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층 대군주 하탄 (1) >
15층 이후로 던전은 빛을 되찾았다. 드높은 천장에 달린 광원이 아래를 비추는 덕이었다. 던전 공략에 몸담은 이들은 그 광원을 「인공 태양」이라 불렀다. 특정한 조명 느낌이 아닌, 정말 태양이 내리쬐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9층에 진입한 순간 공략대는 눈살을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위쪽을 쳐다보았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왜 이렇게 어두워."
"인공 태양 없어졌어요, 이런······."
29층에 이르러 던전은 다시 빛을 잃었다. 그 대신 암흑이 자리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지만 공략대는 이 암흑이 15층 이전의 어둠보다도 훨씬 짙다고 느꼈다. 시야가 어두워진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게 아니라 헝겊 같은 것으로 눈을 가린 기분이다······.
성연이 중얼거렸다.
"갑시다."
"예? 아니, 그쪽 앞이 보여요?"
"보입니다."
성연은 이 어둠이 15층 이전의 것보다 훨씬 짙은 암흑임을 알았다. 그러나 성연은 이보다 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한 달을 지낸 경험이 있다.
몸은 그 시절을 기억했다. 금세 어둠에 적응한 눈이 길을 찾았다.
"개쩌네, 뭔······."
"미로입니다. 괴수 숫자는 적은데 곳곳에 매복한 놈들이랑 함정이 많아요. 당장 우리 앞부터가 갈림길······."
성연은 재빠르게 정보를 전했다.
아무래도 29층은 괴수들로 밀어붙이는 게 아닌 눈을 가린 뒤, 정신차리지 못할 때 잡아먹는 형식의 구조라 추측되었다. 28층까지 전투만을 중시하며 전진해 온 공략대라면 분명 희생이 불가피하거나,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돌파할 수 있으리라.
물론 성연은 전투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도 뛰어났다.
"어디로 가요? 동전이라도 던질까요?"
"왼쪽이요."
"예? 확실해요?"
"네."
앞장서는 성연의 모습에 공략대는 반신반의하며 뒤따랐다. 그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었다.
놀랍게도 삼십 분이 지나도록 어떤 괴수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냥, 계속 걷기만 했다······.
"이번엔 오른쪽······아, 두 걸음 가서 바닥쪽에 다들 미니건 쏴 갈겨요. 거기 괴수 둘 숨어있습니다."
떨떠름한 얼굴로 걷던 나머지 아홉은 종종 성연이 무척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 정말로 바닥이나 벽, 천장 따위의 은밀한 곳에 괴수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이 네크로맨서는 시야가 시커멓게 차단된 가운데서 길을 찾는 것은 물론 함정이나 매복 따위도 모조리 파악하고 있다.
안혜지가 말했다.
"어떻게 하는 거에요? 아니······네크로맨서 능력도 무슨 버그 쓰는 거처럼 이상하게 뽑아쓰더니, 이젠 맵핵까지 써요?"
"생명 감지 능력을 활용한 겁니다. 막다른 곳엔 당연히 괴수 없을거고,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몰린 곳은 함정이라 생각해서 피했습니다······."
"그게 되나? 가늠이 안가네. 그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왜 네크로맨서 새끼들이 맨날 탱커들 돈 두둑이 주면서 경호로 써요? 맵핵 쓸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으니까 그렇겠죠."
성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 태도가 무척이나 당당했으며 사실인 탓에 누구도 재수없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맞아, 우리 네크로맨서는 좆나 짱 쎈 최고였지라며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훤히 뻥 뚫린 도로를 달리듯 공략대는 순식간에 29층의 끝까지 도달했다.
성연이 중얼거렸다.
"쉽네요. 29층 맞나."
"그쪽만 쉬운거에요. 우리 아홉 명끼리 왔으면 일단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부터 한 시간 넘게 고민했을······."
"제가 와서 다행이네요."
"······자존감 대단히 높으시네."
안혜지는 이제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 번쯤은 무능력한 순간이 있어도 될 법한 이 네크로맨서는 정말이지 인간적인 면이 없었다. 어떤 상황이든 가장 활약하는 기계 같은 만능 인간이었다.
