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76화 (176/202)

#176

“시험?”

이기수의 질문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아스트라페는 단순히 받았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을 텐데?”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가공이나 절차를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말은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 누굴 평가한다는 말, 그렇다면 그걸 평가하는 건 누구지?

“널 평가하는 건 아스트라페 그 자체다.”

“이 창이?”

“그래, 그 창은 자아를 가진 창이거든.”

이기수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건에 자아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아티팩트에는 자아의 자 자도 없었으니까.

거기다 설사 자아를 가질 수 있다 한들 이건 진품이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 신들 역시 복제품인데 물품이 진품일 리 없었다.

그런데 고작 복제품에 자아가 있다는 건 더더욱 납득하기 힘들었다.

“일일이 궁금증을 해소할 만큼 시간이 있는 건가?”

헤라클레스의 말에 이기수는 생각에 빠졌던 정신을 차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여러 의문점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질 때가 아니었다.

대충 상황이 끝났음을 인지한 헤라클레스는 몸을 돌려 나무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기수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바로 보인 것은 깨끗한 물로 이루어진 호수였다. 너무 투명해 깊이조차 짐작하기 힘든 그런 호수였다.

“이건…….”

“신들의 호수, 간단히 말하면 정수로 이루어진 호수다.”

“정수?”

“모든 걸 씻어내리는 공간이지. 이곳에 들어가면 모든 상처와 저주가 치료되지.”

헤라클레스의 말에 이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움직이지만 어색한 느낌의 팔. 그의 말대로라면 이 팔 역시 고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스트라페의 시험은 멀쩡한 상태로도 버티기 어렵다. 창과 함께 들어가라.”

“고맙…… 다.”

비록 적이지만 어찌 됐든 그에게 기회를 준 존재였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단순히 완전한 회복을 떠나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고마워하지 마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헤라클레스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기수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호수로 들어갔다. 무척이나 차가울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호수의 물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리고 곧이어 몸속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기수는 팔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여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치됐어.’

파직, 파직!

순간 전격을 튀기기 시작하는 아스트라페. 그 모습에 이기수는 시험이 시작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콰르릉!

벼락이 내리쳤다. 아니, 벼락이 내리친 게 아니라 그저 이기수가 감전되면서 머릿속에서 벼락 소리가 울렸을 뿐이었지만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 커다란 벼락이 내리친 것으로 느껴졌다.

콰릉! 콰르릉!

연속으로 내려치는 벼락. 이기수는 몸 속에 벼락이 내려칠 때마다 기억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걸 느끼며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능력을 사용해 전격을 몸에 둘러 아스트라페의 전격을 최대한 주변으로 흩어 버리고 아스트라페의 전격 역시 그의 몸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자신의 전격으로 압박했다.

‘됐다.’

가까스로 주기적으로 정신이 끊기는 것을 막은 이기수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이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 들어가면 모든 상처가 치료되는 곳이다.

이기수는 헤라클레스가 어째서 이곳에 창을 들고 들어가라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단순히 치료가 아니라 시험을 위해서 호수에 이기수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만약 단순히 몸만 회복하고 나와서 시험을 보았으면 곧바로 죽었겠지만, 호수 안에서 시험을 치루고 있기에 저항을 할 수도 있고 멀쩡한 거였다.

‘빚을 졌네.’

이 정도면 단순히 고마움을 넘어서 빚을 진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가 인간들을 죽이는 신이었기에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은혜는 은혜였다.

까득!

‘그렇다면 적어도…….’

이기수는 자신의 출력을 미친 듯이 높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쓰는 순간 바로 리타이어해 버릴 수준으로 출력을 높여 버렸다.

원래라면 이런 짓은 하면 안 됐다. 본인의 순간 출력을 넘긴다는 건 유리로 이루어진 통로에 한계 이상의 물을 통과시킨다는 거였으니까.

넘기는 순간 내보낸 물도 쓰지 못하고 통로인 몸도 부서져 버리는 미친 행위였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그 통로를 넓혀 주는 스킬을 가진 레이나 같은 헌터를 부러워했었다.

그 역시 전기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제어 쪽에 가까운 능력이라 거대한 힘을 더욱 쉽게 다룰 수는 있어도 순간적인 출력은 약했기 때문이다.

‘된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깨지려는 몸을 호수가 억지로 회복시키는 덕에 평소라면 내지도 못할 만한 출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저 버티기만 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아스트라페의 전격을 조금씩이나마 압도할 수 있었다.

이윽고 오랜 시간이 지나 아스트라페의 전격을 모두 창안으로 몰아넣게 된 이기수는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이군.”

그 순간 귓가에 들리는 헤라클레스의 목소리. 무슨 소리인가 하는 의문도 잠시, 완벽하게 가뒀다고 생각한 아스트라페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순식간에 다시 영향력을 넓히며 이기수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아스트라페, 이기수는 자신을 덮쳐 오는 전격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미, 밀린다!’

아니, 밀리는 게 아니었다, 순간 밀린다고 생각했으나 정확히는 아스트라페의 전격이 기수의 전격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물에다가 물감을 풀 듯 이기수의 전격을 잡아먹으며 번져가는 아스트라페의 전격. 전격은 1분도 되지 않아 이기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푸스스슥

‘이게 시험이었어.’

이기수는 타들어 가는 몸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그가 시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고작 준비단계일 뿐이었었다.

진짜 시험은 이것, 그의 전격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전격이었다.

‘안 돼!’

