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23화 (23/111)

< 소환사 김윤기 (2) >

무척 유능한 네크로맨서를 앞세운 공략대가 던전을 돌파하는 속도는 유례없이 빨랐다. 성연과 안혜지, 두 명이서 소수정예로 휩쓸던 시절보다도 훨씬 빨랐다. 성연은 포인트를 투자하여 성장한 자신의 덕이라고 생각했으나 10층을 넘고 11층을 넘으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략 포인트를 얻고 투자한 나머지 공략대원은 이제 안혜지 정도로 제 몫을 하게 되었다. 더하여 한 달 동안 생존을 위해 서로 합을 맞춰오던 전우들이었다. 그 팀워크는 던전 안에서도 빛을 발했다. 각각 한 사람 몫을 하는 열 명의 공략대란 참으로 강력한 집단이었다.

물론 전투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능력에 포인트를 투자한 이현우는 좀 더 정교한 성대모사 실력밖에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를 짐짝 취급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열 명이나 되는 집단에서 단결력과 질서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운데 이현우는 뛰어난 리더였다. 싸움 실력 없다며 놀리던 안혜지도 이현우가 서울대학교 출신임을 알고 나선 조용해졌다······.

그리하여 며칠이 지나 드디어 모두가 15층으로 가게 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진짜 아무도 안 죽었네요, 완전 기적······."

"기적은 이게 기적이죠. 다른 공략대들이 아직도 우리 못 제쳤다는 거······."

협회나 유명 길드의 공략대들에 비하여 한참 뒤쳐지게 될 거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은 15층에서 한참이나 막혔고, 아직도 공략하지 못했다. 협회는 15층의 난이도가 전과 비교하여 무척 심각하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최소 인원 10인'이라는 단어를 꼽았다. 전에 비하여 최소 열 배는 어렵다는 그런 해석이었다.

물론 성연의 능력이 얼마나 우월한 지 알게 된 대한민국의 공략대는 도전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열 명의 공략대는 던전에 입장했다.

『대한민국 던전』

『15층』

***

15층 던전은 아주 넓었다. 그리고 다른 층과 달리 암흑이 내려앉지 않았다.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케 하는 드넓은 평원의 천장엔 태양처럼 밝고 커다란 광원이 있었다. 그 찬란한 하늘에 공략대는 오히려 당황했다. 어둠에 적응되어 있던 눈은 오히려 빛을 낯설어했다.

"저기, 좆나 많다!"

안혜지가 소리쳤다. 성연의 감지 능력을 쓸 것도 없었다. 입장과 동시에 괴수들은 도전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요란하게 습격해왔다. 한두놈이 아니라 무려 수십에 달하는 놈들이.

"뭐야, 씹······저건."

순수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밀어붙이거나 식물 형태로 진화하여 매복해 공략대를 엿먹이던 괴수들은 없었다. 놈들은 달려오는 대신 육중한 무언가를 타고 있었다. 7m에 달하는 던전 괴수들은 검은 말을 타고 벌판을 달렸다. 손에는 길쭉한 창을 들고.

"저게 창이야, 미사일이야."

물론 그 몸뚱이에 맞게 무구도 거대해진 가운데 그 창은 중세 기사들이 다루는 창보단 현대 무기인 미사일에 가까운 형태였다. 안혜지는 당황하는 대신 방패를 밀어붙이고 미니건을 갈겼다. 얻은 공략 포인트로 강화 총기를 구매한 다른 공략대원들도 그렇게 했다.

검은 말들에겐 다행히 집중사격이 먹혔다. 다리가 꿰뚫린 말들은 넘어져 목이 부러졌고, 몇몇 던전 괴수들도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저 미친 새끼들, 쓰러진 놈들 밟고······."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미니건 화망 뒤로 다른 형태의 공격이 뒤따랐다. 화약의 추진력으로 회전하며 적을 부수는 현대 열병기 방식 공격이 아니라, 초인으로 명명된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의 공격. 온라인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불길이 일대를 휩쓸었다.

