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99화 (199/202)

#199

몇 시간 후, 게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진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보니 많기는 하다.”

“몇만 명이나 모였으니까.”

고작 한 명을 없애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아마 관리자와의 싸움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추적이라는 걸 풀면 진짜 바로 온데?”

“뭐, 아마도?”

지금까지 제대로 위치가 잡히지 않았음에도 꾸역꾸역 따라왔던 걸 생각하면 위치가 특정되는 순간 바로 올 것이다.

설사 바로 오지는 않더라도 하루 안으로는 올 거라고 할머니가 단언하셨다.

“그럼 난 간다.”

시간이 거의 다 됐음을 깨달은 진하는 사람들에게 멀어서 게이트 중앙 쪽으로 다가갔다.

혹여나 바로 그의 근처에서 나타나면 큰일이었으니 진하만 따로 벗어나 있을 필요가 있었다.

저벅, 저벅

중앙에 도착한 진하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부담이 오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 뭔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진하는 애써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게이트가 있었던 자리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12시가 되고 진하는 긴장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지 않은 건가?”

[바로 올 리는 없지. 이것저것 생각하면 여유를 가져라.]

리처드의 말에 진하는 심호흡했다. 그래, 어차피 나타난다면 이곳이니 굳이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흐음…….”

그 순간 들려오는 작은 감탄 소리, 진하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뒤로 물러났다.

“안 그래도 역한 것들이 단체로 몰려 있으니 구역질이 올라오는군.”

어느새 나타난 관리자가 눈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반응 한번 빠르네. 위치가 특정되자마자 이렇게 헐레벌떡 달려올 줄이야.”

진하의 말에 관리자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위치를 방해하던 걸 일부로 푼 것이냐? 고작 이런 놈들을 믿고?”

“이런 놈들이라니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어딨다고.”

진하의 말에 관리자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에는 그의 손짓 한 번에 무더기로 죽어 나갈 존재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따가 보자고.”

슈욱!

순식간에 사라지는 진하, 그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돌덩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고생했어요.”

“아뇨…….”

원래 자리로 돌아온 진하는 진땀을 흘리는 남자를 격려했다.

<능력: 교환.>

C급 능력자이자 원하는 것과 물건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자였다.

삐익!

그리고 진하가 남자 고생한 남자를 격려하기 무섭게 울리는 공격 신호.

신호에 맞춰 수많은 헌터들이 중앙을 향해 원거리 공격과 마법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콰앙! 콰광! 쾅!

수많은 폭발과 함께 움푹 파여 가는 공간, 하지만 원거리 헌터들은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짜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귀찮군.”

폭발 속에서 들리는 뚜렷한 목소리와 함께 모든 연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쏟아지던 공격들이 튕겨져 나와 헌터들에게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보호막을 펼쳐라!”

“1소대 앞으로!”

날아오는 마법을 보자마자 빠르게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보호막을 펼치는 헌터들.

그 모습에 관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아.”

“그건 너 생각이고!”

어느새 관리자의 뒤로 접근한 한 암살 계열 헌터가 단검을 내리찍었다.

카앙!

관리자는 자신에게 내리쳐진 단검을 슬쩍 보더니 헌터를 스윽 올려다보았다.

퍼엉!

가루도 남기지 않고 터져버리는 헌터, 그사이 다가온 여러 헌터들이 그를 포위했다.

“특제 폭탄이나 먹어라!”

그 말과 함께 자폭을 실행하는 헌터들, 당연하게도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관리자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뭘 하자는 거지?’

수많은 공격과 기습, 자폭까지 일반적인 존재라면 통했을지도 몰랐지만 그에겐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개미들이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해서 사람이 개미에게 죽진 않는다. 아니, 이들은 개미만도 못한 벼룩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해하지 못하겠군.’

관리자는 주변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터뜨려 죽이며 어딘가 있을 진하를 찾기 시작했다.

위치 자체는 이제 쉽게 특정되기 때문에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뭘 하는 거지?”

위치를 특정한 관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진하의 위치를 눈으로 좇았다. 그를 중심으로 진하는 계속해서 빙빙 돌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콰르릉!

덥썩!

순간 관리자가 자신에게 날아온 벼락을 한 손으로 잡아챘다.

치이익

그의 손에 아주 약간의 흠집을 내며 사라지는 벼락, 날아온 곳을 보니 이기수가 혀를 차며 몸을 피하고 있었다.

화륵!

그 순간 또다시 날아온 공격, 이번에는 레이나였다. 관리자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어 날아온 공격을 막아 냈다.

“하…….”

이제야 그들의 속셈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너무나도 많은 인간들, 그사이에 숨어서 그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인간들이 공격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런 식이면 그라고 아예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공격을 막기만 해도 작게나마 몸에 흠집이 나니까.

“하아……. 내가 너무 우습게 보였나 보군.”

쿠웅!

관리자가 발을 구르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헌터들이 모두 순간 몸을 멈췄다.

“사라져라.”

그의 말과 함께 그를 중심으로 50m에 있던 모든 헌터들이 핏물이 되어 사라졌다.

관리자는 잠시 주춤거리는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어디 한번 똑같은 짓을 해 보아라, 버러지들아.”

* * *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진하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어느 정도 소모가 된 것 같아?”

[글쎄……. 0.1%? 아니 그 미만일지도. 몸에 변한 부분이 없어.]

방금 공격으로 수백 명이 핏물이 되어 사라졌는데 고작 0.1%도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근 천 명이 죽어 가는 동안 관리자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힌 거라곤 레이나와 이기수가 던진 공격에 살짝 그슬린 손바닥이 다였다.

“절망적이군.”

[애초에 알고 시작한 거잖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달랐다.

