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크로맨서 유성연 (2) >
세계헌터협회가 포인트 사용법에 대하여 발표한 가운데 살아남은 각성자들은 놀라운 속도로 강해졌다. 백 포인트 정도만 투자해도 삼류 헌터가 A급 헌터에 필적하게 되었다. 전황은 금세 뒤집어졌다. 절망적이던 상황은 이제 해볼 만한 수준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네크로맨서 하나가 헌터 백 명 몫을 한다.」
이계의 침략자들과 벌인 전쟁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생명활동을 정지한 사체를 되살려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과거에 시체쟁이들이라 폄하받던 자들. 하루에도 수천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네크로맨서들은 일인군단이 되었다.
각성자 좀비들은 부족한 전력을 메꾸었고,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수 언데드는 아군마저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인류는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전란의 시대는 여러 영웅들을 탄생시켰고 대부분이 네크로맨서였다. 혼란이 잠잠해지며 정부는 다시 제기능을 되찾았다. 위기를 넘기자 각성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소원이었다. 원하는 걸 뭐든지 이루어 준다니,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문장 아닌가······.
물론 백만 포인트는 지금으로썬 무척이나 아득한 수치였다.
그래서 나름 강화를 마치고 장비를 구비한 강자들은 남들의 발이 닿지 않았거나, 초반 대처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여 버려진 국가와 지역을 방문했다.
개중엔 대한민국도 있었다. 폐허가 된 땅에 각성자 무리가 들어왔고 그들은 포인트 벌이를 위한 몰이 사냥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소원 성취를 목표로 한 헌터들이었다.
「위험지역, 들어가는 것을 금합니다.」
그러나 포인트에 미친 헌터들도 절대 발들이지 않는 곳이 있었다.
세계헌터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위험 지역'으로 지정한 장소. 과거에 무려 칠십이나 되는 헌터를 집어삼킨 바 있는 상식을 벗어난 괴수가 도사리고 있는 곳.
추정하기로 높이 백미터를 넘어서는 거대 괴수, 통칭 「마운틴」의 영역.
과거 중앙각성자교도소가 있던 지역엔 누구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든 각성자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괴수들과 맞서는 가운데, 참으로 오랜만에 모두의 눈길을 잡아끄는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내일로 본 게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게 됩니다.』
『예고했던 대로 돌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이벤트 참여 시 대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두 번째 변화가 찾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이벤트 시작 전, 획득한 포인트 총량을 기준으로 매긴 순위를 공개합니다.』
『순위는 10위까지 공개됩니다.』
그 문장에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각성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언론에서 영웅이라 평가하는 헌터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뀐 이후, 뉴스는 정치계 찌라시나 연예인들의 가십거리 대신 각성자들의 소식을 보도했다. 이 헌터는 이런 활약을 했으며, 이 헌터가 소원 성취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마침내 랭킹이 공개되었다.
『1위. 유성연』
『소속국가- 대한민국』
부푼 기대감 속에 드러난 1위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 이름 아래에 적힌 수치도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총 획득 포인트: 7,410P』
칠백 마리가 넘는 괴수를 사냥해야만 얻을 수 있는 포인트.
그러니까, 한 달 동안 모으려면 최소 하루에 스무 마리 넘는 괴수를 사냥해야만 벌 수 있는 수치였다······.
***
지하에서 살아남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성연의 능력은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괴수들은 인간 말고 다른 것은 먹잇감으로 삼지 않았고 그 덕에 중앙각성자교도소에 쌓여있던 물과 식량들은 모두 성연의 소유가 되었다.
약화된 언데드들은 괴수와 싸우긴 힘들었으나 버려진 식량과 물을 지하로 빼돌리는 일 정도는 손쉽게 해냈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괴수는 자그마한 벌레 따위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 까닭이었다. 성연은 적어도 이 지하에서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에게 떨어진 출처 모를 괴수의 껍질에만 연구를 몰두할 수 있었다.
해당 분야에 한정하여 웬만한 교수보다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는 성연으로서도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오래 걸렸다. 결국 자세히 파악하기보다는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에서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언데드들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총 열흘이 걸렸다. 그 무렵 성연은 더 분석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계에 부딪힌 연구를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성연은 언데드들을 바깥으로 내보내 사냥을 시작했다. 사냥이라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성연은 총 여덟의 언데드를 동시에 조종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이 발생했다. 스스로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언데드를 부리는 실력은 날마다 발전했다. 사냥 실력도 또한 발전했다.
어디를 찔러야 효과적으로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놈들의 습성이 무엇인지······.
중앙각성자교도소 주변에 서식하는 괴수들은 더 이상 인간 손톱만한 날벌레를 무시하지 않았다. 사소한 날갯짓 소리만 들려도 숨을 죽인 채 모습을 감추었다. 낮과 밤도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지하 속에서 성연은 오직 괴수를 죽이고, 포인트를 버는 것에만 몰두했다. 지하에 갇힌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며 자신이 독보적인 1위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세계헌터협회가 발표한 내용으로 사태는 안정되었다. 그에 따라 처음 투명한 창이 나타났을 때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각성자 사회의 혼란.
