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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11화 (11/111)

< 네크로맨서 유성연 (3) >

성연은 「강화」라 적힌 부분을 누를 때마다 기묘한 감각을 받았다. 가슴 속의 무언가가 꿈틀댔고, 곧 풍선에 바람을 넣은 듯 커다랗게 팽창했다. 머지않아 성연은 커져가는 무언가가 자신의 각성 능력임을 알았다.

이십 포인트, 사십 포인트, 그리고 팔십 포인트.

총 백 사십 포인트를 투자한 가운데 성연은 자신의 능력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음을 깨달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힘을 손에 넣었음에도 보유 포인트는 여전히 칠천이 넘었다. 지하 속에 갇혀있던 성연은 이 포인트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곧장 깨달았다. 총 보유 포인트가 공개된 지금 생존자들이 자신을 노릴 거라는 사실도 함께.

'포인트는 괴수 사냥뿐만 아니라, 같은 각성자를 살해해도 얻을 수 있다······.'

성연은 제 이득을 위해 남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단순한 몇 푼으로도 해치는데,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성연은 능력을 더 강화하는 대신, 소량의 포인트를 투자해 물품을 구입했다. 남을 해치기 위한 힘은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각성자들의 대표적인 약점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힘은 강력하나, 본인의 몸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성연이 살해한 김유현의 경우도 그러했다.

만약 그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힘만큼이나 몸뚱이도 강했다면, 성연은 그 당시에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핏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성자와 그 팀을 살해한 경험이 있기에 성연은 방어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하여 성연이 구입한 것은 이러했다.

위기 상황을 대비한 회복약 두 개와 쓸만한 방어력을 가졌다는 설명이 적힌 코트와 머리를 보호해 줄 헬멧. 성연은 총 구백 사십 포인트를 소모해 장비를 구비한 뒤 갈아입으며 눈에 띄는 죄수복을 드디어 벗었다는 사실에 나름 쓸만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연은 지금 죄수복보다도 더욱 눈에 띄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천장을 노려보며 한층 강력해진 각성 능력을 끌어올렸다. 전에는 넘볼 수 없던 영역이다. 땅 위에 머무르고 있는 커다란 놈, 그놈에게 능력을 흘려넣어 천천히 일으켰다. 빌딩만한 괴수 사체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얇고 길쭉하게 재구성된 팔을 느릿하게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손에 붙잡힌 성연은 붕 떠오르며 멀어지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직 많이 남은 물과 식량들, 끌어안고 잤던 천조각, 곳곳에 튀어나온 철골과 콘크리트 조각들···.

이 갑갑한 지하도 이제 끝이었다.

"아···."

희미한 빛은 눈부실 정도로 선명해졌다. 마침내 지상에 나온 성연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근 한 달 동안 제대로 본 적 없던 넓고 드높은 하늘. 안에 갇혀있던 동안 바깥에 나가고 싶다는 욕망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순간 참으로 오랜만에 황홀감을 느꼈다.

한참이나 그 감성에 젖어있던 성연은 제 몸을 쥐고 있는 언데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 3단계까지 능력을 강화하며 이제 부릴 수 있게 된 놈.

몸길이 이십 미터를 넘기는 괴수가 죽은 눈을 한 채 거기 서 있었다.

***

괴수의 사체를 매개로 만든 언데드는 강력하지만 지나치게 커서 눈에 띈다. 언론에서 시끄럽게 다루는 「영웅」 취급을 받는 네크로맨서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오히려 과시하듯 도시 한복판에서도 군단처럼 끌고 다니나 성연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의 전력을 내보이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라고 한들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각성자 사이의 전투에선 서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먼저 치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 그래서 성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확장된 능력으로 일으킨 괴수 언데드를 숨기는 것이었다.

"더럽게 크네, 진짜···."

지하에서 바깥에 나가기를 계획할 때부터 했던 생각이었다.

커다란 괴수를 재구성할 때, 땅강아지처럼 지하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했다. 또한 이빨과 껍질을 퇴화시키는 대신 팔을 길쭉하게 만들고 발톱을 날카로이 세웠다.

모 게임에 등장하는 럴커 유닛과 비슷한 용도로 써먹기 위해서였다. 성연은 이 편이 전략적이며 전술적으로 써먹기 더 좋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괴수가 가진 힘이라면 각성자든 같은 괴수든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일격을 성공시킬 수 있게 수단을 동원하는 게 올바르지 않겠는가······.

