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5화 (15/111)

< 프리랜서 헌터 안혜지 (2) >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현우의 조언을 무시하고 테크트리를 타지 않았다면? 혹은 운 좋게 일행으로 받은 이 여자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종말이 세상에 자리한 이래 처음으로 느낀 위기감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가운데 펼쳐진 상황을 보았다. 「마운틴」의 껍데기를 흉내내어 수류탄 파편처럼 흩뿌린 결과 던전 괴수 세 마리는 핏물이 되어 죽었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총 삼천 포인트를 투자한 결과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 위력은 놀라울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테크 트리를 탄 것만으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넓어졌다······다른 네크로맨서들도 이 수준인가? 그러면 중세 귀족 마냥 대접받는 것도 이해가······.'

물론 과대평가였다. 성연과 같은 결과물을 내긴 커녕 비슷한 접근 방식을 택한 네크로맨서들은 세상에 없다. 그들 대부분이 언데드를 더 많이 일으키거나, 강하게 일으키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다. 이러한 사용법은 성연만의 전유물이었다. 변화한 세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켁, 케헥."

흙먼지가 모두 걷어진 가운데 계단 구석에서 안혜지가 콜록거렸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성연은 그녀를 흘끔 바라보았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유능한 여자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안혜지는 던전 괴수들을 오랫동안 붙들었다. 폭격과 비견될 공격들을 막아내며, 몸빵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아···씹, 존나 아파······."

걸레짝이 된 팔을 끌어안고 주저앉은 안혜지가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서가 제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 탱커가 필요함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부상 당한 일행은 짐이 될 뿐이다. 저 꼴로는 도움이 되긴 커녕 발목만 붙잡을 것이다······.

성연이 말했다.

"상처, 심합니까?"

"아니···말이라고 해요?"

"많이 아프면 돌아가시죠. 던전은 저 혼자서 내려갈테니······."

"인성 대박이네···."

안혜지가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삼 분만 기다려요. 그쪽 좆나 센 거 봤으니까······딱 붙어서 뭐라도 주워먹을거에요."

"그 상태로 뭘."

"기다려봐요···아니, 나 도움 되지 않아요? 방금 버티는 거 개 쩔었는데······탱커 있으면 완전 편하잖아요."

사실이었다. 괴수와의 전투는 물론이고 사람들끼리 경계하게 된 가운데 망설임 없이 빠른 판단을 내린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무슨 도움을 줄 건데?

성연이 그리 되묻기 전에 안혜지가 말했다.

"삼 분이면 돼요."

그때, 안혜지가 품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회복약이었다. 성연이 사용했던 70포인트 짜리 완전 치유 회복약이 아닌, 20포인트 싸구려 녹색 회복약······.

"그거 단순한 부상 회복 시키는 물건 아닙니까? 그걸로 뭘······."

"난 이걸로 충분해요. 평범한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같은 육체계열 능력자들은 팔 뜯겨도 이거 하나면 바로 낫거든요."

"뭔······."

"고질라 새끼들이랑 붙어서 맨몸으로 버텨야 하는데 이 정도 특혜는 있어야죠."

녹색 회복약을 들이킨 안혜지의 팔이 점차 자라났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정말 삼 분만에 심각한 부상이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멀쩡하게 일어선 안혜지는 망가진 방패를 보며 혀를 쯧 찼다.

"큰맘 먹고 산 건데···씨, 예전에 쓰던 거 꺼내야겠네요."

안혜지가 등 뒤에 메고 있던 철판을 집어들었다. 방패라기엔 볼품없었다.

등을 보호하려 멘 줄 알았는데···저게 방패라고?

성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죽을 뻔 했는데 앞장설 수 있겠습니까? 벌벌 떨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건 그쪽이 저 새끼들 한 방에 보내버릴 정도로 셀 줄 몰랐을 때였고요···아, 아까 욕한 건 미안해요. 싸우던 중이었고 워낙 상황이 급했잖아요······이해해 줄거죠?"

"···뭐, 그럽시다."

종말이 자리한 세상에서 한 달 간 지내면 이렇게 되는건가? 아니, 그걸 생각해도 저 여자는 지나치게 특이하다. 다음 순간 안혜지가 뱉은 한 마디가 그러한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지금은 볼품없긴 한데, 이래봬도 나 헌터 출신이에요. 세상 변하기 전에 서울특별시 균열관리부에서 일했던 C급 헌터 출신······."

재빠른 판단, 죽을 위기를 겪고도 다시 전장에 뛰어드는 대담함, 얼굴에 철판을 깐 듯한 뻔뻔함. 그 모든 특이사항들이 간단히 설명되었다.

