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가 너무 강함-5화 (5/111)

< ★ 폭력범 강태혁 (1) >

전국 각지에 균열이 생겨났다. 개중엔 안전지대로 분류되어 있던 곳도 분명히 있었다.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 중심에 출현한 괴수들은 빈곤층과 부유층을 가리지 않고 짓밟아 죽였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체계적으로 구축한 방어선도 단숨에 무너졌다···그런데 이젠 후방에서 쏟아지는 괴수들을 막으라고? 대한민국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회의는 길지 않았고 대다수가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국토를 포기하자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명문대 출신 집단은 왜 국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거창한 핑계를 떠올리고 있었다.

열띤 토론을 나누던 인물들 중 하나가 휴대전화를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곳을 포기할 거라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어쩌면, 몰려드는 괴수들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를 요소를 제거하는 것.

- 예. 무슨 일이십니까?

"현 시간부로 죄목 가릴 것 없이 중앙각성자교도소의 수감자들을 모두 사살하게."

- 그게 뭔······.

"군이 자네들을 구출하기 위해 지원가고 있네.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범죄자 새끼들까지 챙길 겨를은 없어. 시간이 부족하다면 별 네 개 이상으로 분류된 자들만 사살하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서 질테니."

거짓말이었다. 서울을 지키는 병력도 부족한 때에 외딴 곳에 위치한 교도소에 지원을 보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이 심각한 상황을 알 재주는 없을 것이다. 애국심이 충실하며 그 일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교도소장은 힘찬 어조로 대답했다.

- 예, 알겠습니다! 수감자들을 처리한 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이 지시가 골치 아픈 범죄자들을 모조리 끌어안고 너희들도 함께 뒈지라는 뜻이라는 걸 교도소장이 눈치챌 겨를은 없었다···.

통화를 끊은 사내는 다시 돌아가 회의를 시작했다. 어찌해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비난을 덜 받을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

"이 문 열어! 당장 열라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창살 틈새로 마침내 괴수의 모습을 확인한 수감자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가석방을 노려 평소 얌전하던 모범수들도 이 순간만큼은 짐승처럼 소리 지르고 문을 걷어찼다. 이계의 침략자들은 등장한 것만으로 공포를 불러왔다. 여기 갇혀있으면 꼼짝없이 먹이가 될 거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씨발, 무식한 새끼들아. 너희들끼리 감당이 될 것 같아?"

"뭐? 이 새끼가···."

"문 열고 팔찌 풀라고! 다 같이 뒈지기 싫으면! 여기 모인 새끼들 다 각성자야, 마음만 모으면 웬만한 군대급은 되는데···."

"닥치고 있어!"

쏘아붙이듯 소리쳤지만 교도관들은 내심 그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들이 발 달려서 걸어오고 있는데 오십 명 남짓한 교도관들로 저것들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하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각성자인 죄수들이 힘을 보탠다면 결과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하기야 이 정도 숫자의 각성자라면 군대나 다름없으니.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교도관들에게 일제히 무전이 떨어졌다.

- 수감자들 전원 사살할 것. 반항이 거세다면 별 네 개 이상으로 분류된 이들을 우선으로 사살할 것.

교도관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가 잘못되었나 생각했다. 정상적인 명령이 아니었다. 엉망진창인 상황 속에서 교도소장이 돌아버린 걸까? 교도소장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 군이 이곳으로 지원오고 있다. 죄수들까지 구출할 겨를이 없기에 탈옥 우려가 있는 죄수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평소라면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살하는 법이 있느냐고, 차라리 그냥 두고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혼란스러운 상황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법이다. 질나쁜 범죄자들의 주장보다는 노련한 교도소장의 지시가 당연히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발길질 한 번으로 일대에 지진을 일으키는 괴수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교도관들은 어쩌면 전력에 보탬이 되어줄 수 있을 초인 수감자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죄수들의 주장이 교도소장의 지시보다 타당하며 근거가 있음에도 그랬다.

복잡하며 어지러운 순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늘 지시만 받던 교도관들은 선택을 내리는 대신 이번에도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그게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것이든, 책임은 지시를 내린 인물이 질 거라고 생각하며.

극단적인 명령에 망설이던 몇 교도관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총성이 몇 번 들려오며 사살이 시작되었음을 깨닫고는 곧 움직였다. 그렇게 교도관들은 각자 배급받은 무기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다······.

***

"이게 씨발 무슨 일이야!"

강태혁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교도관들이 일제히 무전을 받더니 난데없이 수감자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었다. 이게 현대 사회에 상식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안 그래도 범죄자들 인권을 따지며 흉악범도 모자이크를 하는 세상인데···.

"대답해! 개새끼들아!"

"······."

내지르는 말에 교도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열쇠가 문의 잠금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태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열리는 순간 정신 나간 교도관은 팔찌에 능력이 구속되어 민간인이 된 그를 비롯한 이곳의 죄수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강태혁은 방 안을 바라보았다. 방장을 비롯한 수감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인물은 딱 두 명이었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둘, 이현우와 유성연.

"이현우 씨. 3초···벌 수 있으십니까?"

"해볼게요."

"둘,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나도 도울게. 여기서 죽을 순 없어."

강태혁의 눈엔 그 둘이 유일한 살 길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든 어필하려 했다. 살아야 한다. 밖엔 자신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강태혁이 다급하게 말하자 유성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저 교도관들이 여길 깔끔하게 쓸어버리기 전에 시간을 벌어주세요. 이현우 씨와 함께."

