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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35화 (35/111)

< 공략불가 「마운틴」 (2) >

성연은 생존자 캠프에서 나와 기억을 더듬으며 걸었다.

우선 언데드 하나를 일으켰고 타조와 닮게 변이시켰다. 오로지 재빠른 이동을 위해서 일으킨 개체였다. 놈은 스포츠카나 오토바위 따위보다 훨씬 빠르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하게 달렸다.

"워···어엌."

그 과정에서 냄새를 맡은 괴수들 몇이 습격해왔다. 특별한 방향으로 성장한 던전 괴수들이 아닌 이십 미터 고질라들.

녀석들은 이제 성연의 적이 되지 못했다.

여긴 지하 미궁이 아니었으며, 바닥 아래에 잠든 사체들은 아주 많았다. 아스팔트를 뚫고 뻗어낸 가시들, 혹은 비행하는 날벌레가 잔챙이를 처리했다.

과연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 던전 밖의 네크로맨서란 강력한 존재였다. 전례 없는 재난에 휘말려 많은 생명체들이 죽어 땅 아래에 파묻힌 지금 성연이 일으킬 재료는 차고 넘쳤다.

그리하여 괴수들은 제대로 접근하기도 전에 죽고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성연은 순수하게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이 아닌, 조금 뒤 펼쳐질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강해졌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앙각성자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시절에 비하여 성연은 강해졌다. 정말이지 아주 강해졌다.

9단계까지 강화된 강화된 능력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테크트리.

이제 전세계 각성자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이 능력은 강할 것이다. 그에 반해 괴수들은 포인트를 투자할 수도 없으며 훈련이나 깨달음을 통해 강해질 수 없다. 놈들은 태생적으로 강인하나 거기서 발전하진 못한다.

절대적인 상식이다. 그 덕에 인류는 칠십 년의 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인류는 진화의 생물이요, 끝없이 발전하는 동물이니까.

그리하여 성연은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전투를 맛보는 것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험지역, 들어가는 것을 금합니다.」

경고 문구가 눈에 띄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 간간이 습격해오던 괴수들은 물론이요, 생명 감지 반응 자체가 잡히지 않게 되었다.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것이 전무했다. 그 대신 땅 아래 파묻힌 사체들만 감지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체가 흙이 되어 쳐박혀 있었다······.

성연은 직감했다. 여기부터 그놈의 본격적인 영역임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게 퍼뜨린 생명 감지 능력 반경 안에 생명체 하나가 잡혔다. 상가 빌딩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로 솟아난 괴수. 마운틴이다.

성연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이건······놀라운데.'

테크 트리를 탄 결과 성연의 생명 감지 능력은 대상의 대략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발전했다. 덕분에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보유한 힘의 정도나 특이점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운틴에게서 느껴지는 파장은 지금까지 마주한 어떠한 생명체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최종층 대군주 하탄,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레베카 블런트······.

그 누구와도.

「공략불가」

격동치는 일부의 힘을 체감한 성연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우주에 떠도는 먼지가 되었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그 먼지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행성이 있었다. 웅장하며 장엄한 행성.

가슴이 멋대로 쿵쾅거렸다.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한 덕에 얻은 육감, 그를 비롯해 인간 본연이 갖고 있는 생존 본능이 끊임없이 경종을 울렸다. 멀쩡하게 서 있는 것도 버거웠다.

협회와 모든 헌터들이 포기한 저 초거대 괴수란 과연 차원이 다른 종이었다······.

성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던 자신이 한없이 멍청해보였다. 그러나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과거에도 한없이 우월한 적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으며, 마침내 성공한 경험이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부딪혀 보아야만 알 수 있다.

'더럽게 커서 좌표를 특정할 것도 없군.'

무너진 폐건물 위쪽으로 마운틴의 몸뚱이가 어렴풋이 보였다. 당시 이현우가 '제주도 성산일출봉만하다'고 했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저건 생물체로 규정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했다. 성연은 주머니 안의 지퍼백에 손을 집어넣었다.

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죽어있는 모기 한 마리를 꺼냈다. 쪼그라든 배에 끈적한 진물이 흐르는.

성연의 각성 능력은 그 자그마한 곤충을 되살렸다.

그가 가장 잘 다루며 익숙한 개체. 숨이 끊어진 채 활동력을 되찾은 언데드는 명령을 받들어 세차게 비행했다. 날개는 단단하게, 혈액을 빨아내기 위한 주둥이는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화한다. 그 모든 과정이 비행 도중에 이루어졌다.