소원권이란 누구나 탐을 낼 상품이었고, 순수하게 괴수 십만 마리를 사냥하여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더군다나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괴수 사냥뿐만이 아니었다.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 약탈할 수도 있었다.
상가 건물만한 괴수를 사냥하는 것에 비하면 헌터를 죽이는 건 무척이나 간편했다. 초인이라 한들 그들도 인간이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 혹은 애인과 잠자리를 가질 때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넣으면 저항할 것도 없이 죽는다.
헌터를 죽일 거창한 각성자들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다. 인내심 많은 저격수 한 명을 고용해서, 예의주시하다 빈틈을 드러내는 순간 머리통을 날리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당 최소 백 포인트 이상으로 괴수를 잡는 것보다 효율도 좋았다···.
그리하여 각성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순식간에 급증했다. 인류를 위해 싸우는 영웅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괴수들이 아닌 자신들이 지키는 사람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았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세계헌터협회와 각국의 정부는 그리 선언했으나, 헌신하는 헌터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급감하게 되었다. 정체를 숨긴 세력가들이 제 욕망을 위하여 포인트를 노린 범죄를 마구잡이로 벌이는 가운데 보유 포인트 순서로 랭킹이 공개되었다.
놀랍게도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인물은 언론에 얼굴 한 번 비춘 적 없는 이름 없는 각성자였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유성연이 누구냐는 말이었다.
오직 고향을 버리고 도망친 대한민국의 국민들만이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세계헌터협회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에 유성연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유성연」
「위험도 분류- ★★★★」
「각성 능력: 네크로맨서···」
위험인물이며 세계헌터협회에 힘을 보태는 걸 거절했던 전력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세계헌터협회는 자기네들이 손을 쓸 것 없이, 포인트에 미친 사냥꾼들이 대신 저 미친 새끼를 죽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개한 것이었다.
칠천을 넘어서는 포인트를 다른 악인이 얻는 것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인트를 다수 보유한 각성자라면 언제나 득달같이 달려들던 범죄자들은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 능력에 적힌 네크로맨서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지난 한 달간 포인트를 대량 보유한 헌터들의 대다수는 네크로맨서들이었고,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그들은 타겟으로 한 바가 수차례 있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고질라 스무 마리가 네크로맨서를 노린 조직의 아지트에 떨어졌다. 전차와 붙어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괴수들은 네크로맨서의 능력에 의해 한층 강화된 상태였고, 총 이백 사십의 조직원은 한 인물에게 원한을 산 것만으로 세상에서 지워졌다.
이후, 네크로맨서를 건드리려는 포인트 사냥꾼은 아무도 없다.
그 네크로맨서가 한 국가를 대표하는 헌터를 살해한 여력이 있으며 칠천 포인트를 벌만큼 뛰어난 실력자라면 더더욱.
"···어?"
물론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랭킹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했을 때 질색하는 표정 대신,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있었다.
"······살아있었구나. 유성연 씨···."
***
성연은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 최근 일대 괴수의 씨가 마르는 탓에 벌어들이는 포인트가 줄어들었다. 적어도 일만 포인트는 모아서 여길 나가기로 결심한 바였다. 그 결심은 무척이나 확고했으며, 실제로 목표까지 삼천 포인트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일로 본 게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게 됩니다.』
『예고했던 대로 돌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만약 눈 앞에 그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성연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은 채 사냥에 매진했을 것이다. 바깥 상황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고,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 외부에 노출되어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만 포인트라는 성연의 목표는 그렇게 생겨났다. 이곳을 빠져나가고 괴수를 사냥하기 부족함이 없으며, 만약 정부가 멀쩡하여 자신을 노린다고 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힘. 그러나 성연의 목적은 난데없이 떠오른 투명한 창에 의해 변경되었다.
『이벤트 참여 시 대량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소원을 남에게 양보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대량의 포인트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생판 모르는 다른 각성자에게 그 기회가 넘어가는 건 안 된다. 성연은 언데드들과의 연결을 해제했다. 외부를 날던 벌레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흩어졌다.
그리 각성 능력을 회수한 성연은 덤덤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성장했고,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앞에 섰다.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인위적인 전력으로 밝혀진 불빛인지, 하늘에 뜬 달이나 태양 따위가 밝힌 불인지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성연은 마음 속으로 전에 그랬듯 포인트를 사용하고자 소망했다.
『1단계 능력 강화- 20P.』
『물품 구입···.』
마음을 읽은 것처럼 성연의 눈 앞엔 포인트를 지불하여 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는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망설이지 않았다. 성연은 이곳에 추락했을 때 구입했던 회복약을 위한 칠십 포인트를 제외하면 한 번도 포인트를 사용한 적 없었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백만 포인트라는 터무니 없는 양을 모아야 하고, 그를 위해선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보단 모으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아끼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1단계 능력 강화』
『20P 차감』
『2단계 능력 강화』
『40P 차감』
『3단계 능력 강화』
『80P 차감』
이젠 나가야 한다.
< 네크로맨서 유성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