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환사 김윤기 (5) >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온 열 명의 공략대는 그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한 명도 죽지 않고 귀환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인원 채우기 용으로 고용된 여덟 명의 공략대가 보기에 이번 활약의 주인공은 김윤기였다.
"윤기! 개쩔었다! 흑염······룡? 좆나 세더라!"
"아······네, 근데 굳이 소환수 이름을 말하실 필요는······."
"흑염룡의 주인 김윤기! 위대하고 영웅적이며 전설적인 소환수의 주인 김윤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김윤기를 보며 여덟 인원은 껄껄 웃었다. 이 소심하기 그지 없는 고등학생의 활약은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순간적인 공로로 따지면 저 헬멧 쓴 네크로맨서와 비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당장의 생환에 감사하며 축하를 마친 가운데 박수한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우리 왜 정면으로 뚫은거요? 저 똑똑한 양반이 협회 공략대한테 지기 싫다고 무리한 건 아닐테고······아까 상황만 보면 협회가 무시무시한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투 과정에서도 피어올랐던 의문이었다. 의견이 갈리면 위험해질거라 생각했기에 당시엔 억눌렀던 생각. 그러나 전투가 끝났으며, 모두 생환한 이상 그 의문을 더 감출 이유는 없었다.
다른 공략대원들도 타당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저돌적인 돌파는 분명 무리한 명령이었다. 이 고등학생 소환사의 능력이 부족했다면 희생자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모두 성연을 바라보는 가운데 안혜지마저도 의문이 솟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저, 그건······."
"됐습니다. 내가 직접 말하죠."
언변 좋은 이현우가 제 특기를 다시 한 번 발휘하려던 때 성연이 말을 뚝 끊었다. 저 능글맞은 감방동기가 변명한다면 이 단순한 사람들은 분명 설득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좋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숨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열 명의 공략대와 던전의 끝을 봐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불편한 진실일지 몰라도 목숨을 내던진 이들은 진실을 마주하길 원할 것이다.
성연은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유별날 것 없는 평범한 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일행 중 몇은 그 헬멧 속에 아주 사나운 인상을 상상했거나, 흉측한 얼굴을 상상한 바 있었다.
예상과 달리 아주 밋밋한 인상이라고 생각하던 이들은 곧 그 얼굴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익숙한 생김새임을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 얼굴이 사나운 건달이나 양아치, 괴물을 닮은 흉측한 인상보다도 훨씬 악마 같은 인물의 얼굴임을 알았다.
한때 대한민국 뉴스에 밥먹듯이 등장했으며, 아주 오랫동안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메인 기사로 작성되었던 범죄자······.
"제 이름은 유성연입니다."
그 입에서 확인사살까지 떨어지자 이현우를 제외한 모두가 숨을 헉 들이마셨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유성연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그만큼이나 컸다.
유영철이나 강호순, 그 범죄 행각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 연쇄살인범 이춘재도 유성연과 같은 선상에 오르지 못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와 그 팀을 살해한 그 사건은 여전히 강렬했다. 세계에 다섯 명밖에 없으며 자연재해 취급을 받는 그 인물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유성연이 벌인 사건은 한국인들에겐 과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보다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모두 아시겠지만 김유현 헌터와 그 팀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입니다."
"······."
"그 죄를 저지른 이유에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느니, 정당한 일이었느니 같은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계획적이며 고의적인 살인이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놈들을 죽일겁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숨소리조차 작아진 가운데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성연은 꿋꿋하게 뒤이어 말했다.
"협회는 저는 물론 관련된 이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너처럼 덜떨어진 각성자가 그 대단한 헌터를 혼자서 살해했을 리 없다고······지금도 비슷할 겁니다. 뒤돌아 협회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신분을 확인했을테고, 제 얼굴을 본 순간 모두 죽였을 겁니다."
"······."
"관련 없는 사람이라고 열심히 변명했다면 몇은 살려주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는 죽었을 겁니다. 그들에게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무리한 작전을 강행했습니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 죽을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정면으로 뚫자고 소리친 건 그 이유입니다. 살고 싶어서."
"아······."
"영웅과 그 동료들을 싸그리 죽여버린 사형수가 꺼림직하다면 떠나셔도 좋습니다. 협회에 고발해도 좋습니다. 다만 여기 남겠다면 나는 앞으로도 똑같은 선택을 할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내 생존을 우선할 겁니다."
