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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8화 (8/111)

< ★ 폭력범 강태혁 (4) >

"···가위바위보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가위바위보? 괴수가 지금 득달같이 몰려오는데, 이 중요한 물건을 운에 의존한 게임으로 나누겠다고? 자네 미쳤나?"

"아니 아저씨, 그럼 여기서 힘싸움이라도 할까요? 딱히 방법이 없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물건의 개수가 한정된 가운데 다툼이 벌어졌다. 물론 강윤식과 이현우는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는 와중에도 성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솔직히 이 팔찌가 있든 없든 다 같이 덤벼들어도 저 사형수 하나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거기다 아까 말하길 저 놈은 팔찌가 해제되면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괴수를 되살려 부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 되는 순간 성연은 걸어다니는 군단이 될 것이다.

아무리 아군이라도 가진 힘이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순간 공포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이 사형수는 이유도 없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와 그 팀을 무참히 살해한 싸이코패스 아닌가······.

침을 꿀꺽 삼킨 강윤식이 서둘러 말했다.

"일단은 내 것부터 풀도록 하지."

"갑자기요?"

"거기 둘은 팔찌 차고도 능력 활용 잘하지 않나? 나는 이거 있으면 한사람 몫 할 자신 없네. 게다가 자네 능력은 괴수와 전투에 있어서 별 도움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

이현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맞다, 그의 능력은 전투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누군가의 성대모사를 한다고 괴수들이 한눈을 팔거나 넋을 놓겠는가. 하지만 이현우는 당장이라도 이 팔찌를 떼어내고 싶었다. 원예반 출역에서 탈옥을 시도하려던 사내들이 까맣게 태워지는 꼴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불안했다. 시스템이 엉망이 되면 이 팔찌가 오작동해서 자신을 죽일까봐···.

"푼다? 풀···."

"그러세요. 어차피 저 혼자서는 저것들 감당 못할 거 같으니까."

성연은 강윤식이 두 개의 열쇠 중 하나를 사용하겠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강윤식은 저 사형수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곧장 열쇠를 밀어넣었다. 녹색 팔찌가 떨어졌고 곧 그의 각성 능력이 돌아왔다.

자기 몸을 내려다보던 강윤식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덩치 큰 젊은이, 팔찌 풀었으니 1인분 할 수 있지? 저 괴수 새끼들 좀 막아보게."

"예? 아니, 저 잡범인데요···."

"뭐?"

"팔찌 열 개 풀어도 솔직히 저거랑은 못 비빌 거 같은데···."

"씨발! 그럼 왜 제일 먼저 나서서 푼거야? 유성연부터 풀고 천천히 정했으면 될 것을···."

쏟아지는 호통에 강태혁은 찔끔 말을 삼켰다.

'아니, 열쇠가 일회용품일줄 누가 알았나···.'

강태혁의 능력은 특출나지 않다.

팔찌가 있든 없든 한 대 맞으면 터져버리는 고기 방패 신세인 건 마찬가지란 말이다.

강태혁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강윤식이 마지막 남은 열쇠를 성연에게 건넸다.

"자네가 쓰게. 괴수 숫자가 꽤나 되는 것 같은데···벌레 한 마리로는 안 될 것 같아."

성연은 덤덤한 얼굴로 그 열쇠를 받았다.

모두가 그에게 주목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색을 숨기고 있던 싸이코패스가 고질라들을 되살려서 짐이 될만한 일행을 모조리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아닌가···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성연에게 그런 힘 따위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봤자 고작 민간인 둘을 좀비로 만들어 부리는 게 끝이란 말이다.

'이걸 내가 쓰는 게 맞나?'

짧은 순간 성연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얽혔다.

위기는 어느 정도 넘긴 상황이다. 괴수들에게서 벗어나면 가장 위험한 건 결국 사람이 될 것이다. 산전수전 겪은 범죄자들이 자신을 경계하는 가운데 구속구가 해제되었을 때 사실 이 네크로맨서 능력이 날벌레 여덧마리를 다루는 게 전부였다는 걸 알게 되는 게 과연 좋은 상황일까···.

성연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됐습니다. 벌레 한 마리로도 충분합니다. 차라리 이현우 씨가 열쇠를 쓰고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교도관들을 상대할 때 써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예? 저요···?"

"네. 벌레가 몇 마리든 괴수 상대하는 건 큰 무리가 없습니다."

