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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9화 (9/111)

< 네크로맨서 유성연 (1) >

강윤식은 강태혁에게 업힌 채 무너진 교도소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크기가 산을 방불케하는 괴물 탓에 정문으로 도망칠 순 없었고, 후문으로 우회하여 달아났다. 저 침략자들 사이에도 먹이사슬은 있는지 이 근방엔 괴수가 한 마리도 없었다.

"아······."

그리하여 수십분을 달아난 가운데 보이는 건 끔찍한 풍경뿐이었다. 심각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넘쳤고, 높게 솟았던 건물들은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강태혁은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에겐 아이가 있다. 이제 갓 여섯이 된 어여쁜 딸아이.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지만 그곳도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벌어진 재앙은 걱정할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상식을 초월한 커다란 놈의 영역에서 벗어나자 숨어있던 괴수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형님, 어떡합니까?"

"몰라···."

그 난리통에 무기를 챙겨올 틈은 없었다.

아무리 사냥에 특화된 각성 능력이라 한들, 미니건 정도되는 화기가 있어야만 놈들을 잡아죽일 수 있다. 여기 굴러다니는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 따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이다···.

성큼 다가오는 괴수들을 보며 둘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때였다.

"죽여, 씹새들!"

벼락과 같은 굉음이 울렸고 난데없이 쏟아진 화염과 폭발이 괴수의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부대도 하지 못한 일이다.

도대체 누가?

생각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나타난 무리가 소리쳤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들이 보였다.

소매가 걷어진 탓에 손목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띄었다. 외국 문자로 '형제'라고 쓰여있는  특정 조직을 상징하는 문신. 강윤식의 손목에도 똑같은 문신이 있었다.

"형님, 설마···."

"이 새끼들, 여기까지 날 구하러 왔구나!"

순수한 각성자들로만 이루어진 악명 높은 집단의 일원들은 십 수 마리에 달하는 괴수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강윤식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기억하기로 자신의 조직원들은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괴수들을 이리 간단히 사냥한다니······이게 말이 되나?

"다행입니다. 큰형님께서 보내시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잠깐만, 너희들···원래 이렇게 강했나?"

"아, 이거 말입니까? 빵에 계셨으니 모르시겠군요."

"모르다니?"

조직원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세계헌터협회가 괴수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개 발표했어요. 그 포인트 있잖아요. 괴수 잡으면 주는 거. 그거 소원을 이루는데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만 써도 각성 능력 존나 뻥튀기 시킬 수 있어요. 진짜 장난 아닐 정도로 세져요."

"세진다고?"

"예. 그래서 지금 광역으로 태워버릴 수 있는 각성자들 몸값 존나 치솟았어요. 맞다. 시체쟁이들이라고 욕먹던 네크로맨서들도 괴수 부릴 수 있게 되자마자 완전 귀족 됐거든요······손짓 한 번에 고질라 열 마리가 날뛰는데 존나 세요···지금 다 네크로맨서들 영입하려고 경쟁이 장난 아닌데······."

***

"쿨럭······."

마른 기침과 함께 핏물이 튀었다.

눈을 떴을 때, 성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발밑이 무너져 추락하는 와중 살아남기 위해 벌레를 동원했지만 기껏해야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언데드는 이 사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철골을 붙잡은 건 본능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머리 위로 쏟아진 콘크리트 조각들은 성연의 몸을 두드렸고, 고작 팔 하나로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아······."

철골이 유일한 살길이라 생각한 성연은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았고 그 결과 한쪽 팔을 잃었다. 우두둑거리며 부러진 팔은 곧 몸에서 분리되었고, 성연은 그대로 추락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팔찌를 차고 있던 쪽의 팔이 뜯겨진 덕분에 제한되었던 각성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본래의 능력 총량이 형편없는 가운데 성연은 이 상황에 조금도 만족할 수 없었다.

