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랜서 헌터 안혜지 (3) >
아침이 밝았다. 안혜지는 꽤 즐거워 보였다.
"저기요, 기사 봤어요?"
"기사요?"
"잘나신 협회 출신 엘리트들이 일층도 못 뚫은거요. 자신만만하게 스무 명 들어갔는데, 오히려 전멸했잖아요. 진짜 그쪽이 좆나 센 거라니까요······."
안혜지가 환하게 웃었다. 언론에서 보도한 그 소식은 성연이 남들에 비해 우월한 속도로 앞서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영웅 대접 받는 헌터들은 물론이며 체계적으로 뭉친 집단들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홀로 해냈다.
엄밀히 말하면 안혜지와 둘이 한 것이지만, 사실상 혼자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텐션이 잔뜩 오른 안혜지와 달리 성연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아니, 즐겁기는 커녕 오히려 우울감이 솟았다.
'헌터 여섯 팀이면 꽤 많은 사람······정체 모를 이들이 게임이랍시고 벌여놓은 짓거리에 의해 또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편이 희생······.'
성연은 나름의 사명을 갖고 스스로의 몸조차 불사르는 헌터들을 존경했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변질된 헌터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보도된 기사는 재미있는 소식이 아니라, 더 없이 안타까우며 슬픈 소식이었다. 이로써 가족을 잃은 남겨진 자들이 수십 더 생겨났으리라. 난데없이 「본 게임」이라며 세상에 재앙을 불러온 놈들 때문에. 그러한 기사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성연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사태에 휘말려 희생되는 것은 충실하고 선량히 살아온 자들이며, 살아남는 자들은 남들을 짓밟고 올라선 자들이다······.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지금 그쪽이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거나 다름없다는 뉴슨데······."
"그냥, 썩 즐겁진 않네요."
"참 특이한 사람이네."
안혜지가 픽 웃으며 뒤이어 말했다.
"혹시 2층에선 능력 제대로 안 통할까봐 쫄았어요? 1층에선 양학하고 다녔는데 2층에선 병신될까봐? 하긴······그런 네크로맨서들 많다고 들었어요. 워낙 물량에 화력빨로 밀어붙이니까 떨거지들은 잘 잡는데 의외로 센 놈들 잡는 건 못한다고······."
그 농담조의 말에 성연이 쓰게 웃었다. D급 판정을 받은 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를 죽이기 위한 용도로만 발전시킨 능력이다. 통상의 네크로맨서와 달리 성연의 힘은 강자를 상대할 때 더 빛을 발했다. 즐겁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백만 포인트라는 대량의 포인트를 얻기 위해선 무척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할테고, 그 과정에서 결국 그가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처럼 변하게 될 지도 몰랐다. 선량하며 순진한 이들을 짓밟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그런 인간.
심정이 복잡해진 성연을 아랑곳않고 안혜지는 말을 끝마쳤다.
"걱정마요. 나 1인분 하려고 어제 받은 포인트 다 때려넣었어요. 든든하게 지켜줄게요······아니면 어제 사람 죽은 걸 봐서 그런가? 하긴, 나도 기분 더러웠어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세상이 변했으니, 거기 살아가는 사람도 변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죠······."
맞는 말이다. 세상이 변했으면 살아가는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미 다섯 명의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가운데 깨끗하게 살아가긴 늦었다. 성연은 처음 투명한 창을 보았을 때 세웠던 결심을 떠올렸다. 무슨 일을 저질러서든 소원을 이루겠다는 결심. 이런 복잡한 생각 따위에 빠져있어선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그쪽 정도면 소원 이루는 것도 노릴 수 있지 않아요? 한 번 해봐요. 나는 옆에서 포인트 챙기면서 적당히 갑질하고 떵떵거리려니까······."
"그럽시다. 가요."
아득한 포인트를 모아 소원을 이루면 이 비극도 끝날 것이다. 자신은 화목한 가정을 되찾을 것이고, 세상에 찾아온 종말은 사라질 것이다. 분명히.
이미 많은 피를 묻혔다. 애매한 철학적 고뇌에 빠지느니, 차라리 악당이 되리라. 누구보다 앞서가는 악당······.
"방패 기깔난 걸로 뽑았거든요? 오늘 이층 넘어서 삼층, 사층까지 뚫어봐요! 포인트 벼락 한 번 맞아보자!"
***
1층 던전을 클리어 한 보상으로 받아낸 건 포인트 뿐만이 아니었다. 둘은 좁아터진 입구에서 일층으로 갈 건지, 곧장 이층으로 향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계단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혜지는 다시 한 번 기뻐했다.
