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폭력범 강태혁 (2) >
성연이 바깥으로 나가자 이현우와 강태혁도 뒤따라 움직였다. 복도의 꼴은 끔찍했다. 교도관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고, 진한 핏물이 사방에 적나라하게 튀었다.
"웁···."
이현우는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구역질을 참았다. 같은 범죄자지만 이현우는 철 없는 도련님이나 부잣집 사모님을 상대로 장난질을 몇 번 친 것이 전부였다. 이런 끔찍한 광경은 살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시체들 대부분은 급소를 꿰뚫려 단번에 절명했다. 강태혁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각성자 수감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속구는 효과적으로 능력을 제한했다. 강태혁은 이 팔찌를 찬 순간 자신이 민간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한줌밖에 되지 않을 능력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여기부터 천천히 움직여요."
참극 속에서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이현우와 강태혁은 그 말에 정신차렸다. 성연을 따라 정면을 쳐다보았다. 한쪽 벽면이 무너진 복도, 희미하게 껌뻑이는 조명만이 시꺼먼 밤풍경을 밝히고 있다.
"소리 내면 안됩니다."
"뭐야 씹···우욱."
다음 순간엔 강태혁도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아야만 했다. 비교적 깔끔한 시체가 즐비했던 전까지와는 달리, 여기부터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내장을 쏟아낸 교도관. 얼굴이나 가슴 혹은 신체 부위 몇 개가 통째로 뜯겨나간 채 죽어있는 죄수 무리들. 명백하게 인간이 벌인 일이 아니었다. 교도관들이 돌아버려서 총기를 난사했다 한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순 없다······.
교도관 한 명이 엉망진창인 꼴로 바닥을 기며 나타났다. 두 눈에선 전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만이 가득 차 있었다.
"살려줘···살···아아아악!"
부서진 벽 너머에서 살덩이 하나가 들어왔다. 손의 형태를 띈 살덩이는 교도관의 두 다리를 집어 끌고가더니 곧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 핏물이 쏟아졌다. 하반신만 남은 시체가 곧 복도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이현우와 강태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씨발···저게 손이야?"
"아저씨, 덩치값 좀 해보세요. 힘 좀 쓰실 것 같은데 선두로 나서봐요."
"닥쳐. 진짜 보내면 어떡하려고···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
손이라기엔 살덩이의 크기는 지나치게 컸다. 강태혁은 이현우의 말에 정색하며 답했다. 유성연이 그 말에 정말로 혹해서 자신을 보내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힘이라면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그 자부심은 몇 초 전 모습을 드러낸 괴수의 모습에 말끔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개죽음은 사양이었다.
"강태혁 씨?"
"예, 예?"
"먼저 가보세요."
"······."
강태혁은 법무부 호송 버스부터 말 많았던 애송이를 원망했다. 이 씨발새끼 덕분에 가장 먼저 죽는 영광을 맞이하게 될 판이었다. 물론 거절할 순 없었다. 강태혁은 십 미터를 훌쩍 넘길 괴수보다 손짓 한 번으로 교도관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이 사형수가 더 두려웠다. 그는 떨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앞장서 걸었다.
'씹새, 개새, 좆같은 새끼······."
핏물로 만들어진 웅덩이는 무척 끈적거렸다. 불쾌함을 누르고 조심스레 나아갔다. 제발 저 더럽게 큰 괴수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물론 그 바램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청각과 후각이 개과 동물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수는 새롭게 굴러들어온 먹이의 존재를 곧바로 알아챘다.
"씨발! 이 새끼 눈치 좆되네!"
웬만한 폭격도 견뎌낼 수 있을만큼 견고히 설계된 교도소의 벽은 괴수의 주먹질 한 번을 버텨내지 못했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벽에 새로운 구멍이 뚫렸고, 이어서 커다란 손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강태혁은 3대 700을 자랑하는 자신의 근력 따위는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저 몸뚱이면 3대 7000도 찍겠네 씹······.'
