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커 유성연 (2) >
"고립되어서 갇혀있다가 세계 기록 세우고 있는 남녀한테 구조되었다고? 그거 참 믿기 힘든 말이군, 그래."
"장비 숨겨서 겨우 살았죠. 아마 뭐 갖고 있는지 들켰으면 눈 돌아가서 당장 죽이고 빼앗고도 남았을······"
"잘 숨겼지. 우리측에서 비용 부담한 장비들 잃어버렸으면 자네를 어떻게 했을지 나도 모르겠거든. 괴수들 세지면서 사람들 장기 가격 치솟은 건 알지? 자네는 언제나 목숨보다 그 장비부터 챙겨야 해. 통나무 되기 싫으면."
김성철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출생 신고도 하지 않은 실종자들이 내장을 잃고 통나무가 되어 버려지는 모습들을 수 차례 본 바 있었다. 아마 협박조에 가까운 저 농담은 김성철이 장비를 잃어버릴 경우 실제로 벌어질 것이다.
"언제나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 자네가 실수할 거라곤 생각치 않네. 그거보단 우리 공략대보다 층 빨리 뚫은 놈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고작 둘이라고 했나?"
"아, 예. 이십대로 보이는 남녀였습니다."
"능력은?"
"남자쪽은 네크로맨서 같은 놈으로 보였고, 여자쪽은 평범한 탱커였습니다. 근데 여자 장비가 포인트 지랄을 제대로 한 수준······."
"네크로맨서? 그 새끼들 던전 열리면서 퇴물된 지 오래 아닌가? 입구 좁아터져서 언데드 동행 못하는 까닭에 3,4층 겨우 뚫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네크로맨서면 네크로맨서지, 네크로맨서 같은 놈은 또 뭔······"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죽은 놈들 부리는 거 보면 네크로맨선데 방식이 좀 특이해요."
"방식이 특이하다?"
"지퍼백에 벌레 사체를 넣어와서 그걸 부리는데 좆나 신기합니다. 날파리 새끼들이 총알보다 빠르던데요. 아마 네크로맨서랑 비슷한 각성 능력 같습니다. 뭐, 파브르가 네크로맨서로 환생했나······."
"······."
"아무튼, 그놈보단 여자가 괜찮았습니다.저한테 중국쪽 오게 해달라고 그러던데요? 잘 엮어서 데려온 뒤 죽이면 포인트 짭짤할 것 같······."
"중국 오게 해달라고? 그 새끼들 일본 출신이야?"
"아뇨, 대한민국요. 신기하죠?"
김성철의 말에 사내가 눈을 크게 뜨더니 품에서 연초 한 개비를 꺼냈다.
김성철은 눈치 빠르게 라이터를 들이밀어 끝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를 쏟아내고 사내가 말했다.
"여자랑 끈 잘 만들어둬. 잘못 건드렸다가 되려 당할지도 모르니. 요즘 이미지 세탁하는 중인데 푼돈 벌려고 작업했다가 좋을 거 없어, 일단은 얼간이처럼 굴면서 친분이라도 쌓아놔······."
"예, 그리고 10층부턴 선발대 투입 안 될 것 같습니다. 걔네 탐지 능력이 꽤 높아서 개죽음이던데요."
"그건 아래놈들한테 보고할 사항이고. 내가 그런 사항까지 들어야 하나?"
"아······죄송합니다."
"일단은 그 둘에 관해선 입 다물어. 협회 경쟁자로 우리 공략대가 주목받는데 찬물 끼얹을 필요 없어. 지금 붙고 있는 스폰서만 몇인데······."
김성철은 재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 사내가 말 없이 연초만 태우자 김성철은 눈치 좋게 이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는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문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사내는 뿌연 연기를 뱉다가 속으로 되뇌었다.
'대한민국? 그래서 애들 다 풀었는데도 못 찾았군. 거긴 헌터가 몇 없으니 괴수 넘쳐서 포인트 독식할 수 있을거고······녀석 정도면 고작 둘이서 던전 10층 뚫은 것도 이상할 것 없어. 그 능력이면 상성이고 뭐고, 다 씹어먹을······.'
사내는 김성철이 설명한 일행 중 남자에 관해 아주 잘 알았다. 허무하게 죽었길 몇 번이나 기도했으며, 얼마 전 보유 포인트 랭킹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을 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벌레를 다루며 총알보다 빠른 날파리. 그런 네크로맨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살인마. 능력 대부분을 잃고도 고질라들을 학살하며 교도소를 탈출했던 무시무시한 사형수. 여전히 잊을 수 없었다.
'복수하러 오진 않겠지? 그건 불가항력이었잖아. 지진 났는데 거기서 어떻게 구해줘? 아니······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나? 죄수복 입고 괴수들이랑 프리즌 브레이크 찍던 시절이면 모를까······놈이 아무리 세도 지금 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
곧 사내는 다 태운 연초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명패가 빛났다.