두두두거리는 소리가 터졌다. 소음이 가까워짐에도 마운틴은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벌레 언데드와 감각을 공유한 성연은 그 날벌레를 둥글게 비행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몸뚱이의 크기에 걸맞게 마운틴은 안구조차도 무척 컸다. 성연으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눈을 뚫고 뇌를 부수어 제압하는 것은 곧 성연이 가장 애용하는 방식이다.

언데드를 폭발하는 공격 방식까지 깨달은 바, 체내로 침투시킬 수만 있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뭔······."

「마운틴」의 껍질을 매개로 만든 곤충 언데드의 주둥이가 안구에 닿는 순간 비틀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고질라들은 물론 삼십 포인트 짜리 던전 괴수들마저 유린했던 무기는 그 눈알도 뚫지 못하는 물렁한 장난감으로 전락했다.

흉내내어 만든 모조품은 엄연한 진품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진짜는 다르다.

성연은 그제서야 지하에서 마운틴의 껍질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따라하는 데에 급급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알도 뚫지 못하는 건 좀······.

"워······."

그때 그 커다란 놈이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그 사소한 움직임만으로 맞닿은 땅이 거세게 떨렸다. 사방에 널린 콘크리트 파편들은 물론,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진동했다. 유의미한 피해는 주지 못했으나 눈알을 찌르는 감각을 느낀 모양이었다.

성연은 날벌레가 저 초월적인 거대 괴수에겐 벌레가 아니요, 미세먼지나 미생물 따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힘으로는 안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커다란 놈일수록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할거다. 넘어지면 더럽게 큰 몸뚱이는 장점이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

작전이 완성되었다. 우선 성연은 과거 중앙각성자교도소가 자리한 곳에 웅크린 놈 주변에 언데드들을 일으켰다. 협회가 발표하기로 마운틴은 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성연은 언데드들의 이동 능력을 모조리 퇴화시켰다. 그 대신 공격 능력을 월등히 발달시켰다. 두 팔이 곡괭이처럼 휘어지고 끝이 뾰족하게 변한 언데드들은 마운틴의 하반신에 달라붙어 다리를 열렬히 두들겼다.

물론 마운틴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얼굴을 돌린 채로 아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성연은 곡괭이 형태의 팔을 전기톱처럼 변화시켜 비슷한 원리로 진동시키거나, 두꺼비 아저씨와 비슷한 형태로 혀를 쏘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껍질엔 여전히 흠집도 나지 않았다. 목숨을 던져 껍질 일부를 뜯어낸 헌터들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잡으라고 만든 건 맞나?'

성연은 언데드 둘을 일으켰다. 그러곤 하나를 공처럼 뭉쳤고, 하나는 팔 근육을 한계치까지 키웠다. 뒤이어 커다란 팔을 가진 놈이 뒤얽힌 살덩이를 던졌다. 괴수의 우월한 힘은 약 이백 미터에 육박하는 상공까지 사체뭉텅이를 던지는데 성공했다.

그 내부부터 변이시킨 뒤 곧장 폭발시켰다. 폭음과 함께 흩뿌려진 파편들이 마운틴의 얼굴 전체를 두드렸다. 놈이 거대한 눈을 찌푸렸다.

위험을 느낀 게 아니라, 아주 아주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이다.

녀석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 이 능력의 원천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그러나 성연은 두려움에 질려 도망가는 대신 옅게 웃었다.

목적을 달성했다. 세워두었던 작전은 언데드들을 일으켜 그 껍질을 뚫고 피해를 주는 게 아니다. 그 관심을 오로지 이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성연은 준비했던 언데드들, 지상의 놈들이 아니라 지하에서 땅을 헤엄치던 놈들을 일제히 변이시켰다.

아주 획기적인 외형으로? 아니었다.

마운틴의 발 아래에 마흔 세 마리의 언데드를 모았던 성연은 그들을 모조리 폭탄으로 써먹었다. 그리고 지하에서 발생한 폭발은 곧 일대를 무너뜨리며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성대한 폭발은 곧 저 무식하게 큰 녀석을 땅 아래로 끌고가리라. 엄청난 질량을 머금은 몸뚱이는 아주 깊은 곳까지 빠져들 것이다. 정말이지 깊은······.

"워어······."

마운틴의 몸뚱이가 뒤로 기우뚱했다. 그러나 놈은 넘어지지도, 지하에 삼켜지지도 않았다. 무게를 지탱해 줄 바닥이 사라진 가운데 마운틴은 허공을 딛고 서있었다. 깊게 패인 구덩이에 마운틴은 빠져들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성연이 그 상황에 맞추어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녀석이 분노했다.

"으 - 워어어어어 -!"

