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86화 (186/202)

#186

“몰골이 말이 아니네.”

진하는 독기로 가득한 마이크를 보며 말했다. 물론 독기를 보이는 건 마이크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지침과 허탈함이 가득했다.

“꽤 빡셌나 보네.”

“설마 슬라임들이 나가자마자 공격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아니, 수가 너무 많았어요.”

마이크의 말에 진하는 자신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됐다는 걸 알려 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신, 다른 말을 그에게 전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부터 듣죠.”

“슬라임과 만났고 SSS등급 수준의 놈을 잡았다는 게 좋은 소식이야.”

진하의 말에 마이크의 얼굴에 화색이 띠었다. SSS등급을 잡았다는 말은 허풍 같았지만, 어찌 됐든 강력한 놈을 잡았다는 건 사실이니까.

‘안 믿네.’

하기야 마이크의 입장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고작해야 미국의 SS급 헌터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도 마이크는 그를 SS급으로 생각하거나 아무리 높아도 SSS급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상처가 거의 없이 SSS급을 잡았다는 걸 믿지 않는 거겠지.

“뭐, 믿든 말든 그건 네 맘이고 이제 나쁜 소식이다.”

“나쁜 소식이 뭐죠?”

“너희들이 돌아갈 공간은 없어.”

“네?”

“너희들이 나온 시점에서 은신처는 모조리 없어졌다고.”

“우리 은신처가요? 어째서…….”

“애초에 쓸모가 다했으니까.”

은신처의 위치를 슬라임이 모를 리 없었다. 그냥 함정용으로 통제하고 있었을 뿐인 거지. 그리고 효용을 다했으면 버리는 게 당연했다.

“참고로 내가 말하는 돌아갈 공간은 은신처 하나가 아니라 모두야.”

은신처 한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둘은 이 전쟁에 참여를 안 했다. 거리가 너무 멀었으니까.

하지만 슬라임의 태도로 보아 분명 써먹을 때로 써먹었으니 거기까지 없앴을 게 분명했다.

“아니, 무슨…….”

“여기서 죽으나 사나 둘 중 하나라고.”

진하의 무덤덤한 말에 마이크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이곳으로 온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죽었다는 거 아닌가…….

“너 때문에 죽은 건 아냐.”

“네?”

“어차피 니들은 언젠가 잡아먹힐 운명이었다고.”

더 이상의 말을 하기 귀찮은 진하는 마이크에게 쪽지 하나를 넘겨줬다.

“이 번호로 전화를 하면 돼. 그럼 니들 위치가 자동으로 찍힐 거야.”

“그럼 그곳으로 폭격이 떨어지는 겁니까?”

“뭐 그렇지. 너희들 역할은 위치를 찍고 숨어 있는 거야. 알지?”

“네.”

그들의 역할은 도시 주변으로 흩어져 외각으로부터 약 500m 지점의 위치를 전달하는 것.

“너희들이 제대로 보내야 도시로 폭격이 안 떨어진다.”

“알고 있어요.”

“그럼 움직여.”

이들에게 쉴 시간 따위 줄 생각은 없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기도 했고 괜히 시간을 줘 봤자 우울해할 게 뻔하니 지금 움직이는 게 제일 최적이었다.

진하의 명령에 마이크가 떠나고 진하는 멍하니 도시를 바라봤다.

“이제 저곳이 곧 불바다가 되는 건가?”

앞으로 몇십 분 후면 저곳으로 폭격이 미친 듯이 쏟아질 것이다.

그다음은 도시 주변으로 주기적으로 폭격을 퍼부어 외부의 슬라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고.

“겨우 그것 가지고 되겠어요?”

“아니, 솔직히 안 되지.”

진하는 어느새 옆에 나타난 작은 슬라임을 보고 말했다. 이놈은 도대체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적에게 왜 이리 계속 나타나는 건지…….

“그러는 너는 대비하지 않아도 되겠어?”

“여기서 뭘 더 준비할까요. 어차피 말 들어 보니까 몇 분 후에 시작인 것 같은데.”

“그러는 너는 이곳저곳에서 도청하고 있던 주제에 여유롭다?”

진하의 말에 슬라임이 자신의 몸을 통통 튀기며 말했다.

“어차피 그런 폭격에 죽는 건 이런 작은 몸체들이라 상관없어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굳이 쓸모없는 임무를 주네요?”

“쓸모없지는 않아.”

“거짓말 마세요. 그까짓 위치 정보, 위성으로 알 수 있잖아요?”

“정확하진 않지.”

사실 슬라임의 말이 맞긴 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하면 좋은 거였지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정도의 그런 건 아니었다.

‘원래는 소모품으로 쓰려고 했는데 말이지.’

원래 그들을 이용하는 방법은 대충 폭격 위치를 찍게 시킨 다음 숨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슬라임이 오는지 확인하게 시키고 폭격을 유도하는 역할이었다.

그게 미사일의 소모도 적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신 그만큼 그들의 목숨이 위험하기는 했다. 수많은 위치 정보를 보내던 중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폭격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슬라임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역할이었으니까.

‘근데 왜 그랬을까…….’

은신처가 다 사라졌다는 말을 전한 후 마이크의 표정을 보며 진하는 자신도 모르게 명령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쯧,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 건지…….”

“그렇게 복잡하면 저랑 하나가 되면 된다니까요?”

“개소리 집어치워.”

진하는 옆에 있는 슬라임을 손으로 뭉갰다.

적에게 공격받을 것을 알면서 여유로워하는 슬라임이나 제대로 계획을 짜지도 못하고 허술하게 일 처리 중인 자신이나 이번 전투는 뭔가 이상한 게 많았다.

