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왜 나를 이상하게 보지? 왜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허…….”
진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관리자를 보았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를 이상하게 보는 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항상 그랬어. 너나 다른 존재들 모두 나를 이상하게 봤지.”
그저 차원을 관리하기 위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차원을 관리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준 후 쓸쓸히 소멸을 기다리는 존재, 그게 관리자였다.
그의 모든 행동은 인간과 차원에게 맞춰져야 했으며 자유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게 노예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래, 일반적인 인간은 내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관리만 당하는 존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존재는? 인간 출신의 자격을 가진 자, 그리고 그밖에 다른 존재들까지.
모든 사실을 아는 존재들은 적어도 그를 이상하게 봐서는 안 됐다.
“바로 내가! 피해자란 말이다. 너희 같은 인간들이 아니라!”
그가 피해자이고 그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항상 모든 이들이 그를 가해자로만 보고 그를 나쁘게만 보는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네가 뭐가 잘못된지 모르겠어?”
진하가 어이가 없다는 듯 관리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네 말대로 너는 노예고, 네 인생이 참 저주스럽다고 치자. 그럼 그걸 누가 만들었지?”
결국 이 모든 걸 만든 건 창조신이었다. 만약 규칙에 불만이 있다면 따져야 하는 대상은 창조신이어야 하지 인간이 돼서는 안 됐다.
지금 관리자가 하는 행위는 그저 자신의 윗사람에게 대들지 못하기에 아랫놈들에게 화풀이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결국 너는 무서워서 너보다 약한 놈들을 괴롭히는 나쁜 놈일 뿐이야.”
진하의 말에 관리자가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래, 내가 잘못했다.”
갑작스런 고백에 진하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고 관리자는 남은 말을 마저 내뱉었다.
“고작 수십 년밖에 못 사는 인간이 수백 년간 겪고 수천 년 동안 겪을 고통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지.”
애초에 그의 생각을 이해해 줄 똑똑한 존재 따위는 없었다. 아니, 없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 그도 멍청한 건 똑같았다.
그냥 보이면 죽이면 되고 다 없애면 되는 간단한 일을 너무 질질 끌어버렸다.
“그냥 죽어라.”
그 말과 함께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관리자. 하지만 그가 공격하려던 그때 그를 향해 거대한 벼락이 들이닥쳤다.
“말이 너무 많아.”
“기수야?”
진하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기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이는 출력은 그동안 그가 보았던 출력과 궤를 달리했다.
“너…… SSS급 찍었냐?”
진하의 질문에 이기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것도 있고 무기도 얻기도 해서.”
“무기?”
진하는 그제야 이기수의 손에 끼인 장갑을 볼 수 있었다. 갈색빛을 띠고 있는 장갑은 연신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이거 아스트라페야.”
“그건 창이잖아.”
분명 제우스가 들고 있었을 때 창이었었다. 그런데 장갑이라니…….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일단 저것부터 해결하자고.”
이기수의 턱짓에 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격을 맞은 관리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둘을 바라봤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지.”
* * *
“흠…… 장난 아니네.”
리처드가 다른 슬라임들을 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 지금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콰앙! 쾅!
콰르릉!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지듯 격렬한 싸움은 SSS급인 그조차 끼어들기가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게 고작 대신 맞기라니…….”
처음에는 그 역시 관리자를 죽이기 위해 같이 뛰어들었다. 정확히는 그의 분신들 중 하나가 뛰어들었다.
SSS급이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확실히 그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서 같이 싸울 수는 있긴 했지만 얼마 안 가 그의 몸은 완벽하게 찢겨졌다.
“이럴 때마다 슬라임이라는 게 참 슬프단 말이에요.”
그가 이 싸움에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몸의 강도, 싸움이 얼마나 격렬한 건지 그의 몸은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분해가 되어 버렸다.
‘뭐 그렇다고 아예 도움이 못 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타다닥!
그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관리자에게 공격당할 위기에 처한 이기수를 대신해 분신 하나가 공격을 받아 냈다.