'언제봐도 어색하네. 원래 네크로맨서, 물량 믿고 밀어붙이는 손 많이 가는 찐따 새끼들인데······.'
29층 공략 속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포인트 투자로 대부분이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인원은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행군한 것으로 지치지 않았다. 결국 대부분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게다가 28층에서 협회 공략대가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바도 있었다. 레베카를 제외하고 전부 전멸한 장면을 확인하지 못한 나머지 아홉 명은 추격에 대한 불안감을 다소 갖고 있었다······.
그래서 휴식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가죠."
"다음층 깨면 진짜 끝이죠? 신비하고 즐거운 지하 미궁 탐험 끝······."
"예, 끝입니다. 30층이 마지막이에요."
그 결정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리하여 열 명의 동의하에 귀환인지, 나아갈 지 물어왔던 문은 그들을 30층으로 인도했다. 정말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길고도 짧았던 여정의 끝······.
『대한민국 던전』
『30층』
.
.
【최종층에 진입하셨습니다.】
【해당 층을 공략할 시 모든 던전이 일제히 소멸합니다.】
【던전 소멸 직후, 한 번이라도 던전에 출입한 적 있는 분들께 200P를 이벤트 종료와 함께 지급합니다.】
이전의 다른 층에 진입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문장들이 띄워졌다.
뒤이어 암흑이 자리했던 풍경이 사라지며 30층의 풍경이 드러났다. 내부를 비추는 광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29층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심각하게 어둡지도 않으며, 전부 훤히 보일만큼 밝지도 않은 환경이다.
딱 적당한 시야만 제공되는 수준.
"다들 정면 주시하고 난데없이 돌격해오는 거 조심······."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공략대는 돌발 사태에 대비했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건 무식하기 그지없게 달려드는 괴수가 아니었다. 안혜지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거, 내가 아는 그거 맞나?"
뒤늦게 안혜지를 따라 정면보다 조금 위쪽을 응시한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던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뭐여. 씨발······."
30층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어렴풋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고질라 닮은 이십 미터 괴수들보다 앞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으며 인류를 위협했던 것. 허공에 커다랗게 뻥 뚫린 구멍······아직까지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차원 왜곡 현상. 「균열」이다.
저게 던전에 대체 왜?
"근데 좀 이상한데, 저거 크기가 너무······."
"그러게요. 균열은 클수록 위험한데······뭐, 설마 마지막 층이라고 고질라보다 큰 울트라맨 같은 새끼들 쏟아지는 건 아니겠······."
던전보다 칠십 년 선배인 재앙의 출현에 몇몇 인원이 섣부르게 추측했다.
그때, 다시 한 번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대균열!】
【과거 인류는 종말의 위기를 수없이 맞이했고 극복했습니다.】
【그 위기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건 다름아닌 괴수들이 초대량으로 쏟아졌던 대균열 사태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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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측에서도 해당 이벤트는 정말이지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도전자분들께서도 재미난 장면을 연출해 주셨으면 합니다.】
【포인트 투자로 하여금 강해지셨을 도전자분들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하여 괴수들의 수준을 '30P- 던전 괴수'로 격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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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조건은 간단합니다!】
【대균열의 군단을 이끄는 위대한 대군주 '하탄'을 쓰러뜨리십시오!】
【'하탄'을 죽인 도전자가 '던전 어택' 이벤트의 우승자가 되어 10,000P를 획득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받은 각성자 분들을 응원합니다······.】
"대균열? 이거 그 사건 맞죠? 실제 있었던······."
"맞는 거 같은데. 음, 그······."
대답하려던 박수한이 순간 성연의 눈치를 보았다.
저 네크로맨서는 대균열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그 표정이 묘하게 살벌하게 변했다.
박수한은 아주 조심스럽고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유현 헌터가 이름 날리게 된, 멱살 캐리한 사건."
