 명명된 성연의 새로운 능력이 발동했다. 뒤통수에 늘러붙어 자폭한 언데드의 몸에서 다시금 뼈와 살점이 자라났다. 그 속도는 무척이나 신속했으며, 끓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회복이 완벽히 이루어진 직후 또 다시 폭발이 일었다.
그러한 현상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폭발과 회복, 회복과 폭발.
연쇄 폭발은 두꺼운 껍질은 물론 탄탄한 근육과 머리를 지탱하는 힘줄마저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커다란 머리통은 몸에서 분리되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피냄새 대신 고기 타는 듯한 냄새와 지글거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그 뒤통수는 까맣게 타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다른 괴수들에 비하여 지나치게 큰 머리통을 향해 성연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곤 그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감겨 있던 거대 괴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직후 숨이 끊어졌던 거대 괴수는 활동력을 되찾았다. 목 아래부터 새로운 뼈와 살점, 근육들이 재구성되어 자라나기 시작했다. 능력이 발동한 수 초만에 정말이지 커다랗고 강력한 언데드가 탄생했다.
'기본 스펙이 엄청나군. 과연 백 명 먹고 진화한 괴수라고 할만한······.'
능력을 발동함으로 그 사체의 정보를 읽어내던 성연이 내심 감탄했다. 무식한 탓에 잘 써먹지 못한 것이지, 이 몸뚱이의 스펙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다. 마음껏 재구성하고 변이시켜도 이 몸은 거뜬히 버텨낼 것이다. 아주 튼튼하고 쓸만한 재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순수한 피지컬에 놀라던 성연은 그 거대 괴수 언데드 안쪽에서 꿈틀대는 힘에 주목했다. 성연은 그것이 각성자들 시체에서 느낄 수 있는 모종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괴수 언데드에게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힘.
재구성을 거듭하던 성연은 그 힘의 정체를 곧 알아챘다.
'특수 능력. 먹잇감 먹어치우면 몸집 커지고 진화하는 능력이 사체에 그대로······.'
먹으면 먹을수록 진화하게 되는 능력. 두 번째 이벤트가 발생하며 새로이 출현한 지상의 모든 괴수가 보유한 능력이다.
이상했다. 진화가 가능한 다른 괴수들은 숨이 끊어지는 즉시 언데드로 일으켜도 안에 이러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이 녀석만 특이 케이스였다.
이유가 뭘까?
백 명이나 잡아먹어서? 아니면 두 번째 이벤트가 아니었어도 원래 이런 특수 능력을 가졌을 돌연변이라서?
아직은 모르겠다.
그 이유가 어떻든 일단은 대단한 수확이었다. 성연은 무려 성장하는 언데드를 얻은 것이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레벨업하는, 게임 플레이어 같은 능력을 가진 언데드를.
'나중에 천천히 뜯어보며 연구하면 되겠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성연은 마침내 일어난 녀석. 이젠 언데드가 된 거대 괴수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곤 그늘진 구석을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생명 감지 능력에 반응이 잡힌 탓이다. 여러 인간들의 무리였다. 사방에서 포위하는 모양새로 자리하고 있다.
놈들은 하나같이 성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세가 굉장히 이상했다.
전투를 준비하지도, 살의를 내비치지도 않고 머리를 조아린 채 몇 분째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절이라도 하듯······.
유심히 그들을 살피던 성연이 스티븐 최에게 말했다.
"아프리카 말도 할 줄 아나?"
"예? 아, 요즘 아프리카 애들도 영어 잘합니다. 그런데 왜······."
"왜 저러고 있는지 한 번 물어봐. 수십 명이서 이쪽 보면서 절하고 있는데."
스티븐 최는 그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절하고 있다고?
그가 보기엔 성연이 가리킨 저 그늘진 곳엔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스티븐 최가 걸어갔다. 그때 난데없이 창 여러 개가 솟아나 스티븐 최의 목덜미를 건드렸다. 옅은 상처가 생겨 핏물이 한 줄기 흘렀다.
"허억······."
통역기 취급을 받긴 하지만 스티븐 최는 어엿하게 인정 받은 B급 헌터이다. 웬만한 곳에서는 꿀리지 않을 전력. 그러나 지금 스티븐 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기습해 오는 기색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난 이 아프리카 원주민 수십 전원이 B급 오버, 아니 A급에 해당하는 전투의 달인이라는 것. 거기까지 생각한 스티븐 최는 흐릿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저 네크로맨서에게 길드가 전멸하기 전 들었던 이야기.
「얼굴에 붉은칠 덕지덕지 한 놈들 꼭 피해라. 그 새끼들 말 안 통하는 미친놈들인데 싸움은 또 좆나 잘해······사이비에 빠진 것들인데······.」
토속 신앙과 사이비 종교가 뒤섞인 이상한 종교를 믿는 원주민 부족. 협회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정신 나간 미치광이 집단. 그러면서 또 싸움은 더럽게 잘하는, 좆나 센 원주민들 많은 부족······.
가장 살벌하게 생긴 원주민 하나가 입을 열었다.
"신의 사자께선 어디?"
"사자? 뭔 소리······."
"뻐킹, 맨!"
"어······어, 그러지마요. 우리 말로 해요. 피스."
스티븐 최는 무릎까지 꿇으며 항복 의사를 완고히 밝혔다.
그때 원주민들 틈에서 얼굴은 물론이며 팔과 손가락 끝까지 문신을 빼곡하게 새긴 노인 하나가 걸어나왔다. 그 주름진 노인은 무척이나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한곳에 꽂혀있었다.
커다란 괴수 언데드의 등에 탄 성연에게.
"사자께서 괴물을 굴복시키고 부하로 삼으셨다. 아아, 위대하셔라. 마땅히 우리를 이끄실 예언의 군주시다······."
그 읊조림을 어렴풋이 알아들은 스티븐 최는 이 원주민들의 속내를 다소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척하며 기독교인과 이슬람 교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벌이는 이 폭력적인 사이비 원주민들이, 저 네크로맨서를 교주로 삼으려 들고 있었다.
"우우!"
"우우!"
그 원주민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팔을 흔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괴상한 행동을 보며 괴수 언데드에 탄 채 다가온 성연이 질문했다.
"뭐라고 하는 거지?"
"그······."
"7개 국어 한다는 거, 거짓말인가?"
스티븐 최는 머리가 부서질 듯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7개 국어가 아니라 70개 국어라도 이 새끼들이 하는 이상한 말과 행동은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스티븐 최는 눈치 좋게 대충 해석해서 성연에게 천천히 전달했다.
"짱 쎈 네크로맨서 최고. 우리 교주 해주세요. 사랑해요······이러는데요?"
< 죽음의 군주 유성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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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투베 5등 안에 들었어요.
부족한 작품에 큰 관심 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다들 추석이라 바쁘실텐데도 제 글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