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폭력범 강태혁 (3) >
새로운 사람이 합류한 가운데 여전히 무리의 중심은 성연이었다. 힘 좀 쓴다 자신하는 강태혁도, 바깥에선 나름 알아주는 강윤식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름난 각성자를 병신 새끼로 만들어버리는 구속구를 차고도 성연은 상처 하나 없이 괴수를 살해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감히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분명 능력은 쓸 수 없을텐데···뭔가 요령이라도 있었나? 그렇다면 좀 알려주게.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
"팔찌 차도 능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극소량 남아있는 걸 이용했죠."
"···그게 말이 되나? 아니, 서울대 어떻게 합격했냐는 물음에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대답과 그게 뭐가 달라······."
"강윤식 씨도 조금 남은 능력 활용해서 교도관들이랑 죄수들 다 죽인 거 아닙니까?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아닌데? 들어오려는 거 기습해서 목을 꺾었지. 쥐꼬리만한 능력으로 누구나 괴수를 죽일 수 있으면 다 탈옥 시도하지, 누가 형량 채우고 있어···."
한 줌도 안 될 능력을 활용했다는 말에 모두 감탄하는 가운데, 성연은 내심 강윤식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최소 B급 능력을 보유했으며 교정 장비로 무장한 교도관은 물론이고, 수감자들을 무기 하나 없는 맨손으로 살해했다는 것 아닌가.
여기 둘보다 훨씬 든든한 전력이었다. 피치 못할 상황 탓에 벌레가 죽어버려도 어쩌면 살아날 돌파구를 찾아낼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성연에게 이현우가 문득 물었다.
"유성연 씨 능력 네크로맨서 아녜요? 그럼 저 고질라 새끼 되살려서 끌고 다니면 교도관이고 뭐고 학살하는 거 아닌가···."
"지금은 벌레 한 마리가 한계에요."
"아, 팔찌."
납득하는 이현우를 보며 성연은 뒷말을 삼켰다. 그의 능력은 구속구가 사라져도 민간인 두 명을 되살리는 게 전부다. 각성 능력을 가진 초인은 물론이고, 저런 괴수를 되살려 부하로 끌고 다니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물론 그 사실을 지금 설명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 지 모르는 범죄자들에게 약점을 내비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네크로맨서들 완전 계탔네. 저 괴수 새끼들 되살리면 좆나 셀 텐데. 씨발, 나 같은 육체파는 뭐 먹고 살라고."
"육체파들 그 동안 꿀 빨았으면 좀 쉴 때도 되지 않았어요?"
"꿀 빨긴, 꿀은 마법사들이나 쪽쪽 빨았지······."
이현우와 강태혁이 시답잖은 대화를 시작했다.
성연은 그 대화 주제가 무척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았다. 애초에 저 정도 크기의 괴수를 되살려 부리기 위해선 A급 이상의 네크로맨서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A급 이상의 네크로맨서는 총 여섯밖에 없었다. 계를 타기는 무슨, 빈부격차만 더 벌어질 뿐이다···.
"근데 이쪽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나?"
"전부 죽은 것 같군. 우리만 남은 것 같은데···."
"다들 조용히 해봐요."
성연의 말에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왜? 또 어디서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나···.
"여기부터 시체들이 다릅니다. 이건 괴수들에게 당한 게 아니라 사람한테 당한 거에요."
성연의 말에 조금 긴장감이 가라앉았다.
한숨 돌린 강윤식은 그가 가리킨 시체들을 살피다 눈살을 찌푸렸다.
"···맞군. 그것도 무척 악질이야."
"악질이라니요?"
"깔끔하게 숨을 끊은 게 아니라 지독하게 괴롭히다가 죽였어. 미친 새끼군. 괴수들이 몰려드는데 이 지랄을 떨다니···."
강윤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근방 죄수들을 전부 직접 죽인 것 같은데···까다롭겠어."
"···교정 장비가 보관된 곳이 이 주변인데, 하필이면 왜 이쪽에."
"죄수들을 싹 다 정리하고 그곳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지."
"굳이 그럴까요? 여기 있으면 꼼짝없이 개죽음이란 걸 알텐데 나라면 도망을······."