***
아주 뛰어나고 유능한 헌터들의 등장에 더불어 인간들의 기술은 대단히 발전했다. 누구도 균열이며 괴수를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위험지역에 생겨나는 균열은 이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나설 것 없이, 근무를 서는 군인들과 비치된 자동 기계식 병기에 의해 출현 즉시 진압되었다.
덕분에 늘 위험이 도사리는 지역에서 군인과 헌터들은 나태해졌다. 이제 원숭이 닮은 괴수들은 값비싼 자원이요, 방아쇠 몇 번 당기면 금세 전멸하는 들짐승과 같았다.
성실히 근무를 서든 경계를 늦추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보초를 서는 군인들은 언제 습격해 올 지 모르는 괴수보다 온라인 게임 패치내역이나, SNS의 몸매 좋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꽤 오래 유지되던 분위기였다. 인류는 긴 시간 동안 평화에 찌들었다.
그러니까, 괴수들의 무서움을 잊기 아주 충분한 시간 동안.
매스컴이 만든 이미지 속 영웅을 동경해 최전방에 지원한 신입이나 사냥한 수를 토대로 성과급을 받는 정규직 헌터를 제외하면 누구도 열정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한 인류에게 경각심을 깨우고자 한 의도였던건지, 느닷없이 위험 지역 중앙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정말이지 아주 큰 균열.
스포츠 토토나 썸녀와 연락하던 이들은 전례 없는 숫자로 몰려드는 괴수 무리를 저지하지 못했다. 개미떼처럼 물밀듯 쏟아지는 괴수들은 육안으로 보기에 검은 파도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재난 경보와 지원 요청이 떨어졌다.
전례없는 위험.
오랜만에 배를 채우게 된 괴수들은 아주 기쁘게 포효했다. 이 오만하고도 평화에 취한 인류를 드디어 집어삼킬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간만의 승리가 참으로 달콤했을 것이다. 이 승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괴수들의 승리는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지 못했다. 오랜만의 승리는 연결되지 못한 채 한 번으로 종결되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통상 균열의 스무 배 크기를 가졌으며 그 개체수는 육백 배로 추측되었던 「대균열」 사태는 무척 간단히 해결되었다.
대체 요청했던 지원을 보내기도 전에 어찌 해결했나? 현재 기용 가능한 헌터들을 모두 동원하는 것은 물론 S급 헌터들까지 소집했던 협회는 어리둥절했다.
이에 대해 답변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 김유현······킴이 역사적인 사건을 해결했다.
전세계가 경악했다. 가장 뒤늦게 S급 판정을 받은 헌터.
전과 4범이라는 질 나쁜 과거로 자격 논란이 있었으며 위대한 영웅들의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성과가 부실하여 거품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던 다섯 번째 S급 헌터.
그 헌터에 의해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다며 외친 10대 청소년의 고발로 인해 머지않아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던 논란의 중심에 선 초인.
하나 되어 비판하던 이들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태도를 바꾸어 환호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스컴에 의해 쉽게 물타기 당했고 제기되었던 논란은 금세 묻혔다.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유현은 인터뷰 몇 번과 어려운 이들에게 통 큰 기부를 했다.
그 단순한 작업으로 전과 기록 있는 살인사건 용의자는 어렸을 적 탈선 좀 했던, 개천에서 용난 대한민국의 슈퍼 스타로 거듭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협회 한국 지부 앞에서 피켓을 든 채 부모를 억울하게 잃었다며 1인 시위를 이어가던 10대 청소년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네티즌들도 웬 관종 급식충 새끼가 우리 형을 깎아내린다며 비난했다.
대균열 사건으로 하여금 김유현은 과거에 나쁜 짓 좀 했지만 개과천선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었다.
대균열 사건으로 하여금 사건의 진상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던 기자의 말만 믿고 있던 10대 청소년은 자신의 안일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라고.
재판관의 심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는 것······.
다행히도 하늘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21세가 되는 해에 억울함을 잊지 않은 소년은 초인이 되었다.
판정 검사 결과는 이러했다.
「판정 등급: D」
「각성능력: 네크로맨서」
복수를 꿈꾸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
"그러니까 괴수들 좆나 많았던 사건······거기서 혹성탈출 원숭이들이 고질라가 되고, 우리가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잖아요?"