완전히 드러난 괴수의 외견은 보는 것만으로도 절망을 선사했다. 다행히 강태혁의 3대 700 근력이 사용될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벽의 붕괴와 함께 성연은 방금 일으킨 작은 벌레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붕-하는 소리와 함께 날벌레는 주인의 뜻을 따라 하나의 탄환이 되었다.
"끄르···."
벌레의 눈을 통해 적을 확인한 성연은 목에 손톱만한 구멍 몇 개 뚫는 것으로는 티끌만한 피해도 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곧, 벌레는 다른 궤적으로 움직였다. 인간만을 먹이로 하는 괴수는 벌레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먹음직스럽지 않을 뿐더러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끄···르엌-"
벌레는 송곳과 같은 부위로 가장 먼저 괴수의 눈을 꿰뚫었다. 안구를 부수며 들어간 벌레는 곧 두개골에 보호받는 뇌를 헤집기 시작했다. 아무리 단단한 껍질과 근육을 가지게 진화했더라도, 뇌가 박살나도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는 세상에 없다. 그리고 강화된 괴수도 어쩔 수 없는 생명체였다.
커다란 몸뚱이가 우뚝 멈추었고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뒤틀린 놈은 곧 뒤로 넘어졌으며, 몇 번 꿈틀대다 생명활동을 완전히 멈추었다.
"어? 어?"
겁먹은 채 잔뜩 움츠리고 있던 강태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괴수의 사체와 성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성연이 눈 앞에 떠오른 창을 바라보았다.
『사냥 성공.』
『괴수(D) 개체 한 마리- 10P.』
『현재 보유 포인트: 10P』
사냥으로 지급되는 포인트는 뉴스에서 전한 소식 그대로였다.
이런 놈들을 총 십만 마리 사냥해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고작 삼백마리에 인류의 방어선이 뚫린 상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성연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옆에서 날고 있는 벌레의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이 보였다.
되살린 놈이 과도한 활동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천천히 붕괴하고 있었다.
'이놈 하나로 괜찮을까?'
구속구가 능력을 제한하는 가운데 성연이 부릴 수 있는 건 날벌레 한 마리가 전부다. 이놈이 죽으면 다른 사체를 되살리기 위해선 총 삼십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도움 없이 성대모사의 달인과 입 거친 헬창이 고질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복도 끝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 괴물을 잡은건가? 그럼 나 좀 꺼내주게. 어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이 상황에 생존한 사람이 있었나? 의아하게 여긴 성연과 일행이 도움을 청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익숙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성연은 짧게 인연을 맺었던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출역 나갔던 원예반에서 보았던 남자···.
"빨리! 여기 쳐 들어온 괴물이 더 있어! 미친 교도관 새끼들도 있다고······."
주름진 남자가 철창 사이에서 간절하게 외쳤다.
세계적인 각성자 범죄 집단 「브라더후드」의 2인자, 강윤식이다.
"도와주면 어떻게든 갚겠네. 꼭!"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한 명의 도움이라도 간절한 상황 속에서 성연은 일단 그를 일행으로 받아들이길 결정했다. 강태혁을 향해 손짓하자 그는 철문을 잡곤 우악스럽게 당겼다. 몇 번 철컹거리던 문은 곧 통째로 뜯겨졌다. 벤치 무게 좀 잘 치는 것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성연은 강태혁에게 잠들어있는 '극소량'의 능력이 신체 강화 계열 능력이라 직감했다.
"웁···냄새."
"고, 고맙네!"
황급히 문 밖으로 빠져나온 강윤식의 죄수복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문 안엔 총을 든 교도관이 반쯤 목이 돌아간 채 죽어있고, 나머지 수감자들의 상태도 비슷했다. 살아남은 것은 강윤식이 유일했다. 그건 곧 강윤식이 저들을 모두 죽였음을 의미했다.
