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사형수 유성연 >
약 칠십 년 전, 세상은 변했다.
인류의 일부는 초인이 되었고 하늘에 뻥 뚫린 구멍에선 괴물들이 쏟아졌다. 격변한 세상에서 각성자라 명명된 초인들은 귀족이 되었다. 놀라운 힘을 가진 그들은 순식간에 사회의 상류층으로 자리잡았다.
일부에게만 허락된 각성이라는 축복은 내게도 찾아왔다. 눈에 띄게 특별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5년쯤 갈고 닦으면 나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훈련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갈고 닦은 능력은 성공의 발판이 되는 대신 흉악한 범죄의 도구로 쓰였다. 벌금형 따위로 끝날 수 있는 경범죄가 아니라, 아주 커다란 중범죄. 나는 사람을 죽였다.
모두 합쳐 5명이나 되는 사람을.
***
「······이에 피고인 유성연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나는 법이 정해놓은 처벌들 중 가장 무거운 벌을 받게 되었다. 법무부 호송버스는 관광버스와 분위기가 달랐다. 멍한 얼굴로 빤히 정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요, 유성연 씨 맞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포승줄에 묶인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미친놈인가.
"저 아십니까?"
"여기 당신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그제서야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함께 이송되는 범죄자들 대부분이 내 얼굴을 흘끗 훔쳐보고 있었다. 잘난 인터넷에 의해 내 신상은 모조리 까발려진 지 오래이다. 적어도 이 버스 안에서 나보다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젠장, 스타가 되려고 벌인 일은 아니었는데.
"동정고등학교 중퇴.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셔서 군면제. 21세에 각성자 판정을 받았지만 평균 이하 수준으로 주목받지 못함.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2년간 성실하게 근무. 점장은 평소 착한 심성을 갖고 있던 청년이었다며 믿을 수 없다고 인터뷰."
"....."
"편의점 근무 도중 김유현과 그의 팀이 방문.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해서 격한 말다툼으로 번짐. 상세한 건 밝혀지지 않은 각성 능력을 사용, 도망치는 김유현과 그의 팀 4명을 포함하여 무력화된 총 5명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무참하게 살해. 맞죠?"
"뭐, 내 팬이라도 돼요?"
"설마요."
남자가 능글맞게 웃었다. 그는 포승줄에 묶인 양손을 들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대충 훑어본 것도 다 기억하는 쓸만한 능력이 있어서."
"더럽게 쓸만하네요."
"그렇죠. 아 참, 뉴스 보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김유현 헌터팀을 죄다 쓸어버린 거에요? 김유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고, 팀에 소속된 헌터 4명은 모두가 인정하는 A급 헌터들이었는데······."
신나게 떠들던 남자가 말을 멈추었다. 그의 오른편에 앉은 커다란 사내가 눈치를 준 탓이었다. 그는 따가운 시선에서 끝내지 않고 한 마디 했다.
"야, 개새끼야. 적당히 씨부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씨발······"
"아···예, 아저씨 죄송합니다. 유성연 씨?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궁금한 게 엄청 많···"
"닥치라고!"
난장판이었다. 두 남자에게서 눈을 돌려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서늘한 회색으로 점철된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오직 각성자들을 가둬놓기 위해 지어진 감옥, 단 한 번의 탈옥도 허용한 적 없는 철통보안의 요새. 중앙각성자교도소다.
"근데 여기 시설이 별론데. 음식은 괜찮은데 물 안 나오는 샤워기가 많아서."
"한 마디만 더해. 당장 포승줄 끊어버리고 죽여버릴거니까."
***
각성자교도소의 입소 절차는 복잡했다. 종합 검사를 마친 뒤 수용자복을 지급받았고, 말 많던 남자는 내 옷에 붙은 '3중 5'라는 글자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덩치 큰 남자와 말 많던 남자, 나까지 전부 3중 5였다.
"3중 5. 우리 셋 같은 방이네요? 다행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버스 같이 타면서 얼굴 익혀둔 사람들이 동기면 더 좋죠. 안 그래요?"
"안 그래, 씨발 새끼야. 아···말 많은 것들이 제일 싫은데."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인 나와 다르게 두 남자는 경험이 있는 듯했다. 물론 둘 다 나보다 빨리 출소할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는 살아서 교도소를 나갈 수 없다.
"유성연 씨, 앞으로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낼텐데 통성명이라도 먼저 하죠. 저는 이현우라고 합니다. 덩치 큰 아저씨는 이름이?"
"···강태혁이다."
"오, 이름부터 세 보이시네."
말 많은 남자, 이현우가 실없이 웃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밌는 걸까.