“문제는 이렇게는 효율이 안 좋은데 말이야…….”
일단 한 번 공격을 맞으면 강제적으로 전투에 참여해야 했다. 그 결과 지금 그에게 남은 분신은 총 둘, 이제 저 공격을 막아 줄 수 있는 것도 겨우 두 번뿐이었다.
‘거기다가 창조주가 너무 강해.’
그래도 나름 이 정도를 모았으면 도망치던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예상보다 창조주가 너무 강했다.
뭐,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창조주라면 확실히 강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시간은 얼추 맞췄네요.”
리처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머지 분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분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새끼를 꼭 도와야 해?”
“악감정은 버려두지? 신지하, 지금 중요한 건 우리의 생존이야.”
리처드의 말에 신지하가 잠시 투덜거리다가 관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공격을 막아 내고 있던 관리자는 달려드는 신지하를 보며 혀를 찼다.
“이 미천한 것이 짜증나게……!”
안 그래도 슬라임들만 아니었으면 금방 끝났을 전투를 계속하고 있어 짜증이 미친 듯이 솟았던 관리자는 가까이 다가온 새로운 슬라임을 보며 손을 뻗었다.
“손을 뻗어 주면 나야 고맙지.”
신지하는 자신을 공격하는 관리자의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 관리자는 너무나 쉽게 당한 신지하의 모습에 눈을 살짝 꿈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꾸물, 꾸물, 꾸물
가슴이 꿰뚫린 신지하의 몸이 액체화되더니 관리자를 휘감았다.
관리자는 자신을 휘감는 신지하를 보며 코웃음 쳤다.
“고작 생각한다는 게 그것이냐?”
슬라임의 산성, 확실히 강력한 공격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고작 슬라임이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그에게 이런 산성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뭐, 그건 걔 한 명일 때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리처드가 웃으며 발을 굴렀다.
쿠르르!
그와 동시에 관리자 밑의 땅이 꺼지며 드러나는 초록빛 호수.
“바이바이.”
관리자는 신지하에게 둘러싸여 그대로 초록빛 호수에 빠졌다.
“미쳤군.”
전투를 하던 진하가 초록빛 호수를 보며 질린다는 듯 말했다. 뭘 준비한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설마 슬라임으로 이루어진 호수라니…….
“관리자도 아마 죽지 않을까? 저거 완전히 특제인데.”
리처드가 웃으며 말했다. 저 호수를 이루고 있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슬라임의 한 마리분의 농축액이었다.
바로 빠져나온다면 모를까 신지하에 의해 한동안 붙잡힐 테니 그 시간이면 충분히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넌 아직 관리자를 모르네.”
진하가 혀를 차며 칼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진하의 말이 이루어지듯 초록색 호수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촤악! 뚝! 뚝!
치이익!
땅을 태우며 걸어 나오는 관리자,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리처드를 쳐다봤다.
“고작 슬라임 따위가…….”
다행히 아예 타격이 없는 건 아닌 건지 온몸 곳곳이 녹아내린 관리자, 진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설마 준비한 게 저게 다는 아니겠지?”
“아니, 다인데?”
“뭐?”
진하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 관리자가 미리 올 것도 알고 그와 이기수까지 끌어들였으면서 고작 준비한 게 저 함정 하나뿐이라니…….
“저거면 충분하거든. 그치 애들아?”
부글부글, 촤아악!
리처드의 말에 맞춰 솟아오르는 초록색 물기둥, 그 모습에 진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말했잖아 저거 하나하나가 슬라임 농축액이라고.”
슬라임 농축액이라는 소리는 결국, 그의 몸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자 또 다른 분신인 슬라임들이 그의 적인 관리자를 놓치는 짓을 할 리 없었다.
촤악!
다시 한번 관리자를 덮치는 초록빛 물기둥, 물기둥은 관리자를 덮치자마자 구로 변하며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때? 이 정도면 아버지도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뭐…… 겉모습만 봐서는 그럴지도?”