헌터 출신.

***

둘은 곧바로 출발하는 대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니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아니었다. 성연은 전력 보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방금 절실히 느꼈다. 모 게임의 질럿 유닛과 닮은 던전 괴수들은 날벌레로 상대하기엔 벅차다. 만약의 변수가 없다면 서너마리쯤은 거뜬히 죽이겠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성연은 '만약의 상황'이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했다. 변수가 끼어들 여지도 없이 완벽해야만 한다.

'곤충 계열 언데드로는 부족하다.'

성연은 손톱만한 벌레 언데드는 이 상황에 알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 몇 가지 상황의 시뮬레이션을 끝낸 후, 되살려 낼 언데드 개체의 구성을 머릿속에서 그려냈다.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갈 좁아터진 공간······3m 남짓한 크기의 적······'

그림은 오래 걸리지 않아 완성되었다. 성연은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일으킬 재료는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짓밟혀 죽은 시체 하나를 바라보며 각성 능력을 사용했다. 뭉개졌던 시체는 곧 삐걱이며 꿈틀대기 시작했다. 안혜지가 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시체를 다루는 각성 능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네크로맨서였어요? 와, 씨···진짜 로또 맞은 거였네. 네크로맨서랑 같은 일행이면 완전 인생역전······."

성연은 시체를 인간 좀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꽤 많은 변이를 진행시켰다. 그리 재구성을 거듭한 결과, 시체는 생전의 모습을 대부분 잃었다. 뒤엉킨 팔다리는 이족보행이 아닌 사족보행에 최적화 되었다. 기껏해야 턱에 닿을 길이였을 혀는 이제 4m 길이까지 늘어날 수 있는 촉수가 되었다. 그 혀 끝은 부드럽지 않았다. 「마운틴」의 껍질을 응용해 단단한 부위를 덧씌운 가운데 기다란 혀는 흉기가 되었다. 모 게임의 질럿 유닛을 닮은 던전 괴수들을 쳐부술 흉기.

"씹···이런 네크로맨서는 처음 보는데, 이거 사람 맞아요? 사람이 아니라 두꺼비잖······."

안혜지는 마침내 활동을 시작한 인간 좀비를 보며 질색했다. 모든 기능이 퇴화되어 정교하고 신속하게 혀를 뻗을 기능만 발달된 인간 좀비는 기괴한 형태였다.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두꺼비 같았다······.

"갑시다."

계단을 더 내려가 마주친 던전 괴수들과의 전투가 시작된 이후, 안혜지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뻗어진 혀는 우스꽝스러운 외형과 달리 무척 위력적이었다. 탄력있게 쏘아진 혀는 던전 괴수의 머리통을 단번에 깨부수고, 가슴팍을 꿰뚫어 심장 같은 중요 장기를 박살냈다.

오직 저놈들만을 사냥하기 위해 설계한 언데드였다. 그 목적에 걸맞게 사족보행하는 두꺼비 닮은 좀비는 충실하게 던전 괴수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두꺼비 아저씨 존나 세네!"

단 한 개체의 인간 좀비가 벌써 스물 두 마리의 던전 괴수를 유린한 가운데 둘은 계단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가끔 뻗어진 혀를 운 좋게 피한 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던전 괴수가 몇 있었다. 안혜지는 달라붙는 괴수에게서 인간 좀비를 지켰고, 덕분에 인간 좀비는 흙으로 돌아갈 일 없이 접근해 온 괴수들마저 모조리 죽였다.

탱커로서의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는 가운데 헌터 출신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리 서로 합을 맞추며 전투를 거듭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 성연이 말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아, 저 남자친구는 없는데 그쪽은 제 취향이 아니라······."

"나 같은 네크로맨서 처음 본다고 했죠? 그럼 지금 활동하는 네크로맨서들은 어떤 식으로 싸웁니까? 상황에 맞춰서 언데드를 재구성하는 건 기본중의 기본인데······."

안혜지의 쓸데없는 대답은 무시한 채 성연이 말했다.

뻘쭘한 표정을 짓던 안혜지가 대답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쪽 같은 사람은 없었어요. 대부분 쓸만한 능력 가진 각성자 좀비 일으켜서 화력으로 밀어붙이죠. 아니면 고질라들 물량으로 밀어붙이던가. 웬 두꺼비 아저씨를 만드는 네크로맨서는 들어본 적도······."

