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법사 레베카 (3) >
"더 해봐, 더!"
레베카가 요란하게 소리쳤다. 광기에 젖은 목소리. 온라인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그 마법사 복장과 썩 어울리는 음성이다. 딱 마녀의 목소리 아닌가······.
그리 중얼거리며 전장을 주시하던 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존에 일으켰던 언데드가 일제히 머리가 터져 활동력을 잃었다. 새로이 생성되던 언데드들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박살나고 녹아내렸다. 괴수들은 돌격하려는 준비 자세만 취해도 목이 하늘을 날았다. 저 초월적인 영국인 대마법사가 본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 강제······.'
대마법사 레베카 블런트를 대표하는 기술이다. 41Km 반경 내의 모든 현상을 완벽히 통제하는 능력. 그 능력이 최대치로 작용하여 공격 의사를 띈 모든 행동이 제한되고, 나아가서는 허락 받지 않은 움직임이 봉쇄된다.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테러 사건의 진압 목적으로 투입되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전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위대한 힘은 괴수들이 즐비한 지하미궁에서도 아주 임팩트 있게 발휘되었다.
평화를 강제한다는 특징 덕에「영국의 여신」이라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칭호를 안겨준 능력. 그 능력이 발휘된 이상, 41Km 영역 안에서 누구도 레베카를 상처 입힐 수 없다.
그게 상식이었다.
그리고 성연은 지금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준비했다.
"와! 영국의 여신님!"
"레베카! 레베카! 레베카!"
협회 소속 헌터들이 환희에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보기에 일순간에 벌어진 장면은 그야말로 신의 기적과 같았다. 전우를 무참히 살해하고 죽음을 모욕한 네크로맨서가 힘을 못 쓰며 숨 죽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듯 보였다.
그러나 성연은 다르게 생각했다.
'더 해보라고? 그거 좋지.'
실제 공격 행위를 하는 게 아닌, 공격 의사를 띈 근육의 움직임만 비추어도 저 초월적인 영국인 대마법사는 미세한 반응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만능이 아니다. 신에 가까운 능력이라 한들 사용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그렇다.
성연은 S급이라 판정받은 각성자들의 사고 회로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았다. 지나치게 오만하다 평가된 인류의 수호자들은 자신이 정말로 신이며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도 그러하며, 현실에서 벌어진 수 차례 사건으로 증명된 까닭이다.
그러니까 협회 공략대 수를 열 명 미만으로 줄여 역으로 잡아먹겠다는 성연의 목적을 알아챈 레베카는 이리 생각할 것이다. 머저리나 다름없는 이 헌터 새끼들만 지키면 저 네크로맨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군······.
오만함이란 때로 가장 큰 약점이 되곤 한다.
'절대적인 무적이란 없다.'
연산 속도만큼은 레베카에 필적하는 성연은 안다. 초인적인 인지 능력과 계산 능력은 능력을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이 예측하며 신속하게 판단을 내림으로써 비로소 제 속도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예상치도 못했던 일, 혹은 조금도 대비하지 않았던 일마저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레베카는 여신이 아니라,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간일 뿐이니까.
다섯 명만 더 줄이면 된다라는 가정에서 다섯 중에는 분명히 저 초월적인 영국인 대마법사도 포함되어 있다.
유성연은 세계에서 S급 판정을 받은 헌터를 살해한 경험이 있는 유일무이한 인간이다.
레베카 블런트는 공기의 진동과 땅의 울림을 감지하여 전장을 제 발 아래에 둔다. 그러나 완벽에 가까운 경계에 틈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김유현 살해를 계획하며 성연은 S급 헌터들에 관한 모든 영상 매체와 논문들을 반복하여 분석했다. 그 중엔 당연히 레베카도 있었다.
「평화 강제」라 명명된 기술은 41Km 반경 내에서 완벽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공을 나는 전투기나,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자 제품도 그 지배를 벗어나진 못한다. 그러나 평소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성연이 특별한 부분만 발달된 언데드를 만들 때, 어딘가를 퇴화시켜야 하듯이.