그 말을 들은 즉시 강태혁은 문쪽으로 달려나갔다. 무거운 철문이 열렸고, 총구를 겨눈 교도관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놀라 몸을 움츠리는 가운데 강태혁은 커다란 몸뚱이를 내던졌다. 곰을 연상케하는 2미터를 넘길 몸뚱이가 교도관의 시야를 가렸다.

"개새끼야!"

"이 씹새가···."

능력 없이도 그 자체로 위협적인 몸뚱이였지만 교도관은 달려드는 강태혁을 한 손으로 붙잡아 가로막았다. 중앙각성자교도소의 50명 남짓한 교도관들은 모두 각성자다. 그것도, 최소 B급에 해당되는 강한 각성자들. 150kg에 달하는 강태혁의 몸을 들어올린 교도관은 그대로 그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무슨 일이야!"

커다란 소리에 무언가 난리가 벌어졌음을 안 주변의 교도관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이현우가 나섰다. 유성연과 약속했던 3초까지 아주 조금 남은 상황이다. 강태혁이 제 몸을 던져 시간을 번 가운데, 이젠 자신이 나설 차례였다. 헛기침을 거칠게 한 이현우가 방 안은 물론이고 복도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도록 소리질렀다.

이십 대 청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소 가래가 끼어있는 중년 남성의 음성, 중앙각성자교도소 관계자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목소리다.

"동작 그만!"

힘차게 터져나온 고함은 사방에서 울려퍼진 탓에 그것을 내지른 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만들었다. 모여들었던 교도관들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이현우가 내지른 고함은 교도소장의 목소리로 쏟아졌다. 방금 사살 명령을 내린 교도소장.

"뭐야? 어디서······."

잠깐의 틈. 길진 않았지만 성연이 요구한 3초는 될 만한 시간이다. 성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서늘한 바닥을 꾹 누르고 있던 그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끈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손바닥이 떨어졌다. 거기엔 날파리 하나가 죽어있었다. 오랫동안 눌린 탓에 날개가 떨어지고 배가 터져 검은 진액이 쏟아졌다.

성연은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유성연 씨···어서···."

이현우가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때였다.

바닥에 늘러붙었던 날파리의 다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날개가 떨어졌던 자리에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며, 이마에 기다란 송곳 같은 부위가 새롭게 자라났다.

극소량의 능력. 연구를 거듭한 결과 최대 두 명의 인간 시체를 일으키고 다룰 수 있었던 성연의 각성 능력은 날벌레 사체를 겨우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그것도 기껏해야 한 마리의 날벌레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

"···이 씹새들이 잔재주를···."

교도관은 곧 자신의 정신을 빼놓은 교도소장의 고함이 이현우의 소행이었음을 깨달았다. 총구가 이쪽을 향했다. 잔뜩 흥분해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성연이 일으킨 날벌레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롭게 돋아난 날개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힘차게 춤을 추었다.

"다 뒈지고 싶지······!"

성연의 능력은 강하지 않다.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네크로맨서 직업군과 비슷하게 시체를 일으키는 능력은 제약이 많았고, 위력이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연에겐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들을 제 손으로 숨통을 끊겠다는 각오.

그 각오는 곧 끝없는 노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연은 능력을 끝없이 갈고 닦았으며 마침내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근육과 뼈의 구성부터 시작하여, 혈액이 되어 흐르는 세포 하나 하나까지 효율적으로 되살리는 법을 깨우쳤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성연과 같은 능력은 희귀한 능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연처럼 자세한 분야까지 파고든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하여, 성연이 이르게 된 경지는 놀라웠다.

"개새···엌-"

가장 먼저 헬리콥터가 이륙하는 듯한 소음이 터졌다. 탄환처럼 쏘아진 날벌레는 이마에 돋아난 뾰족한 것으로 교도관의 목에 구멍을 뚫었다. 벌레는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일 시간 동안 그 구멍은 총 열 여덟 개가 되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교도관의 몸이 뒤로 넘어졌다.

"뭔···."

바깥에 모여있던 교도관들의 최후도 다르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붕-하는 시끄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곡선과 직선을 그리며 벌레는 비행했고, 그 궤적 중간에는 교도관들의 급소가 끼어있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벌레는 성연의 방 인근 복도를 자유로이 날았고, 마침내 이 주변에선 총성과 죄수들의 비명이 멈추었다. 살육이 끝났다는 뜻이다.

"갑시다."

가장 먼저 성연이 일어섰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앉아있던 이현우가 허둥지둥 따라 나섰다. 강태혁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으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알았다. 성연을 따라가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라고.

떠나는 이들을 보며 강태혁이 손을 뻗었다.

"가, 같이 가···아니, 같이 갑시다···!"

***

「이름: 유성연」

「위험도: ★★★★」

「각성능력: 네크로맨서」

「생명 활동이 정지한 사체를 일으킬 수 있다.」

「특이사항」

「D급에 불과한 각성능력이나 그 능력의 활용법이 무척이나 창의적이며 위험하다. 같은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과는 다르게 인간보다는 동물과 곤충을 매개로 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최대 두 명의 인간밖에 다룰 수 없는 한계치 때문으로 보인다.」

「해당 능력이 발전하게 되어 인간, 그것도 각성자를 되살려 다룰 수 있게 될 경우 무척 위험할 것으로 판단됨.」

< ★ 폭력범 강태혁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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