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환사 김윤기 (1) >
"그래서 그냥 보냈다고? 다른 애들 붙일 생각도 못하고 병신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죄송합니다. 설마 다각도에서 저격하는 놈들 단번에 쓸어버릴 거라곤······."
"아니야, 됐어. 애들 붙여봤자 더 죽기만 했겠지. 팔찌 차고 벌레 부려서 고질라 학살하던 놈 아닌가······생각이 너무 좁았군."
강윤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강태혁이 말했다.
"대한민국으로 뒤처리 전문인 애들 보낼까요? 기다렸다가 자고 있을 때나 밥 먹을 때 노리면 당할지도 모릅니다. 여자도 하나 데려왔던데 둘이 밤에 그짓거리 하면······."
"그런 식으로 죽을 놈이 아냐. 괜히 각성자 좀비 늘려줄 일 하지 말게, 거슬리는 놈이긴 하지만 딱 거슬리는 정도인 놈이니······."
강윤식이 고개를 저었다.
본래라면 자신에게 닿을 사항도 아니었으나, 유성연이 귀환했다고 이 무식한 놈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오바했다. 괜히 귀한 인력만 날린 꼴이 되었다.
"우리는 그냥 우리 할 일하지.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멀어질 놈이야. 빌어먹을 네크로맨서라는 점이 걸리지만······나중에 치워도 돼. 놈이 아무리 세도 당장 우리를 무너뜨릴 순 없어."
"맞는 말이십니다. 게다가 옛날 그 일도 별 신경 쓰지 않는 거 같던데······."
"방심하지 말게! 교활한 네크로맨서 놈들 아닌가! 자네 그 일을 잊었나? 놈은 분명 언젠가 복수랍시고 나타날게야. 그때 치우면 돼. 방심하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시기가 오면 죽여버리면 된다고······."
그 노성에 강태혁이 히끅 딸꾹질했다.
교도소 시절과 확연히 달라진 인상이 보였다. 눈에 핏발이 서고 한층 주름이 깊어진 모습, 십년은 더 늙었다 해도 믿을 것이다. 그 일 이후 강윤식은 바뀌었다. 그 사형수의 말대로 과대망상과 증오에 빠진 미치광이에 가깝게······.
"조금이라도 심기가 뒤틀리면 죽이려 드는 놈이라고. 그 당사자는 물론 친구, 가족까지 서슴없이 죽여서 언데드로 만드려는 놈들. 사악한 짐승새끼들! 잊지 말라고, 강태혁이. 절대로!"
"예, 예. 당연히······."
벌벌 떨던 강태혁이 허리 숙여 말한 뒤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준비했던 보고 사항이나 사죄의 말 따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홀로 남은 강윤식은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네 살 연하의 아내, 갓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두 딸과 일곱 살 아들······.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가족들이다.
'7층 공략대에 끼워주겠노라 허락했는데도 싫다? 역시 네크로맨서는 다 똑같군. 욕심 많고 교활한 악마 새끼들······뭐든 저들이 다 차지해야하며,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여 언데드로 만들려 드는 개새끼들······.'
아량을 베풀어 죽이지 않고 아래에 두어줄 셈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거부했다. 역시나 감히 자신을 구하지 않은 괘씸한 새끼의 밑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것이다. 분명했다. 머지않아 군단을 끌고 쳐들어 올 것이다······.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추락사로 뒈지든, 지하에 쳐박혀 굶어뒈지든······.'
강윤식은 일어나지도 않은,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했다.
과거의 일 이후 얻은 정신병이다.
정신과 의사는 그 증상을 PTSD이며 과대망상 등의 복합적 정신병이라 진단 내렸다.
평화로운 장면이 연출된 가족 사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가끔 다투었으나 사랑했던 아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딸들과 매번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던 어린 아들. 어긋나고 삐뚤어져 테러리스트가 된 강윤식과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었다.
대한민국이 멸망하며 그들은 중국으로 대피했으며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을 차지하려 일선에서 활동하던 강윤식은 표적이 되었다. 중국 정부를 겨냥한 테러를 계획하던 총 스무 명 네크로맨서로 이루어진 테러조직에게.
이십 미터 괴수 예순 마리는 대피소를 부수고 비각성자 가족을 납치하기 충분했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끌어안고 있던 세 명의 자식들도.
거기서 끝났더라면 강윤식은 네크로맨서에 대한 집착적인 증오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더후드의 큰 형님과 아래 동생들을 끌고 놈들을 쓸어버렸을 때 감정은 해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 목숨보다 소중한 네 명의 가족이 좀비가 되어 나체로 걸어다니며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 증오심은 9.11 테러를 겪은 이들 중 일부가 무슬림만 보면 잠재적 테러리스트라 외치는 것보다 컸다. 정말, 무척이나 컸다.