"제대로 무너졌네. 주변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네크로맨서 능력은 사체를 되살릴 수 있도록 주변 생명체를 탐지하는 기능도 존재한다. 성연은 그 기능을 탐색에 사용했다. 괴수를 제외하곤 인간 생존자는 아무도 없음을 파악한 뒤, 곧장 날벌레 세 마리를 언데드로 만들어 일으켰다. 시각을 공유해 주변 풍경을 육안으로 확실하게 파악할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확인한 결과, 중앙각성자교도소 일대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정문으로는 발도 들여서 안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무슨 수를 써도 저걸 돌파할 순 없겠는데······."

성연을 지하로 추락하게 만든 장본인, 몸길이 백미터를 넘는 초거대 괴수는 정문을 깔고 앉은 채 꿈쩍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저놈의 힘이 자연재해에 맞먹는다는 사실을 체감한 적이 있는 가운데 성연은 저것과 대적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네크로맨서로서의 수집 욕구가 다소 솟긴 했다.

저런 걸 언데드로 만들 수 있다면 백만 포인트를 모으는 건 일도 아닐테니.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일단은···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다.'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놈이다.

성연은 놈의 반대편, 후문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일단 한 달 동안 텅 비어버린 정보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난리통이 벌어진 이상 분명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뀌었을테니까.

그를 위해선 사람을 찾아야 한다.

뭔가 알고 있을 사람.

그런 목적으로 하염없이 몇 시간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위험 지역이니 여기에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는 표지판이나, 머리나 팔 다리 따위가 없는 시체 여러 구를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불 꺼진 도시에 도착했다. 기울어진 빌딩, 찌그러진 고물이 되어 도로 한복판에 버려진 자동차들. 도저히 생존자가 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람들이 다 죽기라도 한 건가?

아니···그럴리가······.

여러 가설이 머릿속에 세워지던 가운데 성연이 퍼뜨렸던 각성 능력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몇이 잡혔다. 인간 개체 넷. 그리 멀지도 않은, 몇 분만 더 가면 되는 거리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이렇게 망가진 도시에 사는 사람이 있나?'

망가진 곳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망가진 사람들 뿐이다.

경계심을 끌어올린 성연은 주변을 살피며 아까와 비교해 현저히 느린 속도로 걸었다. 곧 환한 불빛이 그를 반겼다. 손전등 빛이나, 스마트폰 플래시 따위가 아니라 나무와 천을 땔감으로 태워 피워낸 자연적인 불꽃에서 비롯된 빛이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네 명의 사람은 다가오는 성연의 인기척을 눈치챘다. 무리에 속한 이들 모두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뒤이어, 한 남자가 소리쳤다.

"누구야! 씨발, 다가오지 말고 거기 서서 말해!"

***

남자의 외침과 함께 총 넷의 무리는 전투에 대비했다. 성연은 이들이 평범한 생존자 무리가 아니라 헌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예······."

성연은 두 손을 들어올리며 그들을 가볍게 훑었다. 손을 든다고 해서 언데드를 부릴 수 없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행위를 취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경계심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앞쪽 남자는 큼지막한 방패, 뒤쪽 남자 둘은 총···맨 뒤에 있는 여자는 맨손? 각성자군. 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각성자···마법계열이다.'

꽤 탄탄하게 짜여진 듯 보였다. 두 남자가 든 총은 경찰이 소지하는 권총 따위가 아니라 군에게나 보급되는 종류의 소총이다. 두 손을 위로 들자 경계가 다소 풀어지긴 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성연은 지금 이 상황에 위협을 느끼기보단, 계산이 담긴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전부 죽인다? 아니···정보가 필요해. 그렇다면 겁을 주고 위험 요소도 제거할 겸 총을 든 남자들만? 그것도 아니야. 죽이려면 한놈만 남겨놓고 전부 죽여야한다. 합심해서 반항할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하지 못하도록······.'

성연은 남자 둘 중 하나가 방아쇠를 당길 움직임을 보이면 그 즉시 땅 아래 감춘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릴 작정이었다. 능력이 확장된 가운데 성연은 괴수 언데드 한 구를 일으키고도 곤충 개체 언데드 아흔 아홉 마리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들의 발 아래엔 지금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언데드가 총 백 마리 꿈틀대는 중이다.