침묵은 길게 흘렀다.
"그···렇게 해요. 난 남을래요."
가장 먼저 적막을 깬 건 언변 좋은 이현우도, 오래 함께한 안혜지도, 사회 생활 경험 많은 공략대의 어른도 아니었다.
열 일곱, 고등학생 김윤기였다.
"군인과 경찰들은 나라를 버리고 도망쳤어요. 선생님들은 겁에 질려서 학교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수백명 되는 전교생은 대기하라는 말 듣다가 고질라들 밥으로 변했고요."
"······."
"사형수건, 협회가 공인한 범죄자건······난 여기 남을래요. 협회도 우릴 버리고 도망간 자들 중 하나에요. 그리고 그쪽은 사정이 어떻건 남았고요."
김윤기는 더듬거리고 느릿하게 말하면서도 그 뜻을 분명하게 전했다.
"아저씨들이 그랬어요. 바뀐 세상에선 떠드는 말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마음이 가는 사람을 믿으라고. 난 그, 유성연 씨가······마음에 들어요. 믿을 수 있어요. 게다가 우리 사장님이 믿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면 기꺼이 믿을 수······."
그 말은 신호탄이 되었다.
나머지 인원들도 비슷한 뜻을 전해왔다. 그 단결은 성연이 보기에 상식적이지 않았다. 단순 잡범도 차별하는 세상에서 살인죄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는 얼마나 높은가. 더욱이 그가 살해한 인물들은 매스컴에 알려지기로 아주 비범하며, 영웅적인······.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잠깐 놀랐던 안혜지는 맥없이 웃으며 말했다.
"범죄자란 건 알았는데 이런 거물일줄은 몰랐네. 뭐 어때요. 어차피 세상 엉망진창된 이상, 스케일이라도 좆나 큰 게 낫지······."
"······."
"한 달 동안 별 꼴 다 본 사람들인데 일행이 악질 사형수인 거 알았다고 설마 도망치겠어요? 뭐, 강간범이나 성추행범이였으면 정떨어져서 도망쳤을지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던 분위기는 곧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그 중심엔 이현우가 있었다. 사기 전과범을 중심으로 뭉친 생존자 집단의 결속력은 아주 끈끈했다. 성연은 저들이 이탈하지 않은 이유 중 자신이 이현우와 아는 사이이며 꽤 친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라 명명된 생존자 집단에서 이현우는 드러나지 않으나 아주 큰 인물로 자리했다. 폭력조직의 보스만큼 권위를 가지지 않으나, 그가 내린 명령이라면 조직원들은 목숨도 던질 것이다. 김윤기는 여기 남겠다는 말을 할 때 뒷말을 강조했다. 사장님이 믿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나머지 인물들도 그 말에 동조했다. 성연은 그 미세한 반응을 알아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떤 식으로 사람을 구워삶아야 고작 한 달만에 저런 충성심 높은 집단이 성립되는가······.
생각을 이어가던 중 안혜지가 말했다.
"근데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뒤이어 물었다.
"정말로 혼자서 김유현 헌터랑 그 팀 죽였어요? 내가 헌터 출신이라 공범 캐내려고 묻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그쪽이 아무리 세도······솔직히 김유현 죽이기엔 턱없이 모자라거든요. 계란으로 아무리 내려쳐도 바위가 부서지지는······."
성연의 정체를 안 순간부터 안혜지는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었다. 서울특별시의 균열관리부 헌터로 활동한 바 있던 안혜지는 영웅이라 불리우는 그 헌터를 실제로 본 적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한지도 알았다. 정말이지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이 네크로맨서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껏 정체를 숨겼던 이 네크로맨서는 놀랍도록 강하다. 하지만 '놀랍도록 강한 사람' 정도에 불과하다.
안혜지가 보았던 그 헌터는 사람이라 규정 지을 수 없었다. S등급이라 판정된 그 힘은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스쳐지나가는 태풍이나 지진, 지겹게 내리는 홍수와 같았다.
그리고 고작 인간이 태풍이나 지진, 홍수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대로.
***
하루가 지났다. 탱커들은 감전의 여파로 남은 경직을 회복했으며 끈끈한 특유의 분위기도 돌아왔다. 공략대는 아녀자나 어린 아이를 살해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웅을 살해한 인물에게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다소의 경외심마저 느꼈다.
