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 이현우 (2) >
이현우는 점심 언저리에 찾아온 불청객을 능숙하게 맞이했다. 교도소에서 느꼈듯, 그는 사람과 대화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듯했다. 대한민국이 멸망한 가운데 신사임당과 세종대왕이 그려진 화폐는 종이쪼가리로 변했다. 그래서 협상을 할 때 쓰이는 것들은 대부분 물자로 이루어졌다. 괴수들에게서 나온 마석이나 식량, 물 따위로.
거래 방식은 중세를 넘어서 원시 시대로 퇴화했다.
"···이건 너무 많이 바라는 거 아닌가? 듣자하니 우리가 공격하기 전에 저쪽에서 먼저 수상하게 행동했다고 하던데. 뭔가 증명할만한 걸 내보이지도 않고······."
"네크로맨서 양반 아닙니까? 건드린 쪽이 잘못이지요. 서로 좋게 좋게 끝냅시다···."
"흠······."
뭔가 트집을 잡으려던 사내는 이현우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네크로맨서라는 단어는 현재에 이르러 그 자체로 강력한 협상카드가 될 수 있었다. 단신으로 집단을 때려부술 수 있는 존재는 곧 걸어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서로 얼굴 붉힐 필요 없이 이대로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현우는 이 사내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근 한 달 간, 대한민국의 생존자 집단 대부분이 제 힘만 믿고 날뛰는 멍청이들 무리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천막 아래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누군가 차를 내왔다.
"사장님···여기."
"아, 고맙네."
"······지긋지긋한 회사 놀이, 진짜였군."
사내는 질렸다는 듯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엉망진창이 된 세상에서 인턴, 대리, 과장, 부장 따위의 직급으로 서로를 부른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그 기행을 벌인다니.
"이렇게 부르기라도 해야 잊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한 마디로 아랫 사람 수십을 부리다보면 저도 모르게 권력에 취해서 돌아버릴지도 모르잖습니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현우는 웃는 얼굴로 응수했다. 사내는 내어온 차를 마시며 캠프의 입구에 앉아 보초들과 떠들고 있는 성연을 바라보았다.
거래의 강력한 협상카드로 제시된 네크로맨서였다.
'이상하군. 네크로맨서라면 대부분 언데드를 줄줄이 끌고 다니는 게 정상인데······혹시 거짓말을 했나···.'
사내는 조직을 위해 움직이며 네크로맨서들을 여럿 봤다. 네크로맨서들은 저리 얌전한 족속이 아니다. 괴수들을 이끄는 게 엄청난 대수인 양 그걸 과시하는 재미에 살아가는 찐따 새끼들이다. 혹시, 사장이라 자칭하는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협상을 잘 이어나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괴수를 되살릴 능력도 없는 머저리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능력이 하찮은 네크로맨서들 중엔 괴수 한 마리도 부리지 못하는 자들이 꽤 되었으니······.
"와!"
"아니, 유성연 씨 방금 무슨···."
물론 그 생각은 곧 철회되었다. 입구쪽에 괴수가 나타났고 보초가 반응하기도 전에 저 정체모를 네크로맨서가 무언가를 했다. 땅 속에서 기다란 줄기 같은 것이 솟았고, 일순간에 괴수가 쓰러져 죽었다. 사내는 대화를 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뭐 불편하신 거라도?"
"아, 아니······."
이후부턴 거래의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조직이 손해를 감수하는 조건을 들이밀어도 거절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방금 보았던 광경이 끊임없이 오버랩 되었다.
'···뭐야, 저 새끼는······?.'
저런 네크로맨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대한민국을 돌면서도, 인터넷이나 방송국에서 지겹게 방송하는 뉴스에서도.
***
"거래는 잘 끝났어요. 다 유성연 씨 덕분이에요. 네크로맨서 없었으면 평소엔 물고 늘어졌을 것들이 일사천리로 그냥······."
"다행이네요."
성연은 무심하게 답했다.
관심사가 아닌 까닭이다. 지금 그는 오늘 발생한다고 했던 돌발 이벤트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물자를 많이 가져다줄 다른 조직의 손님이나, 가끔씩 습격해오는 괴수 서너마리 따위가 아니라.
"이벤트 기다리시는 겁니까?"
"예."
"대량의 포인트 걸려있다고 했으니···신경 쓰이시겠네요.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맞습니다. 근데···이현우 씨, 교도소 나가서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한 적 있지 않습니까?"
"아, 할머니요?"
이현우에겐 나름 간절한 사연이 있었다. 소원이라는 주제를 듣자 성연은 그것을 떠올렸다. 분명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교도소를 나간다고 했었다.
"구했어요, 성연 씨 덕분에."
"잘됐네요."
"진짜 위험한 상태였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텐데···운이 좋았죠."
"그 상황에 병원에 의사가 있었던 겁니까?"
"아뇨. 포인트로 치료제를 구입해서 겨우 살렸죠. 기존에 있던 병도 다 나아서 지금 엄청 건강하세요."
"아······."