이기수는 타들어가는 몸을 보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호수의 재생속도가 몸이 훼손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바람에 그의 몸이 겉부터 타고 있었다.

그나마 한 번에 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전격을 생성하여 조금씩이나마 아스트라페를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시간 벌이일 뿐. 얼마 되지않아 그의 온몸이 이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끝인가?’

<스킬: 회광반조가 발동합니다.>

<몸을 최상의 상태로 회복시킵니다.>

그 순간 발동하는 스킬, 시야가 회복되며 눈앞에 놓인 메시지를 보며 이기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여지껏 힘을 짜내고 기절하며 죽어 가는 도중에도 발동하지 않았던 스킬이 지금 발동되어 버렸다.

그것도 희망 따윈 거의 없는 상태에서.

‘30분인가?’

스킬이 지속되는 시간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그저 온몸이 타들어가는 걸 느끼며 천천히 죽게될 뿐이었다.

―너의 신념은 지키는 거야.

과거 진하가 해 줬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을 지킨다는 신념, 그걸 통해 그는 성장했고 강해졌다.

하지만.

‘내가 지켰던가?’

그는 끝내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지킨다고 말만 하고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외면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신념이 정말로 지키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패했어.’

결국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처음 스킬을 각성했을 때부터 진하를 만나 변하고 강해졌다고 생각했던 최근까지 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힘만 조금 강해졌을 뿐, 여전히 약했으며 지킨다는 말 이외에 실제로 지킨 게 하나도 없었다.

까득!

이기수가 쥐고 있던 아스트라페를 으스러질 듯이 잡았다. 그리고는 아스트라페의 전격을 더욱 세밀하게 느끼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여지껏 변화한 게 없으며 지킨 게 아무것도 없었다. SS급 헌터라는 칭호만 빛 좋은 개살구처럼 가지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아니 딱 한 번만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신념이라는 것을!

* * *

“실패인가?”

헤라클레스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스트라페의 시험이 그렇게 쉬웠다면 수많은 신들이 있는 올림포스에서 그와 제우스만이 창을 다룰 수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아쉽군.’

아스트라페의 첫 방출을 억제했을 때만 해도 아주 조금 기대했었다.

첫 방출조차 제대로 버티지 못한 존재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단계를 아무리 도움을 줬다지만 인간인 이기수가 통과했으니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호수의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세 번째로 아스트라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컸던 건지 2차 단계가 시작되면서 이기수는 순식간에 아스트라페의 노란 전격에 휩싸였다.

아마도 얼마 되지 않아 전격에 모두 타버려서 재가되겠지.

“너를 잊지 않겠다.”

헤라클레스는 이기수를 위해 조용히 기도했다. 죽었지만 사람을 살리고 친구를 살리려는 그의 마음은 종을 떠나서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했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묵념한 헤라클레스는 아스트라페를 회수하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직! 파지지직!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는 노란 전격들.

“어째서?”

그가 묵념한 시간은 자그마치 10분이 넘어갔다. 원래대로라면 이기수는 이미 완전히 재가 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묵념 내내 들렸던 전격조차 그저 아스트라페가 날뛰는 전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전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계속해서 방전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짓이기려는 듯 전격이 무언가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런 미친…….’

헤라클레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며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죽었다고 생각한 이기수가 살아남아 포기하지않고 아스트라페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0에 한없이 가까운 불가능을 이겨 내며 오히려 압도해나가는 현상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기…… 적.”

한 단어밖에 없었다. 모든 인간들이 신에게 빌었던 소원이자 현상인 기적, 이 상황을 온전히 표현할 말은 오직 그 단어뿐이었다.

콰앙!

쏴아아아!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은 물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빗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

저벅, 저벅

무표정하게 호수를 걸어 나온 이기수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은혜는…… 갚을게.”

스르륵

툭!

그 말과 함께 쓰러지는 이기수. 헤라클레스는 쓰러지려는 이기수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영웅의 탄생이군.”

* * *

“역시나 그대로네.”

게이트 밖으로 나온 진하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세뇌당한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세뇌를 당하지 않은 사람일까.

“역시 가장 좋은 건 바로 한국으로 가는 거겠지.”

운이긴 했지만 정말로 너무나도 쉽게 미국의 16층 게이트 보스를 잡아버렸다. 즉, 할머니와 사서가 말한 조건을 채웠다는 거였다.

문제가 있다면 슬라임들이겠지만 게이트 보스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슬라임을 다루는 놈들은 관리자가 만든 게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관리자와 상관도 없다는 거였다. 즉, 관리자를 잡는 데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소리. 이러한 일은 다른 나라의 협회에 알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애초에 단체로 보이는 놈들을 잡는 건 내가 아니니까.’

상대가 지능을 가진 몬스터 무리이든 세뇌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든 그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진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관리자의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게이트 폭주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거였으니까.

‘솔직히 여기가 내 나라도 아니고.’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가 상대는 아무리 강해도 슬라임, 솔직히 정 안되면 미사일을 퍼붓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정말 아쉽지만 유럽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전력의 보존이었으니까.

끼이익!

그때 진하의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내려서는 남자 한 명.

“오랜만이네요.”

“잘 다녀오셨는지요.”

윤휘성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진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한국으로 가는 표를 끊어 줄 생각 있나요?”

진하의 물음에 윤휘성은 웃으며 진하를 바라보았다.

‘젠장 일이 꼬였군.’

아무래도 일이 뜻대로 되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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