공략대의 든든한 원거리 딜러. 딱 한 명 있는 마법사 박수한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던전에서만큼은 최고의 인력으로 평가받는 광역 딜러는 무식하게 달려드는 던전 괴수들을 일제히 불태웠다. 불길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은 던전 괴수들마저 그 열기에 데워져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노릇하게 구워진 껍질은 4단계 강화 총기의 사격을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했다. 난리가 벌어진 가운데 순식간에 다섯의 던전 괴수가 죽었다.

버스에 탑승해 얻은 포인트를 때려박아 능력 6강을 찍은 마법사는 이런 식의 전투에서 정말이지 강력했다. 물론, 그 숫자가 과할 정도로 많은 것이 문제였다.

"씨발, 화염벽 뚫렸다!"

"다시 못해요?"

"위력 끝까지 밀어붙여서 재사용 대기시간 걸렸어. 2분, 2분만 버ㅌ······."

박수한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 던전 괴수의 창이 한줄기 빛살을 그렸다. 폭발적인 근력은 가히 초월적인 위력을 뿜어냈다. 층을 더하며 교활하고 지능적이게 진화한 던전 괴수는 앞에서 버티는 탱커들이 아니라, 방금 제 동족을 태워죽인 박수한을 노렸다. 다행스럽게도 안혜지는 그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휘두른 방패가 친환경 미사일을 막아냈다. 7단계까지 강화된 각성 능력은 이제 첫 공격에 한정하여 완전 방어를 할 수 있었다······.

"2분 기다릴 것도 없어요, 우리 버스 기사 있어요!"

안혜지의 외침과 함께 성연은 머릿속에서 그리던 구상을 끝마쳤다. 동시에 불에 타죽은 놈들의 시체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중세 시대 마상 기사처럼 돌격하는 놈들, 그 적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말에서 떨어뜨리거나 그 힘을 역이용할 수 있는 개체라고 판단했다. 곧 무척 기다란 팔을 가진 언데드 네 마리가 일어났다.

촉수처럼 흐느적거리는 팔이 아니라 철사처럼 견고한 팔을 가진 놈들이다.

달려들던 말의 다리에 그 팔이 걸렸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던 놈들이 우수수 넘어졌다. 꽤나 우스운 광경이었다. 적만 바라보며 돌격하는 놈들은 아래에 뻗어진 장애물을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무언가에 탑승한 뒤 무섭도록 접근하는 던전 괴수들의 전략은 곧장 파훼되었다.

더하여 나머지 한 마리의 언데드는 장애물 역할이 아닌 넘어진 놈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두더지처럼 땅 아래로 파고든 언데드는 탄력 있고 길게 뻗어지는 송곳 같은 신체 부위를 얻었다. 총 스물 두 개의 그 신체 부위는 바닥을 뒹구는 던전 괴수들의 머리통과 심장만을 꿰뚫었다.

안혜지가 소리쳤다.

"와, 럴커! 좆되네!"

그 전투 방식을 보며 김윤기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세포를 변이시켜 제 뜻대로 딱딱 언데드를 일으키는 것도 놀라운데, 상황을 판단해 싸움의 판을 짜는 능력 또한 무척 뛰어났다······.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괴수들이 줄줄이 넘어지고 죽는 가운데 박수한이 소리쳤다.

2분이 지났다.

"씹새끼들!"

이번엔 화염벽보다 훨씬 임팩트 있는 마법이었다. 넘어진 놈들이 허우적거리는 와중 커다란 불덩이가 날았다. 박수한이 파이어볼이라 이름 붙인, 온라인 게임 마법사가 저레벨 스킬로 배울만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저레벨 수준이 아니었다.

불덩이는 목표물과 부딪힌 순간 수류탄이 폭발하듯 그 화염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 굉음과 함께 던전 괴수 셋이 동시에 죽었다.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놈들은 땅 속을 헤엄치는 성연의 언데드에게 마무리 당했다.