"아, 맞아. 이걸 챙겨야지···평소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좋은 무기가 될테니."
강윤식은 교도관이 쥐고 있던 총을 빼앗아 들었다.
능력이 구속된 상태에 맨손으로 이들을 전부 죽일 정도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라면 살인자는 위험인물이지만,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살인자는 적어도 한사람 몫은 할 수 있는 전력임을 의미한다. 이 무리의 리더격인 성연부터가 살인자 아닌가.
"자, 자네 대단하군. 이 팔찌를 차고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요."
"어디로 빠져나갈 건가?"
괴물 사체를 보며 감탄한 강윤식은 성연에게 물었다.
성연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에 관한 계획은 없었다. 균열이 출현한 곳은 교도소 정문이며, 이 교도소 안엔 죄수들을 사살하기 위해 총을 든 교도관들이 득실거린다.
도망이라, 어디로?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 팔찌를 차고 교도소 정문을 돌파하는 건 자살행위야. 자네가 괴수 하나를 죽인 건 놀랍지만···수십 마리를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맞나?"
"사실입니다."
"그럼 만만한 적들부터 상대해야 하지 않겠나. 이 거슬리는 팔찌도 풀고."
강윤식은 제 손에 채워진 녹색 팔찌를 가리켰다.
"교정장비를 보관하는 곳에 이 팔찌를 해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미친 교도관 새끼들만 몇 처리하면 거기까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거야."
"확실한 사실입니까?"
"잠깐만요. 유성연 씨, 제가 확인할 수 있어요."
뭔가 캐물으려는 모습에 이현우가 말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교도관 시체에 손을 가져다댔다. 무얼 하려는 거지? 성연이 물으려 하던 때, 이현우에 코에서 핏물이 흘렀다.
"괜찮아요?"
"···좀 무리했더니. 이 정도는 상관없어요."
코 아래를 닦아내며 이현우가 말했다.
"사실이에요. 교정 장비 보관함에 팔찌를 해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아요. 삼 분만 걸으면 돼요."
"어떻게 아는데?"
강태혁이 물었다. 이현우는 멋쩍게 답했다.
"쓸만한 능력이 있어서요."
대충 본 것도 기억하며, 성대모사의 달인이 될 수 있으며, 시체에서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복합적인 능력이 존재하나?
내 능력은 고작 사람 시체 두 개 일으키는 게 전부인데······.
그런 생각을 하던 성연은 곧 고개를 저었다.
C급이나 B급까지만 올라가도 그 정도 능력은 흔하게 존재한다. 죽도록 노력해야 쓸만해지는 D급에 불과한 자신의 능력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선택받은 능력은 넘친다···.
김유현과 그 팀도 선택받은 이들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기습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붙었더라면 아무리 갈고 닦았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축복받은 각성자······.
"···갑시다."
성연은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며 말했다.
날벌레 한 마리를 다루는 사형수, 성대모사의 달인이 될 수 있는 사기범, 맨손으로 철문을 뜯어낼 수 있는 헬창 폭력범, 이제 오십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중년 조직범.
난리통에 이 사동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네 명의 죄수는 유유히 움직였다.
***
「이름: 이현우」
「위험도: ★★」
「각성능력: 인간 백과사전.」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는다.」
「접촉한 대상의 상세한 정보를 일부 읽어낼 수 있다.」
「정보를 알고 있는 대상의 신체 정보를 동일하게 모방할 수 있다. 목소리부터 지문, 나아가서는 외모까지 복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이사항」
「무척이나 겁이 많다. 조금이라도 위험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으려 들며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몰아붙이는 취조에 겁먹고 스스로의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단단히 마음 먹고 움직일 경우 대단히 위험한 능력이라 판단됨. 하여, 별 두 개의 범죄자로 분류함.」
「서울대학교 중퇴.」
< ★ 폭력범 강태혁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