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73화 (173/202)

#173

“아스트라페를 준다고?”

이기수의 반문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목에 레이나가 검을 들이밀었다.

“같잖은 수작 부리지 말아라.”

인간을 제물로 힘을 회복하는 족속이었다. 인간을 이용해 더 강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기수를 보낸다는 건 절대로 말도 안 되는 행위였다.

“그럼 너도 따라오겠는가?”

“애초에 나는 이 제안을…….”

“저 헌터들 소중하잖아.”

“…….”

“너나 이기수라는 인간이나 둘 다 나를 닮았어. 그러니 잘 알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둘을 알기에 이렇게 제안하는 거다.”

헤라클레스의 말대로 확실히 이곳의 헌터들은 레이나에게 소중했다. 경중은 있을지언정 모두 유럽을 지키는 헌터였고, 독일을 지키는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많이 생존하고 강할수록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너의 말을 어떻게 믿지?”

“믿음?”

“그래, 네가 얌전히 죽어 줄 거라는 걸, 그리고 아스트라페를 줄 거라는 걸.”

이기수의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한 건 그에게 없었다.

그러기엔 그와 인간과의 골은 너무나 깊었고, 어떤 설득을 해도 그가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믿음을 줄 순 없지만 반대로 너 또한 믿을 수밖에 없지 않나?”

“난 그냥 너를 죽이고 그 창을 뺏어 가기만 하면 돼.”

“미안하지만 단순히 뺏는다고 해서 이 창을 쓸 수 있는 건 아냐.”

헤라클레스의 말에 이기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헤라클레스가 하는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믿음을 주지도 못하는 이런 존재의 말을 이기수는 과연 믿어야 할까?

‘후, 방법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하가 어떤 짓을 하고, 어떤 위험에 빠져 있을지 몰랐다. 진하는 항상 위험에 도전하는데 그가 물러설 수는 없었다.

“좋아, 수락하지.”

“아뇨, 미안하지만 당신이 수락해도 제가 수락 못 해요.”

레이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그녀 역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기수가 수락한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정 의심되면 너도 날 따라와라. 솔직히 너희 둘이면 충분하지 않나?”

“헤이, 미안한데 나도 낄 수 있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잭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레이나는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둘이서만 가도 충분히 살아남겠지만 상대의 홈그라운드라고, 나까지 따라가야 맞지 않겠어?”

“그렇다면 저도!”

“저도!”

잭의 말을 기준으로 같이 내려온 헌터들이 너도나도 가겠다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이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난 아직 수락한 적 없다고.”

“하지만 수락할 거잖아?”

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른 헌터들이면 모를까 여기에 있는 헌터들은 모두 S급 이상, 그녀와 오랫동안 싸워 왔던 동료였다.

그런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누구보다도 그들이 제일 잘 알았다.

‘마음이 너무 여려.’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게 그녀였다. 지금 이 상황만 해도 그녀의 자존심만 버리면 어떤 게 더 이득인지 알 수 있는 상황.

그녀가 이런 기회를 포기할 리 없었다.

“뭐, 그건 둘째치고 내 아래로는 올 생각 말고.”

“네?”

“너희까지 오면 짐이야. 너희는 올라가든지 아니면 여기서 대기해.”

잭의 말에 헌터들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나, 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그들이 보조 외에는 도움이 안 되는 건 자신들이 제일 잘 알았다.

“자, 정리 끝! 이제 됐지?”

잭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켰다.

‘허튼 생각이면 목숨을 걸고 죽여 줄게.’

“하…….”

헤라클레스는 몸을 일으켜 주며 속삭이는 잭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이렇게 협박을 받을 줄이야.

‘이게 얼마 만이지?’

그가 신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같은 편에게는 신뢰와 믿음을, 적에게는 공포를, 헤라클레스를 표현하는 건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보다 강한 존재에게 적의와 경고를 받았을지언정 약한 존재에게 협박을 받은 적은 전혀 없었다.

“왠지 더 마음에 드는군.”

“그래? 나도 네가 맘에 들었으면 해.”

“그랬으면 좋겠군. 날 따라오면 된다.”

헤라클레스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이 나왔던 통로를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걷는 세 사람.

“다녀올게!”

“다녀오면 재밌게 얘기나 풀어 주십쇼.”

“특산물 있으면 가져오고요!”

잭의 쾌활한 말에 다른 헌터들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쳐 주었다.

“유럽 헌터들이 다 저런 건 아닙니다.”

“뭐, 어때요. 전 좋아 보이는 걸요.”

이기수의 말에도 레이나는 쾌활한 잭이 부끄러운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잭이랑 연관됐다 하면 모든 헌터들이 왜 이리 나사가 빠져 버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그런 그들을 뭐라고 하지 않는 건, 말로는 쾌활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절대로 긴장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16층으로 향하는 통로로 들어서는 3명의 인간과 1명의 신, 그들은 통로로 들어선 이후부터 어떠한 말도 없이 묵묵하게 층을 내려갔다.

“다 좋은데 말이야.”

한참을 내려가던 중 헤라클레스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긴장하는 셋.

“어찌 됐든 내가 맨 앞이고, 등까지 보여 주고 있는데 살기만이라도 없애면 안 될까?”

“거절한다.”

“하하, 나도 모르게…….”

“참고하도록 하지.”

셋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이 모든 게 다 업보였으니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더이상 할 말이 없었던 헤라클레스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할 말이 없는 다른 사람들 역시 헤라클레스를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다 왔다.”

헤라클레스의 말과 함께 차례대로 통로를 빠져나가는 일행, 그들은 곧이어 드러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새파란 하늘과 커다란 나무,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황무지…….