"여기 아저씨는 걱정없는데 유성연 씨는 마음 단단히 먹어요. 여기선 조금이라도 얕보이면 곧바로 지옥이거든요. 뭐, 사형수 건드릴 간 큰 사람이 많진 않겠지만······여긴 미친 놈들이 워낙 득실거리는 곳이라."
"조용!"
"아, 예. 죄송합니다."
교도관의 호통에 이현우가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소리 없이 조용한 걸음이 이어졌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무거운 철문이 삐걱이며 열린다.
우리를 거칠게 밀어넣은 교도관은 곧 사라졌다. 안에는 총 4명의 죄수가 있었다.
좁아터진 이곳이 앞으로 내 집이었다.
***
영화나 드라마 매체에서 교도소에 관련된 소재를 다룰 때 흔히 등장하는 신고식이나 서열 정리는 현실에 없었다. 물론 내 가슴에 달린 붉은 명찰의 영향이 있을지도 몰랐다. 뒤볼 것 없는 사형수는 폭탄이나 다름없으며, 굳이 폭탄을 건드려서 터뜨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74세 노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방장, 김철우는 서로 통성명을 끝내자마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다. 교도소에서 흔히 하는 일과를 수행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종합 검사와 배정을 마치고 우리가 들어왔을 땐 밤이 꽤 깊은 시간이었으니까.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철우를 제외한 3명의 죄수들은 방장의 말을 잘 들었고,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은 우리 셋도 피곤함에 쩔어있었다.
"커어....."
이현우도 이 시간만큼은 조용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죄수들은 금세 잠들었다. 온전히 깨어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몸은 무거운데 정신은 또렷했다. 아직도 내가 교도소의 사형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 전에 살던 단칸방과 크기는 비슷한데, 공기의 무게감이 달랐다.
다섯 명의 목숨을 빼앗은 동시에 내 인생은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가끔씩 즐겼던 여가 생활도 더 이상 없겠지. 지금껏 살아왔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이 비좁은 곳에서 마감하게 될 것이다.
물론 후회는 없었다. 창창한 20대는 물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완전히 날려버렸으나 후회감은 일말도 솟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녀석들은 마땅히 죽어야 하는 놈들이었다.
***
"······이···게 뭐야!"
"열어! 문 열어,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에 잠이 깼다. 생각에 빠져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쇠창살로 가려진 창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기껏해야 깊은 밤과 새벽의 사이다. 이 시간에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유성연 씨. 방금 깬 거에요? 와, 이 난리통에 그렇게 곤히 자는 사람은 처음 보네······."
"무슨 일이에요? 어디 불이라도 난 겁니까?"
"불? 그거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죠. 제대로 눈 뜨고 앞을 봐요. 뭐가 있는지."
이현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몸을 일으킨 뒤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어두운 방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이 허공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 내 눈 앞에서.
온라인 게임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사각형의 투명한 창이 있었다. 그보다 눈을 잡아끄는 건, 창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문구였다.
『반갑습니다. 선택받은 각성자 여러분.』
『70년간 진행한 튜토리얼에서 여러분들은 예상보다 더 훌륭한 성과를 내주셨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들은 원래 예정보다 앞당겨 본 게임을 시작해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본 게임에 들어가며 몇 가지 항목들이 수정될 예정입니다.』
【균열에서 쏟아지는 괴수들의 개체수가 열 배 증가합니다. 더불어, 괴수들의 능력이 대폭 상향됩니다.】
【이제 괴수 사냥 시 개체마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포인트 사용으로 특정 물품을 구입하거나, 개인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 포인트는 같은 각성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약탈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돌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이벤트 참여 시 대량의 포인트나 상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
『본 게임의 우승자에겐 우리가 직접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우승 방법은 간단합니다! 괴수 사냥이든, 같은 각성자에게 약탈하든 '1,000,000 Point'를 모으시면 됩니다.』
『자아, 그럼 더욱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받은 각성자 분들을 응원합니다.』
"씨이발-! 풀어달라고! 당장 괴수 새끼들 하나라도 더 잡아야 해!"
"여자! 세상 모든 여자들을 다 내 것으로 만들거다!"
아수라장 속에서 죄수들의 외침이 그제서야 선명하게 들렸다. 눈 앞에 떠오른 창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뭘 그리 빤히 읽어요? 유성연 씨도 소원 같은 거 있나? 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겠죠."
"······."
이현우의 말대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원이 있기 마련이고, 나도 한 가지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투명한 창에 적힌 문구들을 몇 번이나 되짚었다.
분명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했다.
'······죽은 사람을 살릴수도 있나?'
영혼을 맞바꿔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를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 기회는 주어졌다.
이 좁아터진 감옥에선 절대로 이룰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길 나가야 한다.
< Prologue. 사형수 유성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