'그 버려진 작은 땅덩어리에 쳐박혀서 나오지 마라. 영원히.'
***
이현우는 여덟 명의 각성자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격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성연은 이현우를 설득키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았다. 인원만 채워주면 끝이요, 안혜지와 자신이 앞장서는 가운데 다치거나 죽는 이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요, 만약 다치는 이가 나오면 그때 공략대에서 빠져도 괜찮다······.
그런 방안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이현우를 움직이게 한 건 안혜지의 말이었다.
"여기 쳐박혀 있으면 안전하겠죠. 근데 제자리에만 계속 머물러서 사람들 지킬 수 있어요? 그쪽 좆나 약해서 이 캠프 망가지면요, 비각성자에 노인인 당신 할머니 누가 책임질 건데요······."
잠깐 고민하던 이현우는 곧 수락했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 일곱 명을 데려왔다. 모두 쓸만한 각성자이며 개중엔 무려 4층까지 공략한 각성자도 있다고 소개했다.
"나머지 한 명은?"
"제가 가겠습니다. 아래 사람들만 보내면 무책임하죠. 저도 나서는 게 맞습니다."
"뭐······그렇게 해요."
"그리고 다치거나 죽는 이들 나오는 건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도 나름의 각오를 한 사람들이고 최선을 다 할 거에요. 그러니까 위험해지면 가차없이 버려요. 사람들 지키기 위해서 목숨 던진 사람들입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성연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버릴 생각은 없었다. 기껏 버스 태워서 층 뚫어놨더니 하나가 죽어서 다시 인원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
안혜지만 남자답다며 칭찬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15층 최소 인원 채우기 용 여덟 명 용병이 합류했다.
기대하지 않은 것치고 구성은 괜찮았다. 능력 자체는 안혜지보다 출중한 탱커 둘, 전투 보조 능력을 가진 서포터 셋, 원거리 지원 능력을 가진 마법사 하나, 그리고 꽤 특이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도 하나 있었다.
"소환사? 세상 이 사단 나기 전에도 귀했던 능력인데······."
"예. 쓸만한 소환물들 부릴 수 있어요. 근데 아십니까?"
"저 헌터 출신이에요."
"이거 좋은 능력입니까?"
"좋죠. C급 이상이면 웬만한 아이돌 여자애들보다 예쁘고 귀여운 사역마 부릴 수 있어서 인기 많았는데······."
"······."
"싸울 땐 별 쓸모없죠. 어차피 싸움은 저기 헬멧 쓴 버스 기사분이 다 하실테니까, 틈나면 귀여운 거 소환해서 분위기 좀······."
순식간에 분위기 띄우는 사람이 된 소환사, 김윤기가 기죽은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현우가 입을 열었다.
"윤기 세요. 우리 중에 유일하게 4층까지 뚫은 게 윤기인데."
"아, 그래요? 소환사 능력으로 어떻게······."
"우리 애 기 죽이지마요. 분위기는 제가 띄우겠습니다. 제 능력 싸울 땐 쓸모없어도 그런 목적에선 최고나 다름없는······."
과연 이현우는 인간관계를 대함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성대모사의 달인이 등장하며 금세 화목해졌다. 우울한 표정을 짓던 김윤기도 제 보스가 직접 나서서 커버치는 상황이 썩 고마운 듯 웃었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이현우와 안혜지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끈끈한 공략대 분위기가 된 가운데 그들은 광화문 광장의 던전으로 입장했다.
마지막으로 공략했던 14층이 아니라, 1층부터 다시.
좁은 통로가 나타났고 안혜지가 앞섰다. 급조된 공략대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모 게임의 질럿 유닛을 닮은 괴수가 아니라, 자신들과 비슷한 대열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머리색이 화려하고 콧대 높은 서양인들. 그 모습을 보자 이제서야 전세계 던전이 통합되었다는 그 알림이 체감되었다.
그러나 곧 그 서양인들이 뱉은 말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들려왔을 때 공략대는 할말을 잃었다.
"자리."
"뭐요?"
"자리라고. 아니, 협회 사이트 공지 안 봐? 1층 우리가 두 시간 예약했는데······입장 포인트 벌려고 온 거면 뒤로 다시 꺼져. 별 오합지졸 같은 것들이······."
그 순간, 성연은 선택받은 각성자들에겐 이 상황이 정말 온라인 게임이나 다름없이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말대로 순순히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좆나 빠른 날파리 언데드 몇이 서양인들 대가리에 구멍을 뚫기 전에 이현우가 나섰다. 그가 가진 능력은 괴수와 조우했을 때는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나, 인간과 마주했을 땐 놀라울 정도로 쓸만했다.