화력이나 물량으로 밀어붙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성연은 사형수로 수감되기 전 스스로의 능력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네크로맨서 능력엔 결함이 다수 있었고, 나름대로 보완한 방식이 이것이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물량이나 화력 따위로 밀어붙이는 게 전부라고······그건 이 능력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말 이십 미터 괴수 몇 마리 부리는 것 따위로 각성자 사회의 귀족이 되었단 말인가? 성연은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나가면 한 번 인터넷 찾아서 봐요. 네크로맨서 새끼들 자랑질 하는 거 좋아해서 영상은 차고 넘치니까······."

그럴 생각이었다.

그때 성연이 흩뿌린 각성 능력에 괴수 네 마리의 생명 반응이 잡혔다. 그 위치를 특정한 성연이 인간 좀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결국 전투는 시작되기도 전에 끝났다. 이쪽의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던전 괴수 무리는 어둠 속에서 날아온 4m짜리 흉기에 머리가 꿰뚫려 전멸했다. 그런 일방적인 전투가 반복되었다. 성연이 녀석들의 습성과 신체 구조를 대략 파악한 가운데 더 이상 놈들은 빈틈을 노려 접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냥 성공』

『던전 괴수(C) 개체 한 마리』

『30P 획득.』

위협적이던 던전 괴수들은 이제 누르면 삼십 포인트를 뱉는 자판기가 되어있었다. 안혜지는 이제 방패를 들고 다가올 위기에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에 이제 성연은 온라인 RPG에서 치트키를 쓴 캐릭터나 다름없었다. 미니건으로 하루종일 쏴 대도 안 죽는 괴수들이 모조리 원킬이었다.

'자랑질하는 네크로맨서들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그 새끼들도 이 사람이랑 붙으면 쪽도 못 쓰겠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내는 내로라하는 네크로맨서들과 비교해도 절대로 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압도적인 강자축에 속할 터다. 헌터로서 활동했던 안혜지의 감이 그리 말했다.

"이 새끼들 다 어디 숨었어?"

수월한 던전 돌파가 이어지던 가운데 이제 던전 괴수는 몇 보이지 않았다. 안혜지는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보이는 머리 잃은 사체를 보았다. 그러다 문득 뭐가 떠올랐는지 성연에게 말했다.

"근데 얘네는 언데드로 안 써요? 좆나 잘 싸울 거 같은데······."

"써먹기 비효율적입니다. 세포 구조가 복잡해서······."

"아···."

이어지는 설명 중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무안해진 안혜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래, 두꺼비 아저씨 하나로 던전 괴수들을 싹 다 발라먹은 사람 아닌가. 알아서 하게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앞서 걷던 안혜지가 멈춰섰다.

"······저거 보여요?"

"네, 보입니다."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이어진 계단의 끝이 마침내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엔 전의 놈들과는 다른 괴수 한 마리가 있었다. 외형은 비슷한데 껍질의 색이 달랐다. 온통 검은색으로 점철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놈들과 달리, 녀석은 눈에 띄게도 껍질 색이 새하얀 색이었다.

던전이 끝나는 부분, 다른 놈들과 차별되는 특징.

온라인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1층의 보스격되는 놈일 것이다······.

"더 준비하고 다시 오는 거 어때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위험할지도······."

"한 번 잡아보죠."

안혜지는 내키지 않은 듯하면서도 거부하진 않았다. 방패를 치켜세운 뒤 계단을 내려갔고 거리가 좁혀졌을 때 녀석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그 순간 굉음이 울렸다. 난데없는 충격에 안혜지가 표정을 찌푸렸다. 아니, 그래도 꽤 거리가 되는데 이렇게 빨리 돌격했나?

"뭔······."

예상이 빗나갔다. 계단 끝에 자리한 놈은 초고속으로 돌격한 것이 아니었다. 껍질의 색과 같은 순백색 손톱이 길게 뻗어져 있었다. 성연이 부리는 인간 좀비의 혀처럼.

안혜지가 급히 말했다.

"이거 두 번은 못 막아요. 능력 발동해서 첫 번째만 겨우 막은 거······."

첫 공격을 무적에 가깝게 막아내는 능력이 아니었다면 철판 형태의 방패는 물론이고 안혜지의 몸이 통째로 꿰뚫렸을 것이다. 그만큼 저 길게 뻗어지는 손톱은 위력적이었다.

성연도 저 공격이 위험하단 것을 직감했다. 인간 좀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감각이 공유된 가운데 4m의 혀가 쏘아졌다.

다른 잔챙이들과는 과연 달랐다. 머리가 꿰뚫리는 대신 반대쪽 손톱을 휘둘러 혀를 막아냈다. 성연은 단순한 명령을 내리는 대신 인간 좀비와 감각을 공유해 본격적으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익힌 방식이다. 더욱 정교하며 날카롭게 조종할 수 있는 방식.