성연은 오래 전에 그 '포기한 부분'이 어딘지 알았다. 기술이 발달된 현대 전쟁은 공중전에 특화되었다. 폭격, 무언가를 발사하는 기술이 진보했다. 그리하여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레베카는 지배력을 강력하게 행사할 때면 본능적으로 '하늘 위'로 능력을 뻗쳤다.
그렇다면 포기한 부분은 당연히 반대일 것이다. 지하를 뚫고 솟아나서 요격하는 미사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레베카의 「평화 강제」는 발동하는 즉시 땅 아래에 관한 지배력을 포기한다.
성연은 안배해 두었던 언데드 개체 넷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네와 비슷한 외관으로 땅 아래를 헤엄치던 녀석들은 레베카의 발 아래에 위치했다.
환호를 한껏 받는 여신님을 땅 아래로 끌어내릴 시간이다.
성연이 명령했다.
"끝이야? 어디 있어! 도망치기라도 한······거···업······."
포효하던 괴수들과 언데드들이 침묵했으며 협회 측 헌터들만이 요란하게 레베카를 연호하며 기뻐하던 가운데, 레베카의 발 아래가 푹 꺼졌다. 난데없이 땅이 무너졌고 커다란 구멍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균형을 잃고, 초월적인 영국인이 지하로 떨어졌다.
지네를 닮은 네 마리의 언데드가 낙하하는 레베카에게 달려들었다.
괴랄한 힘으로 가냘픈 몸을 짓이길 생각이었다. 모든 접촉을 막는 마법사의 배리어는 일상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온오프로 발동된다.
자신을 향한 습격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던 오만한 영국인 대마법사는 지금 배리어를 꺼둔 상태였다. 흙을 헤엄치는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물론 그 습격은 접촉까지 이르지 못했다.
위기를 느낀 대마법사의 능력이 바로 반응했다. 41Km까지 퍼뜨렸던 반경이 제 몸 주변으로 좁게 압축되었다. 그 인지 능력은 오로지 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발휘되었다. 그리하여 0.02초보다 훨씬 빠른, 가히 빛에 가까운 속도로 마법이 구성되었다.
예상보다도 신속한 대처였다. 그러나 다소 예상한 결과이기도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S급 헌터의 능력은 아주 재빠르게 움직인다. 단번에 즉사시키는 게 아니라면,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 팔 하나는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그럴듯한 부상 하나도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오, 맙소사······."
사기가 아주 높게 치솟았던 협회 소속 헌터들이 절망했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방금 장면은 마치 레베카가 지하로 끌려가 그대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아주 강력한 희망이 사라졌을 때 즉시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초월적인 마법사의 방해가 사라진 상황에서 넋 나간 헌터들 몇 죽이는 것쯤은 성연에게 쉬운 일이었다. 정말이지 아주 쉬웠다.
"어······엨."
헌터들은 괴수와 괴수 몸뚱이를 뒤집어 쓴 언데드만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니까 던전에 존재할 리 없는 날벌레 몇 마리 따위를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성연은 수 미터 언데드가 덮쳐올 상황만을 신속히 대비하는 헌터들에게 엿을 먹여주었다.
인간에겐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강도를 자랑하는 껍질도 없으며, 평범한 미니건 사격쯤은 버텨낼 수 있는 근육도 없다. 지나치게 눈에 띄며 레베카 탓에 일으킬 수 있는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든 괴수 언데드를 굳이 기용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날갯짓 소리가 울렸다. 시야 사각지대에서 귓구멍으로 파고든 뒤, 내부 기관을 박살내고 뇌를 망가뜨리며 빠져나왔다. 그 작업이 반복되었다. 일반인보다 우월한 몸뚱이를 갖고 있다 한들 고막이나 뇌까지 단단할 수 없다.