"어디서 왔어!"

"예? 아···길을 잘못 들어서 위험 지역 쪽에 빠져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근방의 길은 잘 모르는 탓에······."

"증명할 방법이 있나?

걸어오며 보았던 것들을 토대로 말을 지어낸 성연은 증명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증명, 무엇을?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증명이라뇨?"

"네가 우리 죽이고 포인트 먹으려는 개새끼가 아니라는 증거!"

"무슨 소리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그런 증명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협회에서 발급받은 증 없어? 여기 헌터 아니면 입국 못 하는데, 뭐 씨발 대한민국 국민일리도 없고······."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씨발,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성연이 작게 움직이자 남자가 거칠게 소리쳤다. 뒤편의 둘이 총구를 머리쪽으로 겨누었다. 슬슬 짜증이 났다. 가능하면 넷 모두 살리고 싶었다. 정보를 제공할 인물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사실 방아쇠를 당기든 말든 상관도 없었다.

한 달 동안 사냥에 몰두한 성연의 감각은 손가락을 당기는 작은 움직임에 반응해, 탄환보다 수 배 빠른 벌레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을만큼 발달한 상태였으므로.

"아니면 그 헬멧이라도 벗던가···씹, 여기서 코트에 헬멧은 뭔 좆같은 패션이야? 컨셉 거지같이도 잡았네······."

"어떡할까?"

가장 뒤에 선 여성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대화를 주도하던 남자가 말했다.

"다리나 팔 하나 날려. 반불구 만들고 나서 이야기 해보자고, 한 번에 못 죽여서 뒈지기 전에 포인트 다 꼴아박고 죽으면 우리만 손해니까······어차피 이 새끼 소속도 없는 떨거지 새낀 거 같은데, 오랜만에 한 몫······."

이어지는 말과 함께 여성의 손아귀에 미약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것으로 평화적인 대화는 결렬이었다. 더욱이 지금 저들은 성연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

부패한 헌터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그는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헌터나 공무원이 개짓거리를 벌이는 걸 무척이나 혐오했다. 아주, 지독할 정도로.

"개새끼들이네."

네 명의 무리가 딛고 있던 땅이 크게 요동쳤다. 당황한 두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으며 굉음고 함께 탄환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아래에서 솟구친 백 마리의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정지된 세상에서 회전하던 탄환은 공중에서 부서졌다. 헬기가 이륙하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넷 중 누구도, 그것이 꿀벌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언데드의 날갯짓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뭐, 뭐야···씹······."

"꺄아아아악!"

두 남자는 급히 방아쇠를 재차 당기려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때 군에나 보급될 법한 소총은 부품 단위로 해체되어 땅에 떨어졌다.

도저히 돌아가는 상황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무력화 된 상태에서 공격 명령을 내렸던 남자는 하늘을 나는 벌레와 눈을 마주쳤다. 보통의 날벌레와는 확연히 다르며, 특출나게 튀어나온 부위들이 있었다.

뭐야 씨발, 대한민국에 원전이 터져서 돌연변이 벌레들이라도 생겼나···방사능에 피폭되면 저런 것도 튀어나오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남자는 그 벌레 무리틈에 갇혀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성연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었다.

"지금부터 물어볼 게······"

"자, 잠깐!"

성연의 말을 누군가 중간에서 뚝 끊어먹었다.

누가?

이 넷 중엔 없었다. 전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럼 넷 말고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뜻이다.

성연이 각성 능력을 또 다시 흩뿌릴 것도 없이, 목소리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폐허와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차려입고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낀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성연과 마주치자마자 급히 선글라스를 벗곤 소리쳤다.

"유성연 씨, 잠깐만요. 저쪽이 먼저 잘못하긴 했지만 잠깐 이야기 좀······."

아는 얼굴이었다.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명백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곰곰히 생각할 것도 없이 성연은 곧 기억 속의 이름을 뱉었다.

"···이현우 씨?"

이현우.

중앙각성자교도소 감방 동기, 전과 화려한 사기범, 투머치 토커.

난데없이 나타난 이현우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다급히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진정해요. 지금 쟤네 죽이면 후폭풍 장난 아니란 말이에요······."

< 네크로맨서 유성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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