"조심해요. 또······."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거듭된 개조로 초인적인 감각을 보유한 인간 좀비에게 깃든 덕이었다. 기다랗게 뻗어진 혀를 쳐낸 녀석은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방패를 든 여자는 물론이고 뒤쪽의 귀찮은 것들까지 한 번에 꿰뚫어버릴 생각으로.

성연은 틈을 주지 않았다. 튕겨나간 혀가 탄력있게 허공에서 비틀렸다. 던전 괴수의 사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더 촉수 형태의 혀가 쏘아졌다. 이쪽으로 손톱을 길게 뻗는 녀석의 것보다, 빠르게.

머리와 가슴께 사이의 목이 꿰뚫렸다. 놈의 몸이 덜컥이며 길게 늘어지던 손톱이 멈추었다. 그러나 각성 능력에 걸린 생명 반응은 멈추지 않았다. 부족하다. 더 확실하게 끝을 내야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 좀비에게 또 다른 변이가 이루어졌다. 이미 재구성이 이루어진 세포가 다시금 재구성되었다. 목에 틀어박힌 혀에서 가시가 뻗어졌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듯 그 가시는 머리 내부를 헤집고, 가장 중요한 장기인 뇌를 박살냈다.

더 이상 생명 반응은 없었다. 뇌를 잃고도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그 모든 과정까지 총 0.9초가 걸렸다.

"온다······어?"

안혜지가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때 상황은 끝났다. 더 없이 위협적이던 괴수의 몸이 무너졌다. 허무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또 이 대단한 네크로맨서가 한 것이 분명하리라.

"진짜 좆나 세시네요."

"그래봤자 한 달 동안 열심히 활동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뇨, 걔네보다 훨씬 센 것 같은데요. 이런 건 아무도 못할 거에요. 내가 6단계 강화까지 한 사람 봤는데, 그 사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성연은 이 여자가 과대평가를 한다고 생각했다. 전에 비해 능력이 월등히 발전한 것은 맞으나, 내로라하는 헌터들에 비하면 지금도 한참 모자르다. 이십 미터 괴수를 부리고 음속을 돌파하는 날벌레 무리를 부리는 것 따위는 강자 축에 속하지 못한다. 성연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땐 그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유현과 정면에서 싸우는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 말이다.

경멸하면서도 성연은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 그 헌터는 누구보다 위대했다. 아마, 지금도 정면에서 싸우면 일 초안에 죽을 것이리라.

"뭔 생각에 그리 빠져있어요? 여기 문 열면 끝인 거 같은데?"

안혜지는 죽은 괴수를 지나 계단 끝의 문을 손으로 밀었다. 커다란 문은 간단히 열렸고 곧 빛이 쏟아졌다. 대한민국 던전 일층을 공략했다는 알림과 함께 둘에게 각각 천 포인트가 지급되었다. 문을 완전히 연 뒤엔 입구로 돌아와 있었다.

천막으로 가득 찬 광화문 광장으로.

"와, 씨발. 방패 몇 번 들고 천 포인트? 미쳤다······내가 진짜 개처럼 몸빵해줄게. 우리 평생 같이 해요."

안혜지는 크게 기뻐했다.

***

성연은 천막으로 돌아와 안혜지에게 빌린 스마트폰으로 내로라하는 네크로맨서들의 영상을 감상했다. 기술이 발전한 가운데 괴수들의 부산물과 마석을 원동력으로 하는 스마트폰은 중요 시설들이 모조리 무너졌음에도 인터넷이 잘 터졌다. 성연은 두 시간이 넘도록 유명하게 퍼진 영상을 보았다. 그리하여 내린 소감은 간단했다.

'이거밖에 안 된다고? 진짜 고질라들 몇 끌고 다니는 게 전부잖아······.'

능력 낭비가 더럽게 심했다. 같은 능력을 가진 성연이 보기에 그들은 참으로 실망스럽게 싸우고 있었다. 언데드를 일으킬 때 딱 두 가지 재구성만 했을 것이 분명했다. 더 크게, 더 강하게. 무척 어린 아이 같은 발상이었다. 효율을 따지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네크로맨서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그 이후 다른 각성자들의 영상과 한 달 간의 소식들을 찾아보는 가운데 가장 맨 위에 떠오른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세계헌터협회에서 던전에 파견한 총 여섯팀 전멸.』

『던전 발생지 주변을 초고위험 지역으로 분류···』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일층 공략에 최소 닷새는 걸릴 것으로 예상······.』

< 프리랜서 헌터 안혜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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