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완전히 무너져버린 폐허, 그 한가운데에 서 있던 관리자는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살펴보았다.
“부족해…….”
미국에 있는 모든 존재를 흡수했음에도 그가 원하는 수준이 되려면 아직도 부족했다.
“뭐가 그리 부족한데?”
관리자는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진하가 어깨를 주무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왔나?”
“죽을 자리라니 그런 소리 말아. 그냥 이야기나 나누러 온 거야.”
“이야기?”
“그래, 저번에 했던 이야기 말이야.”
진하의 말에 관리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하와 했던 이야기라고 해 봤자 처음 마주쳤을 때 했던 이야기가 끝이었다.
그 밖에 관리자는 그를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으니 그 얘기가 분명하긴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부분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만한 게 없었다.
“설마 너만은 살려 달라 이런 소리를 하러 온 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 소리나 하러 온 거였다면 관리자는 진하에게 매우 실망할 것 같았다.
사서와 전 관리자가 고른 인간이 고작 이런 인간이라면 그가 이렇게까지 내려온 이유도 절하될 테니까.
“아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궁금?”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말이야.”
진하는 정말로 궁금했다. 그리고 관리자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말이다.
“이유 따위를 물어보러 온 게 아니야.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이렇게 굼뜨게 행동했냐는 거지.”
관리자가 지상에 개입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진하도 잘 알았다.
그래서 이 웃기지도 않은 몬스터와 시스템을 만들어 인과율이라는 것의 소모를 줄이려는 것도 잘 알았고 말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내려올 필요도 없었겠지.”
“그래, 그건 맞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감안해도 너무 느리게 올라왔단 말이야.”
관리자가 개입할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다. 초기에는 사서나 할머니가 개입해서 막았다 치더라도 유럽에서부터는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
인과율의 소모? 만약 단순히 그게 문제였다면 애초에 지금 있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왜 굳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왔는지 나는 이해가 안 돼.”
진하의 물음에 관리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란 언제나 어리석군. 고작 내가 내려온 이유가 궁금해서 이런 짓을 하다니”
“뭐, 인간이 어리석다는 건 인정해.”
진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인간이 지혜롭거나 그렇다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관리자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진하를 가리켰다.
지잉―
그리고 손가락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 하나, 진하는 재빨리 몸을 비틀며 말을 이어 갔다.
“어째 좀 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닥쳐라.”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계속해서 진하를 향해 광선을 쏘는 관리자, 진하는 최대한 광선들을 피해 보았지만 모두 피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아, 거, 말로 좀 하지?”
피를 흘리며 말하는 진하를 보며 관리자는 눈을 꿈틀거렸다. 지금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진하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너무 여유가 있었다.
“너 설마……!”
“생각보다 느리게 알아 챘네?”
비웃음이 가득 담긴 진하의 말투, 관리자는 그 모습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광선을 날렸다.
퍼억!
광선이 진하의 미간을 뚫고 나갔고, 광선에 맞은 진하는 쓰러지며 씨익 웃었다.
“나중에 보자고.”
털썩
진하가 쓰러지고 홀로 남은 관리자는 분노에 찬 얼굴로 그의 시체를 노려보았다.
까득!
“김진하……!”
* * *
“윽…….”
진하는 깨질 듯한 고통과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미간을 문질렀다.
“더럽게 아프네.”
감각을 연결했기에 그에게도 어느 정도 타격이 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강하게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쯧, 그러니까 그냥 흡수하라니까.”
옆에서 진하를 지켜보고 있던 리처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말에 진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덕분에 얻은 게 많아.”
“그 많은 슬라임을 잃고도?”
“어.”
단호하게 대답한 진하는 모태빠를 소환해 올라탔다. 관리자가 쫓아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게 나았다.
“모태빠, 위치는 알지?”
끼아악!
진하의 물음에 대답한 모태빠는 곧바로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알아낸 게 뭔데?”
모태빠가 출발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리처드가 진하에게 물었다. 솔직히 그가 생각하기엔 진하가 한 짓은 손해 그 자체였다.
기껏 고생해서 잡은 신지하 소속의 슬라임들을 대부분 버려가면서까지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 그 안에 도대체 뭘 알아낸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아낸 건 관리자의 상태 정도?”
“상태?”
“응, 일단 관리자 녀석 아바타 상태가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본체로 내려왔단 소리야.”
보통 게이트를 나올 때는 올라왔다는 표현을 쓴다. 게이트 자체가 아래로 들어가는 구조였으니까.
하지만 아까 얘기할 때 관리자는 분명 ‘내려왔다.’라고 표현했다. 진하는 그 부분을 정정하여 올라왔다고 표현해 보았으나 그럼에도 관리자는 분명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20층에서 아바타 상태로 올라온 게 아니라 본체 상태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리처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창조주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진하는 창조주가 본체 상태로 내려올 수 없다고 얘기했었다.
“맞아. 그래서 이 부분은 추측이야. 다만 예상가는 건 자리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어.”
“자리를 포기한다고?”
“응, 이상하지 않아? 다른 존재들은 은근 나한테 많은 영향을 줬어. 근데 관리자만 유독 규칙이 빡빡하단 말이야.”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관리자이기에 무언가 더 많은 제약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게 진하의 추측이었다.
만약 그게 정답이라면 관리자가 보인 행동도 납득이 되긴 했다.
예를 들어 슬라임이 도망쳤을 때 관리자가 못 따라왔다든가, 얘기를 나눌 때 분신이라는 점을 눈치채지 못한 점 등.
