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72화 (172/202)

#172

“좀 꺼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를 낚아챈 진하는 날아온 방향 쪽으로 암기를 다시 내던졌다.

“컥!”

암기가 다시 되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암기를 날렸던 여자는 그대로 암기를 맞고 고꾸라졌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하를 향해 달려들었으며 진하는 그런 그들에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미쳤네.’

이 정도면 세뇌를 넘어서 그냥 꼭두각시였다. 유럽에서 세뇌를 당한 것들은 적어도 작전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다.

광신도일지언정 후퇴와 작전이라는 걸 알았고, 때에 맞춰 달려들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달랐다. 그냥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달려들고 자신들이 불리하든 아니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계속해서 달려들기만 했다.

‘슬립’

휘리릭!

요요가 날아가며 다가오는 헌터들을 차례대로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헌터들, 진하는 그대로 돌아오는 요요의 줄 중간을 잡아채 반으로 접었다.

‘엘레베이터’

툭, 촤라라락!

요요가 순식간에 위쪽으로 빨려 올라감과 동시에 허공에 떠올랐던 사람들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쿵! 콰직, 콰지직!

기괴한 소리를 내며 머리가 터져 나가는 헌터들. 모든 헌터들이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한 시간은 안 오겠지.”

평균적으로 1시간 내외로 습격하는 걸 생각하면 이걸로 한동안 쉴 시간은 번 거나 다름없었다.

휘리릭! 착! 휘리릭 착!

진하가 요요를 몇 번씩이나 풀었다 감았다 하며 요요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도대체 왜 이리 자잘하게 오는 거지?”

게이트 깊숙이 들어가면 안 따라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그것까진 그럴 수도 있었다. 추적이야 어차피 지들 맘대로니까.

다만, 올거면 한 번에 오지 이렇게 자잘하게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시간 벌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자잘하게 오면 실전에서는 원거리 타격 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요요까지 이제는 익숙해지고 있는 판이었다.

‘진짜로 여기 아래에 뭐가 있나?’

기본적으로 게이트 보스면 특수한 방법이 아니면 자리에서 못 벗어나는 걸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었다.

16층에 사람들을 세뇌시킨 게이트 보스가 있다면 그냥 잡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것 치고는 막는 것도 애매하게 막아서 찝찝하다는 거였다.

정말로 16층에 게이트 보스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막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후, 그래도 이걸로 13층이네.”

모든 진실을 알기까지 이제 고작해야 몇 층 남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진하는 천천히 통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가고 나서야 보이는 작은 빛 하나.

쿠구궁!

캬아아!

통로 끝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진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통로 끝에 다가갈수록 비명 소리는 더욱 커졌으며 이내 통로 끝에 도착하자 보이는 풍경 하나.

파직! 파지직!

쾅! 콰쾅! 쾅!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주변을 날뛰면서 연신 번개를 내리치고 있었다.

‘천둥새.’

처음 보는 몬스터였지만 딱 봐도 16층 보스였다. 다른 층 보스라기엔 너무 강하고 위험하였고, 뿜어내는 기세가 지금까지 봐 왔던 16층 게이트 보스와 맞먹었으니까.

캬아아악!

콰과광!

다시금 비명을 지르는 천둥새, 그제서야 진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하디강한 천둥새. 본디 16층에 있어야 하는 새가 13층에 있었다.

그것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콰쾅!

진하는 눈앞에 떨어지는 벼락에 살짝 몸을 뒤로 뺀 다음 천둥새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노란 깃털을 가진 커다란 새, 그리고 그사이에 보이는 작은 초록색 물체.

“슬라임?”

슬라임이었다. 작디작은 슬라임들이 천둥새를 기어 다니면서 계속해서 천둥새를 괴롭히고 있었다.

파지직! 콰쾅!

꾸물, 꾸물

천둥새가 날갯짓을 하거나 천둥을 칠 때마다 수십 마리씩 없어지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 이상으로 계속해서 천둥새를 괴롭히는 슬라임.