「브라더후드」
「부마스터 강윤식」
격변이 찾아온 뒤 세상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세울 건 힘뿐이던 테러 조직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은 아주 강력해졌다. 고질라 잘 잡는 네크로맨서 사형수 하나쯤은 두려워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종말 이후 십수억에 달하던 인구가 수억으로 격감한 중국은 더 이상 공안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좁은 반도에서 찾아온 테러 집단은 공권력보다 강했다. 상가 빌딩만한 고질라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린 초인들은 신처럼 추앙받았다.
더 이상 「브라더후드」를 악명 높은 범죄 집단이나, 테러리스트라 명명하는 이들은 없었다. 협회의 승인 하에 테러 조직은 길드가 되었다.
그리하여 멸망한 나라에서 도망친 범죄자들은 타국에 이르러 귀족이며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사내, 강윤식은 그 사형수의 귀환을 반기지 않았다.
죽었어야 할 놈이었다, 그때.
'지하에 떨어져서 운 좋게 살았으면 그대로 조용히 살지, 왜 기어나와서 거슬리게······'
***
10층 이후 던전은 다소 달라졌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던 놈들이 소수 정예로 변화했다. 땅에 뿌리를 박고 식물과 비슷한 생김새로 변화한 괴수들을 상대하는 건 전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물론, 성연은 이 편이 난이도가 더 쉽다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강자를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능력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다.
"식물 대 좀비요. 원래 식물이 이기는 겜 아닌가, 이거 밸런스 좆망······."
"이상한 소리 그만 합시다."
안혜지는 반응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는지 실없는 소리하는 것을 곧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진 않았다.
"근데요. 혹시 나 그 아저씨 도와줄 때 재수 없었어요?"
"그건 왜 묻습니까?"
"대답이나 해줘요."
"재수없었죠."
"아, 씨······."
던전에서 등장하는 괴수가 최대 여덟 마리에서 여섯 마리로 줄어든 가운데, 공략에 다소 여유가 생긴 성연이 질문했다.
"왜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있죠. 브라더후드 소속이잖아요."
"그게 왜요? 혹시 뭐 여기까지 총이라도 들고 보복 올까봐······."
"아뇨, 나중에 중국 갈건데 괜히 거기에 찍히면 중국에선 발도 못 붙이고 사니까요."
발도 못 붙인다니?
성연이 알기로 브라더후드는 그 정도로 대단한 테러 조직은 아니었다.
안혜지는 그가 묻기 전에 뒤이어 말했다.
"뉴스에 좆도 관심 없는 그쪽은 모를수도 있겠네요."
"예, 모릅니다."
"지금 중국은 브라더후드가 정부나 마찬가지에요. 딱 좋은 타이밍에 들어가서 자리 잡는 바람에 협회도 못 건드린다고요. 요즘엔 사업 쪽으로도 발을 뻗는대요. 그러니까, 대기업과 정부와 공안의 역할을 모조리 한곳에서 맡고 있는 셈이죠."
"······그건 좀 놀라운데요."
"의외로 이런 나라들 많아요. 아프리카나 중동 쪽은 더하고요. 뭐, 당연한거죠. 법보단 주먹인 세상이 됐는데 손에서 불 뿜고 날아다니는 초인들이 다 해먹는 건······."
성연은 세상이 정말이지 엉망진창으로 구르고 있다는 걸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안혜지의 말은 경악을 더해주었다.
"이 주변에서만 놀았으면 생존자들 캠프도 못 봤겠네요. 그쪽에서 각성자 아닌 사람은 인간 취급도 안해요. 어떠냐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칠십 년간 형성된 초인 사회는 비각성자를 차별했다. 그리고 그 차별은 현재에 이르러 무척이나 심각해졌다.
이제 비각성자에게 인권은 없었다. 협회와 정부도 그 상황을 묵인했다. 식량과 물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며 하루에도 여럿이 죽어가는 가운데 싸울 수 없는 이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조선시대 천민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엉망진창이네요. 정말로."
"그렇죠. 지랄맞게 세상이 변했으니 그 사람들 챙겨주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가끔 과한 놈들 보면 눈살이 찌푸려져요. 존나 불쾌할 정도로."
안혜지가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다 성연에게 물었다.
"근데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는건데요. 그쪽은 목적이 뭐예요?"
"목적이요?"
"하루도 안 쉬고 던전 내려가잖아요. 엄청 열심히 싸우고."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안혜지가 옆을 바라보았다.
함께 던전을 공략하게 된 이래 이 남자가 처음으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근데 요즘따라 생각이 조금 바뀌더군요······과연 그런 개인적인 소원 이루라고 난데없이 투명한 창이 떠올랐을까. 엉망진창이 된 세상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소원 빌라고, 소설 주인공 같은 사람 위해서 이런 사태 벌인 거 아닐까."