"시체만 봐도 그럴놈이 아니란 건 보이지. 이 새낀 당장 뒈져도 누군가를 죽이고 갈 놈이다."
강윤식은 이런 부류의 인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그가 속해있던 범죄집단만 해도 미친개들이 넘치는 곳이었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종자들은 꽤 많았다······.
그런 놈들에게 지금 상황은 썩 반가운 사태일 것이다. 남들 눈치 볼 것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강윤식은 어쩌면 그 미친 새끼가 정말로 도망치는 대신 죄수들을 더 죽이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좆나 무섭네. 사람이 더 무서워···."
"조심하게. 대가리에 구멍 뚫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경계심이 한층 짙어졌다. 이제 일행은 괴수말고도 난데없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인간의 기습에도 대비해야만 했다. 팽팽한 긴장감은 피로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몇몇이 너무 과한 걱정 아니냐고 생각할 즈음, 강윤식의 우려가 틀린 게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길을 안내하던 이현우가 급히 몸을 숙인 것이다.
"숙여요!"
"씨발!"
교정 장비를 보관하는 장소의 입구에 모자를 눌러쓴 교도관 하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차려입은 검은 제복에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저 교도관이 정상적인 새끼가 아니란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반쯤 뒤집힌 눈, 그리고 손에 쥐여진 미니건···미친 람보 새끼가 존버 타는 중이었다.
"좆같은 범죄자 새끼들!"
천둥 같은 총성이 우레처럼 쏟아졌다. 어둠 속에서 불을 뿜는 미니건은 엄폐물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의 사물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다른 교도소와는 다르게, 중앙각성자교도소의 교정 장비는 군대를 방불케 할 만큼 강력하다. 미니건은 그 장비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위력을 가진 병기였다.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수감자 넷을 상대하기엔 조금 과할 정도로.
"으···으아···아아아···."
"씨발, 저 개새끼···."
"침착하게. 자네들 중에 쓸만한 능력 가진 사람 없나? 저 미친 새끼를 잠깐이라도 멈출 수 있는 사람 없느냔 말이야······."
"유성연 씨! 벌레!"
"저 화망 뚫고 보낼 순 없어요. 되살리는데 시간 좀 걸리는데 그 사이에 괴수라도 튀어나오면 다 같이 뒈지는 겁니다. 전 지금 못 나서요."
세포 단위로 강화한 날벌레라고 한들, 미니건이 만들어낸 촘촘한 화망을 뚫고 저 람보 새끼를 죽일 순 없다. 탄환 하나쯤은 견디겠지만, 충격 탓에 주춤한 사이에 쏟아지는 후속 공격에 의해 온몸이 걸레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아있는 세 얼간이가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단 말이다. 씨발, 그건 안 될 말이다.
"덩치 큰 젊은이! 자네가 좀 나서보게!"
"씨발, 또 나야? 가위바위보라도 해!"
"늙은 내가 나서리? 아니 요즘 것들은 윗사람 공경이 없어······."
"여기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 둘이나 더 있는데! 아, 씨발 진짜!"
고래고래 소리치던 강태혁은 가만히 있다간 곧 온몸에 구멍이 뚫려 새빨간 워터파크가 개장될 거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말 많은 애송이는 딱 봐도 3대 100도 못칠 것 같으며, 무시무시한 사형수는 이번에도 먼저 나설 생각은 없어보였다.
'맨손으로 교도관 잡았다며? 이제 와서 늙은이 행세야···.'
강태혁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이현우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됐어요, 내가 할게요!"
"뭐? 네가 뭘···."
이현우는 납작 엎드린 채 바닥을 기었다. 그러곤 처참하게 죽어있는 교도관의 시체로 다가가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제복을 죄수복 위에 덧대입곤, 밟혀서 눌린 모자를 구겨썼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옷을 놓치거나 모자를 떨어뜨렸다.
'미치겠네, 수전증···.'
이현우는 원래 이런 일에 나서는 타입이 아니었다. 대학 조별 과제를 할 때도 팀원들에게 쓴소리 못하며, 발표에서 언제나 말을 떠는 전형적인 새가슴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벌벌 떨고만 있을 순 없었다. 생사도 알 수 없으며, 지금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할머니의 얼굴이 생생하다. 나서야 한다. 해결해야만 한다!