벌인 사건이 어떻든 현실성을 아득히 벗어난다면 공포보단 미묘한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제 보스를 맹목적으로 신뢰했으며, 그 보스가 믿는 사람이라고 언질을 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밤이 지나 낮이 찾아왔음에도 공략대의 이탈은 없었다.
"근데 중간 보스 알려진 정보 있어요? 협회 공략대 좆나 빠르다던데, 우리 쉬는 동안 보스 잡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번엔 정보 안 풀었는데요? 아무래도 우리 신경 쓰는 거 같아요. 지들이 젤 빠른 줄 알았는데 먼저 온 사람들 있는 거 봤으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결국 그들은 정보 없이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던 중간 보스 층에 진입해야 했다.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포인트 투자 빡세게 하죠? 철저히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안혜지가 내놓은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공략대는 능력 강화나 테크 트리에 아낄 것 없이 그 포인트를 투자했다. 레이드에 대비해서 게임 캐릭터 스펙업을 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현우만이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내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포인트 쓸데가 없어서 넘치는데 이걸로 총이라도 사서 드리면 되나······."
"그건 너무 낭비 같고. 테크 트리 없어요? 혹시 전투에 도움되게 발전할지도······."
"테크 트리요? 상세 능력 강화?"
"네, 그거."
제 능력은 아무리 발전시켜도 싸움에 쓸모가 없다는 걸 일찍이 알았던 이현우는 그쪽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큰둥하게 이현우는 포인트 관리창을 뒤적였다.
테크 트리라 부르는 상세 능력 강화를 전에도 살핀 적 있었다. 그러나 그 항목들은 역시나 전투에 도움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목소리를 더 잘 흉내내거나, 얼굴을 놀랍도록 똑같게 변신시켜주는 그런······.
"어?"
"왜요?"
"이거 원래 막 갱신되고 그러나? 옛날에 없던 게 있는······."
옆에서 떠들던 안혜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갱신? 들어본 적 없었다.
세상이 바뀌고 포인트를 투자하게 될 수 있게 된 이래 그 내용은 꾸준히 동일했다.
"뭐라고 써 있는데요?"
"인물 모방 강화? 겉으로 드러나는 걸 흉내내는 단계에서 더 발전해서 흉내낼 수 있다고······."
"쓸데없이 대단해 보이는데. 투자해봐요, 포인트 넘친다면서······."
그 말대로 포인트를 쓸곳이 딱히 없던 이현우는 그 상세 능력 강화 항목을 눌렀다.
동시에 시끄러운 알림과 함께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거기 적힌 내용을 천천히 소리내어 읊었다.
"포인트 부족하다는데. 더 필요하다고······."
"뭐요?"
"이상하다, 나 그 동안 진짜 아꼈어요."
20층에 가깝게 버스 타며 공략 포인트를 모은 이현우는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가 아주 많았다. 버그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이건 보유 포인트를 따져보았을 때, 새롭게 등장한 상세 능력 강화는 최소 일만 오천 포인트 이상의 가격이라는 뜻······.
"거기 둘, 여기 와요!"
기이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던 때, 박수한이 둘을 불렀다.
"중간 보스 잡을 계획 짠다니까 빨리······."
이현우는 눈 앞에 띄웠던 그 창을 치우곤 곧 한데 모인 공략대 쪽으로 향했다. 이게 뭐든 어차피 전투에 쓸모없는 제 능력을 생각하면 별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여기 신경 쓸 시간에 회의에 참여해 그럴듯한 의견 제시하는 게 더 중요할 터다······.
그리하여 안혜지도 관심을 끊은 가운데 새로이 갱신된 그 상세 능력 강화 항목은 서서히 잊혀졌다. 광화문 광장에선 20층에 관한 이야기만 울려퍼졌다.
"그럼 내가 불바다 치면 윤기가 그 흑염룡이니 뭐니 소환하고······."
회의는 단순했다. 누가 선공을 하며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하여 각자의 역할이 정해진 가운데 늘 그랬듯 안혜지가 먼저 던전으로 발을 디뎠다. 열 명의 눈 앞에 일제히 같은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모두 같은 선택을 했다. 입장.
『대한민국 던전』
『20층』
『중간 보스룸』
『입장······.』
< 소환사 김윤기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