쩍 벌린 아가리에서 끔찍한 굉음이 쏟아졌다. 성연은 순간 자신이 벼락에 맞았다고 생각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한 느낌이 내리꽂혔다. 짜증 섞인 울부짖음에 불과한 그 포효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졌다.

성연의 세계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이명 따위도 없이 청각이 마비되었다. 그 과정에서 균형 감각도 함께 마비되었다. 휘청이고 비틀대던 성연은 제 귓구멍에서 진득한 무언가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뒤이어 시야 또한 뿌옇게 흐려졌다.

강렬한 어지러움이 솟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성연은 아침에 먹었던 것들을 모조리 게워냈다. 위액과 음식물들 사이엔 시뻘건 핏물도 섞였다.

성연이 일으켰던 언데드들은 고장난 기계처럼 수 차례 삐걱이다 무너져 흙이 되었다. 음파에 의한 공격에 당한 게 아니다.

네크로맨서 능력의 주체가 되는 뇌가 타격을 받은 탓이다. 마운틴이 내지른 단순한 울부짖음은 고막에 타격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능력만이 아니라, 모든 각성 능력의 원천은 뇌다.

그러니까, 마운틴이라 명명된 저 장엄한 괴수는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 모든 각성자들의 능력을 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자리에 쓰러진 성연은 마운틴을 보았다. 녀석은 거슬리는 것들이 모두 정리된 것을 확인한 뒤, 한 걸음을 옮겨 건물 잔해들을 깔고 몸을 누였다.

그 모습을 보며 성연은 쓴웃음을 지은 뒤 정신을 완전히 잃기 전, 포인트로 포션을 구매해 다소 몸상태를 회복한 뒤 축 늘어진 채 언데드를 타고 돌아왔다.

"유성연 씨!"

"뭐야, 죽은 거 아니죠?"

「회사」의 캠프로 복귀한 성연의 모습에 다들 당황했다.

상태가 심각했다.

그러나 이현우는 똑똑히 보았다.

'유성연 씨······.'

무시무시한 놈에게 도전하겠다던 네크로맨서는 패배한 듯 보였다. 그러나 표정으로 하여금 읽히는 감정은 좌절감이 아니었다. 입가에 띄워진 희미한 미소는 그 패배가 의미 있는 패배였으며 무언가 성과를 거두었다는 듯 보였다.

"아니, 대체 왜 대한민국 어깨 형님한테 시비를 털어서······."

안혜지가 꼴이 뭐냐면서 말했다.

성연은 부축을 받으며 폐건물 안에 몸을 누인 뒤 완전 회복을 위한 수면을 취하며 잠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되뇌었다.

"한 걸음······."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에 이르면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업적이다.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나섰으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과정에서도 해내지 못한 일.

마운틴은 한 걸음 움직였다. 출현한 이래 처음으로.

물론 그 거대하고 강력한 놈을 상대로 승리는 여전히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내일도, 또 다음 날도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놈의 숨통을 끊고 거대한 산을 이끌며 싸울 것이다.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이현우가 이끄는 「회사」는 안혜지를 조직의 일원으로 편하게 대했다. 말을 놓고 친구 먹은 이들도 몇 있었다.

새로이 정장을 맞춰 입기까지 했다. 꽤 옷매무새가 좋았다.

성연은 그 평화로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때, 누군가 소리쳤다.

"두 번째 이벤트 떴다!"

평화로운 풍경 위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투명한 창이 덧씌워졌다.

던전이 출현한 이후로 한 달이 지난 시점.

마운틴이 최초로 자리한 장소에서 총 여덟 걸음 움직이게 된 시점.

두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

「명칭: 마운틴」

「위험도: 공략불가」

「추정 크기 약 200미터」

「울부짖는 것으로 근방에 있는 모든 각성자 무력화. 겉을 감싸고 있는 불명의 껍질은 대부분의 피해를 완벽하게 흡수. 단순한 화기로 흠집조차 낼 수 없음.」

「상세한 전투 능력이나 개체의 특징 파악된 바 없음.」

「과거 중앙각성자교도소가 위치한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음. 어떤 공격을 시도해도 요지부동.」

「주의사항」

「해당 개체를 자극하는 행동이나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엄중히 금함.」

「활동을 개시할 경우 그 여파를 짐작할 수 없음. 인류의 전력으로 퇴치하거나 저지하는 것 불가. 절대로 자극하지 말 것.」

「그 위험성을 고려하여 대한민국의 영토 전체를 마운틴의 영역으로 분류함.」

.

.

「최강의 괴수.」

< 공략불가 「마운틴」 (2) > 끝

작가의 말

마운틴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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