생명 반응을 느낄 수 있는 네크로맨서는 확인 사살에 있어서도 무척 뛰어난 인력이었다.

그렇게 비슷한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전투가 끝났다.

엄청난 숫자의 사체가 그 앞에 쌓여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좆나 힘드······."

"선봉대 같은데요, 던전 안에서 생명 반응 엄청 많이 느껴집니다."

"씹······."

막 휴식을 취하려던 이들이 저마다 욕설을 뱉었다.

협회나 유명 길드의 공략대가 무능해서 실패한 게 아니었다. 15층 던전의 난이도는 그 전과 비교하여 이상할 정도로 높았다. 정말 열 배 어려워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러나 성연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쌓여있는 사체들을 바라보았다.

"저쪽이 물량 공세하면 이쪽도 하죠."

"예?"

"이렇게 많은 사체는 던전 안에서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 말대로였다. 사체로 언덕이 만들어진 가운데 공략대는 이 헬멧 쓴 사내가 가진 능력의 진정한 무서움을 잊고 있었다. 벌레나 특이한 생김새의 괴수를 만들어 싸우기에 소수 정예식으로 전투를 선호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네크로맨서의 싸움 방식은 본래 그게 아니다.

한 달 동안 지하에 갇힌 성연은 모르겠지만 다른 공략대원들은 그 음침한 각성자들이 한 번 물량을 확보하면 얼마나 강력한 인력이 되는지 알았다. 아주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윤기, 너 소환계라서 네크로맨서들도 공부 좀 했다며······저게 정상적인거야?"

박수한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그러나 김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통상 네크로맨서가 괴수 열 마리 넘게 못 일으켜요. 강화 좀 해야 수십 마리씩 끌고······옛날부터 진짜 좆나 센 네크로맨서들이 몇백······."

"그럼 저 양반은 소싯적에 얼마나 셌던······."

언덕이 움직였다. 그와 함께 커다란 언덕을 이루고 있던 사체들이 모조리 언데드가 되었다. 기분 나쁘게 삐걱대던 녀석들은 곧 저 네크로맨서의 취향에 맞게 괴이한 생김새로 변이했다. 아까 놈들은 말을 타고 달렸지만, 이번 녀석들은 하반신은 말이며 상반신은 인간 기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와 비슷한······.

"휴식하시죠. 쟤네가 대신 싸워줄테니."

대단한 장면을 연출한 그 네크로맨서는 조금의 과시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일행도 15층을 함께 하며 저러한 모습에 다소 익숙해진 바 있었다. 그리하여 켄타우로스와 말 탄 괴수 새끼들이 싸우는 가운데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박수한이었다.

"그···전부터 궁금했는데, 대한민국에 왜 남으신 거요? 보니까 세상 지랄나기 전에도 끗발 날리셨을 거 같을 듯 한디······일본, 아니 미국 넘어가셨어도 통했을거요."

"강화에 때려박아서 세진 겁니다. 박수한 씨도 원래 불 쓰는 마법 막 갈겨도 괴수 잡기 힘들었다면서요. 저도 포인트 얻다보니 세진거죠."

그 대화를 들으며 김윤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다. 이 네크로맨서는 전에도 좆나 센 사람이었을거다. 언데드 한 마리밖에 못 부렸어도 저 세밀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부렸다면 그 위력이 놀라웠을 것이 분명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 이야기부터 시작해 잡담까지 이어지던 가운데 안혜지가 말했다.

"근데 그쪽 윤기? 윤기 씨는 소환수······."

"그냥 윤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 그래. 고딩 같아보이는데 반말하긴 좀 애매해서."

"고딩 맞아요."

"그건 안 물어봤고. 윤기는 소환수 안 써? 싸울 때 소환수 쓰는 걸 못봤네. 그때 귀여운 거 소환해서 분위기 띄우라고 했던 건 농담이었는데."

"아······."

김윤기는 안혜지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단순했던 까닭이다. 저 대단한 네크로맨서에 비해 아주 형편없으며, 과거 놀림받은 적도 있었던 능력을 선보이기 쪽팔렸다. 소환사 능력은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발동하는 가운데 사용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형태로 소환된다.