각성 능력이 돌아왔다고 한들, 출혈을 막을 방법도 막막한 지하에서 빠져나갈 방법도 떠올릴 수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성연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대로 죽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연은 희미한 시야 속에서 제 머리를 쥐어짰다.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답이 있을 거다······.

기억을 뒤지고 또 뒤졌다. 중앙각성자교도소에서 들었던 잡지식부터 뉴스에서 전했던 소식들, 그에 더하여 이현우가 늘어놓았던 쓸데없는 말들까지···.

긴 생각 끝에 마침내 성연은 과거에 보았던 창 하나를 떠올렸다.

탈옥을 결심케 만들었던 투명한 창, 그리고 그곳에 적혀있던 문장.

『본 게임의 우승자에겐 우리가 직접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가장 임팩트가 강력했던 문장, 그 전에 언급했던 무수한 설명들 중 하나.

우승의 조건은 백만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다.

괴수를 사냥하면 얻을 수 있는 포인트의 쓰임새는 오직 소원을 빌 수 있는 수단일 뿐인가? 아니었다. 성연은 잊고 있던 기억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이제 괴수 사냥 시 개체마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포인트 사용으로 특정 물품을 구입하거나, 개인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 포인트는 같은 각성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약탈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정 물품을 구입하거나 개인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성연은 지옥도로 변한 교도소를 누비며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괴수를 사냥한 바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는 대략 삼백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극히 불친절한 투명한 창은 포인트의 사용법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무언가 시동어라도 있을까라는 생각을 이어가던 와중 눈 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현재 보유 포인트: 320P.』

『사용하시겠습니까?』

『1단계 능력 강화- 20P.』

『물품 구입···.』

고민할 것도 없이 성연은 물품 구입 목록에 쓰여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골랐다.

부상 완전 치유라는 직관적인 설명이 적혀있는 물건이었다. 가격은 칠십 포인트.

온라인 게임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으레 하듯 성연은 인터페이스와 비슷한 모양의 투명한 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즉시 허공에서 물건이 떨어졌다. 한 뼘 만한 크기의 유리병에 붉은색 액체가 가득 담겨있었다. 칠십 포인트가 차감되었음을 확인한 성연은 곧장 유리병을 들고 내용물을 들이켰다.

"아···."

『완전 치유를 시작합니다.』

짧은 문장을 읽던 성연의 눈이 감겼다.

머지않아 그는 깊게 잠들었다.

바깥에서 생존자가 있느냐 묻는 구조대의 외침도, 교도소 정문에 자리 잡은 거대 괴수가 구조대를 짓밟고 씹어삼키는 소리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

긴 잠에서 깨어난 성연은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또한 잃었던 팔도 다시 자라나 있음을 확인했다. 어떤 원리로 벌어진 현상임은 알 수 없었으나, 그런 까닭을 세세히 따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나도 안 보이네."

회복된 즉시 성연은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온통 어둠뿐이었다. 걸을 때마다 다리에 부딪히는 것들은 대부분이 콘크리트 조각이거나 흙이었다. 더 조사할 것 없이 성연은 자신이 지하 깊은 곳에 쳐박혔음을 알게 되었다.

좌절하는 대신, 각성 능력을 일으켜 일대에 흩뿌렸다.

한쪽 팔이 작살난 전적 덕에 제한되었던 능력은 충분히 돌아왔다.

아무리 총량이 형편없다고 한들 성연의 능력은 지금 꽤나 쓸만한 수준 정도는 되었다.

흙이나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혀 죽어있는 사체들을 발견할 수 있을만큼.

'땅 속이라 그런지 벌레들은 많군.'

성연은 짓눌려 죽은 날벌레나 집거미, 바퀴벌레 등을 일제히 일으켰다.

붕괴에 휘말려 죽은 교도관이나 수감자들도 있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선 인간 좀비 두 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벌레 여덟 마리가 더 도움된다. 복잡하게 설계된 인간과 다르게, 벌레는 세포를 재구성할 때 그 배열을 조금만 바꾸어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 켜."