"다 상대할 필요는 없죠. 대군주였나, 그 놈만 잡으면 끝인데."
"딱 봐도 괴수들 다 나오면 맨 뒤에서 슬슬 기어 나올텐데 그게 그거죠. 게임에서 최종보스가 시작하자마자 씹새끼들아! 소리치면서 나오는 거 봤어요?"
"뭐, 그건 맞는데······."
이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거 없는 말이다. 대균열 사태는 그 규모에 비해 쉽게 진압되었지만 그 심각성은 아주 널리 알려졌다. 헌터 시험을 치뤄 합격한 바 있는 안헤지는 그 사건에 대해 잘 알았다.
"사진 자료 몇 번 본 적 있거든요? 장난 아니에요. 원숭이 새끼들로 몰려와도 막막할 수준인데, 고질라로 바뀌면 진짜 엄청날 거에요."
공략대는 한껏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작전이나 서로의 역할에 관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 성연만이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누구도 함부로 말걸지 못했다. 지금 저 네크로맨서가 풍기는 기운은 정말이지 숨막힐 정도로 싸늘했다.
그래서 전투는 아홉 명끼리 의견을 나눈 뒤 시작되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균열이 진동했다. 괴수가 쏟아지기 전 벌어지는 징조다.
안혜지가 외쳤다.
"균열 산모님, 출산 준비 하신다!"
그 힘찬 목소리와 함께 과연 커다랗게 뚫린 구멍에서 새까만 고질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돌린 수도꼭지에서 물이 터져나오듯, 그 숫자는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일흔 아홉까지 세던 이현우는 그 후부터 수를 헤아리길 포기했다.
"불바다!"
무식하게 쏟아지는 검은 파도에 힘입어 이쪽에서도 파도가 넘실거렸다. 붉은 파도, 마법사 능력을 8단계까지 강화하며 박수한이 새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마법이다. 과연 화염 마법 중에서도 위력 좋기로 유명한 마법은 순식간에 괴수들을 여럿 불태워 죽였다.
공략대는 아군의 대단한 화력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웃음을 잃었다.
"씨발, 빨무야? 물량 좆되네······."
불탄 괴수들을 짓밟고 더 많은 괴수들이 돌격해온다. 일곱 죽이면 열이 되어 나타나고, 열을 죽이면 스물이 되어 나타난다. 숫자가 아득히 많은 탓에 서로 밀치고 짓밟다 압사하는 괴수들마저 등장할 지경이다. 강화 총기로 최소 서른 발은 맞아야 뒈지는 몸뚱이를 가진 괴수들이 벌이는 인해전술이란 동일한 전술로 유명한 중국의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쿨타임 얼마에요?"
"불바다는 3분, 3분만······."
"윤기! 소환수!"
정면에서 달려드는 괴수들은 순식간에 진영을 펼치며 앞은 물론이고 좌우까지도 포위하려 들었다. 시야의 모든 공간에 괴수가 자리했다. 아가리를 쩍 벌리고 인간의 살점과 피를 탐하는 굶주린 포식자들이.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때였다.
"워어어어어···어엌."
쩌렁쩌렁한 폭음이 울렸다. 달려들던 괴수들의 몸뚱이가 폭발에 휘말려 조각났다. 피와 살점이 흩어졌다. 파편 역할을 하는 사체 찌꺼기들은 폭발에서 멀리 떨어진 괴수들마저 훌륭하게 집어삼켰다. 무식하게 돌격하던 녀석들이 단숨에 전멸했다.
죽지 않고 운 좋게 신체 부위 일부만 잃은 놈들은 곧 다른 것에 의해 죽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사체들이 땅을 짚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고슴도치와 닮은 형태이다. 무척이나 얇고 길게 몸 전체에 가시가 돋아난 언데드가 다수 출현했다.