허세였다. 벌레 한 마리의 다리가 떨어진 상황, 괴수들과 더 충돌한다면 삼십 분에 한 번 일으킬 수 있는 부하는 머지않아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연은 그를 보충할 전력을 얻기보다는 이 죄수들에게서 공포의 대상이 되길 바랬다.

인간의 상상력은 한 번 경계한 대상을 끊임없이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성연이 제 실력을 드러냈을 때의 모습을 과할 정도로 강력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건 성연에게 썩 나쁜 일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우는 열쇠를 받아든 뒤 다급히 제 팔찌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태혁과 강윤식은 아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내심 안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자들을 학살한 사형수의 목줄이 풀리는 것보단, 저 덜떨어진 사기범의 능력이 돌아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미쳐버린 괴수도 두렵지만, 그 미쳐버린 괴수가 몇이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네크로맨서의 존재가 더욱 두려웠던 까닭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가세!"

안심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강윤식은 일부러 과한 제스처를 보이며 소리쳤다.

그리하여 세 명의 각성 능력이 해방된 가운데 일행은 다시 전진했다.

***

"개새끼들!"

각성 능력이 해방된 일행의 전력은 전과 비교해 놀랍도록 강해졌다. 극소량에 불과한 힘으로 철문을 뜯어낼 수 있던 강태혁은 붕괴된 건물 잔해들을 캐치볼 하듯 던졌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수들에게 피해를 주기엔 턱 없이 부족했지만, 녀석들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어그로를 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이다.

"비켜!"

결정적으로 전력 상승에 도움을 준 건 강윤식이었다. 해방된 강윤식의 능력이 놀랍게도 괴수 퇴치에 무척이나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단순했다.

무기로 공격할 때 상대방의 모든 방어구와 배리어 따위를 관통하는 것.

주요 인물 암살에서 놀라운 성과를 발휘하게 해주었던 그 능력은 현재에 이르러 괴수를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기껏해야 배리어 능력자들에게 엿을 먹여주거나 방탄복을 종이쪼가리로 만들던 각성 능력은 강철의 경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괴수의 껍질을 쿠크다스처럼 박살냈다.

그 각성 능력에 미니건까지 장착하자 강윤식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었다.

"형님, 지리십니다!"

"지려? 이상한 말 좀 쓰지말게, 자네!"

"아, 예···."

성연의 역할은 전보다 확연히 축소되었다.

하지만 성연은 멀뚱히 뒤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연이 살피기에 괴수들의 껍질과 근육은 그 크기와 무게로 따져보아도 비정상적으로 단단하고 강력했다.

그 사이 어떤 진화를 이룬걸까?

종이에 공식 따위를 써가며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성연은 바닥에 떨어진 괴수의 살점과 근육, 껍질을 주우며 살폈고 그 구조를 상세히 파악했다. 이미 최대치까지 발전한 성연의 능력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의 무기는 지식이다.

그리고 성연은 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지식을 얻음으로써 발전하고 있었다.

어쩌면, 각성 능력을 되찾은 다른 죄수들보다도 더욱 가파르고 빠르게.

"유성연 씨···저쪽!"

성연은 날아다니는 벌레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신체가 변화하도록 추가적인 명령도 함께 내렸다. 이마 부분에 돋아났던 뿔은 세포 단위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강철보다 조금 더 단단했던 그 부위는 이제 괴수의 껍데기와 엇비슷한 정도로 단단해졌다. 굳이 눈알 같은 부드러운 곳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목이나 가슴을 노려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그리하여 성연의 활약은 순식간에 도드라졌다.

그가 쓰러뜨리는 괴수들의 숫자가 강윤식이 미니건으로 쏘아죽이는 개체보다 많아졌다.

일행은 지치지도 않고 발전하는 성연의 변화를 분명하게 눈치챘다.

감탄과 함께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저 새끼는 진짜 괴물이다······.

"조금만 더 힘내십쇼! 이제 여기만 뚫으면 정문입니다. 이 좆같은 교도소 나가서 균열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안전해 질 수 있어요···."

"으아아아!"

전열에 선 강태혁은 괴성을 내지르며 벽을 부수었다. 바깥에 돌아다니던 괴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고, 그들이 뭔가 하기도 전에 두두두거리며 강윤식의 미니건이 불을 뿜었다. 껍데기를 무시한 채 살점과 급소에 곧바로 내다박히는 탄환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고, 거대 괴수들은 무력하게 쓰러졌다.

모두가 드디어 피튀기는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도소 정문에 보란듯이 자리잡은 한 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게 뭐야, 씨발."

나름 자신감이 붙었던 강윤식과 강태혁은 물론이고 성연까지도 그 순간 당황했다.