그리하여 진입한 던전 2층은 전의 층과 달리 공간이 무척이나 넓었다. 물론 새까만 암흑이 자리한 것은 같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안혜지가 쭈뼛거렸다.
"좆나 어둡네···다음부턴 손전등 같은 거라도 준비해야 하나···."
"불 켤게요."
오랜 지하 생활 덕에 성연은 어둠에 금세 적응했으나, 이번엔 일행을 배려하기로 했다. 지퍼백에 넣어온 날벌레 사체 한 마리를 언데드로 일으켰다. 삐걱이며 일어난 언데드는 몸 전체가 하나의 광원이었다. 반딧불이의 세포 구조를 응용한 개체였다.
"못하는 게 없네요. 역시 만물박사 네크로맨서······."
"방패 들어요. 저쪽에서 옵니다."
육안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넓게 흩뿌려놓은 각성 능력에 생명 반응이 잡혔다. 1층의 던전 괴수들보다 몸집이 컸다. 좁은 곳에서 낫처럼 휘어진 손톱으로 사냥하는 것에 최적화된 놈들과는 다른, 돌격과 근접박투에 능한 개체다.
"걱정마요. 포인트 때려박아서 쇼핑도 신나게 했으니까."
큼지막한 방패를 땅에 붙인 안혜지는 곧 허공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포인트로 구매한 물건이다. 그러나, 그 외형은 온라인 게임에서 등장할 법한 것이 아니었다.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열병기······7.62mm 탄을 사용하는, 분당 수천 발을 토해내는 미니건이 등장했다.
"그거 통합니까? 어제 총 갈기다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지 새끼들이 쓰는 거랑은 다르거든요? 무려 2단계 강화 총기에요. 위력 대폭 향상에, 괴수 상대 할때 추가 관통력까지 붙은 개쩌는······"
시답잖은 대화가 더 이어질 틈은 없었다. 날벌레가 비추는 범위로 던전 괴수 두 마리가 나타났다. 온몸을 껍데기로 감싼 뒤, 날카로운 손톱으로 밀어붙였던 놈들과는 달랐다. 머리와 가슴께만 두꺼운 껍질로 보호하고 나머지 부분은 근육을 훤히 드러냈다. 길게 돋아난 손톱은 없었다. 그냥 근육 덩어리들이었다.
"반동 좆되네!"
안혜지는 코앞까지 다가온 던전 괴수들을 겨눈 채 미니건을 갈겼다. 자랑스레 설명했듯, 그 위력은 놀라웠다. 껍질을 단번에 부수거나 쓰러뜨리진 못했으나 탄환 세례로 이루어진 화망은 놈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피해가 유효하다는 뜻이다. 두두두거리는 총성과 함께 근육 덩어리 새끼들이 뒤로 조금씩 밀려났다.
'이 녀석들이 왜 삼십 포인트나 주지? 1층에 있던 놈들은 나름 까다로웠으니 이해라도 가는데, 이 새끼들은······.'
성연이 보기에 이놈들은 1층 괴수보다 상대하기 쉬웠다. 수십 미터 고질라들에게 투구와 방패를 씌우고, 5m 정도로 축소시킨 모양새가 아닌가. 차라리 밖에서 날뛰는 10포인트 짜리 상가 건물 만한 괴수가 더 위협적이리라.
다른 도전자들이 맥없이 당하니까 밸런스 패치라도 한 걸까?
아니었다. 성연이 품었던 의문은 머지않아 해소되었다.
"···뭐야, 이 씹새들 어떻게······?"
미니건을 신나게 갈기던 안혜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서서히 뒷걸음질 치던 던전 괴수들은 분명히 피해를 입었다. 두 가지 옵션이 붙은 200포인트짜리 강화 총기는 껍질을 부수진 못했으나, 훤히 드러난 근육 정도는 간단히 꿰뚫을 위력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던전 괴수들의 몸에 생겨났던 구멍은 빠르게 메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되감아지듯, 상처가 자가회복되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안혜지가 소리쳤다. 걸어다니는 대포알이나 다름없는 놈들에게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회복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다. 괴수들을 보던 성연이 지퍼백에 넣어온 곤충 사체들 중 다섯을 일으켰다. 방금의 전투를 보며 구성한 그림이 막 완성되었다.
"계속 쏴요. 얼굴 가리고 숙인 거 보니까 눈알에 맞고 뇌 터지면 죽는 건 회복 못하는 거 같은데···함부로 돌진 못하게 해요. 거리 좁히게 두면 가까이서 붙었을 땐 절대 못 이깁니다. 좀비마냥 계속 들러붙으면 답도 없어요."