성연은 어떻게 포인트를 구했느냐 물으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능력은 괴수와 싸울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을 빼놓기엔 아주 뛰어나다. 그리고 포인트는 괴수만이 아닌 살인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 주제로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자세하게 파고드는 건 둘 모두에게 불편하다.
"···유성연 씨, 한 달 동안 갇혀있었으면 포인트는 제대로 사용하셨어요? 포인트 얻는 것도 중요한데 쓰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아. 3단계 강화까지 열고 방어구들 좀 샀습니다."
"3단계요? 통 크게 5단계까지 열지···나름 싸우는 사람들은 다 5단계까지 열어요."
"포인트 아까워서요. 백만 모으는 것도 까마득한데 함부로 쓰기 그렇습니다."
"그거로도 충분하다면 괜찮죠. 음···방어구는 어떤 거 사신거에요? 헬멧이랑 코트면······."
능숙하게 대화 주제를 돌린 이현우는 곧 성연에게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주었다. 세계헌터협회가 발표한 기본 가이드 안과 그동안의 경험이 결합된 조언들이었다. 성연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하여 얻게 된 지식들은 꽤 영양가 있었다.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개인 능력 강화는 각성 능력 총량을 올려주는 게 끝이고요···그 안에서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서 발전시킬 수 있어요. 테크트리 탄다고들 하죠. 네크로맨서는 그 테크트리가 꽤 중요하다던데요. 그래서 네크로맨서들끼리 친목질도 심한 편이고······."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포인트 소모가 장난이 아닌데."
"그래도 그쪽은 투자해야 다른 사람들한테 안 밀려요. 아니, 칠천 포인트 정도면 투자 좀 해도 차고 넘칠텐데 그렇게 아끼다간······."
이현우는 멍청하게 아끼면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 사형수가 남에게 살해당하는 그림이 상상되지 않은 까닭이다. 애초에 D급 판정을 받은 능력으로 김유현 헌터를 죽인 사람이다. 그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김유현이라는 헌터가 어떤 위상을 차지했으며, 대단한 영웅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현우는 이 사형수에게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아닙니다. 뭐, 알아서 잘 하시겠죠."
"예. 그거 말고도 다른 거 더 있나 알려주시면 좋겠는데."
"방어구 제외하면 무기나 소모품 같은 게 많아요. 보통 육체파 헌터들이 괴수들 껍데기도 뚫을 수 있는 강화된 총기를 구입하는 편인데······."
괜히 능력도 안 되면서 꼰대 취급을 받을까 이현우가 걱정하는 가운데 성연은 그런 생각은 일체 없이 조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현재 세상에선 상식처럼 통용되는 포인트 사용법들, 그 지식들은 성연에게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게 도와주었다. 창조직이라 불리우는 네크로맨서에겐 가장 중요한 창의력을 자극한 것이다······.
'괴수들 뚫을 수 있는 수준의 총기라면···여차하면 인간 좀비 몇 일으켜서 쥐여줘서 써먹을수도 있다. 벌레들은 몸빵이 안 되고, 괴수는 너무 커서 빈틈이 있으니까···게다가 총기 하나에 사십 포인트면 비싼 것도 아냐······.'
제대로 활용한다면 그야말로 일인군단을 창조할 수 있다. 전력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성연이 이런 발상을 떠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지하에 갇혔을 때부터 세웠던 목표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을 놀라우리만치 확장한다면, 언젠가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는 목표.
"교도소 무너뜨린 놈 있잖습니까. 그 새끼 사냥은 아무도 안 합니까? 솔직히 걔 잡으면 오천 포인트는 줄 만한데······"
"저번에 협회에서 헌터 칠십 명 보냈다가 다 죽었어요. 고작 껍데기 조금 벗겨낸 게 끝이래요. 「마운틴」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마당에 무슨 사냥이에요. 걔는 신경 안 쓰는 게 마음 편합니다."
"껍데기···."
그 말에 성연은 지하에 머무르던 자신에게 굴러떨어진 정체 모를 괴수의 부산물이 그 거대한 놈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연구했던 장본인으로서 당장 붙으면 상대도 안 될거라는 사실도 직감했다.
'더 강해져야······.'
다른 괴수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걸어다니는 산. 그놈의 사체를 언데드로 되살린다면 가히 그 위용은 엄청날 것이다. 성연은 네크로맨서로서의 수집욕을 일단은 접어두었다.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이현우가 질문했다. 그러나 문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와 성연의 눈 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보초를 서거나 천막을 관리하던 이들에게도 일제히 떴다. 각성자들에게만 띄워지는 알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이벤트 떴다!"
***
『돌발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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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어택』
『모든 각성자 분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루 뒤, 각국의 수도에 지하 미궁 던전이 탄생합니다!』
【던전은 총 지하 30층까지 존재합니다.】
【던전에 출현하는 괴수들은 한 마리당 30P입니다.】
【마지막 층에 도달하면 던전이 공략됩니다! 한 던전이 공략되면 모든 던전은 소멸합니다!】
【공략되기 전까지 던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던전을 신속히 클리어 하지 못한다면 내부에 도사린 괴수들이 지상을 침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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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이벤트의 우승자는 총 10,000P를 얻습니다!』
『한 번이라도 던전에 출입한 적 있는 분께는 200P를 이벤트 종료와 함께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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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이벤트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받은 각성자 분들을 응원합니다.』
돌발 이벤트의 내용은 단순했다.