아까 빠졌을 때만 해도 몸의 곳곳이 녹아내렸으니 확실히 저 상태라면 치명타이긴 했다.
‘근데 불안하단 말이지.’
고작 이 정도로 강했다면 그와 이기수가 여지껏 개고생한 이유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엄청 강하기는 했다. 그와 이기수만으로는 감당이 잘 안 됐으니까.
이게 게이트 보스를 잡은 후 약화된 거라고 치면 확실히 이해할 만도 했다.
하지만…….
“너무 쉬워.”
이 정도로 쉽다면 사서가 애초에 경고를 할 리 없었다.
꿀럭!
그리고 그 순간 일렁이는 초록빛의 구, 그 꿀렁임에 리처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꿀럭! 꿀럭!
“다들 나와!”
계속되는 꿀렁임에 리처드가 소리쳤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초록빛 구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축이라도 되듯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안 그래도 부족한 인과율을 이렇게 채워 줘서 고맙구나, 아들아.”
온몸에 구멍이 나 있는 관리자가 무표정하게 작게 압축된 초록색 구슬을 입 안에 넣었다.
콰직!
그가 구슬을 입에 물자 구슬은 사탕처럼 부서지더니 이내 그의 목 안으로 넘어갔다.
치익! 치이익!
그러자 회복되기 시작하는 관리자.
콰르릉!
“이것도 이제 질리네.”
관리자가 자신을 덮치는 전격을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이 정도 인과율이면 잠깐은 힘을 쓸 수 있겠지.”
“뭣…….”
진하가 미처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목이 잘린 리처드, 관리자는 리처드의 머리를 붙잡은 채 말했다.
“너부터 흡수했으면 일이 쉬웠을 텐데 깜빡하고 있었군.”
“하…… 누가 창조주 아니랄까 봐. 나를 흡수해?”
“흡수가 아니라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렴.”
관리자는 그 말과 함께 리처드를 흡수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우리를 죽이지 못한다고.”
어느새 나타난 건지 슬라임의 모습으로 나타나 관리자에게 말을 거는 리처드.
관리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너의 본체가 어딨는지 모를 것 같으냐?”
“뭐?”
“아니, 본체를 찾을 필요도 없지.”
그 말과 함께 관리자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슬라임을 제외한 다른 곳에 숨어 있던 슬라임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리처드는 말단에서부터 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관리자의 의식을 느끼고 다급히 그에게 먹힌 슬라임들과의 연결을 차단했다.
“어리석구나.”
하지만 연결은 끊기지 않고 의식은 계속해서 그의 본체 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에휴, 그럼 그렇지.”
리처드는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그리고 모든 슬라임들에게 명령했다.
‘자폭해.’
* * *
콰과광!
진하는 눈 앞을 가리는 폭발과 함께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붙잡고 끌어내리는 걸 느꼈다.
―저항하지 마.
순간 들리는 리처드의 목소리에 저항하려던 진하는 이내 힘을 뺐다.
이놈도 적이긴 했지만 지금 상태에서 별 헛짓거리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맞았던 것인지 그를 끌어내린 슬라임은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기분이네.’
커다란 동굴 같은 곳에 미끌미끌한 바닥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게 느낌이 딱 워터 슬라이드였다.
“이기수도 같이 가는 중이지?”
―어.
“원래 이럴 생각이었어?”
아까의 폭발, 진하가 보기엔 분명히 자폭이었다. 미리 준비한 초록 호수도 그렇고 이 공간도 그렇고 이럴 때를 대비해 만든 게 분명했기에 묻는 질문이었다.
‘하기야 나야 좋긴 하지.’
지금 당장 관리자와 붙으면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하물며 관리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인과율을 쓰게 될 걸 생각하면 이 방법이 최고긴 했다.
―혹시나 하고 준비한 거지 원래 이럴 생각은 없었다.
진하를 끌고 가던 리처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