그리고 김윤기가 각성하게 된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한창 중2병에 찌들었으며, 애니메이션과 라이트노벨······일본 문화에 한창 빠져있던······.

"그, 그게······전투 방해될까봐······."

"방해되긴. 소환사들 대부분 마법사만큼 센 거 알거든?"

"전, 그······."

"쪽팔려서 그러지? 괜찮아, 누가 놀리겠어?"

김윤기는 당신이 놀릴까봐 그렇다는 말을 삼켰다.

안혜지를 본 지 꽤 되었고 이 여자의 성격이 심술맞다는 걸 알았다.

학창 시절에 자신을 괴롭히던 소위 일진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능력을 사용한 뒤 놀려서 반응이 좋으면 '야, 우냐?'라고 말할 것 같은······.

"저기 심심하면 성대모사하시는 분도 있는데 뭐. 싸울 때 소환수 써봐. 여기 박수한 씨도 좆나 센데 너까지 합치면 우리 버스 기사님 안 나서도 될지도······."

안혜지의 말에 박수한이 그의 등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그래, 윤기. 네 능력 쪽팔릴 게 뭐 있냐? 거기 지킬 때 몇 번 썼었는데 사람들 다 멋있다고 그랬잖아. 거기다 능력 쓰기 전에 주문 외는 것도 좆나 간지난다고······."

"그, 그만! 알았어요! 다음부턴 나설게요."

"기대한다, 임마. 게다가 너 팀 짜서 간 것도 아니고 던전 4층 솔플로 뚫었잖······."

"솔플? 혼자? 그건 나도 못하는데."

안혜지가 눈을 크게 떴다. 던전 4층을 혼자 공략하는 건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찐따 같아서 좀 놀려보려 했던 생각이 바뀌었다. 소심해 보이는 이 고딩은 안혜지보다 센 능력을 가진 인재였다······.

이젠 진짜로 그 능력을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다들 잘 쉬셨습니까?"

그러나 자세히 묻기 전에 성연이 말했다. 휴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물론 긴장하는 이는 없었다.

저 대단한 네크로맨서가 언데드 일으켜 다 죽였겠거니······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거의 다 죽였는데 문 앞 지키고 있는 놈이 셉니다. 진짜 많이 세요."

"세다고요?"

"다 같이 힘 합쳐서 죽이죠. 늦으면 협회나 길드 공략대 들어와서 난장판 될테니, 빨리······."

이젠 '층 보스'라고 명명된, 통상 개체들보다 강력하며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문을 지키는 특출난 괴수. 층 난이도에 비례하여 강력해지는 특징을 가진 놈에 대한 설명에 모두 침음을 삼켰다. 더럽게 빡센 놈들이 즐비한 이곳의 층 보스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그리하여 휴식을 취하던 이들은 다 같이 벌판을 걸었다. 벌판 곳곳에 괴수 사체가 늘어져 있는 모습에 몇몇 공략대원이 숨을 헉 들이마셨다. 한 사람의 각성자가 벌였다기엔 무척이나 블록버스터한 현장이다. 요즘들어 퇴물 취급을 받던 네크로맨서가 전장에서 얼마나 빛을 발하는 지 아홉 명 각성자들은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문 앞에 도착했다.

다른 놈들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타고 있는 괴수.

"씹······밸런스를 개 좆으로······."

말이 아니었다. 양손에 창을 쥔 놈은 땅에 발을 딛지 않았다.

검은 말이 아니라, 검은 날개를 가진 새를 탄 괴수가 요란하게 포효했다.

***

「이름: 박수한」

「판정 등급: C+」

「6단계 능력 강화」

「각성능력: 마법사-화염특화」

「화염 계열 마법을 사용한다.」

「한 번의 마법 사용 후, 그 위력에 비례한 재사용 대기시간을 갖는다.」

「보유 아이템」

「4단계 강화 총기」

< 소환사 김윤기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