「인간 백과사전」이라 명명된 각성 능력을 사용한 이현우는 곧 뉴스 보도에 종종 등장했던 협회의 높은 자리에 앉은 인물과 똑같은 외모를 한 채 그들 앞에 섰다.
목소리의 높낮이며, 작은 습관까지 동일하게 베껴낸 이현우는 유려한 말솜씨로 그들을 비켜서게 만들었다. 과연 부잣집 사모님들과 도련님들을 홀린 사기 전과 화려한 인물다웠다.
그리하여 공략대는 다른 나라의 자존심 센 각성자들과 다투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삼십 포인트 짜리 괴수들을 얼마나 잘 처리할 수 있느냐였다.
세계 기록을 세운 이 둘의 실력이 얼마나 출중한 지 모르는 나머지 공략대는 혹여나 피치못할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였음을 곧 알았다.
이현우를 비롯한 여덟의 인원 채우기 공략대원들은 저 헬멧 쓴 네크로맨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버스를 모는 기사임을 알게 되었다.
입장한 지 여섯 시간이 지났을 때 공략대는 3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여섯 시간이 지났을 땐 6층을 넘었다.
***
9단계까지 강화했으며 테크 트리까지 알뜰히 투자한 성연은 던전 진입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예전에 돌았던 던전을 다시 돌며 그러한 감상이 와닿았다.
주변 생명 반응을 느끼는 범위를 확장하는 테크 트리에 투자한 가운데 이제 어둠은 성연의 시야를 방해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던전 괴수의 정확한 위치는 물론이고 대략적인 정보까지 흘러 들어왔다.
"크워어······어엌."
던전 괴수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달려들기도 전에, 암흑을 뚫고 언데드가 은밀하게 숨은 적들을 죽였다. 발전한 능력으로 되살린 날벌레 언데드는 음속을 돌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젠 한줄기의 빛살로 보일 지경이었다. 후방의 여덟 공략대원은 선이 몇 번 그어진 뒤 괴수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에 경악했다.
전투계 능력은 물론 일반인 이하 수준의 동체 시력을 가진 이현우는 벌레가 어디 있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개중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김윤기였다.
그도 성연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부리는 각성 능력을 가졌기에 지금 벌어지는 일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아주 잘 알았다. 그래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저거 뭡니까? 그 스파이더맨······피터 파커 문 거미처럼 슈퍼 파리라도 돼요?"
"물려볼래요? 그쪽 슈퍼히어로로 진화하는지 보죠."
"아, 그건 좀······."
머뭇거리는 김윤기를 보며 농담을 한 성연은 곧 제가 만들어 낸 벌레 언데드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어떤 방식으로 저런 상식을 벗어난 개체를 만들 수 있는지.
그러니까, 혈액을 타고 흐르는 세포와 근육과 껍질을 구성하는 부분을 어찌 다루었는지······.
물론 김윤기가 그 설명을 이해하고 곧장 음속 돌파하는 소환수를 일으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이만하면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한 성연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김윤기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세포? 뭐라는거야. 벌레라도 몸 안에 세포가 몇 갠데 그걸 다 구성해. 하나라도 건드리면 전부 다 갈아엎어야 하는 게 유전자 구성인데······설명한대로면 의사가 암 걸린 환자 수술한다고 조직 잡아먹은 암세포들을 하나 하나 핀셋으로 골라서 죽이는 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저 네크로맨서는 김윤기가 비유로 내놓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들과 비교할 수 없는 초인인 셈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머리 속에 슈퍼컴퓨터가 든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런······.
"윤기! 빨리 따라붙어!"
"아···예."
헬멧 쓴 네크로맨서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어느새 공략대는 6층을 넘어 7층에 도달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윤기는 고민했다. 저 괴물 같은 네크로맨서가 다 해먹는데 뭘 해야할까. 저 여자가 말한대로 귀여운 소환수라도 불러 분위기라도 띄워야 하나······.
그 고민은 정말이지 진지하고도 길게 이어졌다······.
***
「이름: 김윤기」
「판정 등급: C」
「3단계 능력 강화」
「각성능력: 소환사」
「특수능력을 보유한 소환수를 소환한다. 혹은 특정 소환수를 직접 창조하여 부린다.」
「최대 3(+4)마리를 소환할 수 있으며 소환수의 수준이 높을수록 소환수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된다. 가장 낮은 등급을 소환할 경우 8(+9)시간 동안 붙들어 놓을 수 있다.」
「보유 아이템」
「없음」
< 소환사 김윤기 (1) > 끝
작가의 말
많은 관심주셔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뜰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행복하네요.
댓글에 의견 남겨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건 연참과 성실연재밖에 없네요 :).
언제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