은밀하고도 고요하게 살인은 이루어졌다. 멀뚱히 서 있던 헌터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눈치채지 못한 채, 조용히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리고 아무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다섯 명만 줄이겠다는 초기 목적보다 더 발전했다. 이제 지상에 살아남은 협회 측 헌터는 한 명도 없었다. 땅 아래로 끌려간 대마법사만 제외하면.
"으, 히, 하하하하하하!"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뒤이어 레베카를 땅 아래로 빠뜨렸던 언데드 넷이 일제히 활동력을 잃고 소멸했다. 흙 속에서 눈부신 빛이 터졌다. 마법적 지식이 전무한 성연으로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자세히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너, 너 개쩐다. 최고다! 최고야!"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 레베카의 주변엔 짙은 오색의 무언가가 일렁였다.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성연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주고 있는 언데드에게 당장 29층으로 가는 문을 향해 달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 이렇게 쫄아본 게 대체 얼마만인지 알아? 넘어져서 발목에 멍 들었잖아! 다쳐본 게 열 살 이후로 처음이야! 네가 처음이라니까? 와, 짜릿해. 좆나 짜릿······."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한 미친년의 말을 계속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성연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향하며, 협회 헌터들 시체를 변이시켰다.
아주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도록.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던 레베카가 말을 멈추었다. 그 전조를 느끼고 연산을 시작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에 관해선 아까 겨룬 적이 있었다.
능력 발동의 연산에 있어서 성연은 레베카보다 미세하게 빠르다.
레베카는 곧 폭발을 저지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후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배리어를 겹겹이 쌓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벌어졌을 때 저 멀리서 일대를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폭음이 울렸다.
폭음 이후론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마법사 소년을 소재로 한 판타지 소설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광기에 물든 마녀의 웃음 소리였다.
***
미국 워싱턴 던전에는 세계적인 기록을 세운 협회 공략대가 진입했다. 자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그 공략대는 인기가 아주 많았다. 각성자나 괴수들이 등장하기 이전, 미식축구 선수나 메이저리그 슈퍼 스타들보다도 인기가 많았다.
1번부터 30번까지 유니폼이 제작되어 판매될 정도였으며 각 헌터들을 본딴 굿즈마저도 출시되었다. 게임이나 다름없는 지하 미궁의 등장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음지에선 공략대들의 성적으로 불법 도박이 이루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협회 공략대는 이번에 철저하게 준비한 뒤 긴 원정을 떠났다. 안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 침낭 따위를 가지고 들어가 안에서 휴식하며 빠르게 던전을 내려가기 위한 원정이었다. 비장의 카드로 레베카 블런트까지 투입한 가운데 기대가 아주 컸다.
벌써 홍보팀에서는 쏟아낼 기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영웅들을 위한 인터뷰도 함께.
아무도 실패할 거라 의심치 않았다.
마침내 미국 워싱턴 던전 안에서 협회 측의 공략대가 귀환했다.
발목에 멍이 든 채 실실 쪼개고 있는 레베카 블런트 혼자서 말이다.
생존자 한 명.
세계헌터협회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에 난리가 났다. 정말이지 아주 큰 난리가.
***
안혜지는 불안했다. 단숨에 문 앞까지 도달한 뒤 포지션을 지키며 버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이 열 명으로 구성된 공략대는 성연이 없어도 각각 제몫을 하는 훌륭한 인원이 된 덕분이다. 그녀가 불안한 이유는 하나였다.
'진짜 알아서 잘할지 모르겠네······.'
협회 공략대의 숫자를 줄이겠답시고 혼자 나선 네크로맨서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한참이나 약한 안혜지가 걱정하는 모양새가 우습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요란한 폭음이 몇 번 울렸다.
"뭐야, 좆나 살벌한······."
이제 다른 이들도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행인 네크로맨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상대는 인류의 수호자이며 최강자라 공인받은 인물이다.
어릴적 초등 교육을 받을 시절부터 교과목에서 그 대단함에 대해 교육받은 바 있었다······.
그때였다.
커다란 언데드가 쿵쾅대며 달려왔고, 그 입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문 열어요,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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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던전』
『29층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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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법사 레베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