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75화 (175/202)

#175

“저건…….”

갑작스럽게 나온 새의 모습에 신지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새라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주작이었나?’

코드명 주작, 진하가 다루는 소환수로 공격도 가능하지만 주로 이동 수단으로 쓰는 존재라고 알고 있었다.

즉, 공격력이라고 해 봐야 겨우 A등급 헌터에서 S등급 사이의 애매한 존재라는 거였다.

“고작 그런 거나 불러서 뭘 하려는 거지?”

“그런 거?”

파지직 콰앙!

벼락이 내치더니 순식간에 헌터 한 명이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신지하는 침음성을 흘리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천둥새?”

“미안하지만 얜 천둥새가 아니야.”

‘천둥새를 집어삼켰지만.’이라는 말은 삼켰다. 어차피 말해 줘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모태빠. 다 죽여.”

끼아악!

진하의 명령을 받은 모태빠는 날갯짓을 하며 헌터들을 향해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신지하 역시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저 새부터 죽여!”

그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헌터들, 곧이어 온갖 스킬들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아.’

불과 전격을 이용해 헌터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모태빠의 모습은 압도적이다 못 해 두려울 정도였다.

“하기야, 그렇게 카드를 처먹었는데 약하면 내가 억울하지.”

끼악!

진하의 말이 불만스러운지 모태빠가 소리를 질렀다. 진하는 그런 모태빠를 무시하고 객관적인 모태빠의 전력을 측정했다.

S급 여러 명과 SS급 두 명을 상대로 여유로운 걸로 보아 헌터 기준 SSS급, 대충 몬스터로 따지면 SS급 보스 몬스터 정도였다.

“아예 손실이 없는 건 아닌가?”

강하기는 했지만 천둥새보다 속성이 하나 더 많을 뿐 강함 자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존의 모태빠 역시 강했던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속성을 제외하고는 다 날라 갔다고 봐야 했다.

“너…… 뭔 짓을 한 거지?”

그때 멀리서 헌터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던 신지하가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진하는 놀라는 그를 보며 간단히 말해 줬다.

“뭐긴 뭐야 내 소환수지.”

“개소리 집어치워! 네 소환수는 저렇지 않았어. 거기다가 저 벼락은 천둥새잖아!”

당연히 천둥새의 벼락이었다. 진하가 카드를 사용해 모태빠를 베이스로 포식했으니까.

<융합: 두 개를 하나로 만든다. 이때 기준점이 되는 물질이나 생물을 정할 수 있다.>

<제한: 난이도에 따라 다른 카드의 소멸 필요. 성공 확률 변동.>

<무생물: 카드 2장, 생물: 카드 4장, 최소 성공확률 50%>

원래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했겠지만 천둥새가 전투 불능의 상태였기에 사용할 수 있었던 수. 이 수를 생각하느라 진하는 그 당시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었다.

그에게는 피해가 전혀 없다시피 한 상태로 천둥새도 처리하고 슬라임들도 처리했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천둥새를 먹이로 삼아 약간 애물단지였던 모태빠도 다시 쓸만하게 변신시킬 수 있었고 슬라임도 순식간에 박멸할 수 있었다.

끼아악!

“다 처리 했나?”

모태빠의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헌터들은 모두 재가 된 상태였고 신지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까득!

“네놈은 정말로 끝까지 내 일을 방해하는구나.”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방해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든 거야.”

“나중에 널 꼭 죽여 버리고 말겠어.”

“나중이 어딨어?”

진하의 말과 동시에 그를 휘감는 화염, 신지하는 아무런 비명도 없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모태빠는 진하에게 부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진하는 그런 모태빠를 만져 주며 말했다.

“고생했어. 들어가서 좀 쉬어.”

끼아악!

진하의 말에 대답한 모태빠는 그대로 포탈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으며 포탈이 닫힘과 동시에 진하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 시간: 10분>

<재소환까지: 100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10배였다. 슬라임을 잡을 때만 해도 설마 싶었는데 역시나 소환 시간의 10배 동안을 재소환하지 못한다는 제한이 걸려버렸다.

“하아, 뭐 어쩔 수 없나?”

아무리 아티팩트를 사용했다지만 애초에 천둥새가 그의 밑에 있던 몬스터도 아니었고 베이스가 되는 모태빠 역시 강한 개체가 아니었다.

솔직히, 소환형으로 바뀌었다는 장점이 생겼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 페널티는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래도 든든한 아군이 생긴 걸로 만족해야지.”

* * *

“음…….”

얕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눈에서 흐르는 피 한 방울.

“덕분에 분신이 꽤 날아갔군.”

분신이 날아가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덕분에 분열되어 있던 주 자아 중 하나인 신지하의 자아의 영향도가 내려가서 통합도가 올라갔으니까.

“SS급 소환수를 다루는 걸로 보아서 SS급 그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정보상 진하의 무력은 SS급이었지만 아무래도 더 상향시켜야 할 듯싶었다.

“지금으로선 무리겠어.”

지금의 무력도 SS급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SS급인 진하를 잡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 녀석을 잡아!]

“시끄러. 패배했으면 얌전히 있어.”

그동안은 서류 작업이나 일 처리가 좋아서 그를 외부로 표출했던 거지 이런 일에 신지하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표면으로 올라온 자신이 이런 일에 더 잘 맞았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우리의 몸을 조정한다. 이의 없겠지?”

[이의 없음.]

[나도]

[네 맘대로 해.]

신지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동의를 표했다. 동의를 받은 그는 이내 곧바로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우리 너무 많지 않아?”

[많나?]

[솔직히 5명은 많지.]

[근데 이것도 추리고 추린 거잖아.]

[…….]

