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90화 (190/202)

#190

반쯤 무너진 건물, 그사이 무너진 벽에 숨은 모녀는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쿵, 쿵.

그리고 그들의 귓가에는 점차 다가오는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쉿!’

여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고, 여자아이는 양손으로 자신의 손을 붙잡아 입을 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조용히 지나가라.’

여자는 점차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기도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대피소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살 수 있게 되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트롤을 만날 줄이야…….

쿵! 쿵!

가까워지던 트롤의 발걸음 소리가 이제는 거의 코앞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트롤은 모녀를 눈치채지 못한 듯 그들이 위치한 무너진 건물을 지나갔고 건물을 지나쳤다는 것을 확인한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쉬었다.

꼬르륵!

그 순간 울리는 작은 꼬르륵 소리, 깜짝 놀란 여자가 고개를 돌리니 아이가 배를 잡은 채 울상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괜찮다는 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귀를 기울였다.

‘제발 가라. 제발 가라!’

쿵!

하지만 그녀의 바램과 달리 거물을 지나치던 트롤은 멈춰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기까지 했다.

쾅! 우르르!

트롤이 내리치는 주먹에 옆에 있던 건물 하나가 우르르 무너졌다. 그 모습에 여자는 그들이 들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트롤이 아직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콰르르르! 콰르르!

하지만 천천히 움직이며 계속해서 건물을 무너뜨리는 트롤을 보아하니 위치가 들키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것 같진 않았다.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대피소 가는 길 알지?”

여기서 딱 500m만 가면 대피소였다. 그리고 그곳으로만 가면 어느 정도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자는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눈 감고 귀 막은 채 가만히 있다가 트롤 가면 그때 움직이는 거야 알겠지?”

고작 초등학교의 아이가 혼자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이대로 같이 있다간 둘 다 죽는 건 기정사실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 귀 막고 눈 감아.”

아이가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걸 확인한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대피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빠르게 뛰면서 소리쳤다.

“여기다! 여기!”

크르륵?!

여자의 외침에 반응한 트롤이 무너뜨리고 있던 건물에서 시선을 돌려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여자를 확인하자마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트롤.

쿵! 쿵! 쿵!

점차 가까워지는 트롤의 발걸음을 느끼며 여자는 곧 끝날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콰르릉! 파직!

순간 여자의 코앞까지 다가온 트롤의 머리 위로 작은 낙뢰 하나가 떨어졌다.

정수리에 벼락이 꽂힌 트롤은 순식간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쓰려졌고, 여자는 벼락 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뎌 그대로 쓰러졌다.

“괜찮아요?”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 나타난 이기수, 여자는 이기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긴장이 훅하고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아이가 생각난 여자는 다급히 헛디뎌 다친 발로 재빨리 자신의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이가 울며 뛰쳐나와 여자의 품에 안겼다. 여자 역시 그런 아이를 보며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꾹 참은 채 우는 아이를 달랬다.

“가죠. 이쪽 대피소는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이기수가 말했다. 그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 * *

드르륵!

문방구의 문이 열리고 지친 표정의 이기수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송하나가 말했다.

“구조 갔다 왔어?”

“응.”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살아 있는 모자를 만나 구할 수 있었지만 평소에는 허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표정을 보니 구했나 보네.”

송하나가 밝은 표정의 이기수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이미 반년이나 지났기에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2, 3일에 한 번씩 사람을 구하는 걸 보면 영 쓸모없는 짓은 아니었나 보다.

“전황은?”

“좋을 리 없지.”

게이트가 무너지고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나온 지 벌써 반년이었다.

서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중간에 위치한 나라들은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다.

“중국은 대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은 전멸이라고 봐도 되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야.”

자료를 정리하던 송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두 나라는 한국에 비해서 낫기는 했다. 한국은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설마 서울이 살아남을지는 몰랐지.’

서울은 게이트가 터진 곳이라서 오히려 살아남은 케이스였다.

기존의 게이트 폭주처럼 지속적으로 몬스터가 나온 게 아니라 한 번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진 경우였기에 게이트를 나온 몬스터들은 밖을 향해 미친 듯이 전진했다.

덕분에 대다수의 건물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밖으로 향하려는 본능 덕에 서울에 몬스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편이었고 아직까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살아남은 건 부산뿐이고…….’

서울도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피소에 사람들이 몰려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제대로 도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건 살아남은 대다수의 헌터들이 모인 부산이 유일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부산을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었다.

“진하는?”

“소식이 왔으면 제일 먼저 너한테 말해 줬을 거야.”

이기수의 질문에 송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기수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지난 반년간 문방구에서 진하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 새끼는 죽은 건지, 산 건지…….”

“죽지는 않았어.”

송하나가 단언했다. 소식이 없기는 했지만 고작 이 정도 사태에 진하가 죽을 리 없었다.

이기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말로만 그런 거지 진하가 죽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나 부산 좀 다녀올게.”

“부산? 왜?”

“조직원 관리도 하고, 송준하랑 몬스터들 막는 거에 대해서 얘기도 해야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한쪽에 비치된 텔레포트 아티팩트를 집어 들었다.

미국에서 이기수가 가져온 이 아티팩트 덕에 그녀는 편하게 부산과 서울을 오갈 수 있었다.

“그럼 난 간다.”

“어, 다녀와라.”

그녀가 사라지고 이기수는 송하나가 남은 자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송하나가 부산으로 간 이유는 조직원이나 송준하와의 이야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제일 크다는 것을 제일 잘 알았으니까.