조금씩 갉아먹으며 급소를 물어뜯는 건 불가하다. 놈들의 회복 속도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그러나 머리를 가림으로써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냈다. 성연의 명령에 따라 벌레 언데드가 움직였다. 이번에 만들어 낸 놈은 음속을 돌파하는 비행 속력을 갖추지도, 껍질을 뚫을만큼 날카로운 송곳 같은 부위를 갖추지도 않았다. 대신 뱃속에 알을 품었다. 부화하면 기생충 유충이 태어나는, 삼천만 개의 알.
쏘아대는 총알 세례에 의해 얼굴을 가린 괴수들은 스스로 시야를 차단했다. 은밀하게 접근한 날벌레는 꿰뚫렸다가 아물어 가는 상처 부위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메워진 근육들에 의해 몸이 터져 내부에서 죽었다. 품고 있던 알 또한 터졌고, 실처럼 생긴 유충들이 그 몸 안에 한껏 퍼졌다.
성연은 연가시와 같은 기생충처럼 영양분을 빼앗고 뇌를 차지하겠다는 거창한 발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놀라운 회복 능력을 가진 저것들 안에서 기생충 언데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성연이 이 방식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1층에서 요긴하게 써 먹었던 수단을 한 번 더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때보다 더 발전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화망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근육 덩어리 던전 괴수의 몸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내부 근육에 퍼진 기생충들이 팽창하는 것이다. 녀석은 제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멍청하게 머리만 보호하고 있었다. 미니건의 탄환이 다 떨어지는 순간 곧장 달려들어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물론 전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두두거리는 미니건의 총성보다 훨씬 커다란 천둥 소리가 몇 번 울렸다.
"씹!"
안혜지는 급히 방패를 정면으로 쳐들었다. 그리하여 폭풍 같은 충격이 지나간 후, 근육 덩어리 던전 괴수의 몸이 터져 죽은 것이 보였다. 끈질기게도, 나머지 한 마리는 하반신과 상반신 절반을 잃었음에도 죽지 않고 꿈틀대는 중이었다. 그 회복력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물론 오래 살아남진 못했다. 머리에 씌웠던 투구 형태의 껍질이 날아간 가운데 안혜지가 쏘아낸 미니건의 탄환이 눈알을 꿰뚫고 뇌를 파괴하자 곧 숨통이 끊어졌다.
"···이 새끼들 더럽게 질기네요. 뭔······."
"여기 놈들은 연구할 가치가 있겠네요."
"예?"
"회복력의 근원을 알아내면 다른 언데드에 적용할 수도 있을테고···그럼 굳이 능력을 낭비할 것 없이 부상을 알아서 수복할 수 있는 언데드를 만들 수도······."
숨을 헐떡이는 안혜지와 달리 성연은 긴장한 기색도 없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트롤을 닮은 던전 괴수에 다가가 그 파편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혀를 내두르던 안혜지는 무언가 중얼거리는 대신, 방금 전투에서 자신이 꽤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어제와는 달랐다. 한명 몫을 분명히 했다.
'C급이라고 무시하던 새끼들 다 뒤졌다···역시 포인트만 있으면 장땡······.'
***
1층에서와 다르게 2층에서 성연은 괴수 언데드를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쓸만한 건 손톱뿐이었던 놈들과 달리, 트롤 닮은 2층 던전 괴수는 회복력은 물론이고 근육 덩어리로 이루어진 덕에 사체를 재구성해 입맛대로 개조하기 편했던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총 둘의 근육 덩어리 언데드를 앞세웠다.
"근데요, 혹시 특이 취향 같은 거 있어요? 왜 다 저렇게 지랄맞게 만드는 거에요?"
"······나머지는 퇴화시키고 필요한 부분만 발달시켜서 그렇습니다."
"와 진짜, 좆같이도 생겼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
새롭게 태어난 괴수 언데드는 그 말대로 기괴한 외형이었다. 왼쪽 팔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 들었으며, 두 다리도 기형적으로 얇았다. 그에 반해 오른팔은 놀랍도록 두껍고 거대했다. 전신의 근육이 모조리 한곳에 집중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놈들 상대하려면 이게 낫습니다."
"···그쪽이 그렇다면 그렇겠죠."
안 그래도 넘치는 근육량을 집중했다. 이런 식으로 재구성하면 평범한 언데드는 걷는 것만으로 관절이 망가질테지만 이놈은 괜찮았다. 관절이 삐걱이고 망가져도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멍청한 움직임으로 두 언데드가 걸었다.
그때, 가까이서 생명 반응이 잡혔다.