‘이래선 마치 내가 싸우기 싫어하는 것 같잖아.’

* * *

쾅! 콰쾅! 쾅!

“시작이네.”

진하는 도시 위로 떨어지는 폭격 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저 폭격이 끝나면 진하가 해야 할 것은 저 도시의 중앙으로 돌입하는 거였다.

콰르릉! 파지직!

그때 미사일이 떨어지는 도시 위로 커다란 번개가 내리쳤다. 그 모습에 진하는 황당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새끼가 여기서 왜 나와?”

저 번개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온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가 온다는 사실은 전혀 듣지 못했으니까.

“모태빠!”

진하는 재빨리 모태빠를 소환해 번개가 내리친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하늘 위에서 연신 번개를 내리꽂고 있는 이기수가 보였다.

“너 왜 여기 있냐?”

“어? 너 잘됐다.”

진하를 확인한 이기수가 다급히 번개를 다른 쪽으로 쏘아내 진하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진하는 그런 이기수를 재빨리 모태빠 위로 받아 냈다.

“하하, 너무 빨리 내려서 내려가는데 애 좀 먹고 있었는데 다행이네.”

웃으며 말하는 이기수를 보며 진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계속 번개를 내리꽂던 게…….”

“감속 좀 하고 있던 거지.”

“아니, 그걸 떠나서 왜 온 거야? 아니다. 들을 필요도 없다. 안 그래도 혼자서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다. 가자.”

진하는 먼지가 거의 가라앉은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에 이기수가 진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파직!

순간 진하의 몸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전격, 갑작스런 전격에 진하가 이기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는 짓이냐?”

“흠…… 뭔가 이상한 건 딱히 안 느껴지는데. 아니다. 가자.”

알 수 없는 이기수의 행동에 진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한 뒤에 모태빠를 시켜 폭격이 떨어진 도시의 중앙으로 내려갔다.

“을씨년스럽네.”

땅에 내려선 이기수가 짧게 평했다. 확실히 그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단순히 폭격에 도시가 부서져서만은 아니었다.

폭격이 쏟아졌다면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의 시체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긴 슬라임들한테 모두 잡아먹힌 지 오래야.”

“그래 보이긴 한다. 시체 조각조차 안 보이니까.”

그저 보이는 거라곤 부서진 건물들과 불타는 자동차들 뿐이었다.

짝짝짝!

“휘유, 덕분에 기껏 모은 슬라임이 대다수가 날아갔네요.”

진하는 박수를 치며 다가오는 슬라임, 아니 리처드를 보며 혀를 찼다.

“아까 같은 놈들이 꽤 많네?”

“한 개체에 모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된 거지 만드는 건 주 자아만큼 만들 수 있거든요.”

리처드는 또 다른 자신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존재는 총 5명, 모두 SSS급 수준의 개체였다.

“그나저나 이제 말해 줄 때 되지 않았어?”

“뭘 말이죠?”

“너 나한테 뭔 짓을 했냐?”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계획을 알아도 여유로워, 그렇다고 나를 습격할 마음도 없어 보여.”

솔직히 말하자면 진하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함정이니까 뭘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딱히 큰 문제는 못 느끼고 있었다.

‘이기수가 와서 다행이지.’

이기수가 진하를 보자마자 한 일과 행동. 그건 자신을 걱정함과 동시에 그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솔직히 지금 뭐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거든? 그러니 솔직히 말하지?”

“전 한 게 없습니다만? 본인도 못 느끼는 이상한 점을 왜 저한테 묻는데요?”

“네가 뭔 짓을 했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기수가 계속해서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리 없었다.

“그리고 고작 준비한 게 SSS급 5개체 정도가 끝은 아니겠지?”

고작 그런 걸 준비한다고 해서 진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번거로워지는 것일 뿐.

“뭐 보통은 그렇죠? 아무튼 고마워요. 덕분에 생존율이 올라갔네요.”

“뭐?”

진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슬라임은 이미 진하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도 버러지 같은 짓을 했구나.”

어느 순간 그들 사이에 나타난 백발의 남자, 진하는 남자를 보며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꼈다.

‘누구지?’

그들의 감지망에도 걸리지 않고 아주 고요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자는 진하와 슬라임을 보며 작게 웃었다.

“고작 이런다고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적어도 생존율은 올라가지 않겠어요? 아버지?”

아버지, 슬라임이 아버지라고 칭할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관리…… 자.”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백발의 남자가 진하를 보며 말했다. 아주 여유로운 모습, 그 모습에 진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를 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나타났냐고? 왜 나는 너희들의 예상을 깨면 안 되나?”

꼭 게이트 보스를 모두 죽여야만 그가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한다면 그는 사실 스스로 나올 수 있었다.

그만큼 수많은 페널티를 받겠지만.

“뭐, 이런 점은 내 창조물에게 고맙긴 하구나. 네가 게이트를 싹 비워 준 덕에 좀 더 나가기 쉬웠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관리자의 말에 진하가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슬라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지상에 올라오려고 게이트 하나를 통째로 없앨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게이트?”

“네, 제3 게이트, 미국 게이트는 사라진 지 오래예요.”

진하는 갑작스러운 정보에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는 것을 느꼈다. 게이트가 없어지다니?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관리자는 뭐지?

“정신 차려.”

옆에 있던 이기수가 진하를 건들며 말했다. 그의 말에 진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고민하면 안 되는 상황이긴 했다.

“참, 재밌단 말이야. 이런 변방 차원에 자격을 가진 놈들이 두 명이나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관리자는 재밌다는 듯 진하와 이기수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진하와 이기수가 전투를 준비했다.

“후,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관리자는 그 말과 함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죽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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