차원이 다른 놈 하나가 있었다.

평범한 괴수들이 빌딩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가운데 놈은 산과 비슷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산과 비슷한 크기였다···.

"제주도에서 성산일출봉 봤을 때 딱 저만했는데···."

이현우가 놈을 높이 179m의 산과 비교했음에도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식을 초월한 괴수가 그곳에 서 있던 것이다.

아득할 정도로 우월한 적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현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강태혁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강윤식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씨발···씨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잠깐···!"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강윤식이 미니건을 갈겼다. 지금까지 실망을 안겨준 적 없는 그 무기가 이번에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미니건이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으, 워어어어어어어!"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은 제 머리위에 벼락이 내리꽃혔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포효가 순간적으로 청각을 앗아갔다. 귓구멍에서 진득한 핏물이 흘러 뺨에 흘렀다.

그러나 난데없이 습격받은 괴수는 그것으로 경고를 끝마치지 않았다.

놈은 날파리 같은 적들에게 행동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했다.

"아···."

길이를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하고 굵은 팔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와 함께 회색으로 점철된 건물에 내리꽃혔다. 쿠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일대의 땅이 내려앉았다. 지진은 건물은 물론이고 다른 사동에 살아있던 죄수들과 교도관, 숨어서 군의 지원을 기다리던 교도소장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따끔한 선공을 날린 것들이 땅속에 파묻히는 모습을 확인한 거대 괴수는 그제야 만족한 듯 유유히 걸어가, 망가진 교도소 정문을 깔고앉았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라도 된다는듯이.

***

"아흑···."

뒤섞인 건물 잔해 속에서 강윤식이 가까스로 일어났다. 사방이 온통 엉망이었다. 수감자들은 물론이고 괴수들까지 충격에 휘말려 죽었다.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괴수밥이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한 강윤식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왼다리가 잔해에 단단히 깔려 움직일 수 없었다.

'씨발···.'

홀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강윤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영악한 사기범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흔적도 없었고, 그 대신 강태혁이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육체 강화계의 능력자인 녀석이다. 이런 상황에 쉽게 죽진 않았을 것이다.

강윤식은 바닥에서 큼지막한 돌을 주워 강태혁에게 던졌다.

"아악!"

"일어났나? 나 좀 도와주게."

"이, 이게 뭔···."

제 몸을 누르는 잔해들을 금세 치워낸 강태혁은 강윤식을 누르고 있던 잔해도 쉽게 들어올렸다.

"꼴사납지만 좀 업어주게."

"···."

"빨리."

중년 사내를 업어든 강태혁은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그 사형수였다.

"유성연···씨는 어디에?"

"죽었어."

강윤식은 단언했다.

"죽었다고요? 그 괴물이?"

"놈도 사람이니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간단했다.

붕괴하는 최후의 순간, 강윤식은 정신을 잃기 전에 똑똑히 보았다.

충돌에 휘말려 잔해에 깔린 자신들과 다르게 유성연의 발밑엔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렸다. 공중에서 허우적대며 떨어지던 그 모습이 생생했다.

이현우, 그 덜떨어진 사기범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뻗긴 했지만 추락하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 한들,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다행이지. 변한 세상에서 지내려면 놈처럼 지나치게 강한 놈들은 문제가 돼. 특히나 나처럼 약한 것들 뜯어먹으며 사는 사람한텐 더······."

강한 전력은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전력은 아군이 될 수 없다.

균형을 무너뜨릴 지도 모르는 괴물은 언제나 공공의 적이 될 뿐이다.

강윤식은 이 재난 속에서 괴물과 맞서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놈이 재난에 잡아먹혀 죽었다는 사실에 썩 안심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강윤식은 무너진 교도소 건물의 가운데, 뻥 뚫린 구멍을 보며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걱정하지 말자. 아무리 놈이라도 그런 상황에 살아남을 순 없어. 암···그렇고말고······.'

***

「이름: 강윤식」

「위험도: ★★★」

「각성능력: 무엇이든 꿰뚫는 창」

「방어구나 배리어 따위를 무시하고 피해 입힐 수 있다.」

「특이사항」

「범죄집단 브라더후드의 2인자. 스스로의 능력은 대단치 않으나 그 집단의 2인자라는 사실만으로 위험도 세 개 분류한다.」

「이름: 강태혁」

「위험도: ★」

「각성능력: 철인」

「몸이 단단해지며 근력이 강화된다.」

「특이사항」

「없음.」

< ★ 폭력범 강태혁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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