신적인 존재라 칭해야 하는 존재치고 보인 허술한 것들이 본인의 자리를 포기해서 얻은 페널티라면 이해가 됐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사서와의 싸움으로 부상을 입었다고 했으니 부상으로 인해 약해진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이 됐든 관리자가 무척이나 약해진 상태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겨우 그거 알아내러 간 거야?”
리처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관리자가 약해졌다는 것, 물론 중요한 정보이기는 했지만 굳이 흡수할 수 있는 힘을 포기한 것 치고는 조금 아쉬운 정보였다.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어.”
“그건 뭔데?”
“시스템에 대한 것.”
“시스템? 그 인간들이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거?”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각성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어찌 보면 약점이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관리자가 시스템을 앗아 가면 각성자들은 바보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근데 내가 인과율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었거든?”
전 관리자는 분명 인과율을 아끼기 위해 몬스터를 만들었다고 표현했었다. 그래서 진하는 시스템도 관리자가 만들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과율은 차원에 개입할수록 소모되는 거라고 했다. 그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개입 자체에 소모가 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시스템을 만든다고 인과율의 소모가 줄어든다?
이건 뭔가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진하는 관리자와 이야기할 때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만약 진짜 관리자가 만든 게 시스템이라면 보통 가장 먼저 하는 게 시스템을 수거하는 거일 테니까.
‘하지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지.’
게이트도 부수고 몬스터들도 풀었으면서 시스템은 일절 건들지 않았다.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추측은 하나.
시스템에 아예 건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게 관리자가 만든 게 아니어서 원래 못 건드는 것이든 건들 수는 있지만 더 이상 관리자가 아니게 되어서 못 건드리 게 되는 것이든 상관은 없었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건들지 못하는 게 중요했다.
“적어도 걱정 하나는 덜은 셈이지.”
만약 적이 시스템을 건들 수 있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까.
“뭐야, 결국 창조주의 상태를 체크했다는 소리밖에 더 돼?”
“뭐, 돌고 돌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결론적으론 관리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수많은 위험 변수들을 확인한 거였으니까.
“아무튼 나쁘지 않아.”
적은 여전히 강했으나 아예 승률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관리자는 그저 게이트 보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강하지만 연합한다면 잡을 수 있는 존재.
“그러니까 이제 레이드를 뛸 사람들을 모아야지.”
“레이드?”
“응.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아일랜드로 가고 있는 거잖아.”
“그냥 유럽을 통해서 한국으로 가려는 거 아니었어?”
“그것도 맞긴 한데, 가는 길에 잠깐 들려서 사람들 좀 데리고 와야지.”
“설마…….”
“어.”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으로 가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중간에 독일에 들러 레이나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좀 가자. 모태빠.”
끼아악!
진하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모태빠는 더욱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 * *
쿠어어!
몬스터 하나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앞에 있는 성벽을 강하게 내려쳤다.
“S급! 누가 S급 좀 불러와!”
“일단 아무나 공격 좀 퍼부어! 지금 벽 무너지면 망한다고!”
그 모습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헌터들이 다급히 몬스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겉가죽만 태울 뿐 유효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연락은! 연락은 갔어?”
현장을 지휘하던 헌터가 다급히 무전병에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전파가 송신되지 않습니다!”
무언가 이상이라도 생긴 듯 계속해서 무전기를 만지작거리는 무전병을 보며 헌터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저 이름도 모를 몬스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맡은 현장에 있는 S급은 이미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 중이라 불러올 수 없기에 다른 S급을 불러오기 위해 연락을 한 건데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하아…… 미치겠군.”
헌터는 성벽 아래에 있는 몬스터에게 스킬을 시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여유가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오늘 이런 일이 벌어져서…….
“흙을 다룰 수 있는 능력자들은 저 몬스터의 땅을 꺼뜨려!”
헌터는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명령을 내렸다. 당장 잡을 수 없다면 지하에 묻어서라도 셩벽을 부수는 것은 막아야 했다.
“그럴 필요 없어. 친구.”
그때 그의 어깨를 누가 두드린 후 성벽을 뛰어넘었다.
“이런 미친!”
헌터는 성벽을 넘어가려는 자살 희망자를 잡기 위해 다급히 손을 내뻗으려다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내뻗던 손을 멈췄다.
아래에는 수많이 몬스터들이 있어 위험했지만 지금 지나간 사람에게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으니까.
―아이스 레인.
순식간에 생겨난 먹구름에서 얼음창들이 떨어지며 몬스터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사히 바닥에 착지한 사람, 잭은 여전히 벽을 두드리고 있는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나?”
대규모 몬스터를 잡기에 아이스 레인이라는 스킬은 좋기는 했으나 역시나 꽤 고위급 몬스터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단 말이지.
“뭐, 상관없지만.”
곧바로 땅바닥을 짚은 잭은 곧바로 송곳 모양으로 아이스 월을 시전,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었다.
쿠웅!
거대한 몬스터가 뒤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잭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내가 상대할 만한 몬스터는 더 이상 없는 것 같고…….”
“잭 님!”
그때, 성벽 위에서 그를 부르는 헌터 한 명, 잭은 그를 향해 외쳤다.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지? 그럼 난 간다!”
잭은 헌터가 대답하기도 전에 빠르게 땅을 박차며 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헌터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른 헌터들을 보며 외쳤다.
“뭐 해! 멍하니 있지 말고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