진하는 어이없는 이 상황에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저 멀리서 초록색이 꿈틀하는 것을 발견했다.

꾸물, 꾸물, 꾸물

그가 발견한 것은 끝이 없는 슬라임의 물결이었다. 슬라임들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 대며 천둥새를 향해 날아갔으며, 그런 그들을 향해 내리치는 천둥새의 벼락까지.

“미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진하는 경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만 마리의 슬라임이 천둥새를 사냥하다니, 이건 먹이사슬을 완전히 위반하는 행위였다.

‘이게 말이 돼?’

고작 저급 몬스터에 불과한 슬라임이 천둥새를 몰아붙이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길에 채이는게 슬라임이고, 날개짓 한 번에 수백 마리씩 죽는게 슬라임이었으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까.’

천둥새의 벼락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슬라임들은 고작 몇십 마리밖에 죽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건 일반 슬라임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만약 일반 슬라임이 아니라 정말로 특수한 슬라임이라면 확실히 천둥새를 잡을 수도…….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특수한 슬라임이라도 천둥새를 잡는다는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기엔 슬라임과 천둥새 간에 격차가 너무 심했다.

1층짜리 몬스터와 16층짜리 게이트 보스와의 격차는 그만큼 아무리 특수한 경우라도 좁힐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격차였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진하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 * *

번쩍

“흠, 결국은 들켰네?”

눈을 뜬 신지하는 짧게 혀를 찼다. 이왕이면 천둥새와 만나게 하기 전에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필이면 김진하여 가지고.”

게이트에 내려간 헌터에 대한 정보를 너무 뒤늦게 알아채 버렸다. 김진하인걸 알았다면 이렇게 조금 조금씩 보내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보냈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 늦게 알아 버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천둥새 사냥이랑 시간대가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조정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진하가 13층까지 닿아버렸다.

“아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들키기는 했지만 애초에 천둥새 사냥은 이미 반쯤 마무리 된 상태고 그 상태에선 그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진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구경하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뿐, 그저 기다리기만 하다가 올라올 때 잡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 그래도 뭔가 불안한데.”

기억 속의 진하는 항상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뭔가를 보여 줬다는 점이 그의 감각을 건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둥새는 잡힐 거고, 진하 역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건 아무리 고민하고 가설을 세워도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마치 외출한 상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안한 느낌이랄까?

“아냐, 신경쓰지 말자.”

어차피 지금 이 상태에서 그가 관여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멀기도 했고, 천둥새를 잡는 것에 여력을 쏟기도 바빴다.

그러니 진하가 무슨 짓을 하던 아니던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 뿐이었다.

“비서.”

끼이익―

“부르셨습니까?”

신지하의 명령에 문이 열리고 중년인 한 명이 들어왔다. 신지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김진하에 대한 자료, 다 찾아놨지?”

“네,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디서 머물렀는지까지 분 단위로 모두 파악했습니다.”

“그럼 모두 장악해 놔. 김진하가 돌아오더라도 뭘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알겠어?”

“명령대로 해 놓겠습니다.”

비서는 그 말과 함께 문을 닫고 사라졌다. 비서가 사라지고 나서 신지하는 넥타이를 풀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김진하, 설마 악연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이야…….”

한국을 떠났을 때 인연은 모두 끝난 줄 알았다. 미국은 그만큼 폐쇄적이었고 만날 가능성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마주치다니, 좋다면 좋고 아니라면 아니라 할 수 있는 애매한 상황.

“뭐 그래도 우리의 복수는 할 수 있겠네.”

* * *

유럽 제2 게이트 16층.

“감사합니다.”

이기수는 자신 앞에서 몬스터를 쓸어버린 레이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공략권만 신청했는데 설마 직접 나서서 도와줄 줄이야…….

“에이, 우리 기수는 이런 거에 너무 뻣뻣하다니까?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응?”

옆에 있던 잭이 능글맞은 미소로 이기수에게 말했다. 이기수는 그의 행동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능글맞게 얘기를 하긴 해도 레이나보다도 더 빨리 그를 도와주겠다고 한 게 잭이었다.