인과율을 소모하는 게 어려울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나 심할 줄이야…….

“거깄구나.”

순간 관리자의 목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살기, 진하는 재빨리 자신의 칼을 뽑아 들어 치켜세웠다.

카앙!

“호오……. 확실히 너는 다르긴 다르구나. 한 대왕 개미 정도는 되겠군.”

관리자는 그의 주먹을 막은 진하를 작게 칭찬했다.

눈빛만 주어도 터져 나가는 인간들 속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한 합을 제대로 받아 내고 있었다.

“많이 힘들긴 하나 봐?”

손에 더더욱 힘을 줘 주먹을 살짝 밀어낸 진하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쓰던 공격은 쓰지도 않고 말이야.”

진하와 이기수를 만났을 때 썼던 공격.

분명 쓴다면 한순간에 이곳에 있는 인간들의 3분의 1이 넘게 날아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리자는 그 공격을 쓰지 않고 있었다.

“쓸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다.”

관리자가 반대 손을 들어 진하에게 내리쳤다.

퍼억!

반대 손으로 공격을 급히 막아 낸 진하, 온몸을 강화시킨 채로 막아 냈음에도 방금 공격으로 뼈에 금이 가 버렸다.

“개소리하기는……!”

―무력화.

진하의 스킬이 터짐과 동시에 관리자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뭐지?’

관리자는 무력화에 당하면서도 이해 못 할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 스킬에 당해 힘이 빠지는 것은 고작 0.5초도 안 되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에게 닿을만한 공격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하는 관리자에게 붙잡혀 있었고, 이기수와 레이나는 멀리 있었으니까.

그나마 공격할 만한 건 그의 근처에 있는 인간 정도?

하지만 고작 인간의 공격이 관리자에게 통할 리 없었다.

푸욱!

“어……?”

관리자는 자신의 복부에 얕게 찔린 단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찌른 헌터를 보았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약하디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콰르릉! 화르륵!

잠시 넋 놓는 틈을 타 관리자에게 날아온 공격들, 관리자는 다급히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쿠웅!

뒤로 물러나자마자 또다시 땅을 강하게 밟아 근처의 모든 헌터들을 핏물로 만든 관리자는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주르륵

분명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누가 인간은 너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고 그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하가 치료를 받으며 말했다.

관리자는 잠시 진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전 관리자의 물건이군.”

피가 흐르는 배에서 흐릿하지만 관리자의 흔적이 느껴졌다. 아마도 전 관리자의 힘을 모아 만든 물품인 듯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다룰 수 없을 텐데?”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전 관리자의 물품들에는 하나같이 제한이 있었다.

특정한 존재들만 다룰 수 있다거나 아니면 모든 이가 다룰 수 있는 대신 위력이 약하거나.

“다루진 못해도 휘두를 수는 있지.”

진하는 죽어 버린 헌터의 손에서 단검을 꺼내 사라지는 또 다른 헌터를 보며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관리자는 배를 어루만져 상처를 회복시키며 말했다.

“발악이 심하구나.”

“가만히 죽어 줄 순 없잖아?”

진하는 그 말과 함께 또다시 헌터들의 사이로 숨어들었고, 헌터들은 다시금 관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정말로 통할 줄은 몰랐군.]

리처드가 진하의 속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관리자에게 공격이 통했다는 건 둘째치고 위협을 당했음에도 한 번에 헌터들을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 저놈은 그때와 같은 거 웬만하면 죽어도 안 쓸걸?”

공격이 통했다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관리자에게 저 정도 공격은 툭 건드리면 회복되는 공격이었다.

아티팩트 자체의 힘은 강했지만 그걸 다루는 사람의 격은 한없이 낮았으니까.

‘이슬라 때와 같아.’

격이 낮으면 아무리 힘이 강대하다고 해도 격이 높은 자에게 크게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즉, 관리자에게 저 정도 공격은 그나마 모기가 문 정도라고 봐야 했다.

[약하기 때문에 공격하지 않는 거라고?]

“어.”

그때의 공격은 관리자의 손가락 하나를 지불해야 가능한 공격이었다. 바로 회복도 안 됐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큰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너는 모기가 무섭다고 너 손가락을 자르는 살충제를 쓰겠냐?”

차라리 몇 대 맞고 모기를 잡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관리자 저놈은 이게 끝이 아니거든.”

관리자의 진짜 목표는 진하가 아니라 인간의 멸종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채워지지 않는 힘을 아끼려 할 게 분명했다.

거기다가 아까 진하가 도발까지 했으니 웬만해서는 쓰지 않으려 할 게 분명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모기에게 한, 두 방 맞는다고 해서 사람이 손가락을 희생하는 살충제를 쓰지 않겠지만 그게 수십 방이 되면 말이 달라진다.

그때가 되면 자존심이고 뭐고 우선 짜증 나는 존재부터 없애려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나도 알아.”

이 방법으로 끝까지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첫 번째 계획에 불과했다.

“너 헌터들이 어떻게 상대가 안 되는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지 알아?”

[다구리?]

“그래, 다 대 일로 싸우지. 그리고 차근차근 말려 죽이는 거야.”

약하다면 혼자, 비슷하다면 여럿이서, 그리고 상대할 수 없이 강하다면 목숨까지 바쳐가며 차근차근.

그게 헌터의 방식이었다.

“우리도 이제 움직이자.”

한 곳에 가만히 있으면 관리자가 그를 또 특정하고 움직일 테니 계속 움직여 혼란을 유도해야 했다.

‘너는 그 오만함 때문에 인간들한테 당할 거야.’

그게 죽음은 아닐지라도 죽음의 문턱까지는 한번 갔다 오겠지.

진하는 속으로 관리자를 비웃으며 발을 굴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 1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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