뒤집어 쓴 헬멧 너머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 모습에 안혜지가 말했다.
"뭘 어려운 고민 하고 있어요?"
"예?"
"한 번에 묶어서 빌어요. 세상 원래대로 만들면서 그 사람들 살려달라고.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처음 원했던 소원이나 빌어요."
"······."
"나는요. 히어로물 존나 싫어해요. 모두를 위해 희생······좆나 두들겨 쳐맞고도 인정 못 받는 거······보고만 있어도 토할 거 같다고요."
답변은 꽤나 명쾌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요. 누가 알아주는데? 백만 포인트면 좆나 노력했을거 아녜요······현실적으로 선택하라고. 소설 주인공은 지 희생하고 찬사받으면 그걸로 완결이지만 현실은 완결 안나요. 그 후로도 늙어 뒈질 때까지 살아야 돼······"
길고도 짧았던 대화는 곧 끝났다. 식물 형태의 괴수가 출현했고, 둘은 말없이 이번에도 그들을 손쉽게 물리친 뒤 층을 공략했다. 던전 12층 공략을 완료했다. 13층이냐, 입구냐 묻는 질문에 성연은 입구로 돌아가겠노라 대답했다.
머리를 좀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성연은 늘 함께 하던 안혜지가 아니라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어 볼 셈이었다.
그가 살면서 만나 본 인물들 중 가장 말 많은 남자와.
***
자세한 주소나 연락처는 받아둔 바 없었다. 그러나 찾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광화문 광장을 벗어나 주변을 한참 둘러보며 각성 능력을 넓게 흩뿌린 가운데 수 많은 생명 반응이 잡히는 곳이 있었다. 성연은 지체하지 않고 갔다.
폐허가 된 건물들을 지나 도착한 현장은 꽤 정신이 없었다.
"씨발, 죽여!"
"시비 걸거면 조용히 걸던가, 멍청한 새끼들이 왜 총 쏴서 고질라 새끼들 불러······."
그들은 전투중이었다. 싸우는 상대엔 괴수도 있었고 총질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추측해보건데 생존자 조직 간의 구역 다툼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총성이 울린 듯했다. 후각은 물론 청각도 극도로 발달된 괴수들은 먹잇감들이 잔뜩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챘을 것이며, 이런 아수라장이 벌어진 것이리라.
격렬하게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성연과 안면이 있는 인물도 보였다. 캠프에 머물렀을 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곤 했던 보초였다. 화약 냄새가 짙게 풍기는 장소에서 정장 차림은 역시나 무척 어울리지 않았다······.
"많이 바쁩니까? 안에서 이야기 좀 나누려고 왔는데."
"씨발! 이 상황에 누가 말 걸······."
그는 거칠게 소리쳤다. 성연은 머리를 긁적이다 지금 이들이 한가로이 대화 나눌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일단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소란을 정리하기로 했다. 거창한 괴수를 일으킬 것도 없었다.
전장에 굴러다니는 시체와 사체들을 언데드로 되살렸다. 그 과정에서 다소 변이를 발생시켰다. 아주 길며 뾰족한 가시가 솟아나도록.
그 가시가 노리는 대상은 정장 차림이 아닌 생명체 모두로.
포인트를 투자해 강화된 능력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던전을 공략하며 한껏 능숙해진 실력도 한몫했다.
층을 내려갈수록 교활해지며 각종 수작을 부리는 괴수들에 비하여 이들은 지나치게 약했다. 10포인트 짜리 고질라나 총질하는 양아치 새끼들 따위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회사 놀이 하는 씹새끼들 다 죽···여엌."
구역 다툼이랍시고 시비 걸어온 양아치 새끼들을 비롯해 배를 채우기 위해 달려든 괴수들이 일제히 무너졌다. 그들 발밑에 위치했던 시체 무리에서 솟아난 총 아흔 개의 가시는 빗나가지 않고 각각 목표로 한 생명체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괴수와 인간을 가릴 것 없이 벌어진 기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초도 안 되는 시간만에 수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 분명한 전투가 종결되었다. 단 한 명의 각성자로 인해서.
"뭔······."
방금까지 생명을 위협하던 적들이 일제히 죽었다는 사실에 승리를 외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일순간에 적들이 전멸하는 장면은 속 시원하기보단 공포를 불러왔다······.
"여기 이현우 씨 만나러 왔는데, 안에 있습니까?"
"예, 예?"
"언제든 편히 찾아오라고 하던데."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성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분위기는 영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적막이 깨졌다.
폐건물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달려오고 있었다.
절뚝이며 걷는 아주 늙은 여인도 함께.
< 랭커 유성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