"개새끼들아, 나와!"
탄환이 도대체 얼마나 있는건지 두두두거리는 총성은 멈출 생각이 없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교도관은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곳마다 쏴대고 있다. 전쟁 영화에선 주인공이 숨으면 총알을 단 한 발도 맞지 않는다. 당연히 현실은 다르다. 눈 먼 사격은 생각보다 잘 맞는 법이며, 쏴대는 총기의 종류가 미니건이라면 그 위력은 더욱 흉악하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큼,큼···커억!"
"뭐, 뭐야. 왜 그래!"
모자를 고쳐 쓴 이현우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다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극소량으로 능력이 제한당한 상태에서 과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우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목소리를 잃게 되는 한이 있어도 움직일 생각이었다. 가슴이 미친듯이 쿵쾅댔다.
다시 한 번 목을 가다듬은 이현우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쏘지마! 나다!"
교도관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흉내낸 목소리였다. 그 외침과 함께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던 사격이 순간 정지했다. 미친 람보 새끼는 품에서 손전등을 꺼내 목소리의 방향으로 비추었다. 그곳엔 자신과 같은 제복을 입은 인물이 분명히 있었다···.
"뭐야, 어떻게 살아있었······."
강윤식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전등을 켜는 건 곧 스스로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멍청한 짓이었다. 이현우의 오른편에 숙이고 있던 강윤식이 미리 챙겼던 총을 들어 조준한 뒤 쏘았다. 두 번의 총성이 울렸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놈의 머리통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나이스 샷!"
강태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와 함께 이현우는 힘이 쭉 빠진듯 주저앉았다. 자세를 낮추고 있던 성연이 그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잘했어요. 일행으로 받길 잘했네, 빨리 갑시다."
"나 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조금만 쉬었다 가면···."
이현우의 용감한 행동 덕분에 상황이 해결되었음을 알고 있는 성연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잠깐 쉬어갈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뒤편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력 좋은 미니건은 그 소리도 무척이나 컸고, 후각 못지 않게 청각도 아주 뛰어난 괴수들이 그 소음을 놓칠 리가 없었다.
괴수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지금 쉬면 평생 누워서 쉬게 될 것 같네요."
이현우도 그 말에 동의했다. 힘겹게 일어난 이현우의 모습을 본 일행은 교정 장비가 보관된 곳을 향해 내달렸다. 그 과정에서 강윤식은 제 무기를 미니건으로 교체했다. 더럽게 무거운 그 무기가 이 사태 속에서 얼마나 도움되는지 방금 체감한 까닭이었다.
"개꿀 파밍하셨네."
"개꿀? 그건 또 무슨 소리···."
알아듣지 못한 그의 반응에 강태혁은 멋쩍게 웃으며 교정 장비 보관실의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괴수들은 더 가까워지는 중이었고, 다급해진 강태혁은 아까처럼 문을 잡고 뜯어내듯 당겼다. 타이밍 좋게 발휘된 괴력에 문은 물론이고 주변의 벽까지 무너뜨렸다.
"저거!"
절뚝이던 이현우가 힘차게 소리쳤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팔찌의 색과 똑같은 녹색 열쇠가 있었다. 그 열쇠를 확인한 뒤 환하게 웃던 강태혁은 이내 열쇠를 집어들어 가장 먼저 제 팔찌를 풀었다. 녹색 팔찌가 그의 손목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고압 전류가 흐르지도, 난데없이 경계 장치가 발동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강태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거 왜······."
물건은 확실했다.
강태혁은 억눌렸던 제 각성 능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팔찌에 달린 잠금 장치 구멍에 밀어넣었던 열쇠가 빠져나오지 않았다. 자판기에 들어간 동전처럼 그대로 빨려들어간 뒤, 완전히 사라졌다.
열쇠는 일회용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강태혁이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열쇠는 총 두 개가 남았다.
이현우와 강윤식, 성연의 눈이 일순간 마주쳤다.
이 중 한 명은 팔찌를 풀 수 없다.
< ★ 폭력범 강태혁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