세상에 벌어진 재난을 게임이라 평하는 저들은 이번에 이벤트랍시고 내놓은 것도 게임을 연상케 만들었다. 던전이라니, 게임에나 나올법한 요소가 아니던가.
물론 그 사실에 불평하거나 하는 사람은 굳이 없었다.
"출입하기만 해도 이백이면 완전 개꿀인데···."
"사장님! 공략은 무리더라도 한 번쯤 들어갔다 나오는 건 어떤지······."
이벤트의 보상이 꽤 파격적이었던 까닭이다. 성연처럼 괴수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능력자는 무척 드물다. 그러니까 괴수 스무 마리 몫에 해당되는 이백 포인트란 평범한 이들에겐 꽤나 많은 포인트란 말이다. 이 캠프에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이 사십, 오십 정도의 포인트만 보유하고 있었다.
"유성연 씨, 가실거죠?"
"가야죠. 서울이면 꽤 걸어야 할텐데······."
중앙각성자교도소는 강원도 원주 구석에 있다. 차를 타고 갈 순 없다. 도로 대부분이 무너지고 망가졌으며, 멀쩡한 차를 구해서 도로를 잘 찾아 움직인다 한들 자동차 배기음과 냄새는 괴수들을 불러모으기 때문이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자동차로 움직이는 이들은 무척 드물었다···.
결국 차로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대한민국 던전 위치는 서울 광화문 광장···친절하기도 하네."
"이현우 씨는 어쩔겁니까?"
"우리도 가야죠. 사람들이 몇인데, 이 사람들 하나 하나 이백 포인트 얻으면 장난 아니게 세질걸요······."
"그럼 가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납시다. 아는 사람 있으면 저도 좋으니까."
"아······예, 그래요."
이현우는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려다 이내 쓰게 웃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까지 가려면 수 많은 괴수들과 마주칠 것이고, 경험 없는 조직원들의 수가 꽤 줄어들 것이다. 그 과정에 성연이 있다면 사상자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차마 동행하자 제안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 원하는 건 뭐든 주겠다는 말을 꺼내려 했으나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수십이나 되는 무리의 100km 가량 행군은 분명 하루를 넘길 것이다. 어쩌면 하루하고도 한참이 더 걸릴지도 몰랐다. 완전군장은 없으나, 도중 출현하는 괴수들은 분명 시간을 무척 잡아먹을 것이다······이 사형수는 누구보다 앞서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발목을 붙잡게 되는 상황이 그려진다면 저 사형수는 단칼같이 끊어낼 것이 뻔했다. 그리 된다면 분명 광화문에서 만나게 되도 아는 척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 몇 잃는 것보다 그게 더 큰 타격이다······.'
이현우는 저 사형수가 머지않아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 거라 확신했다. 지금 도움을 청해 연줄을 끊는 것보단 어떻게든 인연의 끈을 잡아놓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이현우는 망설임 없이 그를 보내주었다.
"나중에 인연되면 또 봅시다!"
이현우는 가벼운 여행길에 필요한 물자들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성연은 미련없이 떠났고, 인간 좀비 하나를 일으켜 그 신체 구조를 말처럼 바꾸어 등에 올라탔다. 별 무리 없이 이동하는 가운데 성연은 이현우에게 들었던 조언을 토대로 총 삼천 포인트를 테크트리와 추가적인 물자 구입에 투자했다.
서울 광화문에 도착했을 땐 밤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무리 모두가 각성자임을 직감했다.
서로에 관한 정보가 없으므로 섣부른 다툼은 벌어지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 여러 텐트가 즐비했다. 밤은 무사히 지났다.
그렇게 다음날 날이 밝을 무렵,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이 있던 자리와 그 주변은 시커먼 구멍이 대신 자리하게 되었다. 구멍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생겨난 가운데 거기 모인 모두가 그것이 던전임을 알게 되었다.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던전.
***
「Info」
「유성연」
「3단계 능력 강화」
「회복약 두 개 보유」
「튼튼한 헬멧」
「총격 방어, 독성이 포함된 가스 차단, 충격 흡수.」
「아머 코트」
「열병기 방어, 충격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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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구입 목록」
「총 3020P.」
「강화 미니건 네 자루」
「강화 저격소총 두 자루」
「상세 능력 강화」
「네크로맨서-'재구성' 부문 2단계 강화」
「→ 더 폭넓은 방식으로 사체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세포 개조' 부문 2단계 강화」
「→ 되살리는 과정에서 더 상세한 부분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행동 반경 범위' 부문 4단계 강화」
「→ 언데드들이 주인과 떨어질 수 있는 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이제 아주 멀리 떨어져도 약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 사장 이현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