「마운틴」의 껍질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가시는 닿는 것만으로 괴수들의 껍질을 관통했다. 가까이 접근하기만 해도 위협적인 놈이다. 그런 언데드가 일제히 돌격하는 괴수 무리를 향해 맞서 달렸다. 무식하게 뛰던 녀석들이 그 기다란 가시에 꿰여서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놈들은 또 다시 언데드가 되며, 그리 언데드가 된 놈들은 다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한다. 사체가 아주 많이 발생하는 물량전에 있어서 네크로맨서는 아주 강력한 전력이다. 정말이지 아주 강력한.
"와우······."
더하여 성연이 일으킨 언데드 일부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포효는 던전 괴수들의 의사소통을 방해했다. 괴수들은 이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격하다 부딪혔고, 난데없이 뒤돌아 후퇴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압사하는 괴수가 등장했다. 전장 한복판에서 밟혀 죽은 사체 주변엔 아주 많은 괴수가 있었다. 다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네크로맨서가 일으킬 재료가 생겨났다. 성연은 그것들마저 전부 일으켰다.
열 명에 불과하던 공략대는 한 명에 의하여 군단을 아군으로 두게 되었다.
"저 새끼들 나보다 잘 싸우는데요······."
이젠 벌레보다 괴수나 인간을 매개체로 언데드로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진 가운데 성연은 격투기나 무술 따위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그리하여 일어난 언데드는 타고난 육체와 야수성을 바탕으로 전투하지 않았다. 커다란 괴수 언데드는 프로 선수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언데드 하나가 괴수 여럿을 능히 상대했다.
그리하여 괴수로 이루어진 검은 파도가 접근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공략대가 승리를 예감한 가운데 뻥 뚫린 균열에서 아주 커다란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괴수들과는 달랐다. 정말, 정말로 큰 놈이었다.
모두가 놈이 투명한 창이 언급한 대군주라는 사실을 알았다.
"군단이여!"
등장한 즉시 놈이 소리쳤다. 무식하게 달려들던 괴수들의 눈이 번쩍임과 함께 전신이 붉은 빛으로 휩싸였다. 그것을 계기로 전세가 뒤집혔다. 이제 언데드 하나가 괴수 여럿을 상대하지 못했다. 하나가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붉은 빛에 휩싸인 놈들은 순식간에 그 힘이 전보다 월등히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엉망진창이던 놈들의 움직임이 대군주의 등장과 함께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사령관의 명령을 받는 훈련된 군인과 같이 한몸처럼······.
대군주의 옆에 게임처럼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TIP!】
【위대한 대군주 하탄은 군단의 주인입니다.】
【그가 이끄는 군단은 아주 강력한 힘을 얻으며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대군주의 존재는 일반 병사를 일당백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만듭니다.】
【강력한 힘에 지휘관까지 얻은 무한에 가까운 군단을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를 위해 이 위대한 대군주를 우선으로 처치하십시오!】
아주 당연한 말을 팁이라고 지껄였다.
개쩌는 버프에 오더까지 내리는 새끼라면 당연히 1순위로 죽여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최종층의 진정한 보스라고 할 수 있는 그 대군주의 등장에 누구도 '저 새끼부터 죽입시다!'라는 의견을 꺼내지 못했다.
압도적인 위용에 기죽어서?
아니었다.
"씨발, 지 혼자만 캐시템······."
그 무지막지하게 큰 놈은 걸어다니지 않았다. 머리 위 아주 높은 하늘에 있었다.
대군주 하탄은 날개 달린 괴물을 탄 채 울부짖는 중이었다.
동아시아의 신화 및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신성한 동물이나 영수라 여겨지는······그러니까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괴물.
놈은 검은 용을 타고 등장했다.
그리고, 잘 보이지도 않을 아주 아주 높은 곳에서 날아다녔다.
"밸런스 씹······뜨끈한 신챔이라고 좆나 밀어주네······."
모두가 그 말에 동감했다.
최종보스 등장과 함께 2차전이 시작되었다.
< 최종층 대군주 하탄 (1) > 끝
작가의 말
오늘은 분량이 많습니다.
10000자라서 두편으로 나눌까 생각했는데, 내용이 끊길 거 같아 그대로 올립니다!
최근 제목에 관한 고민이 많네요.
이거보다 괜찮은 제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