총 네 마리.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온 덕에 안혜지도 금세 알아챘다.
"가까운데······."
말이 무섭게 적이 나타났다. 정면에서 나타난 네 마리 괴수는 자신들과 똑닮은 언데드 둘을 보더니 눈이 벌게져서 돌격했다. 뿜어나오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포탄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안혜지가 급히 미니건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 방아쇠가 당겨지는 일은 없었다.
"제 뒤쪽으로······어?"
성연은 멀뚱히 선 두 괴수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주 간단한 명령이었다. 돌격하는 놈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라는 명령. 몸의 균형이 어긋나 비틀거리던 언데드는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자세가 엉망이면 뻗는 주먹의 위력이 형편없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을 무시한 공격이 펼쳐졌다.
휘두르는 준비 자세 없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오른쪽 팔이 자석에 이끌리듯 쏘아졌다. 척추, 관절, 근육 따위가 망가져도 금세 회복해낼 수 있기에 펼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탄환의 속도 따위는 가볍게 넘어서는 주먹은 가히 폭격에 가까운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무식하게 달려들던 괴수 네 마리는 정확하게 턱 밑, 껍질이 감싸지 못한 아랫목 부위를 가격당했다. 두꺼운 목이 뭉개짐과 동시에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공중을 난 머리통이 바닥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두 개체가 내지른 한 번의 공격에, 적 괴수 두 마리가 죽었다.
"워어어어어!"
남은 두 던전 괴수가 포효했다. 몸뚱이로 괴수 언데드를 밀쳤고, 곧 가슴께를 깔아뭉개는 마운트 자세를 취했다. 위로 올라선 괴수는 주먹을 치켜든 뒤 언데드를 신나게 두들겨 팰 준비를 했다.
"워어어어······엌."
물론 성연이 만들어 낸 두 괴수 언데드는 아래에 깔아뭉개지든, 공중으로 띄워지든 상관없이 위력적인 주먹을 내지를 수 있었다. 스프링처럼 탄력 있는 근육으로 길게 뻗어지며 목표한 지점에 무척 정교하게 타격할 수 있게 설계된 덕이다. 주먹질이라기보단, 미사일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그리하여 네 마리의 불청객들은 방문한 지 이십 초도 안 되어 모두 공평하게 똑같은 부위를 얻어맞고 머리가 분리된 사체가 되어 나란히 누웠다.
"1층은 두꺼비 아저씨, 이번엔 원펀맨······존나 멋있어."
안혜지는 더 이상 지랄맞은 언데드라고 놀리지 않았다. 그녀는 2층을 거닐며 전투를 거듭하는 내내 이상한 별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2층이 끝나는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과연 1층과 동일하게도 다음층으로 넘어가는 문 앞에 유난히 커다란 괴수 한 마리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던전의 보스, 수십씩 돌아다니는 평범한 개체들보다 훨씬 강력한 놈이다······.
"어, 근데 저 새끼 맨손 아닌데요? 뭐 들고 있는······."
어둠 속에 어렴풋이 드러난 적은 손에 뭔가 쥐고 있었다. 짧고 투박한 무기, 빛을 반사하는 것으로 보아 끝은 날붙이다. 베거나 찌르는 용도로 만들어 진 게 아니라 박살내는 용도로 쓰이는 도구. 놈이 든 것은 도끼였다. 7m에 가까운 커다란 몸뚱이에 걸맞도록 그 크기가 어마어마한 거대 도끼.
문 앞에 앉아있던 놈은 접근을 눈치챈 건지, 곧 성연 쪽을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손끝에서 무언가 번쩍하며 깔끔한 직선이 그려졌다.
'무슨?'
한 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멍청하게 서 있던 괴수 언데드 두 개체 중 하나가 죽었다. 회복력이 따라가지 못한 위력이란 뜻이다. 시선을 돌리자 투구 형태의 껍질을 부수고 큼지막한 도끼 하나가 두개골을 넘어 뇌까지 파고들었다. 언데드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 머리가 완전히 박살났다. 좋지 않았다. 단순한 투척 무기인 도끼는 더럽게 힘 센 괴수의 손에서 레일건이 되었다. 무게를 실은 채 손끝을 떠나면, 음속을 가벼이 돌파하여 목표물을 쳐부순다.
그리고, 근력만으로 전자기 유도를 이용해 물체를 가속하여 발사하는 장치의 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저 괴수에겐 총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워어어어어어!"
놈이 반대쪽 손을 위로 쳐들었다. 그 손에 쥐여진 새로운 도끼가 눈부시게 빛났다.
< 프리랜서 헌터 안혜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