“죽어버린 신들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몸을 돌린 헤라클레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 * *

“뭘 응원해야 하는 거지?”

진하는 알 수 없는 상황에 혼란을 겪었다. 분명 천둥새만 보면 천둥새가 죽기를 바래야 했다.

왜냐하면 저건 게이트 보스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슬라임을 응원하자니 너무나 찝찝했다. 딱 봐도 저렇게 통일되게 움직이는 슬라임의 모습은 진하가 이곳에 내려오며 맞닥트린 헌터들이 생각났으니까.

‘세뇌의 주범이 게이트 보스가 아니라…….’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는 게 관리자인 건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 건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서로 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싸우고 있으니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 것 같긴 했는데 도대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건지…….

[인간.]

그 순간 진하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 그 즉시 진하는 몸을 긴장시켰지만 주변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큭, 봐라.]

약간의 신음 소리와 함께 전달되는 소리에 그제야 진하는 목소리를 낸 존재가 천둥새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 나랑 거래하나 하지 않겠나?]

“거래?”

[그래. 크윽, 잠시만 기다려 봐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끼아악!

파지지지지직!

커다란 괴성과 함께 천둥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전격, 전격은 이내 결계를 이루며 퍼지기 시작하더니 약 200m의 지름을 가진 반구를 만들어 냈다.

쿠웅!

[인간, 너라면 들어 올 수 있겠지?]

천둥새의 지친 목소리가 진하의 귓가에 울렸다. 진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보니 천둥새의 몸은 물론 그를 노리기 위해 달려들던 슬라임들이 모조리 결계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뭔 소리인가 싶더니.”

계속해서 들어가려는 슬라임들을 태우는 전격을 보며 진하가 혀를 찼다. 이건 제안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천둥새만 노려 달려들지만 결계로 계속 막히게 되면 분명 그다음 타겟은 진하가 될 게 뻔했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후회’

스킬을 시전한 진하가 정면에 존재하는 전격의 결계를 향해 뛰어들었다.

‘상처를 내는 건 적게.’

결계를 많이 찢으면 그만큼 천둥새에게 부담이 갈 테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지이익

진하의 칼이 깔끔하게 결계를 내리그었다. 그리고 살짝 벌어진 틈으로 몸을 밀어 넣은 진하는 몸이 살짝 타는 걸 느끼며 겨우 결계를 통과했다.

[그래, 너라면 통과할 줄 알았다.]

“이상한 감상은 집어치우고 왜 불렀지?”

보아하니 거의 모든 힘을 짜내서 만든 결계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이런 결계를 만들지 않았을 리도 없었고 이렇게 몸에 비해 비좁게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성격이 시원해서 좋군. 좋아, 내가 할 말은 간단해 나와 계약하자.]

“거절하지.”

[뭐?]

“내가 미쳤다고 너네랑 계약을 하냐?”

안 그래도 저번의 실수로 인해 당한 게 있는데 계약을 할 리 없었다. 애초에 저번 역시 계약을 믿지는 않았음에도 당한 걸 생각하면 그냥 아예 안 하는 게 나았다.

[어째서 싫다는 거지? 너에게 막대한 힘을 줄 수 있다.]

“힘은 지금 보니 충분해. 애초에 지금 너보다 강한 게 나 아닌가?”

직접 붙어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진하가 상대해 온 놈들이 규격 외라서 그렇지 16층 게이트 보스와 붙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지금 천둥새는 지치기까지 했다.

[그럼, 저놈들은 어떻게 할 거지? 내가 잡히고 나면 그다음은 너다.]

천둥새의 말에 진하가 여전히 결계 내로 달려드는 슬라임들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는 그보다 한참이나 약한 존재들.

하지만 천둥새를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하는 놈들이라…….

“쯧, 관리자 새끼 또 뭔 짓을 한 거야. 아무튼 나는 네가 쟤랑 싸울 때 도망가면 돼.”

[그렇게 도망이 쉬웠다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겠지.]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래서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잠깐만!]

천둥새가 다급하게 진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진하에게 물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너에게 이득밖에 없을 텐데?]

“그래서 싫다는 거다. 이득밖에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관리자랑 연결된 존재랑은 더이상 계약 안 하기로 했거든.”

[관리자? 내 창조주 말인가?]

“오, 관리자를 알아?”

[자세히는 모른다. 그저 나를 만드시고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심었다는 정도밖에.]

천둥새의 말에 진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관리자라는 놈이 몬스터 관리를 못 하는 건지. 어떻게 된 게 16층 게이트 보스부터는 개나소나 다 관리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니, 아는 건 좋은데 그가 심어 놓은 인간에 대한 적의 또한 알고 억제하고 있었다.

‘그놈이 일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16층 이상의 놈들이 특별한 건지.’

알 수 없는 사실에 진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진하의 행동을 지켜보던 천둥새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말을 건넸다.

[걱정 마라. 나 정도면 그런 인간에 대한 적의는 억누를 수 있다.]

“이거 새라고 진짜 새대가리네. 아니, 적의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너희들을 못 믿는다고.”

[인간, 냉정하게 생각해라. 네가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우리가 같이 살아 나갈 수 있다.]

다급하게 말하는 천둥새. 결계가 아주 조금씩 흔들리며 줄어드는 느낌이 드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벌써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날 부른 건 진짜 도박이었네.’

“나는 내가 알아서 빠져나갈 테니까. 그리 알어.”

둘 사이에서 이득을 보든 아니면 도망을 가든 그건 진하가 선택할 영역이었다. 다 죽어 가는 천둥새의 얘기 따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진하는 괜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결계를 나가기 위해 칼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천둥새가 다급하게 외쳤다.

[네가 거절한다면! 난 너를 공격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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