날벌레의 사체를 반딧불이처럼 개조하여 되살린 뒤, 그 밝기를 손전등 정도까지 치솟게 만들었다. 주변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성연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빛을 되찾았다.

가장 먼저 안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보건데, 무척이나 까마득한 높이였다.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고작 벌레들 몇으로 나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되살린 벌레 중에 집거미도 있었으므로, 적당한 정도의 높이였다면 뿜어낸 거미줄을 촘촘하게 이어서 잡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물론 불을 켠 직후부터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터무니 없는 해결책이었다.

'커봤자 엄지 손가락만한 놈들말고···더 유용한 놈이 필요하다. 나를 데리고 이 높이를 비행하거나, 도약할 수 있는 놈······.'

성연의 능력 총량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는 언데드다.

그건 최소 B급에서 A급의 영역에 발을 걸친 자들, 괴수를 부릴 수 있는 네크로맨서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고민하던 성연은 부상을 치유했던 물품 구입 항목 말고도, 다른 것을 포인트로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능력 강화』

포인트를 지불해 개인의 각성 능력을 강력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남은 잔여 포인트는 250P. 성연은 고작 그 정도 수치를 투자한다고 해서 최하로 분류된 자신의 능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성연은 까마득한 천장의 구멍 너머 어렴풋이 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수 많은 죄수와 교도관들이 매장당한 가운데 이 일대는 괴수들의 놀이터며 먹잇감이 넘치는 뷔페가 될 것이다.

소문난 맛집에는 손님이 넘치기 마련이다.

머지않아 이 주변엔 괴수들이 몰려들 것이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것이다.

포인트가 필요했다. 고작 인간 좀비 두 마리를 일으키거나 열 마리도 안 되는 벌레를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서.

하지만 어떻게?

네크로맨서 능력에 의해 부활한 언데드는 주인과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당장 성연의 능력도 그러했다. 저만큼의 높이를 오를 수는 있으나, 오르게 된 뒤가 문제이다. 약화된 상태로 괴수들의 껍질을 꿰뚫거나 반응하기 힘든 속도로 비행하는 건 불가하다.

괴수들의 사체를 분석해 능력 사용에 충실히 활용했음에도 그랬다. 능력의 총량 문제가 아니다. 부리는 언데드들이 본질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약화되도, 괴수들을 죽일 수 있을만큼······.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와중 천장에서 큼지막한 껍질 하나가 떨어졌다.

"이건 뭔."

보통 괴수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껍질이다. 손끝으로 훑어보니 그 느낌이 기이했다. 종이처럼 얇은데 강철보다 단단하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성연은 정체 모를 생명체의 부산물이 지금 상황을 돌파할 해결책이 되어줄 거라는 사실을 곧장 깨달았다.

내부 구조는 무척 까다롭게 설계되었고 특이했다.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성연은 이 작업이 끝나면 자신의 능력이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강해질 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

「세계헌터협회는 포인트 사용 시, 각성자들의 능력이 진화한 괴수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만큼 큰 폭으로 강화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동시에 붕괴된 도시들에 협회의 헌터들을 구조대로 파견했다.」

「수 많은 도시들이 구원받았다. 대한민국만 제외하고.」

「중앙각성자교도소에 열린 균열을 닫기 위해 총 칠십의 헌터가 파견되었고 전멸했다.」

「세계헌터협회는 중앙각성자교도소 정문을 깔고 앉은 유례 없는 크기의 괴수를 사냥하길 포기했다.」

「엘리트로 구성된 칠십의 헌터가 일순간에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거대 괴수가 입은 피해는 무척이나 경미했다.」

「겨우 가슴께를 보호하는 껍질의 일부를 몸에서 떼어낸 것이 결과의 전부였다···.」

< 네크로맨서 유성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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