역시나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자아가 나뉜 건 분신을 만들어 일을 나눌 때는 편할지 몰라도 하나로서는 좋지 않았다.

“이참에 우리도 이제 2, 3명, 아니, 이왕이면 1명으로 줄이자고.”

[굳이 그래야 돼?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난 찬성]

[난 반대]

[난 상관없어.]

“시간이 많이 남았던 건 창조주가 사라져서 그랬던 거고, 이참에 모두 통합하자.”

[아…… 싫은데.]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그 말은 무시했다. 어차피 이 부분은 언젠가는 할 일이었으니 지금 하는 게 제일 적기였다.

“그럼 자아는 천천히 통합하는 거로 알고 다른 분신들도 모으는 거로 한다?”

[얼마나 모을 거지?]

한 자아의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렸다.

“최대치로 통합하자.”

[100만 명이군. 그럼 헌터의 숫자는?]

“10만 명?”

[그것도 최대치군.]

자아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우선 통합 가능한 최대치로 흩어진 분신을 모으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상대할 수 있으니까.

“자, 그럼 나는 바쁘니까. 니들이 분신들한테 모이라고 해 놔.”

그의 명령에 스르륵 자아들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똑똑.

“협회장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비서가 들어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서류를 본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반려하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의 말에 비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 협회입니다. 이렇게 너무 많이 거절하는 것도…….”

“하아…… 비서 양, 자네 몇 년을 근무했더라?”

“약 6년입니다.”

“그럼 이제 그만할 때도 됐군.”

“네? 그게 무슨…….”

비서가 되묻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튀어나온 액체가 비서의 얼굴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비서는 버둥거렸지만 이내 얼마 되지 않아 축 늘어졌고 액체는 아주 천천히 그녀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모든 액체가 스며들자 죽은 것처럼 쓰러진 비서가 스르륵 일어났다.

“통합할까요?”

“아니, 너는 일단 제외.”

“그럼 평소와 같이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 자아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지금 주 자아는 협회장 맞으니까 그냥 협회장 이름으로 불러.”

“네, 미스터 리처드.”

비서는 그 말과 함께 들어왔던 문으로 나갔다. 비서가 나가고 혼자 남은 리처드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펜을 들었다.

일은 하기 싫었지만 아직 국가의 모든 인간을 감염시키지도, 통합시키지도 못한 상태에선 어찌 됐든 일이란 걸 해서 국가를 유지시켜야 했으니까.

사각, 사각

그로부터 한참 동안 협회장실에는 펜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 *

“이걸로 다 끝났군.”

헤라클레스가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수천에 달하는 묘지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이게 의미가 있는 거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기수가 헤라클레스를 보고 물었다. 그를 따라온 지 벌써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이기수는 헤라클레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유골이 있다면 모를까 그가 하는 행동은 그저 마을에서 물건 하나를 가져와서 땅에 묻고 돌에다가 이름을 새기는 것뿐이었으니까.

“물론이다. 나는 모든 올림포스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거든.”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너희 올림포스인들은 결국 제우스에게 다 흡수당한 거 아니냐고 묻는 거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런 건 인간인 너희들도 하지 않던가?”

“인간들이 죽는 건 흡수되는 게 아니잖아.”

“결국에 무로 돌아가는 건 다 똑같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이기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도저히 따질 구석이 없었으니까.

“네가 왜 그리 초조한지는 잘 안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그럼 아스트라페를 넘겨주는 건가?”

“그래야지.”

스릉

헤라클레스의 말에 묵묵히 헤라클레스를 바라보던 레이나가 검을 빼 들었다. 그 모습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한테도 죽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 말에 말없이 다시 검을 집어넣는 레이나.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가자. 너희들에게 보여 줄 게 있으니.”

“끝난 거야?”

“끝났으니까 일어나 잭.”

이기수가 잭의 물음에 대답하며 일어났다. 드디어 긴 기다림이 끝났다는 사실에 이기수는 그동안 초조했던 마음을 싹 날려 버렸다.

헤라클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을 잠깐 살펴본 다음 바로 앞에 있는 중앙 나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가 이곳이 왜 이리 황무지인지 말했던가?”

“제우스 때문이라며.”

“그래, 제우스 때문에 이곳이 이렇게 변했지.”

헤라클레스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회상했다. 초록색 풀로 가득하던 공간이 완전히 황무지로 변해있던 건 그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었다.

“그때 나는 도저히 뭘 해야 할지 몰랐었어. 혼자서 칩거하려고 했더니 집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더라고.”

“그것도 이미 들었어.”

잭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머쓱한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런가? 아무튼, 일단 무덤부터 만들자 생각하고 이렇게 무덤을 만들었지. 근데 이게 영 쉽지가 않더라고. 내가 언제 무덤이란 걸 만들었어야 말이야. 심지어 손 기술도 안 좋아서 비석 만드는 건 얼마나 어렵던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결국, 가만히 있던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지금 헤라클레스가 하고 있는 말은 무덤을 만들면서 수십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걸 또 들을 이유도 없었고,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하는 헤라클레스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결론은 이거야. 내 할 일이 이제 끝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

“어차피 넌 죽어.”

“그렇지, 너희들이 온 덕에 죽는다는 선택지가 생겼지.”

그 말을 한 헤라클레스는 등에 멘 아스트라페를 이기수에게 던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이기수는 깜짝 놀라 그가 던진 아스트라페는 허겁지겁 잡았다.

“내가 말했지? 너희들은 날 닮았다고.”

“갑자기 아스트라페는 왜…….”

“이제 모든 걸 끝낼 시간이니까. 이기수 너는 정말로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생각을 가지고 있나?”

갑작스러운 헤라클레스의 질문에 이기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

“그럼 따라와라. 아스트라페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시험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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