“하아…… 진하야 빨리 와라.”

* * *

“누가 내 얘기하나?”

진하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리고 리처드는 그런 진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둘밖에 없는데 무슨 소리냐.”

“아니, 귀가 간지러워서.”

“도대체 인간들은 그런 미신을 왜 이리 잘 믿는 건지 잘 모르겠군.”

리처드는 슬라임 몸을 통통 튀기며 말했다. 진하는 그런 리처드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인간은 그래. 그나저나 이 근처 맞아?”

“맞다. 이 근처에서 분신의 기척이 느껴져.”

“다행히 아직 관리자의 모습은 안 보이는 것 같네.”

“방심하지 마라. 원하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게 관리자니까.”

리처드의 경고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건 지난 반년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난 반년간 진하가 슬라임을 흡수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실제로 흡수한 건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나머지는 모두 관리자한테 죽었지.’

심지어 그 중 한번은 진하가 먼저 접촉했는데 어느새 나타난 관리자로 인해 빼앗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도망간 것 자체가 천운에 가까웠다.

“그나저나 시간 참 빨리 가는군.”

“그러게 말이야.”

리처드의 말에 진하가 맞장구를 쳤다. 빠르게 분신을 찾은 뒤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분신을 찾는 데 반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그리고 설마 내가 이렇게 철저하게 흡수당할지도 몰랐고 말이야.”

“아직도 삐진 거냐?”

진하가 통통 튀는 리처드를 보며 말했다.

지난 반년간 둘은 단순히 다른 분신들만 찾은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몸의 주도권을 놓고 죽을 듯이 싸웠으니까.

그리고 그 승자는 진하였다. 중간에 위험한 적도 있긴 했지만 조금씩 야금야금 몸의 지분율을 높여 몸에 기생하고 있는 리처드의 힘을 빼앗았다.

“애초에 불공평했다고, 너는 몸의 주인이니까 너무 유리했어!”

“그러게 누가 내 몸에 기생하래?”

지금이야 이렇게 장난스레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초반에만 해도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정확히는 진하가 몸속으로 들어온 리처드의 힘을 잡아먹으려 했고 리처드가 그걸 뒤엎으려고 노력했던 거였지만.

“아무튼 지나간 일은 그만 얘기하고, 분신이나 잘 찾아봐.”

진하가 리처드를 완전히 흡수하지 않은 이유가 분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분신을 찾을 수 있는 건 한 몸이었던 리처드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거의 몸을 장악했던 진하는 리처드와 거래를 했다. 마지막까지 완전히 흡수하지 않을 테니까 분신들을 찾으라고, 그러면 너만은 살려 준다고.

그 거래에 리처드는 응했고, 진하의 뜻대로 분신을 찾아내 알려 주었다.

“하아, 이래도 관리자한테는 부족한데 말이야…….”

리처드의 힘 대부분과 다른 분신을 온전히 흡수했음에도 아직도 관리자와의 격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멀어진 것 같았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분신이나 잡을 생각해. 만약 이번에도 놓치면 너나 나는 죽은 목숨이야.”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격차를 아예 좁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것은 리처드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물론 현재 상태도 좋다고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창조주의 목줄을 풀었는데 반년 만에 죽는 건 너무 억울했다.

‘거기다가 지금은 정신적으로 강제되는 건 없어서 좋긴 하지.’

속으로 좀 더 나은 점을 생각하던 리처드가 자신의 감지망에 느껴지는 분신의 기척에 입을 열었다.

“여기서 서북쪽.”

“오케이.”

리처드의 말에 진하는 리처드를 어깨에 얹은 뒤 서북쪽으로 달렸다.

리처드는 점차 가까워지는 분신을 느끼며 진하에게 물었다.

“근데 이놈 흡수하고 나선 뭐 할 거야?”

진하가 미국에 남은 이유는 리처드의 다른 주 자아들을 흡수해 강해지기 위한 거였다.

그리고 그 목표를 거의 이루기 직전이니 다음 목표가 뭐일지 궁금해졌다.

“뭘 하긴 뭘 해. 한국 가야지. 이미 말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한국에 가서 뭘 할 거냐고.”

어디로 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리처드가 묻는 건 그다음, 한국으로 간 다음 뭘 할건지를 묻는 거였다.

“준비를 하고 관리자를 잡아야지.”

“어떻게?”

“그건 한국 가서 생각해 봐야지.”

지금으로선 진하도 관리자를 잡을 방법은 전혀 몰랐다. 그러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아직 살아있겠지?’

할머니도 전 관리자 출신이니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죽으면 안 됐다.

그나마 유일하게 관리자를 이길 방책을 알려 줄 만한 존재는 할머니밖에 없었으니까.

“다 왔어. 저 구멍으로 들어가.”

리처드가 달리는 진하를 툭 치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아주 작은 구멍이었다.

“여기라고?”

진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냥 무너진 건물만 주르륵 널브러져 있는데?

“아래에 지하 공간이 있어. 그리고 평범해야 숨는 거지. 뭐가 필요하겠냐?”

리처드의 타박에 진하는 수긍하고는 작은 구멍에 몸을 욱여넣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구멍은 초반에만 좁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커지는 형태였다.

둘은 지하로 조심스레 점차 내려갔고, 이내 초록색 슬라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그러게, 찾았네.”

둘은 슬라임을 보고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가만히 있던 슬라임이 말했다.

[설마, 김진하?]

목소리를 들은 진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설마 신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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