“근데 진짜 이렇게 해도 돼?”

이기수는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물었다. 딱 봐도 S급 이상으로만 구성된 소규모 팀이란 걸 알 수 있는데 고작 그를 위해서 같이 내려와 주는 것 치곤 너무나 호화로웠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내려온 건 아니에요.”

“그럼…….”

“저도 사실 찝찝했거든요. 당시에는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냅두긴 했지만 이참에 가서 확인해 보려고요. 무슨 짓을 하지 않는지. 그러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레이나의 말에 이기수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해도 안 가질 순 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말대로 다른 이유로 같이 내려온 거라고는 해도 결국, 그가 제안했던 게 시발점이 되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제 곧 16층이네요.”

이기수는 눈앞에 있는 통로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저 통로를 내려가기만 하면 올림포스가 나온다.

“네, 저기만 가면…….”

말을 하던 레이나는 말을 끊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올림포스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이기수 역시 마찬가지로 그녀가 본 것을 확인했기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곳에는 올림포스의 유일한 생존자인 헤라클레스가 통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레이나와 이기수를 본 헤라클레스가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의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으며 이기수 역시 대답보다는 그가 들고 있는 물건에 시선이 갔다.

‘아스트라페’

제우스의 무기이자 유품, 그리고 번개를 다룰 수 있는 창.

“아무래도 그쪽은 이게 목적인가 보지?”

이기수의 시선을 알아챈 헤라클레스가 손에 들고 있는 아스트라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몸 상태를 보아하니 왜 필요한지 알겠어. 하기야 유일하게 아버지와 비슷하게나마 벼락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이니까 탐낼 만하긴 하지.”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나요?”

“그건... 일단 다른 일부터 해결하고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다른 일? 아…….”

헤라클레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이기수는 그제야 딱딱하게 안색이 굳어있는 레이나를 볼 수 있었다.

너무 친근하게 말을 걸어서 까먹고 있었는데 헤라클레스는 몬스터였고, 협회를 공격한 장본인이었다.

“흠…… 그래도 같이 싸운 게 있어서 적의가 많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군.”

“당연하지. 그때 너를 그냥 보내 줬던 건 우리나라에 괜한 피해를 주기 싫어서였어.”

“지금도 조용히 있을 건데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나? 따지고 보면 너한테 우리 동족도 죽었으니 서로 그냥 넘어가는 건 어때?”

헤라클레스의 말에 레이나는 조용히 검을 겨눴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 역시 자신의 무기로 헤라클레스를 겨누었다.

그 모습에 헤라클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곤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오니 뭔가 씁쓸했다.

‘셋, 아니 넷 정도인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데려갈 수 있는 인간의 숫자였다. 죽은 헤르메스의 신력을 가져오면서 몸이 완전히 회복 된 걸 넘어서 강화가 됐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헤라클레스는 이내 레이나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가까워질수록 높아져 가는 긴장감. 그리고 레이나가 출수를 위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그만하지.”

멈칫

헤라클레스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레이나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부탁이란 걸 하는 거다. 아마 네가 원한다면 난 확실히 여기서 죽겠지.”

“그걸 말이라고…….”

“적어도 세 명은 데려가겠지만.”

헤라클레스의 말에 레이나의 입이 닫혔다. 사실 그 부분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막상 만나 보니 지상 때와 다르게 헤라클레스의 기세가 강해졌단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 죽이려 했다. 말이 통하든 아니든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도 모르는 국가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깔끔히 죽어 주지. 단,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그래. 아직 올림포스에 모든 이의 무덤을 만들지 못했거든. 날 죽이길 원한다면 그때 죽어 주도록 하지.”

헤라클레스의 말에 레이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제안은 순간적으로 달콤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적을 눈앞에 두고 넘어가는 건 한번으로 족했다. 그 이상은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고, 또 이 몬스터가 얼마나 강해질지도 알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이어 레이나의 뒤에 서 있는 이기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 나를 따라 16층으로 가자. 그렇다면 아스트라페를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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